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제 7권 2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7권 2
有義尋伺亦五識俱。論說五識有尋、伺故。又說尋、伺卽七分別,謂有相等。
'雜集'復言任運分別謂五識故。有義尋、伺唯意識俱。論說尋求、伺察等法,皆是意識不共法故。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심(尋)ㆍ사(伺) 심소는 역시 5식(五識)과도 함께하는 것으로, 논서,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5식에 심(尋)ㆍ사(伺) 심소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또한 심(尋)ㆍ사(伺) 심소는 곧 7 가지의 칠분별(七分別)이라고 말하나니, 즉 형상이 있음의 유상(有相), 형상이 없음의 무상(無相), 자연히 일어남의 임운(任運), 찾아 구함의 심구(尋求), 보고 살피는 사찰(伺察), 잡염됨의 염오(染汚), 잡염되지 않음으니 불염오(不染汚) 등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에서 다시 자연히 일어나는 분별은 5식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심(尋)ㆍ사(伺) 심소도 오직 의식과 함께하나니, 논서, 유가사지론 제1권에서 심(尋)ㆍ사(伺) 등의 법은 일곱 가지의 칠분별(七分別)은 심(尋)ㆍ사(伺) 심소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모두 의식의 불공법(不共法)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又說尋、伺,憂、喜相應,曾不說與苦、樂俱故。捨受遍故可不待說。何緣不說與苦、樂俱?雖初靜慮有意地樂,而不離喜摠說喜名。雖純苦處有意地苦,而似憂故摠說爲憂。
또한 심(尋)ㆍ사(伺) 심소는 우수(憂受)ㆍ희수(喜受)와 상응할 뿐이라고 말하나, 일찍이 고수(苦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한다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사수(捨受)는 두루하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나, 무슨 까닭으로 고수(苦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인가?
초선천에서는 의식의 낙수(樂受)가 있지만, 희수(喜受)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전체적으로 희수(喜受)라고 명칭하며,
순전히 고통만 있는 곳에서는 의식의 고수(苦受)가 있지만, 우수(憂受)와 비슷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우수(憂受)라고 말하는 것이다.
又說尋、伺以名身等、義爲所緣。非五識身以名身等、義爲境故。然說五識有尋、伺者,顯多由彼起,非說彼相應。
또한 심(尋)ㆍ사(伺) 심소는 명칭의 명신(名身), 즉 명칭 등은 능전(能詮)이고 의(義, 뜻)은 소전(所詮)으로서, 소연(所緣, 인식대상)으로 한다고 유가사지론 제5권에서 말하며,
5식(五識)은 명칭의 명신(名身) 등과 의(義, 뜻)으로써 소연(所緣, 인식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5식에 심ㆍ사 심소가 있다고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말한 것은 대부분 그것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그것과 상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雜集'所言,任運分別謂五識者,彼與'瑜伽'所說分別義各有異。彼說任運卽是五識,
'瑜伽'說此是五識俱分別意識相應尋伺。故彼所引爲證不成。由此五識定無尋、伺。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 2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분별은 5식을 가리킨다는 것은 유가사지론에서 말한 분별과는 다른 뜻으로,
잡집론에서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곧 5식이라고 말하고, 유가사지론에서는 이것이 5식과 함께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분별(任運分別)과 상응하는 심ㆍ사 심소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가 인용한 것은 증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에 의하여 반드시 5식에서는 심(尋)ㆍ사(伺) 심소가 없는 것이다.
有義惡作憂捨相應。唯慼行轉。通無記故。睡眠喜、憂、捨受俱起,行通歡、慼中庸轉故,尋伺憂喜、捨、樂相應。初靜慮中意樂俱故。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오작(惡作)심소는 우수(憂受)ㆍ사수(捨受)와 상응하는 것으로, 오직 근심의 작용에서만 전전하므로 희수(喜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하지 않으니, 무기에 통하기 때문에 따라서 사수(捨受)와 함께한다.
