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 하권 2

Skunky 2025. 2. 24. 09:01

섭대승론(攝大乘論 2

  (  무착지음불타선다(佛陀扇多한역김묘주 번역

 

佛以何義故,入彼唯記處?離法念彼出世閒定慧智,藉得種種相,記智同相。

一切阿犂耶識因種子滅故,法觸種子增長已轉身,一切佛法集故,入一切智智。

부처님께서는 어떤 의미로 그 유식성에 들어가신 것인가? 

법념(離法)을 떠난 출세간의 정혜지(定慧智)와, 차득(藉得, 후득)의 갖가지의 종종상(種種相) 지혜와 같이함에서이다. 

일체 아리야식의 원인인 인종자(因種子)를 멸한 때문이고, 법신에 이르는 종자를 증장하였며,

의지처인 소의식(所依識)을 전환하여 반야의 지혜를 이루는 전의(轉依)하였으며,

모든 불법을 적집함으로써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에 깨달아 들어가신 것이다.


藉彼所得智,一切阿犂耶識相處,如幻等見故,性不顚倒行。是故彼菩薩如幻師所作,義處相同因果,唯有說,一切時,不顚倒成。

차득(藉得, 후득)의 지혜는 아리야식이 일으키는 모든 상에 대해서 마치 요술 등의 성품으로 보기 때문에 성전도(性顚倒)되지 않고 작용하므로,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마치 요술쟁이가 요술로 일으킨 대상과 같이 상(相)과 인과를 말함에 있어서 항상 전도됨이 없는 것이다.

 

彼以記入中,四種禪定所依四種攢相法云何知?

 유식성에 깨달아 들어감에 있어서  가지의 사종선정(四種禪定)의 소의(所依, 의지처)가 있으니, 네 가지 상의 법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

ㅡ현장의 역본에는 순결택분(順決擇分)이라 하였다.

순결택분을 현장의 역본의 언어로 말하면,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  가지 선근의 지위이다.

5(位), 자량위(資糧位)ㆍ가행위(加行位)ㆍ통달위(通達位)ㆍ수습위(修習位)ㆍ구경위(究竟位) 에서

가행위는 통달위(見道) 수순하고 그것을 이끌어내는 단계이므로 순결택분이라 이름한다.

또한 진실결택분에 수순하고, 또한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진리를 보는 통달위에 가까이 준비하기 때문이.


四種求故,非不身無義無忍中,得光明三昧,暖相依增。

 가지 사색의 사종구(四種求)에 의해서이니, 의지신은 존재하며 외부 대상이 비존재임을 인가하는 득광명삼매(得光明三昧)가 있으니, 이것은 난상위(煖相位)의 의지처이며, 

득광명삼매(得光明三昧), 보통 명득정(明得定)이라고 부른다. 4선근위(善根位) 중의 난위(煖位)에서 하품(下品)의 사색관인 구관(求觀)을 일으켜서 취할 대상의 경계가 공함을 관찰하는 선정이다.  선정에 의해서 처음으로 무루지혜의 전상(前相)을 얻으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난상위(煖相位), 난(煖) 따뜻함을 느끼는 것처럼 견도무루지화(見道無漏智火)의 전상(前相)으로 뛰어난 유루의 지혜가 일어남을 말하는 것으로, 지혜를 증득하고자 준비하는 단계이다.

사종구(四種求, 사구관四求觀), 명(名, 명칭)ㆍ의(義, 대상)ㆍ성(性, 자성)ㆍ승(勝, 차별)

 

忍中光明增長三昧,上依。

외부 대상의 비존재를 뛰어나게 인가하는 중에 광명증장삼매(光明增長三昧)가 있으니, 이것은 상위(上位)의 의지처이며, 

광명증장삼매(光明增長三昧), 현장 역본은 명증정(明增定)이라고 하였으며, 상위(上位) 즉 정위(頂位)에서 상품(上品)의 심사관을 발하여 취할 대상의 경계가 공함을 관찰하는 선정이다.

 선정에서 지혜의 밝은 양상이 점점 더해지므로 명증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위(上位), 현장 역본은 정위(頂位)라고 한역하였다.

 가지 선근 중에서 난위ㆍ정위를 동선(動善)이라 하고

인위ㆍ세제일위를 부동선(不動善)이라고 한다.

정위는 동선 중에서 최극위(最極位)이므로 마치 사람의 정수리와 같다고 해서 정위라고 부르는 것이다.

 

四種中如實觀知入唯記中,以無義決定心,眞實中入一切三昧,依順諦忍。

 가지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관찰하는 여실관지(如實觀知) 의지해서 유식성에 깨달아 들어가나니,

외부 대상의 비존재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알고, 대상의 진실성에 들어가는 모든 삼매가 있으니,  

이것이 진리에 수순하여 인가함의 순제인(順諦忍)의 의지처이며,

순제인(順諦忍), 보통 인위(忍位)라고 한다. 보살이 인순정(印順定)으로부터 하품의 여실변지(如實遍智)를 내어서 능취(能取)가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 결정하는 지위이므로 인위라고 부른다.

