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6권 4

Skunky 2025. 3. 20. 09:00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6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4. 입소지상분(入所知相分) 4

 

是諸菩薩,所緣名類略有十種:一法名,謂眼等;二補特伽羅名,謂我等;三法名,謂十二分教;四義名,謂此十二分教所詮諸義;五略名,謂一切法,爲無爲等;六廣名,謂色受等,及虛空等;七姓名,謂阿字爲初,訶字爲後;

이러한 보살의 소연명(所緣名, 인식대상의 명칭)의 종류로서 대략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의 명칭인 법명(法名)으로, 눈 등을 말하며,

둘째는 보특가라의 명칭(名)이니, 이른바 자아의 아(我) 등이며,

셋째는 교법의 법명(法名)이니, 12분교(分敎)를 말하며,

넷째는 의미(義)의 명칭(名)이니, 이른바 이 12분교로 말해지는 모든 것의 뜻이며, 

다섯째는 대략(略)의 명칭(名)이니, 일체법ㆍ유위법ㆍ무위법 등을 말하며,

여섯째는 자세함(廣)의 명칭(名)이니, 이른바 물질(色)ㆍ감수작용(受) 등과 허공 등이며,

일곱째는 본성(性)의 뜻이니, 아자(阿字)를 최초로 삼고 하자(訶字)를 마지막으로 삼는 것이다.

ㅡ범어의 37가지 자모(字母) 중에서 최초의 a자와 최후의 자를 들고 중간은 생략하였다.

 

八不淨名,謂諸異生;九淨名,謂諸見諦;十究竟名,謂一切法摠相所緣,卽是二智所緣境界.

謂出世智及後得智, 以一切法眞如實際,爲所緣故,以一切法種種相別,爲所緣故, 如十地等.

여덟째는 부정(不淨)의 명칭(名)이니, 이른바 모든 범부이며,

아홉째는 청정(淨)의 명칭(名)이니, 진리를 본 성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열째는 구경(究竟)의 명칭(名)이니, 이른바 일체법의 총체적인 총상(摠相)의 소연(所緣, 인식대상)으로, 이것은 곧 두 가지 지혜인 이지(二智)의 소연경계(所緣境界, 인식대상의 경계)이다.

즉,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지(出世智)와 후득지(後得智)는 일체법의 진여 실제로써 소연(인식대상)을 삼기 때문이고,

일체법의 갖가지 상의 차이로써 소연(인식대상)을 삼기 때문이니, 10지(地) 등과 같은 것이다.

ㅡ10지의 관법(觀法) 중에서는 지위마다 각기 다른 법을 인식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此中意取,於一切義摠相緣智所緣境界,如是品類,是諸菩薩,名所行別.

이러한 의취(意取)는 일체의 모든 뜻과 총상(摠相)을 반연하는 지혜의 소연경계(所緣境界, 인식대상의 경계)이며,

이상과 같은 품류가 모든 보살의 명칭(名)이 행하는 바의 차별인 것이다.

 

▶論曰:如是菩薩,悟入唯識性故,悟入所知相;悟入此故,入極喜地,善達法界,生如來家,得一切有情平等心性,得一切菩薩平等心性,得一切佛平等心性,此卽名爲菩薩見道.

▷논문; 보살은 이와 같이 유식성(唯識性)에 깨달아 들어감으로써 알아야  바의 소지상(所知相) 깨달아 들어가나니,

이러함에 깨달아 들어감으로써 극희지(極喜地)에 들어가게 되고, 

법계를  통달하게 되며,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고, 모든 유정과 평등한 심성을 얻으며, 

모든 보살과 평등한 심성을 얻고,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심성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이를 보살의 견도(見道)라 이름하는 것이다.

 

▶釋曰:生如來家者,由此能令諸佛種性,無斷絕故.得一切有情平等心性者,由作是思;如我自身,欲般涅槃,一切有情,亦如是故.得一切菩薩平等心性者,由得菩薩等意樂故.得一切佛平等心性者,由此位中,得佛法身,證得此故,得一切佛平等心性.

