수능엄경(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2권 2

Skunky 2025. 4. 15. 08:00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2 2

*제법(諸法)은 유심(唯心)의 소현(所現)이다.

 

阿難卽從座起禮佛,合掌長跪白佛:

“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云何世尊名我等輩遺失眞性顚倒行事?願興慈悲洗我塵垢。”

아난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장궤합장(長跪合掌)을 하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보고 듣는 마음이 결코 생멸(生滅)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저희들에게 ‘참 성품의 진성(眞性)을 잃어버리고 거꾸로 된 전도사(顚倒事)를 행하는가!’라고 꾸짖으셨습니까?

자비를 내리시어 저희들의 번뇌인 진구(塵垢)를 씻어주시옵소서!”

ㅡ부처님과의 문답으로 인하여 도리어 의심이 일어나서, '진성이 나고 죽음이 있는 것이라면, 진정 잃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미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무엇을 잃었다고 말하겠습니까?' 라고 질문 한 것이다. 

 

장궤(長跪),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오른쪽 무릎을 꿇거나 혹은 두 무릎을 대고 허리를 세운 채 꿇어앉는 것.

 

▷비류(比類)
卽時,如來垂金色臂,輪手下指示阿難言:“汝今見我母陁羅手爲正爲倒?”

그러자 여래께서 황금색 팔(금색비 金色臂)을 내리시고,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키시면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모다라(母陀羅: 印手 인수)의 손을 보아라. 

지금의 이 ‘바로인 정(正)’이라 하겠는가?

‘거꾸로인 도(倒)’라고 하겠는가?”

ㅡ이는 제불과 중생들이 동일한 체성이라서, 진실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만 거꾸로 봄으로 인하여 잃었다고 말한 것이다. 근본으로부터 관찰해 본다면 처음부터 잃은 것이 없으며, 처음부터 바르고 거꾸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바른 것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모다라(母陀羅), 인상(印相), 상인(相印), 밀인(密印), 계인(契印), 수인(手印), 인계(印契), 인(印)이라고도 하며, 모다라(母陀羅, 半陀羅)라고 음역한다.


阿難言:“世閒衆生以此爲倒,而我不知誰正誰倒。”

아난 존자가 말씀 드리기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인 도(倒)’라고 할 것입니다만,

저는 ‘바로’인지 ‘거꾸로’인지를 모르겠습니다.”


佛告阿難:“若世閒人以此爲倒,卽世閒人將何爲正?”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인 도(倒)’라고 한다면, 

어떠한 것을 ‘바로인 정(正)’이라 하겠는가?”


阿難言:“如來豎臂,兜羅緜手上指於空,則名爲正。”

아난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셔서 도라면(兜羅綿)의 손을 위로 올리시고 허공을 가리키신다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佛卽豎臂,告阿難言:“若此顚倒首尾相換,諸世閒人一倍瞻視,

부처님께서  팔을 세우시고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러한 뒤바뀜의 전도(顚倒)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뀐 전도수미상(顚倒首尾相)일 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시    잘못 보는 일배첨시(一倍瞻視)가 되는 것이니라. 

 

▷전도의 소재를 물음

則知汝身與諸如來淸淨法身比類發明,如來之身名正遍知,汝等之身號性顚倒,

분명히 알아야 하나니, 너의  몸을 여래의 청정한 법신(法身)과 비교하여 밝힌다면, 

여래의 몸을 바르게 두루  아는 지혜의 정변지신(正遍知身)이라 하고, 

너희들의 몸을 성품이 뒤바뀐 성전도신(性顚倒身)이라 하는 것이다. 

ㅡ팔과 몸은 본래 하나인데, 마음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망령되게 분별하며, 법신은 본래 같지만, 바로 또는 거꾸로 된 것으로 말미암아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의 집착을 잊고 바로 또는 거꾸로 되었다고 하는 것을 버린다면, 팔과 몸은 자연 그대로이고, 법신도 둘이 아닐 것이다.

 

▷한 배나 더 전도된 것과 합해짐

隨汝諦觀汝身佛身,稱顚倒者名字何處號爲顚倒?”

于時,阿難與諸大衆瞪瞢瞻佛目精不瞬,不知身心顚倒所在。

 몸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너의 몸을 여래의 몸에 비교하여서 뒤바뀌었다고 하는 말은 어디를 두고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인가?”

