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3권 6

Skunky 2025. 3. 12. 09:00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3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2. 소지의분(所知依分) ③ 6

 

▶論曰: 復次此阿賴耶識差別云何?略說應知或三種`或四種.此中三種者,謂三種熏習差別故,一名言熏習差別`二我見熏習差別`三有支熏習差別.四種者,一引發差別`二異熟差別`三緣相差別`四相貌差別.

▷논문; 또한  아뢰야식의 차별은 어떠한가?

간략히 말하자면 3 가지 혹은 4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3 가지란  가지의 훈습차별 때문이니, 첫째는 명언훈습(名言熏習)의 차별이고, 

둘째는 아견훈습(我見熏習)의 차별이며, 셋째는 유지훈습(有支熏習)의 차별이다. 

4 가지란 첫째는 이끌어 내는 인발차별(引發差別)이고, 둘째는 이숙차별(異熟差別)이며, 

셋째는 형상을 반연하는 연상차별(緣相差別)이고, 넷째는 모습의 상모차별(相貌差別)이다.

ㅡ아뢰야식의 품류의 차이를 논한, 제17 차별장(17 差別章).


▶釋曰:如是已成立阿賴耶識,今當顯此品類差別.於三種熏習差別中, 名言熏習差別者, 謂眼名言熏習, 在異熟識中, 爲眼生因.異熟生眼,從彼生時,用彼爲因,還說名眼.如是耳等一切名言差別亦爾.我見熏習差別者,由染污意薩迦耶見力故,於阿賴耶識中,我執熏習生.由此爲因,謂自爲我`異我爲他,各有差別.有支熏習差別者,由善`不善,不動行力故,於諸趣中,流轉差別. 此三如後所知相初當廣分別.

▷해석한다; 이상과 같이 아뢰야식이 존재함을 성립하였으니, 이제는 품류의 차별을 나타내는 것이다. 

 가지 훈습의 차별에서 명언훈습(名言熏習)의 차별이란, 안(眼, 눈)이라는 명칭의 훈습은 이숙식 중에 있으면서 눈이 생기하는 원인이 되고, 다르게 성숙해서 눈을 일으키는 것이니, 그것으로부터 생겨날 때, 그것을 사용해서 원인으로 삼는 것을 돌이켜서 안(眼, 눈)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귀  모든 명칭의 차별 역시도 이와 같은 것이며, 

두 번째의 아견훈습(我見熏習)의 차별은 염오의(染汚意)의 살가야견의 세력으로 인하여 아뢰야식에 아집의 훈습이 생겨나고, 이를 원인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를 나(我)로 삼고 나와 다른 것을 남(他)으로 삼아서 각각 차별하는 것이며, 

세 번째의 유지훈습(有支熏習)의 차별은 선(善)ㆍ불선(不善)ㆍ부동행(不動行)의 세력으로 인하여 제취(諸趣, 여러 윤회세계)에서 유전하여 차별이 있는 것이다.

  가지는 나중에 알아야  바의 소지상(所知相)의 서두에서 자세히 분별할 것이다.


▶論曰:此中引發差別者,謂新起熏習.此若無者,行爲緣識`取爲緣有,應不得成.

▷논문;  중에서 이끌어 내는 인발차별(引發差別)이란, 새롭게 훈습을 일으키는 것이니, 만약 이것이 없다면 행(行) 지분이 식(識) 지분의 연(緣, 조건)이 되고, 취(取) 지분이 유(有) 지분의 연(緣, 조건) 되는 것이 성립될  없는 것이다.


▶釋曰:引發差別者,謂能引發品類差別.謂新起熏習者,謂彼最先所起熏習.若此能引阿賴耶識差別無者,諸行生滅熏習成識,由取攝受生有現前,此所作有,應不得成,能有後生,故名爲有.此所說取或善`不善,是串習果.
串꿸 천, 꿸 관, 익숙할 관

해석한다; 이끌어 내는 인발차별(引發差別)이란, 능히 품류를 이끌어 내는 차별을 말하는 것이니,

‘새롭게 훈습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일으켜진 훈습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능히 이끄는 아뢰야식의 차별이 없다면 모든 행(行)의 지분이 생멸하고 훈습하여서 식(識)의 지분을 이루고, 

취(取)의 지분의 섭수로 인하여 유(有) 지분을 생겨나게 해서 현전하게 할지라도, 

 만들어지는 소작(所作)의 유(有) 지분이 성취될  없어야 하는 것이다.

