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5권 4

Skunky 2025. 3. 17. 09:00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5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② 4

 

▶論曰:復有四種意趣,四種秘密,一切佛言,應隨決了. 四意趣者,

一平等意趣,謂如說言:我昔曾於彼時,彼分卽名勝觀正等覺者;

二別時意趣,謂如說言:若誦多寶如來名者,便於無上正等菩提,已得決定.又如說言:由唯發願,便得往生極樂世界;

三別義意趣,謂如說言:若已逢事爾所殑伽河沙等佛,於大乘法,方能解義;

四補特伽羅意樂意趣,謂如爲一補特伽羅,先讚布施,後還毀呰.如於布施,

如是尸羅,及一分修,當知亦爾.如是名爲四種意趣.

▷또한  가지 취지인 사의(四意)와  가지 비밀의 사비(四秘)가 있으니, 이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므로, 따라서 마땅히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가지 취지의 사의(四意)란, 

첫째는 평등한 취지의 평등의취(平等意趣)이니, “내가 옛날에 있었던 그 때의 그분, 즉 과거의 나를 승관정등각자(勝觀正等覺者, 과거 7불의 한 분이신 비바시불毘婆尸佛, Vipaśyin)라고 불리웠다”고 말씀한 바와 같으며,

둘째는 다른 시기의 취지인 별시의취(別時意趣)이니, “만약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명호를 염송하는 자는 문득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에 대해서 이미 결정할  있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으며,

또한 말씀하시기를 “오직 발원하는 것만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할  있다”고  것과 같으며,  

셋째는 별도 의미의 취지인 별의의취(別義意趣)이니, “만약 이미 그곳에서 긍가하(殑伽河,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 비로소 대승법에 대해서 능히 의미를 해석할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넷째는 보특가라(補特伽羅, 윤회하는 유정)의 의요(意樂)의 의취(意趣)이니, 이른바  보특가라를 위해서 먼저 보시를 찬탄하지만 나중에는 도리어 비방함과 같으니, 이와 같이 보시와 마찬가지로 계율  일부분의 수행인 일분수(一分修)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들을  가지 취지의 사의(四意)라 하는 것이다.

ㅡ네 가지 의미와 가지 비밀에 관한 제4 사의사비장(4 四意四秘章).

 

일분수(一分修), 일부분의 수행은 세간에서의 일반적인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앞에서 출세간의 행으로서 6바라밀을 들었고, 다음에 세간의 일반적인 수행도 역시 그렇다는 의미이다.


四秘密者, 一令入秘密,謂聲聞乘中,或大乘中,依世俗諦理,說有補特伽羅,及有諸法自性差別;

二相秘密,謂於是處,說諸法相,顯三自性;三對治秘密,謂於是處,說行對治八萬四千;

四轉變秘密,謂於是處,以其別義,諸言諸字卽顯別義.

 가지 비밀의 사비(四秘)에서의 그 첫째는 들어가게 하는, 영입비밀(令入秘密)이니, 성문승에서 혹은 대승에서 세속제의 도리에 의지해서, 보특가라가 있고법의 자성에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상비밀(相秘密)이니, 이곳에서법의 상(相)을 말하여서 삼자성(三自性)을 나타내며,

셋째는 다스림의 대치비밀(對治秘密)이니, 이곳에서 수행의 다스림이 8만 4천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넷째는 전변비밀(轉變秘密)의 비밀이니, 이곳에서  별도의 의미로써 모든 언어와 모든 문자에 별도의 의미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ㅡ여기서의 전변은 단어에 여러 의미를 가진 용어라는 의미에서의 전변을 말하는 것이다.

 

如有頌言:게송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覺不堅爲堅, 善住於顚倒, 極煩惱所惱, 得最上菩提.”

견고하지 않음을 깨달아서 견고함으로 삼고,

전도됨에  머물러서 지극한 번뇌에 고뇌하며 최상의 보리를 얻는다네.


▶釋曰:意趣秘密,有差別者, 謂佛世尊先緣此事,後爲他說,是名意趣.由此決定,令入聖教,是名秘密.

