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야마궁중 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1
[[이 품은 功德林등 10보살 대중이 해당 지위의 행으로써 게송을 통해 해당되는 지위의 법을 찬탄하기 때문에 게찬품이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10행의 법을 설하고자, 먼저 게송으로 10행 속의 인과 법문을 모두 찬탄하기 때문에 이 품이 반드시 옴을 밝힌 것이니, 만약 행한 바의 인과를 먼저 들지 않는다면 10행이 무엇을 의거해서 성취하겠는가?]]
夜摩宮中偈讚品 第二十.
一. 大衆雲集
1. 菩薩雲集
一一各與佛刹微塵數菩薩로 俱하사 從十萬佛刹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하야 而來集會하시니라
爾時에, 그때 佛神力故로, 부처님의 신력으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시방에 각처에 있는 한 대보살이
一一各與佛刹微塵數菩薩로 俱(구)하사, 저마다 각각 불찰미진수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從十萬佛刹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하야, 십만 불찰미진수 국토 밖의 모든 세계로부터
而來集會하시니라. 와서 모였다.
[[一一各與佛刹微塵數菩薩 俱 從十萬佛刹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 而來集會→ 10주에서는 백불찰미진이라 말하고 이 지위에서는 10만이라 말한 것은 승진하는 지혜의 확장을 밝힌 것이다. 미혹된 마음과 모든 경계는 塵의 量이 되고, 미혹된 집착이 거처하는 곳은 國이라 칭하고, 마음이 경계를 따라 구르는 것을 ‘모든 국토의 밖’이라 칭하고, 집착이 없어지면서 지혜에 계합하는 것을 ‘온다’라고 칭하고, 밝은 지혜가 두루하면서 경계를 요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호칭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보살이 예의 그러한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미혹을 요달해서 지혜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2. 菩薩名
其名曰功德林菩薩과 慧林菩薩과 勝林菩薩과 無畏林菩薩과 慚愧林菩薩과 精進林菩薩과
力林菩薩과 行林菩薩과 覺林菩薩과 智林菩薩이요
열 분의 대표보살 명단이 소개됩니다.
其名曰(기명왈) 功德林菩薩(공덕림보살) 慧林菩薩(혜림보살) 勝林菩薩(승림보살) 無畏林菩薩(무외림보살)
慚愧林菩薩(참괴림보살) 精進林菩薩(정진림보살) 力林菩薩(역림보살) 行林菩薩(행림보살) 그리고
覺林菩薩(각림보살) 智林菩薩(지림보살)들이다.
[모두 수풀 林자를 항렬로 한 보살들입니다.
종교적 탄생의 지역적인 특색으로 표현할 때, 불교를 “숲의 종교” 그리고 기독교는 “사막의 종교”라고 합니다.
불교는 인도의 숲속에서 명상을 하고, 그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서 출발했고, 또 승려들, 부처님제자들은 늘 숲속에서 좌선수행하고, 또 밖으로 나가서 탁발을 해서 돌아오면 숲 속에 와서 좌선 수행던 것이, 차츰차츰 발달해서 정사를 지어서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들게 된 것 등으로 해서 오늘 날 우리가 절을 소유하게 된 역사입니다.]
[[보살이 각각 같은 호칭으로 두루함은 마음이 모든 경계를 미혹하니 티끌[塵]은 무명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이며, 마음이 깨달아 지혜가 통하니 멀리 찰해에 두루하도록 一切種智가 그 見과 같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명호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니, 미혹할 때는 경계마다 미혹 아님이 없지만 깨닫고 나면 경계마다 지혜 아님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3. 來國
此諸菩薩의 所從來國은 所謂親慧世界와 幢慧世界와 寶慧世界와 勝慧世界와 燈慧世界와
金剛慧世界와 安樂慧世界와 日慧世界와 淨慧世界와 梵慧世界니라
此諸菩薩(차제보살)의, 이 보살들이 所從來國(소종래국)은, 떠나온 국토는
所謂(소위) 親慧世界(친혜세계)와 幢慧世界(동혜세계)와 寶慧世界(보혜세계)와 勝慧世界(승혜세계)와
燈慧世界(등혜세계)와 金剛慧世界(금강혜세계)와 安樂慧世界(안락혜세계)와 日慧世界(일혜세계)와
淨慧世界(정혜세계)와 梵慧世界(범혜세계)였더라.