그러자 아난 존자와 대중들은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이 어디인가를 몰라서 눈을 치켜 뜬채 깜박이지도  멍하게 부처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ㅡ전도된 근본을 추구하고 궁구하여서 깨닫기를 바랐으나, 대중들이 혼미하여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佛興慈悲哀愍阿難及諸大衆,發海潮音遍告同會:

“諸善男子!我常說言:‘色心諸緣及心所使諸所緣法,唯心所現。’

부처님께서 자비심을 내시어서 아난 존자와 대중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의 조수(潮水)와 같은 음성으로 두루 법회 대중에 응하여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나는 항상 ‘물질과 마음의 색심(色心) 모든 인연의 제연(諸緣) 마음에 딸린 모든 생각의 심소사(心所使)와 일체 인연의 경계 법인 소연법(所緣法) 유심(唯心)에서 나타난 것의 유심소현(唯心所現)이라고 설하였느니라.

 

유심(唯心), 우주의 종극적 실재는 마음 뿐인 것으로, 외계(外界)의 사물은 마음의 변현(變現)이다.

유식종(唯識宗)에서는, 만유의 현상에 속한 심식(心識)에 대하여 입론(立論)하서, 심식의 식(識)을 네 가지로 세웠다.

우리들이 인식하는 대경(對境)의 객관은 인식 작용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경(實境)이 아니고,

견분(見分)에 의하여 마음 속에 비틴 상분(相分), 곧 본질을 연(緣)으로 인하여 생긴 영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제8 아뢰야식에 함장(含藏)된 종자로부터 생긴 것이므로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일체의 사물은 모두 심식으로 변현한 것으로, 3계(界)는 유식만이 종극의 실재요, 그밖에 별법(別法)이 없다고 하였으며, 

또한 '기신론(起信論)'과 '화엄종' 등에서는 만유의 본체인 진여심(眞如心)으로서, 만유는 모두 일심진여(一心眞如)가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여심에는 수연(隨緣)과 불변(不變)이 있어서, 진여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불변(不變)하는 것이지만,

염정(染淨)의 연을 따라서 갖가지의 차별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 수연(隨緣)이다.

그러므로 만상은 일심진여의 현현으로서, 그 체(體)는 진여를 여읜 것이 아니다. ㅡ참고 마음공부도량 붇다사

*해조음(海潮音), 바다의 조수(潮水)와 같은 음성. 요청을 받지 않고도 교화할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시에  설법하는 것이 마치 조수가 때를 어기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에 비유한 것.

 

汝身汝心皆是妙明眞精妙心中所現物,云何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寶明妙性,認悟中迷

 몸(身)과 마음(心)은 이렇게 묘하고 밝은 묘명(妙明)한 것이고, 진실하고 정밀한 진정(眞精)하며, 심오한 묘심(妙心)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래의 묘하고 원만하고 밝은 마음의 본묘원묘명심(本妙圓妙明心)의 보배와 같이 밝고 묘한 성품의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어버리고, 깨달음을 미혹(迷惑)으로 잘못 아는 것인가!

ㅡ마음(心)이란 육식과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팔식을 말하는 것이다.

묘한 마음은 하나인데, 명칭이 많고 다른 것은 법(法)에 의지하여서 따라서 작용하는(用)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밝은 마음에 나타난 물질이 거울과 같은 까닭에 묘명진정(妙明眞精)이라 한 것이고, 또한 근본을 모르고 끝을 따라 가는 것을 밝힌 까닭에 본묘명심(本妙明心)이라 한 것으로, 본묘(本妙)란 본래 스스로 묘해서 닦을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마음(心)과 성품(性)은 체(體)와 용(用)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은 묘함으로부터 밝음을 일으켜, 원만하게 밝고 나아가 묘하여서 마치 거울의 본체와 같으므로 보명묘성(寶明妙性)이라 한 것이다.

 

晦昧爲空,空晦暗中結暗爲色,色雜妄想想相爲身,聚緣內搖趣外奔逸,昏擾擾相以爲心性。

미혹한 회매(晦昧)와 어둠의 회암(晦暗)이 허공으로 변하고, 

허공의 미혹한 어둠의 회암(晦暗) 가운데에서 어둠이 맺혀 색(色, 색진)이 되고, 

색이 망상과 섞이니, 망상으로 나타난 상(相) 몸(身)으로 여기며, 

인연을 모아 안으로 흔들리고, 경계를 좇아 밖으로 달리며, 어둡고, 흔들리고, 시끄러운 심성(心性)으로 삼는 것인가!