면(眠)심소는 희수(喜受)ㆍ우수(憂受)ㆍ사수(捨受)와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작용이 기쁨ㆍ슬픔ㆍ기쁨도 슬픔도 아닌 것에 공통적으로 전전하기 때문이며,
심ㆍ사 심소는 우수ㆍ희수ㆍ사수ㆍ낙수와 상응하나니, 초선천 중에서는 의식의 낙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부정심소와 5수(受)와의 상응관계를 밝힌 수구불구문(受俱不俱門)
有義此四亦苦受俱。純苦趣中意苦俱故。四皆容與五別境俱。行相、所緣不相違故。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회(悔)ㆍ면(眼) 심소와 심(尋)ㆍ사(伺) 심소의 네 가지 심소는 역시 고수(苦受)와도 함께하나니, 순전히 고통만 있는 세계에서는 의식의 고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 네 가지 심소는 모두 다섯 가지 별경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되는 것이니,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서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와 별경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 별경상응문(別境相應門).
悔、眠但與十善容俱。此唯在欲無輕安故。尋、伺容與十一善俱。初靜慮中輕安俱故。
회(悔)ㆍ면(眼) 심소는 다만 10 가지 선(善)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되나니, 이것은 오직 욕계에서만 있고, 경안(經安)에는 없기 때문이다.
심(尋)ㆍ사(伺) 심소는 11 가지 선(善)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되나니, 초선천 중에서는 경안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와 선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 선구문(善俱門).
悔但容與無明相應。此行相麤貪等細故。睡眠、尋、伺十煩惱俱。此彼展轉不相違故。
회(悔)심소는 다만 무명과 상응하는 것이 인정되나니, 이것의 행상(行相,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탐(貪)심소 등은 미세하기 때문이며,
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는 11 가지 번뇌의 심소와 함께하나니, 이것과 그것은 전전하여 서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와 열 가지 번뇌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 십번뇌구문(十煩惱俱門).
悔與中、大隨惑容俱。非忿等十各爲主故。睡眠、尋、伺二十容俱。眠等位中皆起彼故。此四皆通善等三性。於無記業亦追悔故。
회(悔)심소는 중수번뇌(中隨煩惱)와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와 함께한다고 인정되나, 분(忿) 등의 열 가지는 아니니, 각각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와 수번뇌심소의 상응관계를 밝힌, 수혹구전문(隨惑俱轉門).
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는 스무 가지 수번뇌와 함께한다고 인정되나니, 수면 등의 지위 중에서 분(忿)심소 등 20 가지 수번뇌심소 모두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심소는 모두 선 불선 무기 등의 삼성(三性)과 통하나니, 무기의 업에서도 역시 뉘우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의 3성(性)의 관계를 밝힌, 삼성문(三性門).
51 가지의 심소법(心所法)에서 20 가지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를 이루는
10 가지의 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 · 2 가지의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 8 가지의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2가지 마음작용을 중수번뇌(中隨煩惱) 또는 중수혹(中隨惑)이라 한다.
有義初二唯生得善。行相麤鄙及昧略故。後二亦通加行善。攝聞所成等,有尋、伺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처음의 두 가지, 회(悔)ㆍ면(眼)심소는 오직 선천적으로 착한 성품의 생득선(生得善)으로,
회(悔) 심소는 행상(行相,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자신을 낮추며,
면(眼)심소는 어둡고 빼앗기 때문이다.