의요(意樂), 어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마음

해석한다;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난다’는 것은 이로 인하여 능히 모든 부처님의 종성이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유정과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반열반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유정들 역시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과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보살과 평등한 의요(意樂)를 얻는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지위에서 부처님의 법신을 얻고, 이를 증득함으로써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심성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又得一切有情平等心性者,謂證自他平等性故,如於自身,欲盡衆苦,於他亦爾.得一切菩薩平等心性者,謂與一切菩薩,意樂加行,皆平等故.得一切佛平等心性者,見彼法界,與己法界,無差別故.

또한, ‘모든 유정과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과 남이 평등한 성품임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에게 있는 갖가지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것과 같이, 남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며,

‘모든 보살의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의요(意樂)와 가행(加行)이 보살과 모두 평등한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심성을 얻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계와 자신의 법계가 차이가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ㅡ다른 뜻을 서술한 것이.

 

▶論曰:復次爲何義故,入唯識性?由緣摠法,出世止觀智故,由此後得種種相識智故. 爲斷及相阿賴耶識諸相種子`爲長能觸法身種子

논문; 또한 어떤 의미에 의거해서 유식성(唯識性)에 들어가는 것인가? 

총체적인 총법(摠法)을 반연하는 출세간의 지관(止觀)의 지혜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후득(後得)의 갖가지 상식(相識)의 지혜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상(相)인 아뢰야식의 모든 상의 종자를 단절하기 위해서, 능히 법신에 이르는 종자를 증장하기 때문이다. 

ㅡ여기서 상(相) 아뢰야식의 삼상(三相)인 자상(自相)ㆍ고상(果相)ㆍ인상(因相) 가운데에서 원인의 인상(因相)을 말하는 것이.

 

`爲轉所依`爲欲

소의(所依, 의지처)를 전환하기 때문이며,

ㅡ소의(所依, 의지처)의 식을 전환하여 반야의 지혜를 이루는 전의(轉依)인 것이다.

 

證得一切佛法`爲欲證得一切智智,入唯識性.

모든 불법을 증득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고자 함으로써 유식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又後得智,於一切阿賴耶識所生,一切了別相中,見如幻等性無倒轉.是故菩薩,譬如幻師,於所幻事,於諸相中,及說因果,常無顚倒.

또는 후득지(後得智)는 아뢰야식이 일으키는 모든 요별(了別)과 상(相) 있어서, 요술(幻) 등의 성품과 같이 전도됨이 없이 보는 것이다. 

이러함으로 인하여, 보살은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요술로 일으킨 환사(幻事)와 같이 모든 상과 인과를 말함에 있어서 항상 전도됨이 없는 것이다.

 

▶釋曰:由緣摠法,出世止觀智故者,謂由止觀所顯智故.爲斷及相阿賴耶識諸相種子者,此中及相是及因義,於阿賴耶識中,諸雜染法種子,名阿賴耶識諸相種子.復擧相者,爲欲顯示卽彼種子,是所緣相. 如是說已,顯彼種子,因果俱斷.

해석한다; ‘총체적인 총법(摠法) 반연하는 출세간의 지관(止觀)의 지혜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이른바 지관에서 나타나는 지혜에 의거하기 때문이며,

‘상(相)인 아뢰야식의 모든 상(相)의 종자를 단절하기 위해서’에서, ‘상(相)’은 원인의 뜻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의 종자를 아뢰야식의 모든 상의 종자라고 하는 것으로, 다시 상(相)을  것은   종자가 소연상(所緣相, 인식대상의 상)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이렇게 말함으로 인해서  종자의 원인과 결과를 함께 단절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ㅡ상이란 언어에 의지해서 능훈(能熏) 결과의 상을 보이는 것이므로 다음에 종자의 원인과 결과를 함께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若無分別智,斷一切障,證得佛法,此後得智,復何所用? 無分別智,不能宣說諸因果法,無分別故. 由是因緣,須後得智,宣說所有諸因果法,常無顚倒,譬如幻師, 於所幻事.

