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 권 5

Skunky 2025. 1. 19. 09:00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 김묘주 번역

성유식론(成唯識論제 5 권 5

 

又無記業非煩惱引,彼復如何得成有漏?然諸有漏由與自身現行煩惱,俱生俱滅互相增益方成有漏。由此熏成有漏法種,後時現起,有漏義成。異生旣然,有學亦爾。無學有漏雖非漏俱,而從先時有漏種起。故成有漏,於理無違。

또한 무기업(無記業)은 번뇌에 이끌려지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다시 유루가   있는가?

모든 유루는 자신의 현행하는 번뇌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면서 서로 증익(增益)함으로써 비로소 유루가 되며,  이러함에 의해서 유루법의 종자를 훈습하는 것이며, 이후에  등이 일어나서 유루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생(異生, 범부)가 이미 그러하다고 말한다면, 유학(有學)도 역시 그러하며,

무학의 유루는 번뇌와 함께하지는 않지만, 이전의 유루종자로부터 일어남으로써 유루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유루(有漏) 개념을 해설한 것이다.

 

由有末那恒起我執,令善等法有漏義成。此意若無,彼定非有。故知別有此第七識。

말나식이 있어서 항상 아집을 일으킴으로써,  등의 법으로 하여금 유루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 말나식이 없다면, 그것도 반드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도로  제7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證有此識理趣甚多,隨'攝大乘'略述六種。諸有智者應隨信學。

이러한 제 7식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논리의 취지가 매우 많지만, '섭대승론'에 따라서 대략 여섯 가지로 서술하겠으니,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따라서 믿고 배워야 하리라.


然有經中說六識者,應知彼是隨轉理門。或隨所依六根說六。而識類別,實有八種。

그러나 아함경 등의 경전에서 여섯 가지인 육식(六識)으로 말한 것은, 근기에 따라 말한 방편문인 수전이문(隨轉理門)으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의지처인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에 따라서 여섯 가지로 말한 것이나 식의 종류를 구별하자면, 실로 여덟 가지가 있는 것이다.

 

제2능변식(第二能變識)이니, 이 식(識)을 말나식(末那識, 제 7식)이라고 이름하며, 아뢰야식(제 8식)에 의지해서 유전하고 그것을 반연하며, 사량하는 것을 자성과 행상(行相)으로 삼으며, 
아치(我癡)와 아견(我見)과 아울러 아만(我慢)과 아애(我愛)의 사번뇌(四煩惱)와 항상 함께며, 그 외에는 촉(觸) 등과 함께하는 것이다.
유부무기(有覆無記)에 포함되며, 태어난 곳을 따라 매이는 것이며, 아라한과 멸진정과 출세도에서는 말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 성유식론(成唯識論) 제4 권 4


如是已說第二能變。第三能變其相云何?頌曰:

이상과 같이 2능변식(第二能變)을 해설하였으니, 이제 3능변식의 양상은 어떠한 것인가?

'삼십송'의 8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하는 3능변(第三能變) 관하여 해설한다.

'유식삼십송'의 8게송에서 16게송에 걸쳐 3능변을 설명하는데, 그것을 논서의 장행석(長行釋)에서 7() 9의문(義門)으로 해설하며, 9의문이란;

①체별문(體別文, 여섯 종류), ②자성문; 요경(了境), ③행상문;요경(了境), 3성문; 선ㆍ불선ㆍ구비(俱非),

⑤상응문; 육위심소, ⑥수구문(受俱門:3수受), ⑦소의문:근본식, 

⑧구전문(俱轉門, 5식은 혹구혹불구 或俱惑不俱), 의식은 항상 현기(現起),

⑨기멸문(起滅門:5位無心)으로,

9 가운데에서 ②와 ③, ⑤와 ⑥을 각각 합하여 7단문(段門)으로 하며,

7단문의 명칭은 ①능변차별문(能變差別門), ②자성행상문(自性行相門), ③삼성분별문(三性分別門), ④상응수구문(相應受俱門), ⑤소의문(所依門), ⑥육식구전문(六識俱轉門), ⑦기멸분위문(起滅分位門)이다.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了境爲性相 善不善俱非。

다음 제3능변식(第三能變)을 구별하면 여섯 종류가 있으니,

대상을 요별함을 자성과 행상(작용)으로 삼으니,  삼성(三性)의 성품은 선ㆍ불선ㆍ무기(俱非)이네.