4. 佛名
此諸菩薩이 各於佛所에 淨修梵行하시니 所謂常住眼佛과 無勝眼佛과 無住眼佛과 不動眼佛과
天眼佛과 解脫眼佛과 審諦眼佛과 明相眼佛과 最上眼佛과 紺靑眼佛이라
[보살들이 찬탄하니까 보살이 주인이 되어서 그 보살이 온 국토과 모시고 사는 스승= 부처님을 소개하는 순서입니다.]
此諸菩薩(차제보살)이, 이 보살들이 各於佛所(각어불소)에, 각각 부처님 처소에서
淨修梵行(청정범행)하시니, 범행을 청정히 닦았으니
所謂(소위) 常住眼佛(상주안불)과, 상주안 부처님과 無勝眼佛(무승안불)과,무승안 부처님과
無住眼佛(무주안불)과,무주 안 부처님과 不動眼佛(부동안불)과,부동 안 부처님과
天眼佛(천안불)과, 천안 부처님과 解脫眼佛(해탈안불)과,해탈 안 부처님과
審諦眼佛(심제안불)과,심제 안 부처님과 明相眼佛(병상안불)과, 명상 안 부처님과
最上眼佛(최상안불)과, 최상 안 부처님과 紺靑眼佛(감청안불)이라.감청 안 부처님이더라.
[부처님의 돌림자는 눈 眼자. 세계의 이름은 지혜 慧자. 보살들의 이름은 수풀 林자입니다]
5.坐師子座 사자좌에 앉다.
是諸菩薩이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隨所來方하야 各化作摩尼藏師子之座하사 於其座上에 結跏趺坐하시니라
是諸菩薩이, 이 모든 보살들이 至佛所已(지불소이)에, 부처님 처소에 이르자
頂禮佛足(정례불족)하고,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隨所來方(수소래방)하야, 떠나온 방향을 따라
各 化作摩尼藏師子之座(각 화작마니장사자지좌)하사, 각자 마니장사자좌를 화작하고
於其座上(어기좌상)에, 그 사자좌 위에 結跏趺坐(결가부좌)하시니라. 가부좌를 맺었다.
[[化座摩尼藏”은 10행이 생사에 처해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그 행에 더러움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摩尼座는 離垢寶요, 藏이란 갈무리한다는 뜻이며, 師子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 이는 범부의 행에는 오염이 있으나 성인의 행에는 더러움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사자는 主에 의거해서 명칭을 세운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수행자의 지혜와 덕으로 수행할 바의 법을 밝힌 것이다.]]
6.十方世界 亦如是 시방세계 또한 이와 같다.
如此世界中夜摩天上에 菩薩來集하야 一切世界도 悉亦如是하니 其諸菩薩世界如來의 所有名號가 悉等無別하니라
如此世界中夜摩天上(여차세계중야마천상)에 이 세계의 아먀천상에
菩薩來集(보살래집)하야, 보살들이 와서 모인 것처럼
一切世界도 일체 세계에서도 悉亦如是(실역여시)하니, 모두 이와 같았으며
其諸菩薩世界如來(기제보살레계여래)의, 그 모든 보살세계에 계시는 所有名號(소유명호)가 여래의 명호도
悉等無別(실등무별)하니라. 다 같아서 차별이 없더라. 명호도 모두 같았다.
二. 世尊의 足上放光 세존께서 발등에서 방광하시다.
