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제5 권 7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 김묘주 번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5 권 7
一切心中定可得故緣別別境而得生故唯善心中可得生故性是:根本、煩惱攝故唯、是煩惱等?流性故於善、染等皆不定。
변행심소(遍行心所, sarvatraga-caitasa)는 모든 심왕(心王, 마음) 중에 반드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고,
별경심소(別境心所, viniyata-caitasa)는 갖가지 (특정한) 대상을 반연하여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선심소(善心所)는 오직 선(善)으로서 심왕(心王, 마음) 중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번뇌심소(煩惱心所)는 본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이며,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는 오직 번뇌의 등류성(等流性)이기 때문이며,
부정심소(不定心所)는 선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심소(善心所, kuśala-caitasa)는 그 성질이 오로지 선(善)인 마음작용(심소법)들, 즉 오직 선한 마음 또는 착한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날 수 있는 마음작용들로써, 그 성질이 자성선(自性善) 또는 상응선(相應善)이면서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같은 성격을 가진 마음작용(심소법)들의 그룹을 말한다.
불교에서 선(善)이란, 부파불교에서는 결과를 기준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를 받을만한 것을 선(善)이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현재 · 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을 말하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신(信) · 정진(精進) ·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의 11가지 마음작용이다.
번뇌심소(煩惱心所, kleśa-caitasa)는 모든 번뇌의 근간인 근본번뇌들로 구성된 마음작용들, 즉, 내면의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항상 오염된 상태에 있게 함으로써 그 결과 유정으로 하여금 생사를 윤회하게 만드는 마음작용이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 · 악견(惡見)의 6가지 마음작용이 번뇌심소를 구성하며, 이 중에서 치(癡)는 무명(無明)이라고도 하며, 악견(惡見)은 부정견(不正見)이라고도 한다.
악견(惡見)은 그 행상(行相)에 따라 살가야견(薩迦耶見: 유신견)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견으로 세분되어서 번뇌심소를 펼쳤을 때는 10가지가 되며 그렇지 않을 때는 6가지가 된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upakleśa-caitasa)는 수번뇌(隨煩惱)들로 구성된 마음작용들이며, 수번뇌(隨煩惱)는 근본번뇌들, 즉 번뇌심소에 속한 6가지 번뇌성의 마음작용들, 즉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 · 부정견(不正見)을 발동근거인 소의(所依)로 하여 일어나는 2차적인 번뇌성의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즉, 각각의 수번뇌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근본번뇌의 하나 혹은 다수의 작용에 의해 동류(同類)로서 이끌려 일어난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총 20가지의 마음작용들이 수번뇌를 구성하는데, 이들은 다시 그 성격에 따라 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 10가지) ·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2가지) ·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 8가지)의 3그룹으로 나뉘며, 이 3그룹에 속한 번뇌성의 마음작용들은,
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 10가지): 분(忿) · 한(恨) · 뇌(惱) · 부(覆) · 광(誑) · 첨(諂) · 교(憍) · 해(害) · 질(嫉) · 간(慳)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2가지): 무참(無慚) · 무괴(無愧)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 8가지):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혼침(惛沈) · 도거(掉擧) · 실념(失念) · 부정지(不正知) · 산란(散亂)의 20 가지 이다.
부정심소(不定心所, aniyata-caitasa) 또는 불결정심소(不決定心所)는 3가지 부정성(不定性), 즉 불확정적인 성질을 가진 마음작용으로, 그 자체로는 선(善) · 불선(不善) · 무기(無記)의 3성(三性)의 기준에서 볼 때 무기(無記)에 속한다.