論曰:次中思量能變識後,應辯了境能變識相。此識差別摠有六種,隨六根、境種類異故。謂名眼識乃至意識。

▷논하여 말한다; 사량능변식(思量能變識)의 식에 이어서, 대상을 요별하는 요경능변식(了境能變識) 판별하나니,

 식을 구별하자면 모두 여섯 종류가 있으니,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의 육근(六根)과 그 대상을 따라서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니, 이른바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먼저 1능변차별문(能變差別門)로써, 요경능변식(了境能變識) 종류와 명칭의 근거 등을 밝힌다.


隨根立名具五義故。五謂依、發、屬、助、如根。

감각기관인 근(根)을 따라 명칭을 건립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뜻인 오의(五義) 갖추기 때문이며,

다섯 가지란 식이 감각기관에 의지하는 의(依),

감각기관의 발식취경(發識取境) 작용에 의해 식이 일으켜지는 발(發)

식이 감각기관에 애착하고 소속되는 속(屬)

감각기관이 식의 작용을 돕는 조(助),

식과 감각기관이 비슷한 상사(相似)로서 서로 불리(不離)의 관계인 여근(如根) 말한다.


雖六識身皆依意轉,然隨不共立意識名,如五識身無相濫過。

6식(六識)이 모두 의(意)에 의지해서 전전하지만, 

여기서 () 무간멸(無間滅) (),  등무간연의(等無間緣依) 가리킨다

공통되지 않는 불공(不共)을 따라서 의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 것이니, 5식과 같이 서로 혼동되는 과실이 없는 것이다.

6식이 모두 등무간연의(等無間緣依) () 의지처로 하는데, 홀로 6식만을 의식(意識)으로 이름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한 것이다. 

6식이 7식에 의지하는 것은 불공(不共)이고, 5식이 의근(意根) 의지하는 것은 공통된 의지처인 공의(共依),  5식은 의근(意根, 개도의 開導依)에도 의지하지만 색근(色根, 구유의 俱有依)에도 의지하기 때문이다.

 

或唯依意故名意識。

혹은 오직 말나식(意)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하며, 

번째 해석으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5식은 개도의의 의근(意根)과 구유의의 색근(色根)을 달리하지만, 6식은 어느 것이나 ()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의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는 것이.

 

辯識得名心、意非例。或名色識,乃至法識,隨境立名順識義故,謂於六境了別名識。色等五識唯了色等,法識通能了一切法,或能了別法獨得法識名,故六識名無相濫失。

6식(六識)의 명칭을 판별하자면, 심(心)과 의(意)는 사례(例)가 아니며,

혹은 색식(色識) 내지 법식(法識)이라 이름하며, 대상(境)을 따라서 명칭을 건립한 것은 식(識)의 뜻에 수순한 때문이며,

여섯 가지 대상인 육경(六境)을 요별하는 것을 식(識)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다. 

색상(色相)ㆍ수상(受相)ㆍ상상(想相)ㆍ행상(行相)ㆍ식상(識相)등의 5식은 오직 색경(色境)ㆍ수경(受境)ㆍ상경(想境)ㆍ행경(行境)ㆍ식경(識境) 등을 요별하며,

법식(法識)은 공통적으로 능히 일체법을 요별한다. 

혹은 능히 다른 법을 요별한다면, 단독으로 법식(法識)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므로,

따라서 6식의 명칭은 서로 혼동되는 과실이 없게 되는 것이다.