뒤의 2 가지 심(尋)ㆍ사(伺) 심소는 역시 가행선(加行善)에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들어서 이루는 지혜인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에 심ㆍ사 심소가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有義初二亦加行善。聞思位中有悔眠故。後三皆通染、淨無記。惡作非染解、麤猛故。四無記,悔唯中二。行相麤猛非定果故。眠除第四。非定引生,異熟生心亦得眠故。尋、伺除初。彼解微劣不能尋察名等、義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의, '처음의 둘인 회(悔)ㆍ면(眼) 심소도 역시 가행선으로, 문혜(聞慧)ㆍ사혜(思慧)의 지위 중에 회ㆍ면 심소가 있기 때문이고,
뒷부분의 셋은 모두 잡염의 유부무기(有覆無記)와 청정의 무부무기(無覆無記)에 통하나,
회(悔)심소는 잡염이 아니니, 이해가 두드러지고 맹렬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숙(異熟)ㆍ위의(威儀)ㆍ공교(工巧)ㆍ변화(變化)의 청정의 사(四)무기 중에서 회심소는 가운데 두 가지의 위의무기와 공교무기이니, 행상(行相,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맹렬하며, 선정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眼)심소에서는 네 번째의 변화(變化)무기만을 제외하나니, 선정에 이끌려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제6식의 이숙생의 심왕에도 역시 수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ㆍ사 심소는 첫 번째의 이숙무기만을 제외하나니, 그 이숙심은 이해가 미세하고 열등해서 명칭 등과 의미를 심구ㆍ사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惡作、睡眠唯欲界有,尋、伺在欲及初靜慮。餘界、地法皆妙靜故。悔、眠生上必不現起。
尋、伺上下亦起下上。下上尋伺能緣上下。
회(悔)ㆍ면(眼) 심소는 오직 욕계에만 있고, 심(尋)ㆍ사(伺) 심소는 욕계와 초선천에 있으니,
색계와 무색계와 제2선천(第二禪天) 이상의 지위의 법은 모두 승묘하고 적정하기 때문이다.
회ㆍ면 심소는 상지(上地)에 있을 때는 반드시 일으키지 않으나,
심ㆍ사 심소는 상지(上地)와 하지(下地)에 있으면서 역시 상지ㆍ하지를 일으키는 것으로,
상지와 상지의 심ㆍ사 심소는 능히 상지ㆍ하지를 반연하는 것이다.
부정심소가 어떤 세계에 계박되는가를 밝힌, 계박문(界繫門).
有義悔、眠不能緣上。行相麤近極昧略故。有義此二亦緣上境。有邪見者悔修定故。夢能普緣所更事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회(悔)ㆍ면(眼) 심소는 상지(上地)를 반연할 수 없으니, 회심소는 행상(行相,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가까우며, 면심소는 매우 어둡고 빼앗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두 가지의 회(悔)ㆍ면(眼) 심소도 역시 상지(上地)의 대상을 반연하나니, 삿된 견해가 있는 자는 상지의 선정을 닦는 것을 얕보기 때문이고 꿈속에서는 능히 널리 바꾸어진 대상을 반연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悔非無學,離欲捨故。睡眠、尋伺皆通三種。求解脫者有爲善法,皆名學故。學究竟者有爲善法,皆無學故。
회(悔)심소는 무학(無學)은 아니니, 욕망을 떠날 때 버리기 때문이며,
회(悔)ㆍ면(眼)ㆍ심(尋)ㆍ사(伺) 심소는 모두 세 종류에 통하나니,
해탈을 구하는 자의 유위의 선법을 모두 유학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며,
궁극적인 경지를 배우는 자의 유위의 선법은 모두 무학이기 때문이다.
부정심소와 유학(有學) 등의 관계를 밝힌, 학등삼문(學等三門).
悔眠唯通見修所斷,亦邪見等勢力起故。非無漏道親所引生故。亦非如憂深求解脫故。若已斷故名非所斷,則無學眠非所斷攝。
회(悔)ㆍ면(眼) 심소는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에 통하며,
부정심소가 어떤 도(道)에서 단멸되는가를 밝힌, 견등소단문(見等所斷門).
또한 사견 등의 세력에 의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며,
회ㆍ면 심소는 소승에서는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이라고 말하나,
유식학에서 그것은 사견(邪見) 등의 세력에 의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에도 포함된다고 한다.
무루도(無漏道)에서 바로 이끌려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고근(苦根)은 무루(無漏)가 아니지만 무학(無學)에서 성취하므로 부단(不斷)이라고 이름한다면, 면(眠)심소도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것에 대하여 답변하는 것이다.