따라서, 3성(三性) 중 어느 하나의 상태의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 또는 다른 마음작용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날 때 그 성질이 해당 마음 또는 마음작용의 성질에 따라 변하며, 3계 9지(三界九地) 중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든 식(識)과 상응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수면(睡眠) · 악작(惡作) · 심(尋) · 사(伺)의 4가지 마음작용이 부정심소를 구성한다. 이들 중 수면(睡眠)은 면(眠)이라고도 하며, 악작(惡作)은 회(悔)라고도 한다.- 위키
故然'瑜伽論'合六爲五,煩惱、隨煩惱俱是染故。復以四一切辯五差別,謂一切性及地、時,俱。
그런데 '유가사지론' 제 3권에서는 변행심소(遍行心所), 별경심소(別境心所), 선심소(善心所), 번뇌심소(煩惱心所),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부정심소(不定心所)의 6 종류를 합해서 5 종류로 한 것은, 번뇌심소와 수번뇌심소가 모두 잡염이기 때문이며,
변행샘소는 일체성(一切性), 일체지(一切地)에서, 일체시(一切時)에서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일체구(一切俱)의 4 가지의 사일체(四一切)로써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사(思)의 5 종류의 차이를 판별하였으니, 곧 일체의 성(性, 선ㆍ악ㆍ무기의 3성)ㆍ유정이 머무는 곳의 지(地)ㆍ시간(時)ㆍ함께함의 구(俱)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地)는 유정이 머무는 장소를 말하며, 일체지(一切地)는 3계의 9지(地) 혹은 3지(地)이고,
9지(九地)는 욕계 1지, 색계 4지, 무색계 4지를 합한 것이며,
3지(三地)는 심구의 심(尋)ㆍ사찰의 사(伺) 심소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음에 따라,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ㆍ무심유사지(無尋有伺地)ㆍ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로 분류한 것이며,
일체시(一切時), 즉 일체의 유심(有心)의 시(時) 또는 아득한 옛적부터 단절되지 않는 것, 또는 모든 대상을 반연할 때를 가리키며,
구(俱)는 일체와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五中遍行具四一切,別境唯有初二一切,善唯有一謂一切地,染四皆無,不定唯一,謂一切性,由此五位種類差別。
5 종류 중에서 변행심소에서는 네 가지의 사일체(四一切)를 갖추며,
별경심소에는 오직 일체성(一切性)과 일체의 머무는 곳의 일체지(一切地)의 둘이 있으며,
선심소에는 오직 한 가지가 있으니, 일체의 머무는 곳의 일체지(一切地)를 말한다.
잡염심소(번뇌ㆍ수번뇌)에는 네 가지의 사일체(四一切)가 모두 없으며,
부정심소에는 오직 한 가지가 있으니, 일체성(一切性)을 말하는 것으로,
이상과 같은 다섯 지위인 오위(五位)의 종류의 차이를 말하였다.
此六轉識易脫不定,故皆容與三受相應,皆領順、違、非二相故。領順境相適悅身心,說名樂受。領違境相逼迫身心,說名苦受。
이 6전식(六轉識)은 3성(三性)이 바뀌고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세 가지 느낌의 삼수(三受)와 상응하는 것으로,
모두 수순의 순(順), 거슬림의 위(違) 및 수순도 거슬림도 아닌 것의 상(相)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수순되는 대상인 순경상(順境相)을 받아들여서 몸과 마음을 적절하고 기쁘게 하는 것을 낙수(樂受)라 이름하며,
거슬리는 대상인 위경상(違境相)을 받아들여서 몸과 마음을 핍박하는 것을 고수(苦受)라 이름하며
다음은 6전식(轉識)이 모두 3수(受)와 상응함을 밝히는 수구문(受俱門, 따라서 함께하는 것)이다.
領中容境相於身於心非逼非悅,名不苦樂受。如是三受或各分二,五識相應,說名身受,別依身故。意識相應,說名心受,唯依心故。
중용(中容)의 대상인 중용경상(中容境相)을 받아들여서 몸과 마음에 대해서 핍박도 기쁨도 없는 것을 불고락수(不苦樂受)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은 세 가지 느낌의 삼수(三受)를 때로는 각각 둘로 나누어서,
5식(五識)과 상응하면 신수(身受)라고 이름하나니 각각의 신체를 따라 의지하기 때문이며,
의식과 상응하면 심수(心受)라고 이름하나니, 오직 심왕(心王, 마음)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5식은 색심(色心)을 의지처로 하고, 의식은 오직 심법을 의지처로 한다.
5식이 심법에 의지하는 것은 불공의(不共依)가 아니고, 색법[五根]에 의지하는 것이 불공의(不共依)이다.
따라서 5식에 상응하는 수(受)를 신수(身受)라고 하고, 의식에 상응하는 것을 심수(心受)라 하는 것이다.
