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제 7권 5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7권 5
此定初起唯在人中。佛及弟子說力起故,人中慧解極猛利故。後上二界亦得現前,'鄔陁夷經'是此誠證,無色亦名意成天故。於藏識教未信受者,若生無色不起此定。恐無色心成斷滅故。已信生彼亦得現前,知有藏識不斷滅故。
이 선정(멸진정)을 처음 일으키는 것은 오직 인간세상에서이니,
부처님과 제자들의 설법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고,
인간이 반드시 삼계의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끊어야 비로소 이 선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색계와 무색계의 두 상계(上界)에서도 역시 현전할 수 있으니, '오타이경(鄔陀夷經)'에서 이를 진실하게 증명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욕계에서 일어나고, 반드시 불환과(不還果) 등을 얻기 때문에 무색계도 역시 의성천(意成天)이라 이름하는 까닭이다.
장식(藏識)에 관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무색계에 태어나서는 이 선정을 일으키지 못하나니, 색법과 심법이 없으므로 단멸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장식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은 그곳에 태어나서도 역시 현전할 수 있으니, 장식이 있으므로 단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의성천(意成天), 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은 의사(意思)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의성천(意成天)이라고 한다.
초선천(初禪天)부터 사선천(四禪天), 색계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삼십삼천(三十三天), 육욕천(六欲天), 범천(梵天), 도리천(忉利天), 무량천(無量天)… 등, 불교에서는 수없이 많은 하늘을 말하지만, 이 하늘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선정이 깊은 사람들이 의식으로 만들어낸 하늘이기 때문에 이 모두가 의성천인 것이다. - 아미산
要斷三界見所斷惑,方起此定。異生不能伏滅有頂心、心所故。此定微妙,要證二空。隨應後得所引發故。
반드시 삼계의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끊어야 비로소 이 선정을 일으키나니, 범부는 유정천의 심왕ㆍ심소를 조복 단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부는 유정천(有頂天)의 견소단(見所斷)의 심왕ㆍ심소를 복멸(伏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부 지위의 8지(地)의 견혹(見惑)을 모두 조복할 수 없으나, 오직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만을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최후로 반드시 복단(伏斷)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선정은 미묘하므로 반드시 아공ㆍ법공의 이공(二空)의 이치를 증득하며, 상응한 것을 따라 후득지에 이끌려 일어나기 때문이다.
2승(乘)이 이 선정에 들어갈 때에는 오직 아공(我空)을 증득하는 후득지(後得智)로써 이끌려 일어나고,
보살과 부처님이 이 선정에 들어갈 때에는 아공ㆍ법공의 후득지로써 모두 이끌려 일어날 수 있다.
후득지(後得智) 또는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 가행(加行: 노력, 방편) 즉 선정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진여의 무분별지의 일부로서의 갖가지 무루혜를 가행지(加行智) 또는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라 하며, 가행지는 근본지를 깨쳐 후득지가 드러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대승기신론》등의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 계열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清淨心)을 본질의 입장에서 본각(本覺)이라 하고,
증득의 입장에서 범부가 최초로 증득하는 무루혜를 상사각(相似覺)이라고 하고,
성자가 선정 수행 즉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중간의 갖가지 무루혜를 수분각(隨分覺)이라 하고,
성자가 근본무명을 끊고 진여를 완전히 깨쳐 본각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구경각(究竟覺)이라 한다.-위키
有義下八地修所斷惑中要全斷欲,餘伏或斷然後方能初起此定。欲界惑種二性繁雜障定强故。
唯說不還三乘無學及諸菩薩得此定故。彼隨所應生上八地皆得後起。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인 수혹(修惑)에 관하여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욕계로부터 무소유처정까지의 하지(下地)의 8지(地)는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는 미혹 중에서 반드시 완전히 욕망을 끊고 나머지를 조복하고, 미혹을 단멸한 후에야 바야흐로 능히 처음으로 이 선정을 일으킬 수 있으니,
욕계의 미혹의 종자는 불선과 유부무기의 이성(二性)이 번잡해서 선정을 장애함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직 불환과(不還果)와 3승의 무학 및 여러 보살만이 이 선정을 얻을 수 있으니, 그가 상응한 바에 따라서 상지(上地)의 8지(地)인 색계의 사선(四禪)과 무색계의 네 가지 선정인 사무색정(四無色定)을 얻고난 후에야 모두 일어나는 것이다.
