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8 권 4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8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9. 증상혜학분(增上慧學分) ① 1
▶論曰:如是已說,增上心殊勝.增上慧殊勝,云何可見? 謂無分別智,若自性`若所依`若因緣`若所緣` 若行相` 若任持` 若助伴`若異熟`若等流`若出離`若至究竟`若加行無分別後得勝利 `若差別 若無分別後得譬喩` 若無功用作事` 若甚深, 應知無分別智, 名增上慧殊勝.
▷논문; 이상과 같이 매우 높은 마음의 뛰어남인 증상심수승(增上心殊勝)을 설명하였으니,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인 증상혜수승(增上慧殊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른바 무분별지의 자성ㆍ소의(所依, 의지처)ㆍ인연ㆍ소연(所緣, 인식대상)ㆍ행상(行相, 인식작용)ㆍ맡아 지님의 임지(任持)ㆍ돕는 짝의 반조(助伴)ㆍ이숙(異熟)ㆍ등류(等流)ㆍ벗어남의 출리(出離)ㆍ궁극에 이름의 지구경(至究竟)ㆍ가행의 지혜인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와 후득지(後得智)의 뛰어난 이익의 승리(勝利)ㆍ차별ㆍ무분별지와 후득지의 비유ㆍ의식적인 노력이 없이 짓는 무공용작사(無功用作事)ㆍ매우 심오한 심심(甚深)이니,
무분별지를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인 증상혜수승(增上慧殊勝)이라 이름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釋曰:今正至說,增上慧時. 此中意說,無分別智,名增上慧.此復三種:一加行無分別智,謂尋思慧;二根本無分別智,謂正證慧;三後得無分別智,謂起用慧.此中悕求慧,是第一增上慧;內證慧,是第二增上慧;攝持慧,是第三增上慧.
▷해석한다; 이제는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를 설명할 때가 되었으니, 여기서의 뜻은 무분별지를 증상혜(增上慧)라 이름하는 것이니, 다시 이에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이니, 사유하고 분별하는 심사(尋思)의 지혜를 말하며,
둘째는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 근본지)이니, 바르게 깨닫는 지혜를 말하며,
셋째는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 후득지)이니, 작용을 일으키는 지혜를 말한다.
이 중에서 무분별지혜를 증득하기를 희구하는 희구혜(希求慧)는 첫 번째의 매우 높은 지혜인 제일증상혜(第一增上慧)이고,
내면적으로 증득하는 지혜인 내증혜(內證慧)는 두 번째 매우 높은 지혜인 제이증상혜(第二增上慧)이며,
섭수의 지혜인 섭지혜(攝持慧)는 세 번째 매우 높은 지혜인 제삼증상혜(第三增上慧)이다.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 근본지(根本智), 여리지(如理智)ㆍ정체지(正體智)ㆍ진지(眞智) 등이라고도 하며, 진여에 계합(契合)하여 분별을 여의고, 모든 현상계의 본질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아는 지혜이다.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 후득지(後得智), 여량지(如量智)ㆍ권지(權智)ㆍ속지(俗智)라고도 하며, 근본지(根本智)에 의해 진리를 깨달은 뒤에, 다시 분별하는 얕은 지혜를 일으켜서 의타기성의 속사(俗事)를 아는 지혜이다.
부처님께서 대비를 일으켜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바로 이 후득지에 의한 것이다.
今且成立無分別智,由唯此智通因果故.其尋思智,是此智因,其後得智,是此智果,所以成此,兼成餘二.
무분별지를 성립하는 것은, 이 근본무분별지는 원인(因)과 결과(果)에 통하기 때문이니,
그 사유 분별의 심사지(尋思智)가 이 지혜의 원인(因)이고, 그 후득지는 이 지혜의 결과(果)이니,
이것을 성취한다면 아울러서 나머지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論曰:此中無分別智,離五種相,以爲自性:一離無作意故`二離過有尋有伺地故`三離想受滅寂靜故`四離色自性故`五離於眞義異計度故.離此五相,應知是名無分別智.
