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0 권 5

Skunky 2025. 4. 4. 08:00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0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1. 피과지분(彼果智分) ② 5

 

▶釋曰:此中二頌,辯諸佛說一乘意趣.爲引攝一類者,謂爲引攝不定種性諸聲聞等,令趣大乘,

▷해석한다; 여기서의  게송은 모든 부처님께서 일승을 말씀하신 취지를 밝힌 것으로,

‘한 부류를 이끌어 내어 섭수하고, 나머지를 맡아 지니기 위함이니’란, 이른바 부정종성의 성문등을 이끌어 포섭하기 위해서이다.

ㅡ부정종성(不定種性) 성문과 독각은 소승의 근성을 벗어나서 대승에 통달할 만한 소질이 있기 때문에 일승을 설하여서 이끄는 것이.

 

오성(五姓)= 五種姓(오종성)은  菩薩定姓(보살정성, 定性菩薩정성보살) ·  獨覺定姓(독각정성, 定性緣覺정성연각) · ③聲聞定姓(성문정성, 定性聲聞정성성문) · ④三乘不定姓(삼승불정성, 不定種性부정종성) · ⑤無姓有情(무성유정, 無種性무종성)의 다섯으로,

 ② ③은, 각각 佛果(불과 · 辟支佛果벽지불과) · 阿羅漢果아라한과)를 얻는 것에 정해진 決定性(결정성),

② ③을 합쳐서 定性二乘(정성이승)이라하고, 

④는 보살 및 독각 · 성문의 三類(삼류)의 本有種子(본유종자)를 아울러 갖추고, 二乘(이승)의 수행을 한 뒤 大乘(대승)에 轉向(전향)해서 佛果(불과)를 깨닫는 등, 果(과)가 결정적이 부정종성(不定種性)이다.  

⑤의 무성유정은 영원히 迷界(미계)에 빠져서 苦(고)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고, 겨우 五戒(오계) · 十善(십선)의 善因(선인)을 닦아서 사람이나 天(하늘)에 태어날 수가 있게 되는 무종성(無種性)이다.

이 五姓各別(오성각별)의 說(설)은 楞伽經(능가경) 권二와 解深密經(해심밀경) 권二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이 입장에서 보면, 법화경 등과 같이 모든 중생이다 成佛(성불)할 수 있다는 說(설)에 대하여, 그것은 不定性(부정성)인 사람을 인도하여 大乘(대승)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說(설)이라고 해석한다. 

 

云何當令不定種性諸聲聞等,皆由大乘,而般涅槃.及任持所餘者,謂爲任持,不定種性諸菩薩衆,令住大乘,云何當令不定種性諸菩薩衆,不捨大乘,勿聲聞乘,而般涅槃.爲此義故,佛說一乘.由不定等句義,已說法無我解脫,乃至廣說,

어떻게 장차 부정종성의 성문등으로 하여금 대승에 의거해서 반열반하게   있는가! 

‘나머지를 맡아 지니기 위함’이란, 부정종성의 보살 대중을 맡아 지녀서 대승에 머물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장차 부정종성의 모든 보살 대중으로 하여금 대승을 버리지 않고 성문승으로 반열반하지 못하게   있는가?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일승을 말씀하신 것이니, 부정종성 등의 문구의 의미로 인하여 이미 법ㆍ무아ㆍ해탈을 말하는 등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此中復由別意趣力,唯說一乘.何別意趣?謂法等故等.法等故者,法謂眞如,諸聲聞等,同所歸趣,所趣平等,故說一乘.無我等故者,謂聲聞等,補特伽羅,我皆無有.由無我故,此是聲聞`此是菩薩,不應道理.由此無我平等意趣,故說一乘.解脫等故者,謂聲聞等,於煩惱障,同得解脫,故說一乘.如世尊言:解脫解脫無有差別.

 중에서 다시 별도의취력(意趣力)에 의거해서 오직 일승을 말씀하셨으니, 어떠한 별도의 의취인가? 

이른바 ‘법이 평등한 법등(法等)이기 때문’ 등이니, ‘법이 평등한 법등(法等)이기 때문’에서의 법은 진여(眞如)로서 모든 성문등이 다 같이 돌아가야  곳으로, 돌아가야  곳이 평등하기 때문에 일승이라 하는 것이다. 

‘무아가 평등한 무아등(無我等)이기 때문’이란 성문등에는 보특가라의 자아는 실재하지 않으니, 무아이기 때문이다. 

성문의 무아와 보살의 무아가 다른 것이 아니기에 ‘이것은 성문이다, 이것은 보살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이 무아의 평등한취에 의거해서 일승을 말하는 것이다. 