爾時에 世尊이 從兩足上하야 放百千億妙色光明하사 普照十方 一切世界夜摩宮中佛及大衆하사 靡不皆現하시니라
[10주, 머무는 십주 법문을 설할 때는 발가락 끝에서 방광을 했습니다.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앞발가락이 합니다. 걸어가려면 옮겨야지요. 여기는 10행, 다닐 行. 걸어가려면 옮겨야하니까 광명도 족상, 발등 광명입니다]
[[두 발등으로 백천억 광명→ 10신에서는 발밑의 족륜에서 광명을 놓고, 10주에서는 발가락 끝에서 광명을 놓고, 이 10행에서는 발 등 위로 광명을 놓는 것은 차례로 지위에 따라 승진하는 법을 나타내는 광명을 밝힌 것이며,
十千과 百千과 百千億으로부터의 묘한 빛깔의 광명은 모두 지위에 따른 승진을 밝힌 것이니, 대체로 발 밑과 발가락 끝과 발 등 위가 모두 행하는 바의 행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爾時에 世尊이 그때 세존께서 從兩足上(종양족상)하야, 양 발등으로부터
放百千億妙色光明(방백천억뵤색광명)하사, 백천 억의 묘색 광명을 놓으시어
普照十方一切世界(보조시방일체세계) 夜摩宮中佛及大衆(야마궁중불급대중)하사,
시방의 일체세계 야마궁 안의 부처님들과 대중들을 두루 비추시니
靡不皆現(미불개현)하시니라. 모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것은 지혜의 눈을 뜨게 했다. ‘부처님이 앞으로 10행 법문을 설함을 위해서 정신 차림ㆍ깨우침을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조사스님들이나, 논문을 쓸 때나 법문을 할 때 이 야마궁중게찬품에 있는 내용을 상당히 많이 인용합니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화엄경 사구게도 이 야마궁중게찬품에 있고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우리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화가가 종이 위에다 그림을 그리듯이 우리 마음이 세상을 그린다는 유명한 게송도 이 야마궁중게찬품에 있습니다.
불교의 관점은, 아니 깨달은 사람의 관점은 이 세상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동시에 있지만, 一切唯心造 내 마음이 만들어서 비로소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이 나를 보고 있다고 여김으로부터 내가 여러분의 정신세계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을 받게 되는 겁니다. 내가 여러분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도 나이도 많고, 더 많은 활동을 하고 계셔도 그것은 내가 알 바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의 어떤 작용에 잡히는 그 정도를 내가 아는 것이 서로가 똑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관계 뿐만이 아니고, 내가 세상을 보고 산천초목을 보는 것도 똑 같습니다.
그것이 一切唯心造입니다. 내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장갑을 끼고 꽃을 만지고, 흙을 만지고, 나무를 만지고, 심지어 똥을 만져도 내 손이 만지는 것이 아니다.” 내 손은 장갑을 만지는 겁니다.
그와 같이 내가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무슨 일을 하든 전부 내 마음이 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것 다반사로 들어서 길게 설명 안해도 충분히 다 알 수 있는 이러한 내용들이 야마궁중게찬품에 있습니다]
[[보살의 명칭과 아울러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감의 인과를 짝지음을 해석하는 열 가지 인과.]]
三. 菩薩衆의 讚佛頌
1.功德林菩薩의讚歎 [親慧世界 常住眼佛]
공덕림보살 10주위에서 처음 부처님 지혜의 집 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法慧와 財慧 등인데, 이 지위에서는 슬기[慧]로부터 행을 행해서 복과 지혜의 두 과보가 광대하고 많기 때문에 林으로 명칭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또 林이란 광대하고 많다는 뜻으로 그늘을 드리운다는 뜻이고 장엄의 뜻이며, 몸통·줄기·가지와 꽃·잎·열매가 서로 자랑하는 뜻이니, 10行位의 보살이 자체성 없는 지혜로써 만행의 줄기와 가지를 장엄하고 대자비로 잎사귀를 삼아서 일체 중생에게 그늘을 드리워 교화함으로써 自他의 보리의 꽃과 열매를 다 개발하게 함을 밝힌 것이다. 마치 냇물이나 연못에 숲이 있으면 온갖 새가 돌아오는 것처럼 사람에게 행이 있으면 많은 사람이 의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0행 보살을 가리켜서 林이라 이름붙인 것이니, 이는 환희행의 단바라밀문에 해당된다.