ㅡ반야에 미한 까닭에 회매(晦昧)라 하며, 무명으로 말미암아 미망함에 집착하여서 허공이 생긴다는 것이며, 

변화되는 집착과 변화시키는 무명의 두 법이 화합하여 4대의 의보인 외경의 물질을 이루는 까닭에 '어둠이 맺혀 색진이 된다'고 한 것으로, 이른바 생각이 엉켜서 국토를 이룬다는 것이다

 

색(色, rūpa)

(1) 심법(心法)에 대하여 물질을 색법이라 하며, 변괴(變壞)ㆍ질애(質礙)의 두 가지 뜻이 있는 물질의 총칭이다.

5위(位), 5온(蘊)의 하나이며, 구사론(俱舍論)에서는 5근(根)ㆍ5경(境)ㆍ무표색(無表色)의 11로 나누고,

유식종에서는 5근(根)ㆍ5경(境)ㆍ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의 11로 나눈다.

(2) 최근의 해석으로는 형상과 색채를 합한 것으로서 감각적 직관적인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곧 정신적 요소에 대립한 물질이 아니고, 존재하는 한 방면인 물질적 성질을 가리킨다.

 

一迷爲心,決定惑爲色身之內,不知色身外洎山河虛空大地,咸是妙明眞心中物。譬如澄淸百千大海,棄之,唯認一浮漚體,目爲全潮窮盡瀛渤。汝等卽是迷中倍人,如我垂手等無差別,如來說爲可憐愍者。”

瀛 바다 영, 渤 바다 이름 발, 발해 발

이렇게 한번 미혹하여서 마음으로 여기는 일미위심(一迷爲心)은, 현혹되게 몸의 색신(色身) 속에 있다고 결정하고는, 

색신(色身)과 밖의 산과 강과 허공과 대지 모두가 다 묘하고 밝은  마음의 묘명진심(妙明眞心) 가운데의 사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자면, 맑고 깨끗한 백천대해(百千大海)를 버리고, 오로지 하나의 물거품인 일부구체(一浮漚體)만을 인정하여서, 바닷물 전체의 전조(全潮)로 지목하고, 넓은 바다인 영발(瀛渤)을 끝끝내 물거품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들은 내가 손을 아래로 향한 것과 다름없이 미혹한 가운데에서 한   미혹한, 미중배인(迷中倍人)의 사람들이니, 

 여래는 너희들을 가련한 자라고 하는 것이니라.”

 

▷혼탁함을 분별함
阿難承佛悲救深誨,垂泣叉手而白佛言:“我雖承佛如是妙音,悟妙明心元所圓滿常住心地;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允所瞻仰,徒獲此心未敢認爲本元心地。願佛哀愍宣示圓音,拔我疑根歸無上道。”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가련하게 여겨서 구해주시는 깊은 가르침의 심회(深誨)을 받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두 손을 마주잡는, 차수(叉手)하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은 묘음(妙音)을 받들어서 묘하고 밝은 마음의 묘명심(妙明心)이 원래 원만한 것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원만상주(圓滿常住)가 항상 머무는 마음자리인 상주심지(常住心地)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제가 지금 부처님의 설법하시는 설법음(說法音)을 깨달았을지라도, 그것은 현재에서 인연하는 마음의 연심(緣心)이며, 진실로 우러러 볼지라도 단지  마음을 얻을 뿐이니, 아직은 감히 본원(本元)의 심지(心地)를 안다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원만한 법음의 원음(圓音, 범음 梵音  일음 一音)을 베푸시어,  의혹의 뿌리를 뽑아주시고, 더없이 높고 바른 무상도(無上道)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ㅡ법음을 들음으로 인하여 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여 전혀 유실됨이 없음을 깨달은 까닭에 '항상 머무는 마음자리인 상주심지(常住心地)'라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밝지 못하여서, 들음으로 반연하는 마음을 본성(本性)을 깨달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이는 평소의 생각에 혼탁한 의혹들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뽑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께 뽑아 주시기를 희망한 것이다.

원음(圓音)은 범음(梵音) 또는 일음(一音)이라고도 하며,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 즉 부처님의 소리를 말합니다.

 

▷반연하는 것을 인정하여 참된 것을 잃음
佛告阿難:“汝等尚以緣心聽法,此法亦緣非得法性。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오히려 인연하는 마음의 연심(緣心, 반연심)으로 법을 듣고 있으니,  법도 인연인 연법(緣法)일 뿐, 법의 본성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ㅡ음성으로 인하여 분별하는 것은 연심(緣心)이지 참마음이 아니며, 대상 경계를 인하여 망령되게 보는 것은 연법(緣法)이지 법성은 아니다. 