▷논문; 이 중에서 무분별지는 다섯 가지의 오종상(五種相)을 여의는 것으로써 자성을 삼으니,
첫째는 작의가 없음을 여의는 이무작의(離無作意)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심구의 심소가 있는 유심(有尋)이고, 사찰의 심소가 있는 유사(有伺)의 지위를 지나는 것을 여의기 때문이며,
셋째는 표상작용과 감수작용의 심소가 멸한 적정을 여읜, 이상수멸적정(離想受滅寂靜)이기 때문이고,
넷째는 물질의 자성을 여읜, 이색자성(離色自性)이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진실한 의미에 대한 다른 계탁(計度)을 여읜, 이어진의이계도(離於眞義異計度)이기 때문이니,
이 다섯 가지의 오종상을 여의는 것을 무분별지라 이름한다고 알아야 한다.
▶釋曰:且應先說,無分別智,所有自性,此中體相說名自性.謂諸菩薩,無分別智,離五種相,以爲自性.離五相者, 若無作意, 是無分別智,睡`醉`悶等,應成無分別智.
▷해석한다; 우선 무분별지가 갖는 자성을 먼저 말하겠으니, 여기서는 체상을 자성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모든 보살의 무분별지는 다섯 가지의 상을 여의는, 이오종상(離五種相)으로써 자성을 삼는 것이다
‘다섯 가지 양상을 여의는 이오종상(離五種相)’이란, 다음과 같으니,
만약 작의가 없음의 무작의(無作意)가 무분별지라면 수면(睡)ㆍ술에 취한 취(醉)ㆍ기절함의 민(悶) 등도 마땅히 무분별지를 이루어야 할 것이며,
若過有尋有伺地,是無分別智,第二靜慮已上諸地,應成無分別智,若如是者,世閒應得無分別智.
만약 심구의 심소가 있는 유심(有尋)이고 사찰의 심소가 있는 유사(有伺)의 지위를 지나는 것이 무분별지라면, 제2 정려 이상의 모든 지위는 마땅히 무분별지를 이루어야 할 것이니, 만약 이러한 것이라면 세간에서도 마땅히 무분별지를 얻어야 할 것이며,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는 선정의 마음속에 심구(尋求)와 사찰(伺察)의 심소가 모두 있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의 선정이며, 이로부터 무심유사지(無尋有伺地)가 있게 되고, 제2선(禪) 이후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이다.
若想受滅等位中,心`心法不轉,是無分別智,滅定等位,無有心故,智應不成.
만약 표상작용(想)과 감수작용(受)이 멸한 지위인 상수멸정(想受滅定), 즉 멸진정(滅盡定)에서 심왕과 심소가 전전하지 않는 것이 무분별지라면, 멸진정 등의 지위에서는 심왕법이 없기 때문에 지혜가 마땅히 성취되지 않아야 할 것이며,
若如色自性,是無分別智,如彼諸色頑鈍無思,此智應成頑鈍無思.復有餘義,若如色性,智不應成.
만약 물질의 자성 같은 색자성(色自性)이 무분별지라면, 그 모든 물질(色)이 완고하고 둔하며 사량이 없는 것과 같이, 이 지혜도 마땅히 완고하고 둔하여서 사량이 없어야 할 것이며,
다시 다른 뜻으로는, 만약 물질의 성품의 색성(色性)과 같다면 지혜는 마땅히 성취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若於眞義,異計度轉,無分別智,應有分別.謂分別言,此是眞義,若智遠離如是五相,於眞義轉,於眞義中,不異計度,此是眞義無分別智.有如是相,緣眞義時,譬如眼識不異計度,此是其義.
만약 진실한 진의(眞義)에 대해서 다른 계탁(計度)이 전전한다면 무분별지는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할 것이니, 분별해서 이것은 진실한 대상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혜로서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오종상을 멀리 여의고, 진실한 대상에 대해서 전전하며, 진실한 대상에 대해서 다르게 계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진정 뜻에서의 무분별지이니, 이와 같은 상(相)으로 진실한 대상을 반연한다면, 마치 안식(眼識)과 같이 다르게 계탁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의미하는 바이다.
▶論曰:於如所說,無分別智,成立相中,復說多頌:
▷논문; 말한 바와 같은 무분별지를 성립하는 상에 있어서 다시 많은 게송을 말하였다.
▶釋曰:於上所說無,分別智,略成立中,廣說多頌.
▷해석한다; 앞에서 말한 무분별지를 간략히 성립함에 있어서 많은 게송으로 자세히 말하였다.
▶論曰: ▷논문;
“諸菩薩自性, 遠離五種相, 是無分別智, 不異計於眞.”