능히 다음 생(生)이 있기 때문에 유(有)라 이름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취(取)’는 선(善)ㆍ불선(不善)으로서 자주 익힌, 습과(習果)인 것이다.


▶論曰:此中異熟差別者,謂行有爲緣,於諸趣中,異熟差別.此若無者,則無種子,後有諸法生應不成.

논문; 이 중에서 이숙차별(異熟差別) 행(行)과 유(有)의 지분을 조건(緣)으로 해서 제취(諸趣, 모든 윤회세계)에서 다르게 익어서 차별되는 것이니, 만약 이것이 없다면  종자가 없게 되므로, 존재인 후유(後有)의법이 생겨날  없는 것이다.


▶釋曰:異熟差別者,謂行有爲緣,於諸趣中,所引異熟.若此所引阿賴耶識差別無者,則無有因,後有諸法,眼等色根,此等異熟生應不成.當知此則是異熟果.

해석한다; ‘이숙차별(異熟差別)’이란 행(行)과 유(有)의 지분을 조건(緣)으로 삼아서 제취(諸趣, 모든 윤회세계)에서 이끌려진 이숙을 말한다. 만약  이끌려진 아뢰야식의 차별이 없다면,  원인이 없는 것으로, 다음 존재인 후유(後有)의 제법과 안근 등의 감각기관의 이숙이 생겨나는 것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숙의 결과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此中緣相差別者,謂卽意中我執緣相.此若無者,染污意中,我執所緣,應不得成.

논문; 이 중에서 ‘형상을 반연함의 차별의 연상차별(緣相差別)’이란, 말나식(意) 가운데 아집의 상을 반연하는 것이니, 만약 이것이 없다면 염오의(染污意) 중의 아집의 소연(所緣, 인식대상)이 성립될  없는 것이다.

 

의(意), 제7 말나식을 가리키며, 이때 의(意)의 범어는 manas(思量)이다. 그런데 제6의식을 mano-vijāna라고 해서 똑같이 manas가 사용된다. 따라서 제6 의식과 구분하기 위해서 단지 의라고 부르거나 말나식(末那識)이라는 음역어를 사용한다.

의(意), 즉 제7식에 무간멸의(無間滅意)와 염오의(染汚意)의 두 가지 의미가 있어서,

무간멸의(無間滅意)는 제7식이 제6식의 의지처인 의근(意根)임을 나타내고 낸다.

염오의(染汚意)는 제7식으로 인하여 무명의 아치(我癡)ㆍ아견 등의 근본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며, 자아 등에 집착해서 사번뇌(四煩惱)와 항상 함께 상응한다.


▶釋曰:緣相差別者,謂此阿賴耶識,卽是染污意中,能依我見我執緣相.若此緣相阿賴耶識差別無者,染污意中,薩迦耶見爲因,我執此所緣境,應不得成.當知此則是等流果.

해석한다; ‘형상을 반연함의 연상차별(緣相差別)’이란 이른바  아뢰야식이 염오의(染污意)에 능히 의지하는 아견(我見)ㆍ아집(我執)의 상을 반연하는 것이다. 

만약 아뢰야식에  상을 반연하는 연상(緣相) 차별이 없다면, 염오의 중의 살가야견을 원인으로 하는 아집이  소연경(所緣境, 인식대상)으로 성립될  없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등류과(等流果)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此中相貌差別者,謂卽此識,有共相`有不共相,無受生種子相`有受生種子相等.

논문; 이 중, 모습의 상모차별(相貌差別)은, 곧  식에 공통된 상의 공상(共相)과 공통되지 않은 상의 불공상(不共相)이 있고, 감각ㆍ지각 작용이 없는 종자의 무수생종자(無受生種子)의 상과 

감각ㆍ지각작용이 있는 종자의 유수생종자(有受生種子)의  등이다.