만약 무분별지혜에 의해 모든 장애를 끊고 불법을 증득한다면,  후득지(後得智)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무분별지혜는 모든 인과법을 널리 말할  없는 것이니,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후득지(後得智)가 필요로 하며, 모든 인과법을 널리 말하는  항상 전도되지 않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요술쟁이가 요술로 만든 사물과 같은 것이다.

 

於一切阿賴耶識所生者,謂阿賴耶識爲因.一切了別相中者,謂識爲因,見相分中,由後得智,見如幻等,及宣說時,皆無顚倒.

‘아뢰야식이 일으킨 모든 것’이란 아뢰야식이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요별과 상에 있어서’란, 식이 원인이 되는 견분과 상분을 말하는 것으로,

후득지에 의거해서 요술 등과 같이 보며, 널리 설할 때에 전도됨이 없는 것이다.

 

▶論曰:於此悟入唯識性時,有四種三摩地,是四種順決擇分依止. 云何應知?

▷논문; 이 유식성에 깨달아 들어갈   가지의 삼마지가 있으며, 이것은  가지 순결택분(順決擇分)의 의지이니,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 

 

순결택분(順決擇分),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의 네 가지 선근의 지위이며,

자량위(資糧位)ㆍ가행위(加行位)ㆍ통달위(通達位)ㆍ수습위(修習位)ㆍ구경위(究竟位)의 5위(位) 중에서 가행위(加行位)는 통달위인 견도(見道)에 수순하고 그것을 이끌어 내는 단계이므로 순결택분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진실결택분에 수순하고, 또한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진리를 보는 통달위에 가까이 준비하기 때문이다.

 

應知由四尋思,於下品無義忍中,有明得三摩地,是煖順決擇分依止.於上品無義忍中, 有明增三摩地, 是頂順決擇分依止.

네 가지 사색의 4심사(四尋思)에 의하는 것으로 알아야 하나니, 

하품(下品)의 대상이 없는 무의인(無義忍) 중에 명득삼마지(明得三摩知)가 있으니, 이것은 난위(煖位)의 순결택분의 의지이며,

상품(上品)의 대상 없는  중에 명증삼마지(明增三摩地)가 있으니, 이것은 정위(頂位)의 순결택분의 의지(依止)이다.

 

명득삼마지(明得三摩知), 보통 명득정(明得定)이라 하며, 4선근위(善根位) 중의 난위(煖位)에서 하품(下品)의 심사관(尋思觀)을 일으켜서 취할 대상의 경계가 공함을 관찰하는 선정으로, 이 선정에 의해서 처음으로 무루지혜의 전상(前相)을 얻게 되므로 명득정이라 한다.

난위(煖位), 난(煖)은 따뜻함을 느끼는 것과 같이 견도무루지화(見道無漏智火)의 전상(前相)으로 뛰어난 유루의 지혜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지혜를 증득하려고 준비하는 단계이다.

명증삼마지(明增三摩地), 명증정(明增定)이라 하며, 정위(頂位)에서 상품(上品)의 심사관을 발하여 취할 대상의 경계가 공함을 관찰하는 선정으로, 이 선정에서 지혜의 밝은 상이 점점 더해지게 됨으로 명증정이라 한다.

정위(頂位), 네 가지 선근 중에서 난위ㆍ정위를 동선(動善)이라 하고, 인위ㆍ세제일위를 부동선(不動善)이라고 한다. 정위는 동선 중에서 최극위(最極位)이므로 마치 사람의 정수리와 같다고 해서 정위라 한다.

 

復由四種如實遍智,已入唯識,於無義中,已得決定,有入眞義一分三摩地,是諦順忍依止.從此無閒,伏唯識想,有無閒三摩地,是世第一法依止.應知如是諸三摩地,是現觀邊.