 

如人以手指月示人,彼人因指當應看月;若復觀指以爲月體,此人豈唯亡失月輪,亦亡其指。何以故?以所摽指爲明月故。豈唯亡指,亦復不識明之與暗。何以故?卽以指體爲月明性,明暗二性無所了故。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면,  사람은 당연히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할것이니, 만약 손가락을 보고  그 자체로 여긴다면,  사람은 어찌 달만 잃은 것이겠는가! 손가락도 잃은 것이니라!

왜냐하면 가리킨 손가락을 밝은 달로 여긴 까닭이니라. 

어찌 손가락만 잃었다고 하겠는가. 밝음과 어둠도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손가락 자체를 달의 밝은 성질의 월명성(月明性)으로 여겨서, 밝고 어두운 명암(明暗)의  성질을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ㅡ대상 경계로 인하여 잘못 인식하면 점점 미혹하게 되어서 더더욱 참됨을 잃는다. 

 

▷반연하는 것은 무성(無性)이다.

汝亦如是,若以分別我說法音爲汝心者,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譬如有客寄宿旅亭,暫止便去終不常住,而掌亭人都無所去名爲亭主;此亦如是,若眞汝心則無所去。云何離聲無分別性?

너희도 역시 이와 같으니, 만약 나의 설법소리인 법음(法音)을 분별하여서 네 마음으로 삼는다면,  마음은 마땅히 소리를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 다시 분별하는 성품의 분별성(分別性)이 있어야 할 것이니,

비유하자면, 여정(旅亭, 여관)에 기숙(寄宿)한 나그네는 잠시 머물었다가는 이내 떠나서 끝내 상주(常住)하지 않으나, 

여정을 맡은 사람은 전혀  곳이 없으니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만약 진실한  마음인 진심(眞心)이라고 한다면,  곳이 없어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소리(聲)를 떠나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는 것인가?

ㅡ분별하는 연심(緣心)은 물질을 여읜다면 성품이 없으니, 나그네와 같은 것이고, 상주하는 진심은 갈 곳이 없으니 여관의 주인과 같은 것이다.

 

斯則豈唯聲分別心,分別我容離諸色相無分別性,如是乃至分別都無非色非空。拘舍離等昧爲冥諦,離諸法緣無分別性,則汝心性各有所還,云何爲主?”

어찌 소리를 분별하는 마음의 성분별성(聲分別性)만 그러하겠는가!

나의 모습을 분별하는 마음의 상분별성(相分別性)도 일체의 색상(色相,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을 떠나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느니라. 

이렇게 나아가 분별이 전혀 없는 곳에 이르게 되면,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 외도)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명제(冥諦, 본성)라고 하는 것이니라.

제법의 인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너의 심성(心性)은 각각 인연을 따라 돌아갈 자리가 있는 것이 될것이니, 어떻게 주인이 되겠는가?

ㅡ음성을 분별하는 마음이란 음성의 반연으로 생긴 연심(緣心)을 말하며, 일체는 없는 것이므로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나' 외도만이 어두워서 명제라고 한다. 

명제(冥諦), 수론외도(數論外道)가 내세운 25가지 제(가운데 첫 번째를 물질적 본체. 이것은 만물의 근원으로서 명막무제(冥漠無際)한 것이므로 명초(冥初) · 명성(冥性)이라고도 한다. 또 만물의 모든 법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자성(自性) · 본성(本性) · 승성(勝性)이라고도 하며, 또 이것이 모든 법의 시초이므로 명초(冥初)라고도 한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명()과 혼돈(混沌)이라는 말은 겁()의 한계에 부딪힌 모습입니다. 

 

▷팔경(八境)에 의하여 견성(見性)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이다.
阿難言:“若我心性各有所還,則如來說妙明元心云何無還?唯垂哀愍爲我宣說。”

아난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만약  심성(心性)이 돌아갈 곳이 있다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인 묘명원심(妙明元心)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는 것입니까?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이치를 설하여 주시옵소서!”

 

ㅡ묘명원심(妙明元心)은 곧 보는 정기의 견정(見精)이다.
佛告阿難:“且汝見我見精明元,此見雖非妙精明心,如第二月非是月影,汝應諦聽,今當示汝無所還地。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보는 정기의 견정(見精)은 밝은 근원의 견정명원(見精明元)이다. 

 견정(見精)이 비록 미묘하고 정밀하고 밝은 마음의 묘정명심(妙精明心)이 아닐지라도, 

눈을 비비면서 달을 보면 두 개의 달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가 아닌 것이다. 

너는 자세히 듣거라! 이제 너에게 돌려보낼 자리가 없는 까닭을 보여 줄것이니라.