()ㆍ의()ㆍ식() 중에서 ()에는 여섯 가지 차별이 있으므로, 각각 여섯 가지의 의지처에 따라 명칭을 판별한다. 그러나 7식과 8식은 의지처를 따라서 명칭을 건립한 것이 아니므로 상례(相例)하지 않아야 하며,

7식과 8식은 항상 상속하는 식이므로 당체(當體) 명칭을 건립하고, 6식은 잠깐씩 단절됨이 있으므로 소의근(所依根)을 따라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此後隨境立六識名,依五色根未自在說。若得自在,諸根互用,一根發識緣一切境,但可隨根,無相濫失。

이것 이후의 대상을 따라서 6식(六識)의 명칭을 건립한 것은, 다섯 가지 감관인 오색근(五色根)이 아직 자재하지 못한 것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며,

만약 자재하게  때에는 모든 감관(根)이 서로 작용하므로, 하나의 감관인 일근(一根)이 식을 일으켜서 모든 대상인 일체경(一切境)을 반연하나, 다만 감관(根)에 따르는 것일 뿐, 상에 대하여 혼동되는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감각기관(根) 따라 안식(眼識) 등으로 명칭을 붙인 것은, 자재하지 못한 지위의 미자재위(未自在位) 자재한 지위의 자재위(自在位) 모두 통하며,

대상(境)을 따라 색식(色識) 등으로 명칭을 붙이는 것은 자재하지 못한 지위에만 국한되므로, 감각기관(根)을 따라 명칭을 붙이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莊嚴論'說如來五根一一皆於五境轉者,且依麤顯同類境說。

'대승장엄경론' 제 2권에서 여래의 오근(五根) 하나하나가 모두 다섯 가지 대상에 대해서 전전한다고 말한 것은 우선 구체적으로 나타난  또는 같은 종류의 대상에 의해서 말한 것으로, 실제로는 일체를 반연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佛地經'說成所作智決擇有情心行差別,起三業化,

'불지경론' 제 6권에서 말하기를,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유정의 심리작용의 차이를 결택하고, 삼업(三業)의 변화를 일으키며,

신업(身業) 변화에  가지, 어업(語業) 변화에  가지, 의업(意業) 변화에  가지가 있어서 모두 10 가지 변화를 일으킨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논서 10권에 나온다.

 

作四記等。若不遍緣,無此能故。

 가지 기(記) 등을 짓는다고 하였으니, 만약 두루 반연하지 않다면, 이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성소작지에서 의업(意業) 변화 4영수의화(第四領受意化) 4()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역시 논서 10권에서 다룬다.


然六轉識所依所緣麤顯極成,故此不說。前隨義便已說所依,此所緣境義便當說。

그런데 6전식(六轉識)의 소의(所依, 의지처)와 소연(所緣, 인식대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극성(極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설명하지 않으며,

앞에서 뜻의 편의에 따라서 이미 소의(所依, 의지처) 말하였고, 소의(所依, 의지처)의 소연(所緣, 인식대상) 뜻을 따라 장차 말하여야 하리라.

'유식삼십송'의 게송에서 6식의 소의근(所依根) 소연경(所緣境) 별도로 설명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고,

논서 4권의 2능변 부분에서 8식의 소의(所依, 의지처) 밝힌 것을 말하였.

 

次言‘了境爲性相’者,雙顯六識自性行相,

다음으로, '삼십송'의 제8게송에서, “대상을 요별함을 자성과 행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란, 6식(六識)의 자성과 행상(작용)을 쌍으로 나타낸 것이다.

다음은 6식의 자성과 행상을 밝히는 자성행상문(自性行相門)으로, 여기서의 자성은 자체분(自體分), 행상은 견분을 말한다.

 