 

▶釋曰:相貌差別有多品類,謂於此中,有共相`有不共相,無受生種子相`有受生種子相等者.是略摽擧,後當廣釋.

해석한다; 상모차별(相貌差別)에는 많은 품류가 있으니, ‘이른바  가운데 공통된 공상(共相)이 있고, 공통되지 않은 불공상(不共相) 있고, 감각ㆍ지각 작용이 없는 무수생종자(無受生種子) 상과 

감각ㆍ지각 작용이 있는 유수생종자(有受生種子)  등이다’고 간략히 열거하였으니, 나중에 자세히 해석하겠다.


▶論曰:共相者,謂器世閒種子.不共相者,謂各別內處種子.共相,卽是無受生種子,不共相,卽是有受生種子. 對治生時,唯不共相所對治滅;共相爲他分別所持,但見淸淨.如瑜伽師,於一物中,種種勝解,種種所見,皆得成立.此中二頌:

논문; 공통된 공상(共相) 기세간(器世間, 자연계)의 종자를 말하고, 

공통되지 않은 불공상(不共相) 각각의 내부 종자이다. 

공상(共相)은 감각ㆍ지각 작용이 없는 무수생종자(無受生種子)이고,

불공상(不共相)은 감각ㆍ지각 작용이 있는 유수생종자(有受生種子)이다. 

다스림의 대치(對治)가 생겨날 때에는 오직 불공상(不共相)만을 다스려서 멸하고,

공상(共相)은 다른 분별에 섭지되어져서 다만 청정함을  뿐이니,

관행을 닦는 유가사(瑜伽師)가 하나의 사물에서 갖가지 뛰어난 승해(勝解) 갖가지의 소견을 모두 성립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러함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難斷難遍知, 應知名共結, 瑜伽者心異, 由外相大故.

멸(滅)하기 어렵고 두루 알기 어려운 것을 공통된 속박의 공결(共結)이라 한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관행을 닦는 유가자(瑜伽者)는 마음이 다르고 외부가 상대(相大)이기 때문이라네.


淨者雖不滅, 而於中見淨, 又淸淨佛土, 由佛見淸淨.”

청정한 사람은 멸(滅)하지 않아도  안에서 청정함을 보며,

또한 청정한 불국토는 부처님께서 청정함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네.


復有別頌,對前所引,種種勝解`種種所見,皆得成立.

또한 별도의 게송이 있어서, 앞에서 인용한 것에 대하여, 갖가지 뛰어난 승해(勝解) 갖가지 소견 모두를 성립하였다.


“諸瑜伽師於一物, 種種勝解各不同, 種種所見皆得成, 故知所取唯有識.”

관행을 닦는 모든 유가사(瑜伽師)  사물에 대하여 뛰어난 승해(勝解) 갖가지로 각각 다르고

갖가지의 소견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인식대상은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此若無者,諸器世閒`有情世閒,生起差別,應不得成.

만약 이 식(識)이 없다면, 모든 자연계와 유정의 기세간에서의 차별이 일어나는 것은 마땅히 성립될  없어야다.


▶釋曰:此中,若阿賴耶識,爲一切有情,共器世閒因體,卽是無受生種子.若阿賴耶識,爲不共各別色等諸處因體,卽是有受生種子.若離如是品類共相阿賴耶識,一切有情共受用因,諸器世閒,應不得成.如是若離第二不共阿賴耶識,有情世閒,亦應不成.由此應如木石等生.

해석한다; 이 중, 만약 아뢰야식이 모든 유정의 공통된 자연계인 기세간(器世間) 자체의 원인인 인체(因體)가 된다면,  감각ㆍ지각 작용이 없는 무수생종자(無受生種子)일 것이고,

만약 아뢰야식이 공통되지 않은 각각의 다른 색처(色處) 등의 12처 자체의 원인인 인체(因體)가 된다면  감각ㆍ지각 작용이 있는 유수생종자(有受生種子)일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품류의 공상(共相)인 아뢰야식을 떠난다면, 모든 유정이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원인(因)인 모든 기세간(器世間, 자연계)이 마땅히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만약  번째의 불공(不共)의 아뢰야식을 떠난다면 유정세간 또한 마땅히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니,

이로 인하여 나무ㆍ돌 등과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論曰:復有麤重相,及輕安相.麤重相者,謂煩惱隨煩惱種子.輕安相者,謂有漏善法種子.此若無者,所感異熟無所堪能,有所堪能所依差別,應不得成.