有義要斷下之四地修所斷惑,餘伏或斷然後,方能初起此定。
變異受俱煩惱種子障定强故,彼隨所應生上五地,皆得後起。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반드시 하지(下地)인, 욕계와 색계의 제3선천까지의 4지(地)의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끊고 다른 것을 조복하거나, 혹은 단멸한 연후에 바야흐로 능히 처음에 이 선정을 일으키나니,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우수(憂受)ㆍ희수(喜受)의 변이수(變異受)와 함께하는 번뇌의 종자는 선정을 장애함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응한 바에 따라서 상부 지위의 5(地)에 태어나서 나중에 모두 일으킬 수 있으니, 색계의 제3선천 이하의 미혹은 이미 조복된 까닭에 그곳에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若伏下惑能起此定,後不斷退生上地者,豈生上已卻斷下惑?
▷묻습니다; 만약 하지(下地)의 미혹을 조복하여 능히 이 선정을 일으킨다고 말한다면, 나중에 단멸하거나 퇴전하지 않고,
상지(上地)에 태어나는 자는, 어떻게 상지(上地)에 태어난 이후에 도리어 하부 지위의 미혹을 단멸한다고 합니까?
무루(無漏)로써 그 종자를 단멸하지 않고, 또한 퇴전하여 그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상(想)심소가 작용하지 않는 지위인 비상지(非想地)에 태어나는 사람이 그곳에 태어나서 도리어 제4선천 등의 미혹을 단멸하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斷亦無失。如生上者斷下末那俱生惑故。然不還者對治力强,正潤生位不起煩惱。
但由惑種潤上地生。雖所伏惑有退不退,而無伏下生上地義。故無生上卻斷下失。
▷답한다;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에도 역시 과실이 없으니, 상지(上地)에 태어나는 자가 하지(下地)의 말나식과 함께 생겨나는 미혹을 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환과를 이룬 자는 다스리는 힘이 강하므로 바로 태어남을 촉진하는 지위에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니, 다만 미혹의 종자에 의해 상지에 태어남을 촉진할 뿐이며,
그 조복된 미혹은 퇴전과 불퇴전이 있지만, 하지를 조복하고 상지에 태어나는 뜻은 없으므로, 따라서 상지에 태어나서 도리어 하지의 종자를을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에 과실이 없는 것이다.
이미 조복하긴 하지만 오히려 종자가 있어서 상지(上地)에 태어남을 장애하므로, 그곳에 태어나는 뜻이 없다.
하지(下地)의 종자를 단멸하고 나서 상지(上地)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나서 다시 도리어 하지의 종자를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에 과실이 없다는 의미이다.
若諸菩薩先二乘位已得滅定,後迴心者一切位中能起此定。若不爾者,或有乃至七地滿心,方能永伏一切煩惱。雖未永斷欲界修惑,而如已斷能起此、定論說已、入遠地菩、薩方能現起滅盡定。故有從初地卽能永伏一切煩惱如阿羅漢,彼十地中皆起此定。經說菩薩前六地中,亦能現起滅盡定故。
만약 모든 보살에 있어서, 먼저 2승의 지위에서 멸진정을 증득한 후에 마음을 대상으로 전향한 점오(漸悟)의 보살은 3대겁(大劫) 중에서의 모든 지위에서 이 선정을 일으킬 수 있으나,
만약 그렇지 않은 돈오(頓悟)의 보살이라면, 혹은 어떤 사람은 7지(地)의 만심(滿心)에 이르러 바야흐로 능히 영원히 모든 번뇌를 조복하며, 아직 욕계의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영원히 단멸하지는 않지만, 이미 단멸한 것과 같이 능히 이 선정을 일으키나니,
논서, '유가사지론' 제62권에서 이미 10지(地) 중의 제7지인, 원행지(遠行地)에 들어간 보살이 바야흐로 멸진정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초지(初地)에서부터 곧 능히 모든 번뇌를 영원히 조복하는 것이 아라한과 같아서, 10지 가운데에서 모두 이 선정을 일으키나니, 경전, '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의 제5권에서 보살은 앞의 6지 가운데에서도 역시 능히 멸진정을 일으킨다고 말씀하신 때문이다.