또한 우근(憂根)이 깊이 해탈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근(憂根)은 무학(無學)이 아니지만, 22근(根) 중에서 부단(不斷)으로 이름하나니, 어째서 회(悔)심소 등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만약 무학에서 이미 단멸되었기 때문에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비소단(非所斷)이라고 이름한다면,
곧 무학의 면(眠)심소도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에 포함되는 것이다.
尋伺雖非眞無漏道,而能引彼,從彼引生故,通見、修,非所斷攝。
심ㆍ사 심소는 참다운 무루도의 무분별지혜가 아니지만, 능히 그것을 이끌고 그것에 따라서 이끌려 생겨나기 때문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 및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有義尋伺非所斷者,於五法中唯分別攝。'瑜伽'說彼是分別故。
有義此二亦正智攝。說正思惟是無漏故。彼能令心尋求等故。又說彼是言說因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심(尋)ㆍ사(伺) 심소는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것은 다섯 가지 법, 즉 일체법의 자성을 분별한 오법(五法)인 형상(相)ㆍ명칭(名)ㆍ분별ㆍ정지(正智)ㆍ여여(如如, 진여) 중에서 오직 분별에만 포함되는 것이니, 유가사지론 제 5권에서 그것은 분별이라고 말한 때문이다' 고 하였으며,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심(尋)ㆍ사(伺) 이 두 가지는 역시 5법(法) 중의 정지(正智)로서, 무루(無漏)의 후득지(後得智)인 정지(正智)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사유(正思惟)의 자체(體)가는 곧 심(尋)심소이고 무루라고 현양성교론 제2권에서 말하기 때문이고,
그 정사유는 능히 심왕(心)으로 하여금 찾아 구하는 심구(尋求) 등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유가사지론 제29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또한 그것은 언설의 원인이라고 십지경론(十地經論) 제1권에서 말한 때문이다.'고 하였다.
未究竟位於藥病等未能遍知,後得智中爲他說法,必假尋伺。非如佛地無功用說。故此二種亦通無漏。
아직 궁극적으로 깨치지 못한 인위(因位)의 2승(乘)과 10지(地) 보살의 지위에서는 능치(能治)의 약(藥)과 소치(所治)의 병(病) 등에 대해서 능히 두루 알 수 없으므로, 후득지 속에서 타인을 위하여 법을 설할 때에 반드시 심(尋)ㆍ사(伺) 심소에 의지하는 것이니, 부처님 지위인, 유위(有爲)의 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심(尋)ㆍ사(伺), 두 가지는 역시 무루에도 통하는 것이다.
雖說尋、伺必是分別,而不定說唯屬第三。後得正智中亦有分別故。餘門准上如理應思。
심(尋)ㆍ사(伺) 심소는 반드시 분별(分別)이라고 말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오직 5법(法) 중에 제3분별에 속한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니, 5법 중에 제4정지(第四正智)의 후득의 바른 지혜 중에도 역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유루ㆍ무루를 반연하는 것, 자체가 있는 대상의 유사(有事)와 자체가 없는 대상의 무사(無事)를 반연한 것 등은 이상에 견주어서 논리에 맞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如是六位諸心所法,爲離心體有別自性,爲卽是心分位差別?
▷묻습니다; 이상과 같은 6위의 모든 심소법은 심왕의 자체인 심체(心體)를 떠나서 별도의 자성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심왕의 분위의 차이인 것입니까?
다음에 심왕법과 심소법이 별도의 자체인가, 아니면 분위(分位)의 차이인가를 밝힌, 왕소일이(王所一二).
設爾何失?二俱有過。若離心體有別自性,如何聖教說唯有識?又如何說心遠獨行,染淨由心,士夫六界?
▷답한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어떠한 과실이 있는 것인가!
둘 다 과실이 있으니, 만약 심체(心體)를 떠나서 별도로 자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성스러운 가르침인 십지경론 제8권에서 오직 식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어째서 심왕이 멀리 홀로 작용한다고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4권에서 말하는 것이며?
잡염법ㆍ청정법은 심왕에 의거한다고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2권에서 말하며?
어찌하여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유정은 이 6계(界)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심소가 유정을 이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반문反問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