▷논문; 또한 거칠고 무거운 추중상(麤重相)과 가볍고 평안함의 경안상(輕安相)이 있으니,

거칠고 무거운 추중상(麤重相)이란 번뇌와 수번뇌의 종자이고,

가볍고 평안함의 경안상(輕安相)은 유루 선법의 종자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초감된 이숙에 감당 능력이 없는 무감능(無堪能)의 소의(所依, 의지처)와

감당 능력이 있는 유감능(有堪能)의 소의(所依, 의지처) 차별이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다.

 

復有有受盡相`無受盡相.有受盡相者,謂已成熟異熟果,善`不善種子.無受盡相者,謂名言熏習種子,無始時來,種種戲論流轉種子故.此若無者,已作已作善惡二業,與果受盡,應不得成.又新名言熏習生起,應不得成.

또한 수용의 다함이 있는 유수진(有受盡)의 상(相)과 수용의 다함이 없는 무수진(無受盡)의 상(相)이 있으니,

수용의 다함이 있는 유수진상(有受盡相) 이미 이숙과를 성숙시킨 선ㆍ불선의 종자이며,  

수용의 다함이 없는 무수진상(無受盡相) 명언훈습의 종자이니, 아득한 옛적부터 갖가지 희론에 의해 유전되는 종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이미 짓고 지어진 선악의  가지 업의 과보를  받는 일이 이루어질  없어야 할 것이며, 또한 새롭게 명언훈습이 생기하는 일이 이루어질  없어야 할 것이다.

 

수용의 다함이 있는 유수진(有受盡)이란, 종자의 공능(功能, 작용의 힘)을 다 수용해서 남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선ㆍ불선의 과거의 업종자는 이숙(異熟)의 과보를 초감하기 때문에 남음이 없는 것이다.


復有譬喩相,謂此阿賴耶識,幻`炎`夢`翳爲譬喩故.此若無者,由不實遍計種子故,顚倒緣相,應不得成.

復有具足相`不具足相,謂諸具縛者,名具足相,世閒離欲者,名損減相.有學`聲聞及諸菩薩, 名一分永拔相,

阿羅漢`獨覺及諸如來,名煩惱障,全永拔相,及煩惱`所知障,全永拔相,如其所應.此若無者,如是次第,雜染還滅,應不得成.

또한 비유의 비유상(譬喩相)이 있으니, 이 아뢰야식은 환(幻)ㆍ불꽃 염(炎)ㆍ몽(夢)ㆍ흐리고 어둠운 음예(陰翳)를 비유로 삼기 때문에, 만약 이것이 없다면, 불실(不實)한 변계소집의 종자로 인하여 전도된 연상(緣相)은 이루어질  없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갖춘 구족상(具足相)과 갖추지 않은 불구족상(不具足相)이 있으니,

모든 속박을 갖춘 것을 구족(具足)의 상(相)이라 이름하고,

세간의 욕망을 여읜 이를, 감손상(損減相)이라 하나니, 유학의 성문과 모든 보살을 부분적으로 영원히 없앤, 일분영발상(一分永拔相)이라 이름하며,

아라한과 독각과 모든 여래는 번뇌장을 전부 영원히 없앤, 전영발상(全永拔相) 

번뇌장과 소지장을 모두 영원히 없앤, 전영발상(全永拔相)이라 하는 것이니,  상응하는 바는 같은 것이다. 

만약 이러함이 없다면, 이와 같이 잡염이 차례로 소멸하는 것이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다.


▶釋曰:麤重相者,謂所依中,無堪能性.輕安相者,謂所依中,有堪能性. 若無有受盡相,阿賴耶識,數數已作善惡二業,與果受盡,應不得成.無受盡相謂名言熏習種子者, 如名言熏習差別中已說.