平等意趣者,謂如有人,取相似法,說如是言:彼卽是我.世尊亦爾,平等法身,置在心中,說言:我昔曾於彼等.非彼昔時毘鉢尸佛,卽是今日釋迦牟尼,依平等義所起意趣,作如是說.

▷해석한다; 의치(意趣, 취지)와 비밀(秘密)의 차이는, 부처님 세존께서 먼저  일을 반연하시고 나중에 남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을 의취(意趣)라 부르고,

이것의 결정으로 인하여 성스러운 가르침에 들어가게 하는 것 비밀이라 이름한다.

‘평등의취(平等意趣)’는 이른바 어떤 사람이 비슷한 법을 취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나다”라고 하는 것 같이, 세존도 역시 그러해서 평등한 법신이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에 “나는 과거에 그와 같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과거의 비바시불이  오늘날의 석가모니불인 것은 아니지만, 평등한 의미를 일으키는 의취 의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別時意趣者,謂此意趣令懶惰者,由彼彼因,於彼彼法,精勤修習,彼彼善根,皆得增長. 此中意趣, 顯誦多寶如來名因,是昇進因,非唯誦名,便於無上正等菩提,已得決定.如有說言:由一金錢,得千金錢.豈於一日? 意在別時,由一金錢,是得千因,故作此說.此亦如是,由唯發願,便得往生極樂世界,當知亦爾.

‘다른 시기의 취지인 별시의취(別時意趣)’란,  의치 게으른 자로 하여금 그러저러한 원인에 의거해서 그러저러한 법을 부지런히 닦아 익히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든 선근이 증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의치 다보여래의 명호를 염송하는 원인(因)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은 승진의 원인(因)으로써, 오직 명호를 염송하는 것만으로 문득 무상정등보리에 대해서 결정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의 금전으로 인하여  개의 금전을 얻는 것이 어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뜻이 다른 시기에 있는 것으로, 하나의 금전은  개를 얻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역시 그와 같아서 오직 발원하는 것만으로 문득 극락세계에 왕생할  있게 되는 것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

 

別義意趣中,於大乘法,方能解義者,謂於三種自性義理,自證其相. 若但解了隨名言義,是佛意者,愚夫於此亦應解了.故知此中言解義者,意在證解要由過去逢事多佛.

‘별도 의미의 취지인 별의의취(別義意趣)’ 중에서 ‘비로소 대승법에 대한 의미를 능히 해석한다’는 것은 삼자성(三自性) 의리에 대해서 스스로  상을 깨닫는 것이다. 

만약, 다만 말의 의미를 따르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해석한다면, 어리석은 범부 역시도 이에 대해서 마땅히 해석할  있어야 할 것이므로, 

여기서 의미를 해석한다는 것은  의미를 깨달아 아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름지기 과거에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어야만 가능한 것이.

 

補特伽羅意樂意趣者,謂如爲一先讚布施,後還毀呰. 此中意者,先多慳悋,爲讚布施;後樂行施,還復毀呰,令修勝行.若無此意,於一施中,先讚後毀,則成相違.由有此意,讚毀應理.於尸羅等,當知亦爾. 一分修者,謂世閒修.

‘보특가라(補特伽羅, 윤회하는 유정)의 의요(意樂)의 의취(意趣)’는  사람을 위해서 먼저 보시를 찬탄하지만, 나중에 도리어 비방하는 것과 같이, 여기서의 의취는 먼저는 인색함이 많기 때문에 보시를 찬탄하고, 나중에 보시를 행하는 것만을 즐긴다면, 도리어 다시 비방하여 뛰어난 승행(勝行)을 닦도록 하는 것이니,

만약 이러한 의취가 없다면 보시 하나에 대해서 앞에서는 찬탄하고 나중에 비방하는 것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찬탄함도 비방함도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계율 등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일부분의 수행의 일분수(一分修)’는 세간의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令入秘密者,謂若是處,依世俗諦理,說有補特伽羅及一切法自性差別,爲令有情入佛聖教,是故說名令入秘密.

‘들어가게 하는 영입비밀(令入秘密)’이란, 만약 이곳에서 세속제의 도리에 의지해서 보특가라(윤회하는 유정)  일체법의 자성에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면, 유정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들어가게 하는 비밀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相秘密者,謂於宣說諸法相中,說三自性.對治秘密者,謂於是處,宣說有情諸行對治,

爲欲安立有情煩惱行對治故. 轉變秘密者,謂於是處,以說餘義,諸言`諸字轉顯餘義.