無心睡眠與悶絕者,謂有極重睡眠悶絕,令前六識皆不現行。疲極等緣所引身位,違前六識故,名極重睡眠。
'제16게송에서'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지위인 무심위(無心位)와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라는 것은,
매우 깊은 수면과 기절한 경우에는 6식(六識)이 모두 현행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니,
매우 피곤한 것 등의 연(緣)에 이끌린 몸의 상태에서 6식(六識)에 거스르기 때문에 ‘매우 깊은 수면인 극수면(極睡眠)’이라 하는 것이다.
此睡眠時,雖無彼體,而由彼似彼故,假說彼名。風熱等緣所引身位,亦違六識故,名極重悶絕。
或此俱是觸處少分。除斯五位意識恒起。
이러한 수면의 시기에는 그 수면(睡眠)심소의 자체(體)가 없지만 그것에 의거하고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그 명칭을 말하는 것이며,
바람이나 열(熱) 등의 연(緣)에 이끌려진 몸의 상태에서도 역시 6식(六識)을 거슬리기 때문에 ‘매우 깊이 기절함인 극민절(極悶絶)’이라하는 것으로, 혹 무심위(無心位)의 수면과 기절한 경우의 극민절(極悶絶) 모두는 촉처(觸處)의 일부이다.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면, 이러한 다섯 지위를 제외한 의식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다.
正死生時亦無意識,何故但說五位不行。有義死生,及與言顯。
참으로 태어나고 죽을 때에도 역시 의식이 없거늘, 어째서 다만 오위(五位)에서만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가?
무심의 5위(位)를 요간(料簡)하는 세 가지 중에서 먼저 태어나고 죽는 경우를 묻는 것이다.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죽고 태어나는 경우는 (제16게송에서) ‘및(급及)’, ‘와(여與)’라는 말로써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무심위(無心位)는 5위(位), 죽음의 순간인 사위(死位), 태어나는 순간의 생위(生位)의 7위가 되지만, 다만 '삼십송'의 제16게송에서 죽음과 태어남의 두 가지 위(位)를 말하지 않은 것은 게송 중의 ‘및(급及)’, ‘와(여與)’의 두 글자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彼說非理。所以者何?但說六時名無心故。謂前五位及無餘依。
應說死生卽悶絕攝。彼是最極悶絕位故。說及與言顯五無雜。此顯六識斷已後時,依本識中自種還起。
由此不說入無餘依。
제2사(第二師)가 말하는 것은 바른 이치가 아니니, 무슨 까닭에서인가?
다만 여섯 순간의 육시(六時)만을 무심이라고 '유가사지론'의 제13권에서 말한 때문이니, 곧 앞의 오위(五位)와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을 말한 것이다.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이숙(異熟)의 괴로움의 과보인 5온화합의 신체까지 모두 멸하는 것으로, 이제는 의지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마땅히 죽음과 태어남의 경우는 곧 기절한 민절(悶絕)에 포함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은 매우 지극한 기절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16게송에서 ‘및(급及)’, ‘와(여與)’라고 말을 한 것은 다섯 가지가 잡란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서는 6식이 단절된 이후에 근본식 중의 자신의 종자에 의지해서 다시 일어남을 나타낸 것으로, 이것에 의거해서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지위를 말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다.
此五位中異生有四,除在滅定。聖唯後三。於中如來自在菩薩,唯得有一,無睡悶故。
이 오위(五位) 중에서 범부에게는 네 가지가 있으니, 멸진정에 들어 있는 경우는 제외한 것이다.
성인에게는 오직 뒤의 세 가지, 즉 멸진정ㆍ수면ㆍ기절한 경우뿐이니, 그 중에서 여래와 자재한 보살에게는 오직 하나(멸진정)만이 있으니, 수면과 기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是故八識一切有情,心與末那二恒俱轉。若起第六則三俱轉。
餘隨緣合起一至五,則四俱轉乃至八俱。是謂略說識俱轉義。
이상과 같으므로 8식(八識)은 모든 유정에 있어서 제8식과 말나식의 둘은 항상 함께 전전하나니,
제6식을 일으킬 때에는 곧 셋이 함께 전전하며, 나머지는 연(緣)의 화합을 따라 하나에서부터 다섯에 이르기까지를 일으킬 때에는, 곧 네 가지가 함께 전전하는 것으로, 나아가 여덟 가지가 함께하는 것이다.