又三皆通有漏、無漏,苦受亦由無漏起故。
또한 삼수의 세 가지 모두가 유루와 무루에 공통되나니, 고수(苦受)도 역시 무루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며,
고수(苦受)가 무루(無漏)에 통한다는 것은, 불보살이 후득지(後得智)의 대비(大悲)에 의해 중생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或各分三,謂見所斷,修所斷,非所斷。又學、無學、非二、爲三。或摠分四,謂善、不善、有覆、無覆二無記受。
혹은 각각 세 가지로 나누나니, 즉 견도(見道)에서 단멸되는 것,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는 것, 및 단멸되는 것이 아닌 것을 말하며,
또한 유학ㆍ무학 및 유학도 무학도 아닌 것을 세 가지로 삼기도 하며,
혹은 난타(難陀)의 견해로써, 전체적으로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선ㆍ불선ㆍ유부무기ㆍ무부무기의 수(受)를 말하기도 한다.
有義三受容各分四,五識俱起,任運貪、癡,純苦趣中任運煩惱不發業者,是無記故,彼皆容與苦根相應。
호법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세 가지의 삼수(三受)를 각각 넷으로 나눈 것으로,
5식과 함께 자연히 일어나는 임운(任運)의 탐욕(貪)과 어리석음(癡), 순전히 괴로움만 있는 순고(純苦)의 세계(趣)에서의 임운(任運)의 번뇌로부터 일으켜진 업이 아닌 것은 무기이기 때문이니, 그것은 모두 고근(苦根)과 상응한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瑜伽論'說:‘若任運生一切煩惱,皆於三受現行可得。若通一切識身者,遍與一切根相應。不通一切識身者,意地一切根相應。
'유가사지론'에서 말하기를 “만약 자연히 생겨나는 임운(任運)의 일체 번뇌라면, 모두 삼수(三受)에 있어서 현행할 수 있으나,
만약 모든 5식(五識)에 통하는 것이라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두루 모든 감각기관, 즉 5수근(受根)에 상응하며,
모든 육식(六識)에 통하지 않는 것이라면, ㅡ 살가야견(薩迦耶見)과 변견(邊見)은 5식에 통하지 않음을 말한다.ㅡ 의지(意地)의 모든 감각기관, 즉 고근(苦根)ㆍ낙근(樂根)ㆍ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유가사지론' 제59권에서 설하였다.
'雜集論'說:‘若欲界繫,任運煩惱發惡行者,亦是不善,所餘皆是有覆無記。’
'잡집론'에서 말하기를 “만약 욕계에 계박된 본래적인 임운(任運)의 번뇌가 악행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역시 불선이나, 다른 것은 모두 유부무기이다”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설하였다.
故知三受各容有四。或摠分五,謂苦、樂、憂、喜、捨。三中苦、樂各分二者,逼、悅身心相各異故,由無分別有分別故,尤重輕微有差別故。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삼수(三受)에 각각 네 종류가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혹은 전체적으로로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우수(憂受)ㆍ희수(喜受)ㆍ사수(捨受)이며,
삼수(三受) 중에서 고수와 낙수를 각기 둘로 나누는 것은 몸과 마음을 핍박하거나 즐겁게 하는 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며,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의 5식(五識)인 경우에는 분별이 없으나, 제6식(의식意識)인 경우에는 분별이 있기 때문이며,
5식(五識)인 경우에는 더욱 무거우나, 제6식(의식意識)인 경우에는 가벼운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不苦不樂不分二者,非逼非悅相無異故,無分別故,平轉故。諸適悅受,五識相應恒名爲樂。意識相應若在欲界,初二靜慮近分名喜,但悅心故。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은, 핍박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상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고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평등하게 전전하기 때문이다.
적절하고 즐거운 모든 수(受)가 5식(五識)과 상응한다면 항상 낙수(樂受)라고 이름하며,
적절하고 즐거운 수(受)가 의식과 상응하는 것이 욕계와 초선(初禪)ㆍ제2선(第二禪)의 근분정(近分定)에 있으면, 희수(喜受)라고 이름하나니, 다만 마음만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근분정(近分定)은 근본정(根本定)에 가까운 선정의 의미로써, 하지(下地)의 수소단의 번뇌인 수혹(修惑)을 은복하고 억압하여서 얻는 상지(上地)의 선정이다.
색계의 초선천부터 무색계의 유정지(有頂地)까지 각각 하나의 근분정이 있어서 모두 여덟 가지 근분정이 있다.
若在初二靜慮根本名樂名喜,悅身心故。若在第三靜慮近分根本名樂,安靜、尤重無分別故。
만약 초선과 제2선의 근본에 있으면 낙수(樂受)라고도 하고 희수(喜受)라고도 이름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제3선의 근분정과 근본정(根本定)에 있으면 낙수라고만 이름하나니, 안정되고 더욱 무거우며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