‘해탈이 평등한 해탈등(解脫等)이기 때문’이란, 성문등은 번뇌장에 대해서  같이 해탈을 얻기 때문에 일승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성문의 해탈과 보살의 해탈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性不同故者,種性差別故,以不定性諸聲聞等,亦當成佛.由此意趣,故說一乘. 得二意樂故者,得二種意樂故.一攝取平等意樂,由此攝取一切有情,言彼卽是我`我卽是彼.如是取已,自旣成佛,彼亦成佛.由此意趣,故說一乘;二法性平等意樂,謂諸聲聞,法華會上,蒙佛授記,得佛法性平等意樂,未得法身.由得如是平等意樂,作是思惟:諸佛法性,卽我法性.復有別義,謂彼衆中,有諸菩薩,與彼名同,蒙佛授記.由此法如平等意樂,故說一乘.

‘종성이 같지 않은 성부동(性不同)이기 때문’이란, 종성의 차별인 까닭이니, 부정종성의 모든 성문등도 장차 성불할  있으므로, 이러한 의취 의거해서 일승을 말하는 것이며,  

‘두 가지 의욕인 이의락(二意樂)을 얻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의욕을 얻기 때문이니,

첫째는 섭수의 평등의욕인 섭취평등의락(攝取平等意樂)이니, 이로 인하여 모든 유정을 섭수하여 “그는  나이고, 나는  그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섭수하고 나서 스스로 이미 성불하고, 그들도 역시 성불하게 하는, 이러한 의취 의거해서 일승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성 평등의 의욕인 법성평등의락(法性平等意樂)이니, 이른바 모든 성문은 법화회상(法華會上)에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부처님 법성의 평등한 의욕을 얻었지만 아직 법신을 얻지 못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의 법성은  나의 법성이다”라고 사유하게 하는 것이며,

다시 다른 뜻으로는,  대중 가운데 많은 보살이 있어서, 법화회상에서 부처님께 수기받은 성문들과 이름을 같이하면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는 것이니, 이 법여(法如)의 평등한 의욕에 의거해서 일승을 말한 것이다.


言化故者,謂佛化作聲聞乘等.如世尊言:我憶往昔,無量百返,依聲聞乘,而般涅槃.由此意趣,故說一乘.以聲聞乘,所化有情,由見此故,得般涅槃,故現此化.究竟故者,唯此一乘,最爲究竟,過此更無餘勝乘故.聲聞乘等,有餘勝乘,所謂佛乘.由此意趣,諸佛世尊,宣說一乘.

‘화현(化)이기 때문’이란 부처님께서 성문승 등으로 화작(化作)하여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세존께서 “내가 옛날을 생각해 보건대 무량한 성문승에 의지해서 반열반하였다”라고 말씀한 것과 같은, 이러한 의취에 의거해서 일승을 말한 것으로, 성문승으로 변화되었으므로 유정은 이것을 봄으로써 반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구경(究竟)이기 때문’이란 오직  일승만이 가장 구경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지나서 다시 다른 뛰어난 교법이 없기 때문이며, 성문승 등에는 나머지 다른 뛰어난 교법의 승승(勝乘)이 있으니, 바로 불승(佛乘)이다. 

이러한 의취(意趣)에 의거해서 일승을 말하는 것이다.


▶論曰:如是諸佛,同一法身,而佛有多,何緣可見?此中有頌:

▷논문;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께서는 동일한 법신이시거늘, 부처님께서 많이 계시는 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있는가?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一界中無二, 同時無量圓, 次第轉非理, 故成有多佛.”

 세계에  분이 계시니 않으니, 동시에 무량한 이가 원만하게 되네.

순서대로 전전함은 도리에 맞지 않으니, 그러므로 많은 부처님께서 계신다네.


▶釋曰:今當顯示,由此因緣,應知諸佛,雖同法身,而或成一,或復成多.應知一者,法界同故,諸佛皆同法界爲體,法界一故,應知一佛.又一佛者,以於一時,一世界中,無二佛現,故知一佛.又伽他中,顯示諸佛,或一或多.

해석한다; 이제 마땅히 이러한 인연에 의거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신을 같이하면서도 혹은  분이기도 하고, 혹은 많은 분이기도 하다는 것 알아야 한다. 

‘하나(一)’라는 것은 법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법계를 자체로 삼으시니, 법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마땅히  분의 부처님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한  분의 부처님’이란 동시에  세계에서  분의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지 않는 까닭에  분의 부처님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으로, 가타(伽他, 게송)에서 모든 부처님의 제불(諸佛)이란, 혹은  분, 혹은 많은 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一界中無二者,此句顯示,唯有一佛.一世界中,無有二佛俱時出現,是故說言,唯有一佛.餘句顯示,諸佛有多.同時無量圓者,無量菩薩,同一時中,資糧圓滿.若諸菩薩,福智資糧,同時圓滿,不得成佛,如是資糧,應空無果;衆多菩薩,修集資糧,同時圓滿,是故應知一時多佛.