이것을 식이 함께 전전하는 뜻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
이하는 세 가지 능변식(能變識)을 요간(料簡)하는 삼능변분별(三能變分別)로써, 먼저 8식이 함께 전전하는 관계를 밝힌다.
若一有情多識俱轉如何說彼是一有情?若立有情依識多少,汝無心位應非有情。
又他分心現在前位,如何可說自分有情?
▷묻습니다; 만약 하나의 유정에게 여러 식이 함께 전전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그를 하나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욕계에서 제6식이 색계의 선정을 일으킬 때, 만약 식(識)에 의해서 유정을 판별한다면 이것은 항상 색계의 유정일 뿐, 욕계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대로 질문한 것이다.
만약 유정을 건립하는 것이 식(識)의 많고 적음에 의지한다고 말한다면, 그대가 말하는 무심위는 마땅히 유정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분위인 타분(他分), 즉 상지(上地)의 다른 세계 분위인 계분(界分)이나 다른 무루 분위인 무루분(無漏分)의 심왕이 현전하는 지위를 어떻게 자기 분위인 자분(自分)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타분(他分), 설일체유부에서 비판하기를 유정에서 정(情)이란 식(識)을 의미하고, 여러 식의 자체(自體)가 있다면 많은 유정이 되는 것으로, 하나의 유정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然立有情,依命根數或異熟識,俱不違理。彼俱恒時唯有一故。
▷정의한다; 그런데 유정을 건립하는 것은 명근(命根) 혹은 이숙식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으니, 그 명근(命根) 혹은 이숙식은 항상 오직 하나만 있기 때문이다
명근(命根)을 소승에서는 실유(實有)로 말하지만, 대승에서는 그것을 종자에서 가립하여 말한다.
一身唯一等無閒緣,如何俱時有多識轉?
旣許此一引多心所,寧不許此能引多心?又誰定言此緣唯一說?多識俱者,許此緣多故。
▷묻습니다; 일신(一身)에는 오직 하나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있을 뿐이니, 어떻게 동시에 여러 식이 전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답한다; 이미 이 하나가 여러 심소를 이끈다는 것을 인정하였거늘, 어째서 이것이 능히 여러 심왕을 이끈다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또한 누가 결정적으로 이 등무간연이 오직 하나라고 말했는가? 여러 식이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등무간연도 여러 가지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인연(因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 · 등무간연(等無間緣)의 4연(四緣)에서,
인연은 인(因) 즉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하고
소연연 · 증상연 · 등무간연은 연(緣) 즉 간접적인 원인에 해당한다.-위키
又欲一時取多境者,多境現前,寧不頓取?諸根境等和合力齊,識前後生不應理故。
又心所性雖無差別,而類別者許多俱生,寧不許心異類俱起?
또한 일시(一時)에 여러 대상을 취하고자 할 때에는, 여러 대상이 현전하는데 어찌 단박에 취하지 않는가?
여러 감각기관과 대상 등이 화합하는 힘을 같이하는 것을, 식이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심소(心所, 마음작용)의 체성이 차별이 없지만, 부류가 다르면 여럿이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하면서, 어찌 종류가 다른 심왕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심소법은 모두 심왕에 소속된 법으로서 동일한 능연(能緣)의 체성임을 말한 것이다.
又如浪像依一起多。故依一心多識俱轉。又若不許意與五俱取,彼所緣應不明了。如散意識緣久滅故。
또한 비유하자면 하나의 파도나 거울에 의해 많은 파도나 여럿의 영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의 심왕에 의지해서 여러 식이 함께 전전하는 것이다.
또한 의식(意識)이 5식과 함께한다고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 5식의 인식대상인 소연(所緣)을 취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아야 하나니, 산란된 의식이 과거의 구멸(久滅)을 반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