‘상비밀(相秘密)’은 일체법의 상을 널리 말함에 있어서  가지의자성을 밝히는 것이며,

‘다스림의 대치비밀(對治秘密)’은 이곳에서 유정의 모든 행의 다스림을 널리 말하는 것으로, 유정의 번뇌행의 다스림을 안립하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전변비밀(轉變秘密)’은 이곳에서 다른 것을 말함으로써 의미의 모든 언어ㆍ모든 글자가 바뀌어 다른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於伽他中,覺不堅爲堅者,不堅謂定,由不剛强馳散難調,故名不堅;卽於此中, 起尊重覺,名覺爲堅.

善住於顚倒者,是於顚倒,能顚倒中,善安住義.於無常等, 謂是常等名爲顚倒, 於無常等,謂無常等是能顚倒,是於此中,善安住義.極煩惱所惱者,精進劬勞,名爲煩惱.爲衆生故,長時劬勞精進所惱,如有誦言:處生死久惱,但由於大悲.

如是等. 得最上菩提者,其義易了.

가타(伽他, 게송)에서 ‘견고하지 않음을 깨달아서 견고함으로 삼네’란,

견고하지 않음은 선정이 견고하지 않고 산란하여 조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견고하지 않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곧  가운데에서 깨달음에 대하여 존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견고함으로 삼는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전도됨에  머문다’는 것은 전도와 능히 전도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안주한다는 의미이며, 무상 등을 항상함 등이라고 말하는 것을 전도됨이라 하며, 무상 등을 무상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능전도(能顚倒)된 것으로, 이것은  가운데  안주한다는 의미이다. 

‘지극한 번뇌에 고뇌한다’는 것이란, 애써 정진하는 것을 번뇌라 이름하나니, 중생을 위해서 오랫동안 애써 정진하여 고뇌하는 것으로, 게송에서 “생사에 머물러 오랫동안 고뇌함은 다만  자비 때문이네”라고 말함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최상의 보리를 얻는다’는 것은  의미가 쉬운 것이다.


▶論曰:若有欲造大乘法釋,略由三相,應造其釋:一者由說緣起`二者由說從緣所生法相`三者由說語義.

논문; 만약 대승법을 해석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간략한  가지의 삼상(三相)에 의거해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니,

첫째는 연기를 말하는 것을 말미암은 것이며,

둘째는 조건의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법상을 말하는 것을 말미암으며,

셋째는 가르치는 말씀의 어의(語義)를 말하는 것에 말미암아야 하는 것이다.


▶釋曰:由此三相,隨其所應,應造一切大乘法釋.

해석한다; 이  가지의 삼상(三相)으로 인하여, 마땅히  상응하는 바를 따라 모든 대승법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論曰:此中說緣起者,如說:

논문; 여기서 ‘연기를 말함’이란,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言熏習所生, 諸法此從彼, 異熟與轉識, 更互爲緣生,”

언어의 훈습에서 생겨난 제법, 이것은 그것을 따르는 것이네.

이숙식(異熟識, 유부무기)과 전식(轉識, 7식)이, 다시 서로의 조건이 되어 생겨나는구나.


▶釋曰:言熏習所生諸法者,由外分別熏習在阿賴耶識中,以此熏習,爲因一切法生,卽是轉識自性.此從彼者,此分別熏習用彼諸法爲因,此卽顯示阿賴耶識與彼轉識,更互爲因.

해석한다; ‘언어의 훈습에서 생겨난법’이란, 외부 분별의 훈습은 아뢰야식 안에 저장되어 있고,  훈습의 원인으로써 제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전식(轉識, 7식)의 자성인 것이다. 

‘이것은 그것을 따른다’는 것이라, 이 분별의 훈습은 법을 원인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아뢰야식과  전식이 다시 서로 원인이 되는 것 나타낸 것이다.