‘한 세계에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문구는, 오직  분의 부처님만이 계심을 나타낸 것으로, 한 세계에서  분의 부처님께서 동시에 출현하는 일은 없으므로 오직  분의 부처님만이 계신다고 말한 것이다. 

나머지 문구는 부처님께서 많이 계심을 나타낸 것으로,

‘동시에 무량한 이가 원만하게 된다’는 것은 무량한 보살이 같은 시기에 자량(資糧)이 원만해지는 것을 말한다. 

만약, 모든 보살의 복과 지혜의 자량이 동시에 원만하여 질지라도 성불을 얻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자량은 마땅히 헛된 것으로, 결과가 없어야 할 것이나, 많은 보살이 자량을 닦아 모아서 동시에 원만해지는 것이므로 동시에 많은 부처님께서 계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次第轉非理者,無有次第轉成佛義.若諸菩薩,修資糧時,觀待次第前後成滿,可得佛時,前後次第;然諸菩薩,修資糧時,不待次第前後成滿,故得佛時,亦無次第前後成義.是故同時,有衆多佛.

‘순서대로 전전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순서대로 전전하여서 성불한다는 뜻이 없음을 말한 것으로,

만약 보살이 자량을 닦을  순서대로 이전과 이후를 관찰하여 원만히 성취한다면, 성불할 때에도 이전과 이후의 순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보살이 자량을 닦을  순서대로 이전과 이후를 기다리지 않고 원만히 성취하는 까닭에, 성불할 때에도 역시 순서대로 이전과 이후를 이룬다는 뜻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동시에 많은 부처님께서 계시는 것이다.


▶論曰:云何應知於法身中,佛非畢竟入於涅槃,亦非畢竟不入涅槃?此中有頌:

▷논문; 어찌하여, 마땅히 법신 안에서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지 않으시며,

역시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있는가?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一切障脫故, 所作無竟故, 佛畢竟涅槃, 畢竟不涅槃.”

모든 장애를 벗어난 까닭이고, 해야  바의 소작(所作)이 끝이 없는 까닭이니, 

부처님께서는 필경에 열반에 드시나,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으신 것이라네.


▶釋曰:有餘部說,諸佛無有畢竟涅槃,復有別部聲聞乘人說,諸佛有畢竟涅槃故,此頌中顯二意趣.一切障脫故者,由佛解脫一切煩惱`所知障故,依此意趣,說言諸佛畢竟涅槃.所作無竟故者,由佛普於一切有情,未成熟者,欲令成熟;已成熟者,欲令解脫,是所應作,此事無有究竟之期,故佛畢竟不入涅槃.若異此者,應如聲聞畢竟涅槃,是則本願,應空無果.

해석한다; 다른 부파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께서는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하며,

또한 다른 부파의 성문승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께서는 필경에는 열반에 드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가지의 의취(意趣)를 나타낸 것으로, 

‘모든 장애를 벗어난 까닭’이란,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장과 소지장을 해탈하신 까닭에, 이러한 취지에 의지해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열반에 든다고 하는 것이며,

‘해야  바의 소작(所作)이 끝이 없기 때문’이란, 부처님께서는 널리 모든 유정에 대하여, 성숙하지 않은 자는 성숙시키고, 이미 성숙한 자는 해탈시키고자 하시는 까닭에,  마땅히 해야  바인  사업은 궁극의 시기가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지 않으시는 것이다. 

만약 이러함과 다르다면, 마땅히 성문이 궁극적으로 열반에 드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니, 그러하다면,  본원(本願)이 헛되어 결과가 없는 무과(無果)이어야 할 것이다.


▶論曰:何故受用身,非卽自性身?由六因故,一色身可見故`二無量佛衆會差別可見故`三隨勝解見自性不定可見故`四別別而見自性變動可見故`五菩薩聲聞及諸天等種種衆會閒雜可見故`六阿賴耶識與諸轉識轉依非理可見故,佛受用身,卽自性身,不應道理.

논문;어째서 수용신(受用身)은 자성신(自性身)이 아닌가? 여섯 가지 원인에 의거하기 때문이니,

첫째, 색신(色身)을   있기 때문이며, 둘째, 무량한 부처님의 여러 법회의 차이를   있기 때문이며,

셋째, 뛰어난 승해(勝解)를 따라 보는 자성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넷째, 각각 다르게 보는 것은 자성을 변동하여   있기 때문이며,

다섯째, 보살ㆍ성문ㆍ여러 하늘 등의 갖가지 법회에 섞여서   있기 때문이며,

여섯째, 아뢰야식과 전식(轉識)의 전의(轉依)는 도리에 맞지 않음을   있기 때문이니, 

부처님의 수용신이  자성신이란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수용신이 자성신과 다른 점을 여섯 가지로 말하였다.

