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2권 1

Skunky 2025. 4. 14. 08:00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2 1

*팔환변견(八還辨見)을 밝힘

 

▷경가가 그 뜻을 서술함

爾時,阿難及諸大衆聞佛示誨身心泰然,念無始來失卻本心,妄認緣塵分別影事,今日開悟如失乳兒忽遇慈母,

이때 아난 존자와 대중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져서 생각해 보았다. 

시작이 없는 무시로부터 본심(本心)을 잃어버리고 인연 경계를 따라 분별하는 그림자인 분별영사(分別影事)를 본심으로 잘못 알고 있다가, 이제서야 여래를 만나 깨닫게 되었으니, 마치  먹이 아기가 잃어버린 자애로운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과 같이 기뻤다. 

 

*연진(緣塵), 대상 물질인 색성향미촉법 등의 육진(六塵)을 반연하여서 진성(眞性)이 현혹되기 때문에 연진(緣塵)이라 한 것이다.

*분별영사(分別影事), 나누는 분(分) 분별하는 별(別)하여서 그림자 즉 사물이 영사(影事)이다.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나누어져 있지 않고 상호의존의 관계로 존재하며, 상호의존한다는 것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그러한 것을 나누고 구별하여서 보는 것은 잘못 보는 것으로 이렇게 구별하여 보았을 때 나타나는 현사을 영사(影事)라 한다 
분별(分別)이란 구분해서 식별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진짜 마음이 아니고, 망상(妄想)이고, 반연심(攀緣心)이고, 분별영사(分別影事)이다. 이 마음은 늘 변한다. 분별은 가지가지로 일어나지만, 항상 아는 놈은 진짜 내 마음이다. 진짜 마음이라면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 상주진심(常住眞心)이어야 한다.  

 

合掌禮佛,願聞如來顯出身心眞妄虛實 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

아난 존자는 대중과 함께 합장하여 예를 올리고는, 

부처님께서 이 몸과 마음의 신심(身心)에서 진실한 실(實)과 망상의 허(虛)와 지금 눈앞에 있는 생멸(生滅)과 불생멸(不生滅)의 이치를 드러내시어서, 이러한  가지의 바른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시기를 원하였다.

ㅡ앞에서는 '움직이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움직이는 것을 대상 물질로 여겨서, 생각마다 생겨나고 없어지고 하여서 진성(眞性)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과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그 두 가지를 분별할 능력이 없으므로 두 가지 뜻을 나타내어 분명하게 밝혀 주시기를 원한 것이다. 

 

▷몸은 변화하여 달라지지만, 생멸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밝힘

波斯匿王起立白佛:“我昔未承諸佛誨勅,見迦旃延毘羅胝子,咸言:‘此身死後斷滅,名爲涅槃。’我雖値佛今猶狐疑,云何發揮證知此心不生滅地?今此大衆諸有漏者咸皆願聞。”

이때 바사닉왕(波斯匿王, prasenajit)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기 전에 가전연(迦旃延)과 비라지자(毗羅胝子)를 만났는데, 그들은 ‘이 몸이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는 단멸(斷滅)을 열반’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으나 지금도 오히려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여 이러한 의심을 해결하여서 불생멸의 경지(地) 확실하게 증지(證知)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대중 가운데의 번뇌가 있는 모든 이들이 듣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바사닉왕(波斯匿王, prasenajit)로 승군왕(勝軍王)이라는 뜻이다. 석존과 같은 시대의 슈라바스티(śrāvastī, 舍衛國사위국)의 열여섯 대국왕 가운데의 왕이며, 이름이 월광(月光)이었다. 

*여기에서의 가전연(迦旃延)은 나형외도로 외도육사(外道六師, 육사외도)이며, 오늘날의 자이나교도입니다. 니간타 나타풋타(Nirgrantha Jnātiputra)는 자이나교의 개조인 마하비라(Mahāvīra)이며, 오래전부터 있던 교단의 명칭이었으나, 그가 이 파로 들어간 뒤에 자이나교를 성립하였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주의(不定主義) 또는 상대주의(相對主義)를 내세우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엄격한 고행(苦行)의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죽이지 말고 훔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않고 소유하지 말라고 하는 오대서(五大誓)를 제정하였다

*비라지자(毗羅胝子)는 외도육사(外道六師, 육사외도)이며, 닦아 익히되 공(空)을 집착하여 도(道)로 삼고 몸은 멸하면 체(體)가 없고 죽음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법을 득도(得道)라고 말하느니라.