 

自此後唯記相思量彼,是次第三昧依世閒上法見故.

이로부터 다음 찰나에 유식의 표상작용을 사량하는 차제삼매(次第三昧)가 있으니, 

세간에서 최상의 법인 세간상법(世間上法)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세간상법(世間上法), 현장의 역본에서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한역하였다. 보살의 수행계위인 52위(位) 가운데 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무간정(無間定)에 의해 상품의 네 가지 여실변지(如實遍智)를 내어서, 인식의 대상뿐만 아니라 관하는 식 그 자체를 공무(空無)라고 분명하게 결택한다. 이 지위에서 일어나는 선근은 유루법 가운데엣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세제일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此諸三昧近入地應知,

이러한 모든 삼매는 깨달아 들어가는 것에 가까운 지위인 근입지(近入地)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ㅡ하품(下品)의 심사관(尋思觀)인 난위에서 대상이 공함을 관찰하고,

상품의 심사관인 정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확실하게 관찰한다.

인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나아가 하품의 여실지관인에서는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며,

세제일위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을 ()으로 인가하는 것이다.

 

如是入地得見諦道。菩薩唯入記.

이렇게 10지(地) 중에 들어가서 견도, 견제도(見諦道)를 얻은 보살은 유식의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5 중에서 견도와 수도의 수행을 설명한다.

 

견도, 견제도(見諦道)는 무루(無漏)의 근본지혜인 정지(正智)가 처음으로 진리를 관조하는 시기로서 초지(初地)의 입심(入心)이다.

 

云何行修道?隨所分別說十地,攝一切修多羅現事住故。以雜念出世閒,及藉彼得定慧智故`無量百千億習故,如是身轉已。爲得三種佛身,爲得故修行。

수도(修道)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가? 

분별해서 말한 10지에 수순하여 모든 경전을 포섭(이해)해서 현전하여 안주하기 때문이고, 

총체적으로 반연하는 출세간의 후득의 정혜지(定慧智) 때문이며,

무랴한 백천억  동안 닦아 익힌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지처를 전환하여  가지 삼종불신(삼三種佛身)을 증득하기 위해서 수행하는것이다.


所有諸聲聞證道法,及此諸菩薩,此二有何差別。勝聲聞證入中,菩薩證入有十一種勝事應知。

모든 성문이 도를 증득하는 법과 모든 보살이 도를 증득하는 법의  가지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성문이 깨달아 들어가는 것과 보살이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11가지의 차이가 있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성문과 보살의 현관(現觀) 차이를 11가지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현장 역본에서도 6 7 묶어서 말하고 있다.


一者念勝,念大乘法故;二者淳至勝,大功德助集淳至故;三者證勝,衆生法無我證故;四者涅槃勝,攝取不住涅槃故;五者地勝,十地盡至故.

첫째는 승념(念勝)으로써, 인식대상의 차이이니, 대승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순지승(淳至勝)으로써, 순수함에 이르는 것의 차이이니,  공덕을 쌓아서 순수함에 이르기 때문이며,

셋째는 증승(證勝)으로써, 통달의 차이이니, 중생과 법무아(法無我)에 통달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열반승(涅槃勝)으로써, 열반의 차이이니, 생사와 열반에 머무름이 없는 불주열반(不住涅槃)을 섭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지승(地勝)으로써, 지위의 차이이니, 10지로써 궁극에 이르기 때문이다.


六者淨勝,煩惱習滅,佛世界令淸淨故;七者一切衆生同得記心勝,化衆生行不斷絕故;八者生勝,生如來家故;九者取生勝,佛世界會中,一切時取生故;十者果勝,十力`四無畏`十八不共佛法無量功德成就故。
是中有偈:

여섯째는 정승(淨勝)으로써, 청정의 차이이니, 번뇌와 습관이 멸하여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득기심승(得記心勝)으로써, 모든 중생이  같이 평등한 마음을 얻는 것의 차이이니, 중생을 교화하는 행이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생승(生勝)으로써, 태어남의 차이이니,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취생승(取生勝)이니, 생을 받는 차이로써, 언제나 불세계의 법회에서 생을 받기 때문이며,

열째는 과승(果勝)으로써, 증과의 차이이니, 10력(十力)ㆍ사무외(四無畏)ㆍ18불공법(十八不共法)인 부처님법의 무량한 공덕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10력(十力), 부처님만이 갖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지혜의 힘으로, 

첫째는 바른 도리와 그렇지 않은 도리를 변별하는 지혜의 힘. 둘째는 선악업과 그 과보를 여실하게 아는 지혜의 힘.