 

자성신(自性身)은 모든 여래의 법신(法身)이니, 일체법이 자재하게 전전하는 소의(의지처)이기 때문이며,  

수용신(受用身)은 법신에 의지하여서, 모든 부처님의 갖가지 법회에 나타나는 바로서 청정한 불국토에서 대승의 법락을 향수(享受)하기 때문이며,  (공덕을 수용하는 입장의 부처)

변화신(變化身) 역시도 법신에 의지하며,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 머무는 도사다천궁(睹史多天宮, 도솔천궁)으로부터 몰(沒)하여, 생을 받는 수생(受生)하고, 하고자 함을 수용하는 수욕(受欲)하며, (성소작지 成所作智의 소현所現으로 초지初地 이하의 보살·2승乘·범부가 감각하는 불신佛身)

성을 나와서 출가하는 유성출가(踰城出家)하며, 외도의 처소에 가서 모든 고행을 닦고, 

대보리를 증득하며, 큰 법륜을 굴리는 전대법륜(轉大法輪)을 하고, 대열반에 드는 까닭이다. -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9 권 4


▶釋曰:今當顯示佛受用身,卽自性身,不應正理.色身可見故者,佛受用身,色身可見,非佛法身,由此非理,故受用身,非卽法身.

▷해석한다; 이제 마땅히 부처님의 수용신이  자성신이라는 것이 바른 도리에 맞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색신(色身)을   있기 때문’이란, 부처님의 수용신은 색신을   있어도 부처님의 법신은 그렇지 않으니,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까닭에 수용신은 법신이 아닌 것이며, 


又受用身,有佛衆會,差別可得,法身無有,如是差別.由此非理,故受用身,非自性身.又受用身,隨勝解見,如契經說:或見佛身,唯有黃色,或見佛身,唯有靑色,如是廣說.若受用身,卽自性身,此自性身,應不決定,體不決定,名自性身,不應正理.由此非理,故受用身,非自性身.

또한 수용신은 부처님의 여러 법회에서 차이를   있지만, 법신은 그 같은 차이가 없으니,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까닭 수용신은 자성신이 아닌 것이며,

또한 수용신은 뛰어난 이해를 따라서 보는 것이니, 계경(경전)에서 "부처님을 뵈오니 혹 오직 황색뿐이고, 부처님을 뵈오니 혹 오직 청색뿐이다”라고 설한 바와 같은 것으로,

자세히 말한다면, 만약 수용신이 자성신이라면  자성신은 마땅히 자체가 일정하지 않아야 하고, 일정하지 않은 것을 자성신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바른 도리에 맞지 않은 것이니,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까닭에 수용신은 법신이 아닌 것이며, 

 

又受用身,一類有情,先見別異,卽此後時,復見別異,非佛法身,自性變動.由此非理,故受用身,非自性身.又受用身,有諸天等,種種衆會,常相閒雜,非自性身,有此閒雜.由此非理,故受用身,非自性身.

또한 수용신은  무리의 유정이 이미 다름을 보고, 그 다음의 때에 다시 다름을 불 수 있는, 사람이 보는 때를 따라 색상(色相)을 달리하지만, 부처님의 법신의 자성은 변동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수용신은 자성신이 아닌 것이며,

또한 수용신은 여러 하늘 등의 갖가지 법회에서 항상 서로 섞여 있지만, 자성신은 이렇게 섞여 있지 않으니,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까닭에 수용신은 법신이 아닌 것이며, 


又轉阿賴耶識,得自性身,若受用身,卽自性身,轉諸轉識,復得何身?由此非理,故受用身,非自性身.由此六因,不應理故,二不成一.

또한 아뢰야식을 전환하여 자성신을 얻는 것이니, 만약 수용신이 자성신이라면, 모든 전식(轉識)을 전환한다면 다시 어떠한 불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까닭에 수용신은 법신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도리에 맞지 않는 여섯 가지의 이유인 육인(六因)으로, 두 가지는 하나를 이루지 않는 것이다.

 

자성신은 진여와 진지(眞智)가 독존하는 이지명합성(理智冥合性)의 불신이다. 이것은 진여 그 자체가 지성(智性)을 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성신이 단순히 진여법성 그 자체만을 가리키지 않고 진여가 ‘현현(顯現)된’ 상태로서, 전의(轉依)에 의해 아공ㆍ법공의 2공(空)이 현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3신과 5법(진여眞如ㆍ사지四智)의 포섭관계에 있으며,  자성신은 이지명합의 성격므로 진여와 대원경지에 포섭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