▶論曰:復次彼轉識相法,有相`有見,識爲自性.又彼以依處爲相`遍計所執爲相`法性爲相,由此顯示三自性相.如說:

논문; 또한  전식(轉識)의 상법(相法)에는, 상분이 있고 견분이 있는 식(識)을 자성으로 삼으며,

또한 그것은 의타기성을 의지처로써 상을 삼고, 변계소집성으로써 상을 삼으며, 법성(원성실성)으로써 상을 삼으니, 

이로써자성(三自性)의 상을 나타내는 것이니,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從有相`有見, 應知彼三相.”

상분이 있고 견분이 있음에 따라, 마땅히   가지의 삼상(三相)을 알아야 하리.


復次云何應釋彼相?謂遍計所執相,於依他起相中,實無所有,圓成實相於中實有.由此二種非有及有,非得及得`未見已見眞者同時.謂於依他起自性中,無遍計所執故,有圓成實故.於此轉時,若得彼卽不得此,若得此卽不得彼.如說:

또한  상을 어떻게 마땅하게 해석해야 하는가? 

변계소집상은 의타기상에서는 실제로 존재함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원성실상은 실로 존재(有)하며,

이러한  가지의 비존재(非有)와 존재(有), 얻지 못함과 얻음, 아직 진실을 보지 못함과 이미 진실을 보는 것은 동시의 것이니, 이른바 의타기자성에 변계소집자성이 없기 때문이고, 원성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전할  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이것을 얻지 못하고, 만약 이것을 얻으면  그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게송에서 바와 같다.

 

“依他所執無, 成實於中有, 故得及不得, 其中二平等.”

의타기성에는 변계소집성이 없고, 원성실성은  안에 있으니, 

따라서 얻음과 얻지 못함의 두 가지는  안에서 평등하다네.


▶釋曰:彼轉識相法,有相`有見,識爲自性者,謂彼識有相`有見,以爲其體.又卽彼相,有其三種,依處爲相者,謂依他起相.由此所說三種自性,顯示彼相,

 해석한다; ‘그 전식의 상법(相法)은, 상분이 있고 견분이 있는 식을 자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식이 상분과 견분을 그 체로 삼기 때문이며,

또한 그 상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의지처를 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의타기상이니, 세 가지의 삼자성(三自性)에 의거해서 그 상을 나타낸 것이다.

 

於伽他中,卽顯此義.從有相`有見應知彼三相者,如釋顯示. 由此二種,非有及有`非得及得`未見已見眞者同時者,

遍計所執及圓成實,名爲二種.如是二種:第一非有`第二是有. 未見眞者,得遍計所執,不得圓成實.

已見眞者,卽此剎那,得圓成實,不得遍計所執. 於伽他中,卽顯此義,謂依他所執無等.

게송에서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었으니, ‘상분이 있고 견분이 있음에 따라, 마땅히 그 세 가지 양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해석에서 나타내 보인 것과 같으며,

‘이 두 가지의 비존재(非有)와 존재(有), 얻지 못함과 얻음, 아직 진실을 보지 못함과 이미 진실을 보는 것이 동시에 있다’는 것은,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을 두 가지라 한 것이며,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첫 번째는 비존재(非有)이고, 두 번째는 존재(有)이다.

‘아직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변계소집성을 얻으면 원성실성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이미 진실을 본다’는 것은 곧 이 찰나에 원성실성을 얻는다면, 변계소집성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가타(伽他, 게송)에서 이러한 뜻을 나타내어서 ‘의타기성에는 변계소집성이 없으며’ 등이라고 말하였다.

 

平等者,謂一剎那.其中者,謂依他起中.二者,謂未見眞者及已見眞者.故者,是由此因義.謂於依他起中,由遍計所執無故,及由圓成實有故.又諸愚夫顚倒執故,如是見轉.若諸聖者,由正見故,如是見轉.

‘평등(平等)’이란 한 찰나(一剎那)를 말하고,

‘그 안에서’란, 의타기성의 안이며,

'두 가지'는 아직 진실을 보지 못한 것과 이미 진실을 본 것을 말하며,

‘따라서’는 이러한 원인에 의거해서라는 의미이니, 이른바 의타기성 중에 변계소집성이 없기 때문이고, 원성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되게 집착함으로써 이러한 견해가 전전하지만,

만약 모든 성자라면 바른 견해에 의거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가 전전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