가령 선재동자의 10행 초기에 선지식의 명칭이 善見인데 숲 속에서 經行하는 것이 역시 이와 같고, 나라의 명칭이 3眼인 것은 이 지위의 불과가 그 명호를 眼이라 하는 것을 말한다. 국토의 명칭이 親慧세계인 것은 이 10행이 몸소 부처님의 슬기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因을 삼고, 또한 늘 일체 중생과 더불어 친근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불과의 명호를 常住眼佛이라 한 것은 몸소 부처님의 지혜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근기를 알아 세속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상주하는 지혜의 눈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여래 지혜의 눈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도 또한 남에게 지혜의 눈을 얻게 함임을 밝힌 것이니, 여래의 지혜로써 근기를 觀해 중생을 이롭게 하는 智가 바로 해당 지위의 불과임을 밝힌 것이다.
공덕림은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친혜세계는 해당 지위에서 수행하는 지혜의 因이며, 常住眼佛은 해당되는 지위의 근기와 견해를 아는 果이니, 근본지와 더불어 상응하는 것을 ‘상주안불’이라 칭한다.]]
[[공덕림 보살은 부처님의 德 가운데 無碍自在의 德을 찬탄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예전에 菩提願을 발한 因緣으로 한 티끌 안의 몸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며, 시방세계에 두루한 佛身을 다시 한 몸으로 나타낼 수 있다. 또한 온 세계를 걸어다녀도 걸림이 없는 등의 무애자재를 갖추었으며 이러한 자재함에 집착하지도 않으시고 무엇에도 의지하시지 않는다.]]
(1) 殊勝한 德
爾時에 功德林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佛放大光明하사 普照於十方하시니
悉見天人尊이 通達無障碍으로다
佛坐夜摩宮하사 普遍十方界하시니 此事甚奇特하야 世間所希有로다
須夜摩天王이 偈讚十如來하니 如此會所見하야 一切處咸爾로다
彼諸菩薩衆이 皆同我等名하야 十方一切處에 演說無上法이로다
所從諸世界의 名號亦無別하니 各於其佛所에 淨修於梵行이로다
彼諸如來等의 名號悉亦同이라 國土皆豊樂이요 神力悉自在로다
十方一切處에 皆謂佛在此라하나니 或見在人間하며 或見住天宮이로다
如來普安住 一切諸國土어시든 我等今見佛이 處此天宮殿이로다
爾時에, 그때에 功德林菩薩이 承佛威力하사 이 때에 공덕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普觀十方하고, 시방을 두루 살피고 而說頌言하사대, 게송으로 말했다.
佛放大光明(불방대광명)하사, 부처님께서 대광명을 놓으시어
[부처님께서 큰 광명을 놓으사 → 내 한마음= 내 참나, 내 참마음 작용의 원리입니다.]
普照於十方(보조시방)하시니,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悉見天人尊(실견천인존)이, 모두가 천인존= 부처님 뵙는 데
通達無障碍(통달무장애)로다. 아무런 장애없이 통달하네
[부처님이 모든 법에 통달해서 장애 없음을 실견한다. 부처님의 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하는 것도 전부 悉見= 내 한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부처님을 아는 것도, 각자의 지식과 신심에 따라 각양각색, 정도가 다릅니다.