*호의(狐疑), 의혹을 뜻하며, 여우는 의심이 많은 짐승이므로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

 

▷문답(問答)으로 환망(幻妄)을 분별함
佛告大王:“汝身現存,今復問汝,汝此肉身爲同金剛常住不朽?爲復變壞?”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네 몸이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으니, 내가 다시 너에게 물어보리라. 

대왕, 그대의 육신은 금강과 같이 견고한 것으로, 영원히 머물 것이며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변하여 무너진다고 생각하는가?”


“世尊!我今此身終從變滅。”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의  몸이 끝내에는 변하여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佛言:“大王!汝未曾滅,云何知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몸이 이전에 몸이 멸한 적이 없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멸한다는 것이라고 아는 것인가?”


“世尊!我此無常變壞之身雖未曾滅,我觀現前念念遷謝新新不住,如火成灰漸漸銷殞殞亡不息,決知此身當從滅盡。”

왕이 말씀드리기를, 

“저의  무상(無常)하게 변하여 무너지는 몸이 비록 이전에 멸한 적은 없으나, 생각생각마다 옮겨가면서 달라지고, 계속 새롭게 새롭게 변하여 멈추지 않으며, 불에 타는 땔감이 재가 되듯이 점점 사그라지면서 쉬지않고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며서, 장차  몸은 결국에는 멸하여 사라질 것이라고 아는 것입니다.”


佛言:“如是,大王!汝今生齡已從衰老,顏貌何如童子之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합니다. 대왕이여! 지금 그대는 나이가 들어 이미 쇠약한 늙은이가 되었는데, 얼굴의 모습은 동자 때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


“世尊!我昔孩孺膚腠潤澤,年至長成血氣充滿,而今頹齡迫於衰耄,形色枯悴精神昏昧,

髮白面皺逮將不久,如何見比充盛之時。”

왕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에는 피부부(膚)와 살갗주(腠)이 부드럽고 윤택하였으며, 

그 보다 조금 더 자랐을 때에는 혈기가 왕성하고 힘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너진 나이로 거의 쇠약한 늙은이의 쇠모(衰耄)가 되어서, 형색은 말라서 초췌한 고췌(枯悴)하게 되었으며, 정신은 멍하여 혼미하며, 머리는 하얗게 변하였고, 얼굴은 쭈그러져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거늘, 어떻게 혈기 충만한 젊은 시절과 비교할  있겠습니까!”

해(孩), 뼈가 겨우 생긴 것,

유(孺), 사람의 양육을 필요로하는 아기,

부(膚), 피부의 표면, 

주(腠), 살결 퇴(頹), 해가 기울어지는 것과 같은, 늙으막을 의미한다.


佛言:“大王!汝之形容應不頓朽。”
朽 썩을 후, 썩은 냄새 추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몸과 얼굴은 일시에 한꺼번에 쇠약한, 돈추(頓朽)하지 않았으리라.”


王言:“世尊!變化密移我誠不覺,寒暑遷流漸至於此。

何以故?我年二十雖號年少,顏貌已老初十年時;三十之年又衰二十;于今六十又過于二;觀五十時宛然强壯。

왕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변하여 달라짐이 은밀하게 가만히 옮겨 간 것이니, 참으로 제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한서(寒暑, 세월)의 옮겨가는 흐름과 함께 점차로 이렇게 늙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은,  나이 스무  때에는 비록 젊은 나이라고 하였으나, 저의 안모(顏貌, 얼굴)는 이미 이전의 열 살이었을 때보다 늙었으며, 서른이 되었을 때에는 스무 살이었을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의 예순두 해를 보낸 나이이니, 쉰  때를 돌아보건데,   이었을 때가 훨씬 건장하였습니다.