다시  가지 있는 그대로 두루 아는 4여실편지(四如實遍知)에 의거해서 유식성에 들어가나니,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에 대해서 이미 결정적으로 알고, 대상의 진실성인 진의(眞義)의 일부분에 들어가는 삼마지가 있으니, 이것이 진리의순인위(諦順忍位)의 의지(依止)이며,  

이것으로부터 다음 찰나에 유식의 표상작용인 유식상(唯識想)을 조복하는 무간삼마지(無間三摩地)가 있으니, 세제일법(世第一法)의 의지(依止)이니,  

이와 같은 여러 삼마지는 현관의 궁극인 현관변(現觀邊)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ㅡ난위에서 대상이 공함을 관찰하는 것은 하품(下品)의 심사관(尋思觀)이고, 

정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확실하게 관찰하는 것은 상품(上品)의 심사관이고,

인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나아가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며는 하품의 여실지관이고,

세제일위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을 ()으로 인가하는 것이다.

 

진의(眞義), 취착된 인식대상인 소취(所取)를 공(空)으로 볼 뿐만 아니라, 취착된 인식주체인 능취(能取)도 공으로 보아 대상도 식도 모두 공임을 아는 것이다.

제순인위(諦順忍位), 보통 인위(忍位)라 하며, 보살이 인순정(印順定)으로부터 하품의 여실변지(如實遍智)를 내어서 능취(能取)가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認可) 결정하는 지위이다.

세제일법(世第一法), 보살의 수행계위인 52위(位) 가운데 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무간정(無間定)에 의해 상품의 네 가지 여실변지(如實遍智)를 내어서, 인식의 대상뿐만 아니라 관하는 식 그 자체를 공무(空無)라고 분명하게 결택한다. 이 지위에서 일어나는 선근은 유루법 가운데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세제일법이라 한다.

현관변(現觀邊), 현관(現觀)은 범어 abhisamaya의 번역어로서, 현전(現前)에서 직접 명료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현관변은 현관의 후변(後邊)에서 얻는 유루(有漏)인 세속의 지혜를 말하며, 보살이 비안립제관(非安立諦觀)에 들어가기 전의 방편이다.

 

▶釋曰:於一切處,入眞觀時,皆有四種順決擇分,故於此中,亦應顯示.是順決擇分依止者,謂決擇分因所依止義.於下品無義忍中,有明得三摩地者,謂於無義中,起下品愛樂,以其明名顯下品無義智, 三摩地名顯此無義智所依止定.

해석한다; 모든 곳에서 참된 진관(眞觀)에 들어갈 때에는, 모두  가지의 순결택분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역시 나타내는 것이니,

‘순결택분의 의지(依止)’는 결택분의 원인으로서 의지처의 의미이며,

‘하품(下品)의 대상이 없는 무의인(無義忍) 중에 명득삼마지가 있다’는 것은 하품의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 가운데 애락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그 명(明)의 명칭으로써 하품의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인(無義忍)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삼마지의 명칭은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인(無義忍)임을 아는 지혜의 의지처인 선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於上品無義忍中者,謂於無義中,起上品愛樂.有明增三摩地者,謂以明名顯上品無義智,三摩地名顯此無義智所依止定.諦順忍依止者,法無我理名諦,此忍順彼名諦順忍.此云何成?謂於外無中,已決定者,於無能取,亦深愛樂,應知於利順忍轉時.是現觀邊者.謂現觀時義.

‘상품의 대상이 없는 무의인(無義忍) 중에’란,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 가운데 상품의 애락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명증삼마지가 있다’는 것은 명(明)의 명칭으로써 상품의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를 아는 지혜를 나타내고, 

삼마지의 명칭은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를 아는 지혜의 의지처인 선정을 나타낸다.

‘진리의 순인위의 제순인(諦順忍)의 의지(依止)’는 법무아(法無我)의 이치를 진리인 제(諦)라 부르고, 이것의 인(忍)  그것에 수순함을 진리의 순인(順忍)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외부대상이 없는, 무의(無義)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아는 이는 인식주체인 능취(能取)가 없음에 대해서도 역시 깊이 기뻐하는 것이다. 

지혜의 작용이 예리하고 강렬한 순인이 전전할 때가 ‘현관의 궁극인 현관변(現觀邊)’이니, 현관의 시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