옛날에 가난한 유생이 쌀을 올릴 형편이 못 되어서, 상당히 큰마음을 쓰서 조 세말을 부처님한테 올리고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낙방해서 내려와서는 법당에서 원망하기를, 내 노란 조를 세말이나 뚝딱 먹고는 과거 시험에 붙여주지도 않고 노랗게 되어서 앉아서 뭐 하느냐고...ㅎㅎㅎ
개금을 해서 부처님이 노란것은 우리이 입장이고, 그 선비 입장은 조를 세말이나 먹어서 노랗다는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와 같이 자기의 안목만치만 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것도 똑 같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내 마음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해도 내 마음이 미치는 곳까지만 아는 겁니다.
사실은 一切唯心造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과학적인 것입니다. 내 관심 밖의 분야는 솔직하게 내 삶의 영역 속에는 아예 없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내 관심이 그만치 있다는 뜻으로, 내 마음이 그만치 그 정도라도 거기에 작용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佛坐夜摩宮(불좌야마궁)하사 부처님은 야마궁에 앉으신 채
普遍十方界(보편시방계)하시니, 시방세계에 널리 두루하시니
此事甚奇特(차사심기특)하야, 이런 일 몹씨 기이하고 유별하여
世間所希有(세간소희유)로다. 세간에 극히 드문 일이로다. 세간에서 참으로 희유한 일이다.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으시고, 수미산에 올라가셨는데, 부다가야와 수미산에 그대로 앉으신 채로 야마궁전에 펼쳐져 계신다. 우리 마음이 그만치 확장만 되면 납득이 가는 것입니다.]
須夜摩天王(수야마천왕)이 偈讚十如來(게찬십여래)하니, 수야마천왕이 열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니
如此會所見(여차회소견)하야, 이 모임에서 보는 것처럼 一切處咸爾(일체처함이)로다. 모든 곳에서 다 그러하네.
彼諸菩薩衆(피제보살중)이, 저 모든 보살대중이 皆同我等名(개동아등명)하야, 다 똑같은 우리 이름으로
十方一切處(시방일체처)에 演說無上法(연설무상법)이로다. 시방 모든 곳에서 위 없는 법을 연설하네,
所從諸世界(소종제세계)의, 떠나온 모든 세계의 名號亦無別(명호역무별)하니, 이름도 또한 같고
各於其佛所(각어기불소)에, 저마다의 부처님 처소에서
淨修於梵行(정수어범행)이로다. 범행을 청정히 닦았다네
彼諸如來等(피제여래등)의, 저 모든 여래들의 名號悉亦同(명호실역동)이라. 명호도 다 같고
國土皆豊樂(국토개풍락)이요, 국토도 모두 풍요롭고 안락하며
神力悉自在(신력실자재)로다. 신통력도 다 자재하시네.
[그 처소의 여래 이름이 또한 같다. 온 우주, 부처의 세상, 마음의 세상, 나의 세상, 眞我의 세상, 참 나의 세상은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는, 그것 외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질 때, 나는 장갑만 만질 뿐이다. 즉 한 마디로 전부 내 세계, 내 마음의 세계입니다.
야마궁전, 수미산궁전, 도리천궁 등은 이름만 화려하게 나열했을 뿐이지 전부 한마음의 표현이고, 한마음의 작용입니다.]
十方一切處(시방일체처)에 皆謂佛在此(개위불재차)라하나니, 시방의 모든 곳에서 모두가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 하는데
[十方一切處에서도 모두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여러분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절에 가 있든지, 걸어가든지 가는 곳마다 여러분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러분이 있는 곳, 결국은 내가 있는 곳입니다. 기가 막힌 법문입니다.]
或見在人間(혹견재인간)하며, 혹은 보니 인간 중에 계시고
或見住天宮(혹견주천궁)이로다. 혹은 보니 천궁에 머무시네.
如來普安住(여래보안주) 一切諸國土(일체제국토)어시든, 여래께서는 널리 모든 국토에 안주하신다는데
我等(아등)은 今見佛(금견불)이, 우리가 지금 보거니와
處此天宮殿(처차천궁전)이로다. 부처님은 이 천궁전=야마춘궁에 계시네.