셋째는 4선(禪)ㆍ8해탈(解脫)ㆍ3삼매(三昧)ㆍ8등지(等持) 등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넷째는 중생의 근기의 고하(高下) 우열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다섯째는 중생의 여러 가지 의욕 성향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여섯째는 중생계와 그 성류(性類)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일곱째는 어떤 수행에 의해서 어떤 도에 나가는가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여덟째는 중생의 숙명(宿命)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아홉째는 중생의 미래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열째는 모든 번뇌가 다한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이다.

사무외(四無畏), 부처님께서 10력(力)을 갖추셨으므로 다음과 같이 두려움이 없음을 말한다.

①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으로서의 자신감, ② 모든 번뇌를 극복했다는 자신감, ③ 수행에 장애되는 길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모든 장애를 극복했기 때문), ④ 괴로움을 멸하는 길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모든 괴로움이 소멸되었기 때문)

18불공법(十八不共法), 불공법(不共法)이라 함은 범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라한ㆍ벽지불 또는 보살과 공통되지 않는 부처님 특유의 법이란 뜻으로,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염주(念住)ㆍ대비(大悲)의 18가지가 있다.


迭互作客事, 於事名所求, 唯求彼諸事, 分別二所安。

서로 객관이 되나니, 사물과 명칭에 대해서 그렇게 사색해야 하네.

오직  모든 사물을 사색해 보건데, 분별하여  가지가 안립된 것일 뿐이네.


如實知見故, 離義分別三, 見彼是非事, 彼無二所執。

진리 그대로 여실하게 보기 때문에, 대상을 여읜 세 가지의 분별이 있으나,

그것이 비존재라고 본다면, 두 가지의 집착이 없네.

현장 역본은 3()으로 되어 있으며, 진제 역본인 진본(陳本)이나 급다(笈多)ㆍ행구(行矩) 역본인 수본(隋本)에서는 3무성(無性)으로 되어 있다.


喩若順分別, 復有教授偈.

비유를 말한다면 '분별론(분별유가론)'에서 다시 가르침의 게송이 있으니, 

 

鏡像意於後, 菩薩在諸定, 迴彼義想已, 憶持自想事。

거울의 영상과 같은 마음임을 알고 나서, 보살은 여러 선정에 머물면서

 대상의 표상이 곧 스스로 표상의 성품인 자사(自事)라고 생각하네.

 

住心如是內, 知無所可取, 於後無能取, 無分別知爾。

이렇게 내면의 마음에 안주하면, 인식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무소가취(無所可取)라는 것을 알며, 

다음에 인식주체도 비존재이니 무능취(無能取)임을 아나니, 무분별지혜가 그러한 것이네.

 

更復有證道偈,所謂『大綖莊嚴論』中說:

다시 도를 증득하는 게송이 있으니 '대승경장엄론'에서 설하기를, 

ㅡ제2 진실품의 게송에 상당하는 5() 게송으로 되어 있다.

 

助集無邊行, 功德智菩薩, 法思善決定, 語言達義盡。

공덕과 지혜의 가없는 무변행(無邊行)을, 보살은  적집하네.

법을 사유하여  결택하니, 언어에 통달하여 의미의 궁극에 이르네.

ㅡ이 게송은 자량도에 대한 것이.


彼知正義已, 說住彼定心, 法界現意故, 是以離二相。

그가 진실한 대상을 알면, 그것은 결정코 그 마음인 정심(定心) 안주하며, 

ㅡ이  문구는 방편도에 대한 것이다.

법계를 현전에 증득하므로,  가지의 이상(二相)을 여의네.

ㅡ이 두 문구는 견도(見道) 관한 내용이다.

 

離心無有餘, 善知心亦無, 知二旣是無, 正住於法界。

마음을 떠나서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마음 역시도 비존재인 무(無)라는 것을  아네.

그 두 가지가 비존재임을 통달하여서 법계에 바르게 안주하네.

ㅡ견도(見道) 관한 내용이다.

 

不分知力故, 同時常同行, 彼身窟聚患, 如象滅諸毒。

무분별지혜의 힘에 의해서, 항상 동시에 함께 행하니, 

 의지처의 동굴에서 과실의 덩어리를, 마치 코끼리가 모든 독을 없애듯이 하네. 

게송은 수도(修道) 대한 것이다.


牟尼說善法, 善住意思量, 根本法界處, 念至知意故, 唯分別正取, 速得功德處。

모니께서 말씀하신 선법은 사량에 잘 안주하고, 근본 법계처에 잘 안주하네.

생각(念)이 지혜의 취지인 지의(知意)에 이르러서, 오직 분별이라는 것을 바르게 취하여 조속히 공덕처를 증득하네.

ㅡ이 게송은 구경도에 관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