世尊!我見密移雖此殂落,其閒流易且限十年,若復令我微細思惟,其變寧唯一紀二紀,實爲年變;豈唯年變,亦兼月化;何直月化,兼又日遷;沈思諦觀剎那剎那,念念之閒不得停住,故知我身終從變滅。”

殂 죽을 조

세존이시여, 저는 가만히 은밀하게 바뀌어  대강 보고, 비록 이렇게 폭삭 늙었다고 한 것으로, 

 동안 흘러 바뀌어  기간을 그저 10년씩 잡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자세히 사유하여 본다면,  변함이 어찌 일기(一紀, 12년), 이기(二紀, 24년)뿐 이었겠습니까! 

사실, 해마다 변하여 왔습니다. 

어찌 오직 해마다 변할 뿐이었겠습니까! 실은 매달 변하여 온 것입니다. 

어찌 다만 매달 변할 뿐이었겠습니까! 실은 매일 변하여 온 것입니다. 

더욱 더 세밀하게 곰곰이 살펴보면, 찰나찰나(剎那剎那)마다,

생각생각의 염념(念念)마다 변하여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몸이 마침내에는 변하여 없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조락(殂落),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여기에서는 폭삭 늙은 것을 뜻하였다. 

일기(一紀), 12년을 한 단위로 함.

찰나(剎那), 지극히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떨어지는 가랑잎이 땅에 닿기 직전의 땅과 종이 한 장 사이의 짧은 시간을 말한다.

 

▷환상으로 인하여 진(眞)이 있음을 밝힘
佛言:“大王!汝見變化遷改不停,悟知汝滅;亦於滅時,知汝身中有不滅耶?”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변화(變化)하고, 옮기면서 바뀌어 달라지는 천개(遷改)하여서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는,

 몸이 끝내에는 멸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멸하는 가운데에서도  가운데 멸하지 않는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波斯匿王合掌白佛:“我實不知!”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그러한 이치를 참으로 모르고 있습니다.”


佛言:“我今示汝不生滅性。大王!汝年幾時見恒河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불생멸의 성품인 불생멸성(不生滅性) 보여주리라! 

대왕이여, 그대가 몇 살때 처음으로 항하의 강물을 보았는가?”


王言:“我生三歲,慈母攜我謁耆婆天,經過此流。爾時卽知是恒河水。”

왕이 말씀드리기를, 

“제 나이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데리고 기바천(耆婆天)의 사당(祠堂)을 참배(알 謁)하러 가실 때, 

 강물을 건너게 되어서, 그것이 바로 항하의 강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바천사당(耆婆天祠堂), 기바천(耆婆天)은 장수천(長壽天)으로, 기바천에 가서 아이를 위하여 빌면 장수한다고 하여서 인도에는 사당이 많다.


佛言:“大王!如汝所說,二十之時衰於十歲,乃至六十,日月歲時念念遷變,則汝三歲見此河時,至年十三其水云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하기를 ‘스무  때에는   때보다 늙었었고, 또한 예순 살은  살보다 늙었으며,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때마다, 찰나마다, 생각마다 옮기고 변하는 천변(遷變)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처음   강물을 열세 살이 되어서   강물과 비교한다면 어떻게 다른가?”


王言:“如三歲時,宛然無異,乃至于今年六十二,亦無有異。”

왕이 말씀드리기를, 

“세  때 본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예순  살이 된 금년에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ㅡ어리고 장성하고 늙음의 갖가지로 변화하여도 보는 주체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곧 생멸하는 가운데에서 생멸하지 않는 것이다.


佛言:“汝今自傷髮白面皺,其面必定皺於童年,則汝今時觀此恒河,與昔童時觀河之見有童耄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스스로 하얀 머리의 백발(白髮)과 쭈그러진 얼굴의 면추(面皺)를 스스로 서럽게 여기고 있으며, 

분명히 그대의 얼굴도 동자 때보다 훨씬 쭈그러져 있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강물을 보는(觀) 것과 예전의 동자 때에 강물을 본(觀) 것에,

따로이 동자와 늙은이의 봄에 다름이 있는가?”