(2)成德因緣 덕을 이루게 된 인연.
昔發菩提願하사 普及十方界실새 是故佛威力이 充遍難思議로다
遠離世所貪하사 具足無邊德이실새 故獲神通力하시니 衆生靡不見이로다
遊行十方界하사대 如空無所碍하시니 一身無量身이여 其相不可得이로다
佛功德無邊하시니 云何可測知아 無住亦無去하사대 普入於法界로다
昔發菩提願(석발보리원)하사, 옛적에 내신 보리를 향한 원이
普及十方界(보금시방계)실새. 널리 시방세계에 미치었으니
是故佛威力(시고불위력)이, 이런 까닭에 부처님의 위신력
充遍難思議(충변난사의)로다. 두루 충만함이 난사의하네.
[두루 가득한 것이 思議할 수 없더라. 또는 難思議의 넓고 넓은 세계에 가득 하더라.]
遠離世所貪(원리세소탐)하사, 세간의 탐욕을 멀리 여의시고
具足無邊德(구족무변덕)이실새. 가이없는 공덕을 구족하시어
故獲神通力(고획신통력)하시니, 그 까닭에 신통력을 얻으시니
衆生靡不見(중생미불견)이로다. 중생들을 보지 못하심이 없네. 중생들이 보지 아니함이 없더라.
[우리의 세속적인 탐욕은 사실 몇 푼어치 안 되는 것 가지고 부리는 것인데, 그런 작은 탐욕 놓아버리면 그야말로 끝없는 덕이 갖춰진다. 세존이 덕을 성취하게 된 인연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遊行十方界(유행시방계)하사대, 시방세계를 다니시기에, 시방세계를 교화하러 다니사대
[불교에서 遊行= 교화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如空無所碍(여공무소애)하시니, 허공처럼 거침이 없으시니
一身無量身(일신무량신)이여, 한 몸이신지 한량없는 몸이신지, 일신과 한량없는 몸이여
其相不可得(기상불가득)이로다. 그 모양을 알 수가 없네.
[한 몸이 곧 무량한 몸이 되고, 무량한 몸이 곧 한 몸이 되는 것이 부처님의 몸= 모습이더라. 우리 절에만 부처님이 있는가 했더니 곳곳의 절마다 부처님이 다 계시고, 한 법당에만 있는가 했더니 가는 법당마다 다 부처님이 계시는 그것이 一身과 無量身의 관계입니다]
佛功德無邊(불공덕무변)하시니, 부처님 공덕은 가이 없으신데 [佛功德 = 우리들의 진여생명,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진여생명의 공덕은 가이없으니]
云何가 可測知(운하 가측지)아? 어찌 헤아려 알 수 있으리오
[가만히 내 자신의 마음의 세계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궁구하고 궁구해도 그 끝을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 내가 가지고 내가 만들어 쓰고 있으되, 그 근본, 그 미묘한 작용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것이 알아지지가 않습니다. 야~ 참, 우리 모두는 정말 미묘 불가사의 존재들입니다.]
無住亦無去(무주역무거)하사대, 머무심도 없고 가심도 없으시되
普入於法界(보입어법계)로다. 법계에 두루 드시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면서 법계에 다 두루ㆍ두루 들어가는 것이다. → 往復이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가고 오는 것은 끝이 없으나 움직이고 고요한 것은 하나의 근원입니다.
내가 하루 24시간 동안 별의별 작용을 다 하고, 별의별 곳에 다 가지만 항상 나입니다. 항상 나라고 하는 그것을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여럿이라고도 할 수 없고, 하나이면서 여럿으로, 여럿이면서 떠 생각해 보면 하나인 것이 普入於法界= 법계에 두루두루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無住亦無去=머묾도 없고 또한 감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자신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