모든 보살의 자성은 다섯 가지 오종상(離五種相)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이것은 무분별지로서, 진실을 다르게 계탁하지 않는 것이라네.
▶釋曰:由此初頌,顯上所說,無分別智.初自性義,如是已說.此智自性,依彼而轉,次頌當說.
▷해석한다; 이 첫 번째 게송에 의해서 앞에서 말한 무분별지의 첫 번째 자성의 의미인 이오종상(離五種相)을 나타낸 것으로, 이와 같이 이 지혜의 자성을 말하였다.
그것에 의지해서 전전한다는 것은 다음의 게송에서 말하고 있다.
▶論曰: ▷논문;
“諸菩薩所依, 非心而是心, 是無分別智, 非思義種類.”
모든 보살의 소의(所依, 의지처)는 마음이 아니면서도 마음이라.
이것은 무분별지로서 사량하는 종류가 아니라네.
▶釋曰:如是所說,無分別智,當言依心`爲依非心?若言依心,能思量故,說名爲心,依心而轉,是無分別,不應道理.若依非心,則不成智.爲避如是二種過失,故說此頌.此智所依不名爲心,不思義故.亦非非心,心所引故.此生所依,是心種類,亦名爲心,因彼而生.次頌當顯.
▷해석한다; 이렇게 말한 무분별지는 마땅히 마음에 의지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마음이 아닌 것에 의지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만약 마음에 의지한다고 말한다면 능히 사량(思量)하기 때문에 마음이라 이름하거늘, 마음에 의지해서 전전하면서도 무분별지라 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며,
만약 마음이 아닌 것에 의지한다면 곧 지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두 가지 과실을 피하기 위해서 이 게송을 말한 것이다.
이 지혜의 소의(所依, 의지처)를 마음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니, 사량할 수 없는 의미이기 때문이고,
역시 마음이 아닌 것도 아니니, 마음이 이끈 바의 심소인(心所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생기하는 소의(所依, 의지처)가 마음의 종류이므로 역시 마음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하는 것은 다음 게송에서 나타내고 있다.
▶論曰: ▷논문;
“諸菩薩因緣, 有言聞熏習, 是無分別智, 及如理作意.”
모든 보살의 인연은 남의 말을 들어서 훈습한 문훈습(聞熏習)이라.
이 무분별지는 이치 그대로 작의하는 것이라네.
▶釋曰:諸菩薩因緣者,謂此智因.有言聞熏習者,謂由他音正聞熏習.及如理作意者,謂此熏習爲因,意言如理作意,無分別智因此而生.復何所緣?次頌當顯.
▷해석한다; ‘모든 보살의 인연’이란 이 지혜의 원인(因)을 말하는 것이며,
‘남의 말을 들어서 훈습한 문훈습(聞熏習)’이란 남의 음성으로 인하여 바르게 들어서 훈습한 것이며,
‘이치 그대로의 작의’란 이 훈습을 원인으로 하는 사유(思惟, 의意)를 이치 그대로의 작의라고 말하는 것으로, 무분별지는 이것으로 인하여 생기하는 것이다.
다시 어떤 소연(所緣, 인식대상)인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게송에서 말하고 있다.
▶論曰: ▷ 논문;
“諸菩薩所緣, 可言法性, 是無分別智, 無我性眞如.”
모든 보살의 소연(所緣, 인식대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성이라.
이것은 무분별지로서 무아성(無我性)의 진여라네.
▶釋曰:不可言法性者,謂由遍計所執自性,一切諸法,皆不可言.何等名爲不可言性?謂無我性所顯眞如,遍計所執補特伽羅,及一切法,皆無自性,名無我性.卽此無性,所顯有性,說名眞如.勿取斷滅,故說此言.又於所緣所作行相,次頌當顯.
▷해석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성’이란 이른바 변계소집자성에 의거해서 일체법은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어떠한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품이라 하는 것인가? 무아성(無我性)이 나타난 진여를 말하는 것이며,
변계소집의 보특가라와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을 무아성(無我性)이라 이름하나니, 곧 이 무자성이 현현하는 존재성의 유성(有性)을 진여라 이름하는 것이니, 단멸로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또한 소연(所緣, 인식대상)에 대하여 짓는 행상(行相, 인식작용)은 다음 게송에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의 행상(行相)은 심식(心識)의 고유한 성능(性能)으로서, 특히 주관적인 인지(認知) 작용을 말한다. 마음에 비친 객관의 영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