해석한다; ‘거칠고 무거움의 추중상(麤重相)’은 소의(所依, 의지처) 중에서 감당 능력이 없는 무감능(無堪能)의 성품(性)을 말하고, 

‘가볍고 평안함의 경안상(輕安相)’은 소의(所依, 의지처) 중에서 감당 능력이 있는 유감능(有堪能)의 성품(性)을 말한다. 

만약 수용의 다함이 있는 유수진상(有受盡相)인, 아뢰야식이 없다면, 누누하게 이미 지어진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받아서  수용하는 이루어질  없어야 할 것이며, 

‘수용의 다함이 없는 무수진상(無受盡相)이 명언훈습의 종자’라는 것은, 명언훈습의 차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

 

無始時來,種種戲論流轉種子故者,謂無始時,來共言說因故.若無如是阿賴耶識, 新起名言熏習生起應不得成. 何以故?若無舊熏習,今名言亦無故.若於世閒,本來無者,本無今有不應道理.譬喩相者,如由所作幻等因故,得有象等,顚倒緣相.阿賴耶識,亦復如是,由所說譬喩相,不實遍計種子故,有顚倒緣相.此若無者,顚倒緣相,應不得成.

‘아득한 무시로부터 갖가지의 희론에 의해 유전되는 종자이기 때문’이란 아득한 무시로부터 언설의 언설인(言說因) 함께하기 때문이니, 만약 이러한 아뢰야식이 없다면 새로운 명언훈습이 생기하는 것이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예전의 훈습이 없었다면 지금의 명언(名言)도 역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며, 

만약 세간에 본래 없는 것이라면, 본래 없었던 것이 지금에는 있게 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비유의 비유상(譬喩相)’이란 지은 요술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나타내어진 코끼리 등과 같이, 전도되어 반연된 연상(緣相)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아뢰야식도 이와 같아서, 말한 비유의 상인 진실되지 않은 변계소집의 종자로 인하여 전도되어 반연된 된 연상(緣相)이 있는 것이나, 만약 이것이 없다면 전도되어 반연된 연상(緣相) 이루어질  없어야 할 것이다.


▶論曰:何因緣故,善`不善法,能感異熟? 其異熟果,無覆無記 由異熟果,無覆無記,與善`不善,互不相違,善與不善,互相違故.若異熟果,善`不善性,雜染還滅,應不得成,是故異熟識,唯無覆無記.

논문; 선과 불선의 법은 어떻게 이숙을 초감하는 것인가? 

 이숙과는 무부무기(無覆無記)이기 때문이다. 이숙과는 무부무기인 까닭에 선과 불선이 서로 위배되지 않는 것이나,

선과 불선은 서로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이숙과가 선ㆍ불선의 성품이라면 잡염과 환멸(還滅)이 성립될  없어야 할 것이니, 따라서 이숙식은 오직 무부무기(無覆無記)일 뿐인 것이다.


▶釋曰:無覆無記者,此中無染說名無覆,卽無染無記,名無覆無記.非如色界生煩惱不善說爲無記.

若異熟果善`不善性,雜染還滅,應不得成者.以從善更生善`從不善更生不善故, 則生死流轉, 無有邊際,

流轉雜染通有漏善故.

▷해석한다; ‘무부무기’는 그 중에 잡염이 없는 것을 무부(無覆)라 이름하는 것으로, 즉 잡염이 없는 무기를 무부무기(無覆無記)라 하는 것이다.

색계에서 생겨나는 번뇌의 불선을 무기로 삼는 유부무기(有覆無記)와는 다른 것이다.

‘만약 이숙과가 선ㆍ불선의 성품이라면 잡염과 환멸은 성립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란,

선(善)으로부터 다시 선(善)이 생겨나게 하고, 불선(不善)으로부터 다시 불선(不善)을 일으키기 때문에, 곧 생사유전하여 끝이 없게 되는 것이며, 

유루의 선은 유전의 원인인 잡염에 포섭되기 때문에 유전의 잡염은 유루선(有漏善)에 통하는 것이다.


攝大乘論釋卷第三 終 섭대승론석 제 3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