ㅡ묘한 마음과 견정은 본래 두 개의 상이 없다. 진실한 달은 묘정명심(妙精明心)을 비유한 것이고,

제 2의 달은 견정명원(見精明元)을 비유한 것이며, 물 속의 달은 연진의 분별을 비유한 것으로, 즉 진심은 알기가 어려운 까닭에 견정을 가탁해서 방편으로 보여준 것이다. 

 

阿難!此大講堂洞開東方,日輪昇天則有明耀,中夜黑月雲霧晦暝則復昏暗,戶牖之隙則復見通,牆宇之閒則復觀擁,分別之處則復見緣,頑虛之中遍是空性,鬱𡋯之象則紆昏塵,澄霽斂氛又觀淸淨。

隙 틈 극, 鬱 답답할 울, 울창할 울, 紆 굽을 우

아난아,   강당의 문이 동쪽으로 활짝 열려 있을 때, 하늘에 해가 뜨면 밝은 (明) 보고, 

그믐의 한밤중에 구름이 잔뜩 끼면 캄캄한 어둠의 암(暗) 보며, 

문과 창틈으로 (通)함을 보고, 담과 지붕에서는 막힘의 색(擁)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여러 인연의 연(緣) 보고,   곳에서는 두루 (空)함의 공성(空性)을 보며, 

안개에 묻혀 내리는 흙비의 모양에서는 어둠에 쌓인 티끌의 혼진(昏塵)의 울(鬱) 보며, 

날씨가 맑게 개어서, 먼지와 안개가 걷히고 나면 다시 맑음의(淸) 볼 것이니라.

 

*팔환변견(八還辨見), 밝은(明), 어둠(暗), 통(通), 막힘(擁), 인연(緣), 허공(空), 티끌의 울(鬱), 청(淸)의 여덟 가지


阿難!汝咸看此諸變化相,吾今各還本所因處。云何本因?

阿難!此諸變化明還日輪。何以故?無日不明,明因屬日,是故還日;暗還黑月;通還戶牖;擁還牆宇;緣還分別;頑虛還空;鬱𡋯還塵;淸明還霽。則諸世閒一切所有,不出斯類。

아난아, 너는  변화하는 변화상(變化相)들을  보고 있으니, 

나는 이제 그것들을 본래의 원인한 자리인 본소인처(本所因處)로 각각 돌려보내리라.

본래 원인하였던 자리인 본소인처(本所因處)는 어느 곳이겠는가?

아난아,  여러 변화하는 변화상(變化相)들 가운데, 밝음은 해로 돌려보내는 명환일륜(明還日輪)하나니,  까닭은 해가 없으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밝은 원인은 해에 속한 것이니, 해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어둠은 그믐의  밤중에 돌려보내고, 통(通)함은 문과 창틈으로 돌려보내며, 

막힘(擁)은 담과 지붕으로 돌려보내고, 여러 인연(緣)은 분별로 돌려보내며, 

 빈곳은 허공(空)으로 돌려보내고, 안개 쌓인 흙비는 티끌(塵)로 돌려보내며, 

맑은 기운은 개인 날씨의 청정(淸淨)으로 돌려보내리라.

 세상의 모든 변화는 밝은(明), 어둠(暗), 통(通), 막힘(擁), 인연(緣), 허공(空), 티끌의 울(鬱), 맑음 청(淸)여덟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라.


汝見八種,見精明性當欲誰還?何以故?若還於明,則不明時無復見暗,雖明暗等種種差別,見無差別;諸可還者自然非汝,不汝還者非汝而誰?則知汝心本妙明淨。汝自迷悶喪本受輪,於生死中常被漂溺,是故如來名可憐愍。”

너는 이러한 여덟 가지의 팔종(八種)을 두루 보나니, 그 두루 다 보는 견정(見精)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려보내겠는가?

만약 밝음(明)으로 돌려보낸다면 밝지 않을 때는 어둠(暗)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니,

비록 밝고 어두운 명암(明暗) 등에는 가지가지의 차별이 있으나, 보는 정기의 견정(見精)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돌려보낼 수 있는 것들은 자연히 네가 아니지만, 네가 돌려보내지 못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분명히 알아야 하나니, 네 마음은 본래 묘하고 밝고 깨끗한 본묘명정(本妙明淨)인 것이나,

네 스스로가 미혹하여서 본성을 잃고 윤회하면서 항상 생사 가운데에 빠져서 흘러 다니는 것이니,

그래서 여래는 불쌍하다고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