王言:“不也,世尊!”

왕이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佛言:“大王!汝面雖皺,而此見精性未曾皺,皺者爲變、不皺非變,變者受滅、彼不變者元無生滅,云何於中受汝生死,而猶引彼末伽梨等都言此身死後全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을지라도,  보는 정기의 성품인 견정성(見精性)은 일찍이 쭈그러진 적이 없었느니라! 

쭈그러지는 추(皺)는 변하는 것일지라도, 쭈그러지지 않는 불추(不皺)의 것은 변하지 않느니라! 

변하는 것은 변하여 없어질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생멸이 없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대는 그러한 가운데에서 생사를 받아들이고는, 오히려  말가리(末伽梨)들이 주장하는 ‘이 몸이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신사후전멸(身死後全滅)이다’라는 주장을 받아 들였던 것인가!


王聞是言,信知身後捨生趣生,與諸大衆踊躍歡喜得未曾有。

왕은 이 말씀을 듣고는, 이 몸이 죽게 되면 이 생을 버리고 다음 생에 태어난다는 이치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며,

대중들과 함께 이전에 들어 본적이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얻어서 크게 뛸 듯이 기뻐하였다.

 

*견성(見性)은 진심(眞心)이 가지는 본래의 능력으로서 자성본용(自性本用)이다. 모든 중생은 견문각지(見聞覺知) 할 줄 아는 자성본용을 가지고 있는 즉, 볼 것이 없어도 볼 줄 아는 성능을 말한다. 

거울이 모든 것을 비추는 허명(虛明)한 성질과 같은 것이다.

견정(見精)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능력으로서 수연응용(隨緣應用)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범위와 동물이 보는 범위는 다르다. 거울의 모양(오목·볼록) 에 따라 비추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
견성(見性)은 견정(見精)의 자상을 여의고, 진견이 드러나면 망견(妄見)이 사라져서  견정(見精)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견(眞見)이 망견(妄見)에 응하는 것을 견정(見精)이라 하고 견정이 망견을 여의면 진견(眞見)이라 한다.
그러므로 견성(見性)은 견정(見精)이 아니다
① 견성(見性) - 진심(眞心) - 자성본용(自性本用) - 무연지(無緣知) 
② 견정(見精) - 망심(妄心) - 수연응용(隨緣應用) - 반연심(攀緣心) 
견성(見性) → 견정(見精) → 견망(見妄)
견문각지는 전부 성(性)이 있는 육성(六性)으로, 사람의 몸을 타고 났으니 정(精)이 있는 육정(六精)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망(妄)이으로, 즉 육망(六妄)이 된다. 그러므로 육망(六妄)이 우리 중생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견성과 견정은 볼 줄 아는 지(知)의 면에서는 그 성질이 똑같으나, 견성은 인연이 없어도 존재하는 상주진심(常住眞心)이고, 견정은 인연 따라 나타나는 수연응용(隨緣應用)으로서 망심(妄心)이다.
진심(무연지)과 망심(유연지)은 24시간 항상 작용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작용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진심(무연지)은 인연이 없는 것이므로 바뀌지 않으나,

망심(유연지)은 인연 따라 일으키는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빨간 것을 볼 때와 파란 것을 볼 때, 볼 줄 아는 것은 같지만, 생각이 달라지니 망심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망심(妄心)을 묘용(妙用)이라 하며, 우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수연응용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항상 변하지 않는 진심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견견지시(見見之時) 견비시견(見非是見)
①견정으로 시각현상(견정-육진-안식)을 볼 때에
②시각 현상을 보는 것을 아는 견성은 견정이 아니다
보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견(見)은 명과 암을 인하여 보는 것이 아니다.

영광독요(靈光獨耀) 마음자리(견성)는 홀로 밝아서 형탈근진(迥脫根塵) 육근(눈)과 육진(명암 등 대상)과 상관없다
능탈(陵奪)은 서로 충돌하는 상극(相剋)으로, 해가 뜨면 달빛이 안 보이는 것과 같이 해와 달은 서로 상극이다.ㅡ참고 향정법진과 한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