識以了境爲自性故,卽復用彼爲行相故。由斯兼釋所立別名,能了別境名爲識故。

식(識)은 대상을 요별하는 것으로써 자성(자체분)으로 삼기 때문이며,  다시 그것을 사용해서 행상(견분, 작용)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에 의거해서 겸하여 건립된 다른 명칭인 심(心, 아뢰야식)ㆍ의(意, 말나식)ㆍ식(識, 육식) 중에서 식(識)도 해설하는 것으로, 능히 대상을 요별함으로써 식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6전식(六轉識) 대상을 요별하는 점에서 ()ㆍ의()ㆍ식() 가지 명칭 가운데 6식을 ()으로 이름하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如契經說,眼識云何?謂依眼根了別諸色,廣說乃至意識云何?謂依意根了別諸法。彼經且說不共所依未轉依位見分所了,餘所依了如前已說。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즉, “안식이란 무엇인가? 안근에 의지해서 여러 색깔ㆍ형태를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중간에 자세하게 말씀한 내용을 생략함)……나아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근에 의지해서 여러 법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경전은 우선 공통되지 않은 의지처인 불공의(不共依), 즉 근본의(根本依)ㆍ염정의(染淨依) 등을 가려내어서 아직 전의(轉依)를 이루지 못한 지위와 견분이 요별한 것을 가리키며,  

이미 전의(轉依) 이룬 지위에서는 일체법을 반연하므로 불공의(不共依), 즉 근본의(根本依)ㆍ염정의(染淨依)를 가려내며, 자증분(自證分) 요별한 것을 가려내는 것으로, 자증분은 역시 색법이 아닌 견분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지처와 요별은 앞에서 이미 말한 내용과 같다.

다른 의지처인 여소의(餘所依) 논서 4권에서, 요별(了) 견분으로서 논서 2권의 4분의(分義)에서 설명하였다.

 

此六轉識,何性攝耶?謂‘善、不善、俱非’性攝。俱非者謂無記,非善不善故名俱非。能爲此世、他世順益,故名爲善。 6전식은 3성(三性) 중에서 어떤 성품에 포함되는가?

‘선(善), 불선(不善), 그 둘이 아닌 구비(俱非, 무기)’의 성품이니,

‘둘이 아닌 구비(俱非)’란 무기(無記)를 말하는 것으로, 선도 불선도 아니기 때문에 둘이 아닌 구비(俱非)라고 이름한 것이며, 능히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수순하고(順) 이롭게(益)하기 때문에 선(善)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다음은 6전식(轉識) 어떤 성품에 포함되는가를 밝히는 3성문(性門)이다.

 

人、天樂果雖於此世能爲順益,非於他世,故不名善。能爲此世、他世違損,故名不善。惡趣苦果雖於此世能爲違損,非於他世,故非不善。於善不善益損義中不可記別,故名無記。

인간과 천상의 즐거운 과보는  세상에서는 능히 순익(順益)을 이루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으므로 선(善)이라 이름하지 않으니, 그것은 다만 무기(無記)의 즐거운 과보인 낙과(樂果)인 것이며, 

능히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거스르고(違) 해롭게(損)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이라고 이름하며, 악취의 고통스러운 과보는  세상에서는 능히 거스르고 해로움을 이루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불선이 아닌, 다만 무기의 고통스러운 과보인 고과(苦果)인 것이며, 

선과 불선을 이익과 손해의  가운데 기별(記別)할  없기 때문에 무기라 이름하는 것이다.


此六轉識若與信等十一相應,是善性攝。與無慚等十法相應,不善性攝,俱不相應,無記性攝。

 6전식(六轉識)이 만약 신(信)심소  11 가지 선(善)심소와 상응한다면, 선의 성품인 선성(善性)에 포함되며,

무참(無慚) 등의  가지 심소법과 상응한다면, 불선(不善)의 성품인 불선성(不善性)에 포함되며,

이러한 모두에 상응하지 않는다면, 무기의 성품인 무기성(無記性)에 포함되는 것이다.


有義六識三性不俱,同外門轉互相違故。五識必由意識導引、俱生、同境,成善染故。若許五識三性俱行,意識爾時應通三性,便違正理,故定不俱.

제1사(第一師)의 주장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6식(六識)은 3성(三性)을 모두 지니지는 않으니, 다 같이 감각기관인 외문(外門)에서 전전하며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5식(五識)은 반드시 의식의 인도(引導)함에 의해서 함께 일어나고, 대상을 같이하여 선(善)이나 잡염이 되기 때문에

만약 5식이 3성(三性)에 함께 작용한다고 인정한다면, 의식도  3성(三性)에 통해야 하는 것으로,

만약 그러하다면 바른 논리인 정리(正理)에 위배되므로 결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