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제4 권 3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 김묘주 번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4 권 3
又契經說,意、法爲緣生於意識,三和合觸,與觸俱起有受、想、思。若此定中,有意識者,三和合故,必應有觸。觸旣定與受、想、思俱,如何有識而無心所?
▷논주의 질문; 또한 '잡아함경' 제11권에서 설하기를, 의근(意根)과 법을 연(緣)으로 해서 의식을 일으키고,
감각기관(根)ㆍ대상(境)ㆍ식(識)의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觸)이 있고,
촉과 함께 일어나는 수(受)ㆍ상(想)ㆍ사(思)가 있다고 하였다.
만약 이 선정 중에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면, 감각기관(根)ㆍ대상(境)ㆍ식(識)의 세 가지가 화합하기 때문에 반드시 촉(觸)이 있어야 할 것이며, 촉(觸)은 반드시 수(受)ㆍ상(想)ㆍ사(思)와 함께하는 것이거늘, 어떻게 식(識)만 있고 심소는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若謂餘時三和有力,成觸生觸能起受等。由此定前,厭患心所故,在定位三事無能,不成生觸,亦無受等。
▷외인의 답; 다른 때에는 셋의 화합에 힘이 있어서 촉을 이루어서(삼화성촉설 三和成觸說), 촉을 생겨나게 함으로써(삼화생촉설 三和生觸說) 능히 수(受)ㆍ상(想)ㆍ사(思) 등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선정 이전의 단계에서 심소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 선정에 들어 있을 때에는 셋의 화합이 있을 수 없으므로 촉을 이루고 생겨나게 할 수 없으므로, 또한 수 등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량부가 자기들의 입장을 해명하는 발언이다.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을 이룬다는 것은 삼화성촉설(三和成觸說)이고, 촉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은 삼화생촉설(三和生觸說)이다. 이와 같이 경량부에서도 성촉설만이 아니라 일부에서 생촉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구사론'에 따르면, 촉(觸)은 감관(根)과 대상(境)과 마음(識: 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3가지가 화합하여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감관(根)과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대상을 접촉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즉, 설일체유부에서는 감관(根)과 대상(境)과 마음(識)의 3가지가 화합이 원인이 되어 이 화합과는 별도의 마음작용으로서의 촉(觸)이 생겨난다는 3화생촉설(三和生觸說)을 주장하였고 후에 경량부에서 3화성촉설(三和成觸說)을 주장하였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설일체유부와 동일하게 삼화생촉설을 주장하였다.
若爾應名滅心所定。如何但說滅受、想耶?
▷논주의 반대 질문; 만약 그러하다면 모든 심소를 멸하는 선정이라고 이름해야 할 것이거늘, 어째서 다만 수(受)ㆍ상(想)만을 멸한다고 설하는 것인가?
若謂厭時唯厭受、想,此二滅故心所皆滅。依前所厭以立定名。
▷외인 답; 싫어할 때에는 오직 수(受)ㆍ상(想)만을 싫어하고, 이 둘을 멸함으로써 모든 심소가 다 멸하는 것이니, 이전에 싫어한 바에 의지해서 선정을 명명한 것이다.
경량부의 해명 발언으로, 멸진정에서는 모든 심소를 다 멸하지만, 이 선정에 들어가기 이전에 진정으로 싫어한 것은 수(受)ㆍ상(想) 뿐이었으므로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 이름한다고 설명하였다.
旣爾,此中心亦應滅,所厭俱故,如餘心所。不爾,如何名無心定?
▷논파한다; 그러하다면, 선정 중에서는 심왕도 역시 멸해야 할 것이니, 싫어하는 애(愛) 등과 함께하기 때문이며, 나머지는 다른 심소와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무심정이라고 이름할 수 있겠는가?
이하는 논주가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논파하는 것이다.
又此定位意識是何?不應是染或無記性。諸善定中無此事故,餘染、無記心必有心所故,不應厭善起染等故,非求寂靜翻起散故。
또한 이 선정에서의 의식은 어떠한가? 잡염 또는 무기성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선(善)의 선정에서는 이런한 잡염ㆍ무기성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멸진정 중의 식(識)이 잡염이나 무기심(無記心)이라면, 멸진정이 아닌 다른 무기심과 같이 잡염과 무기의 심왕이므로 반드시 심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선(善)을 싫어하고, 잡염 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고요함을 구하며, 반대로 산란(염오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若謂是善,相應善故,應無貪等,善根相應。此心不應是自性善或勝義善。違自宗故,非善根等及涅槃故。
만약 이것이 선(善)이고 상응선(相應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무탐(無貪)심소 등의 선근도 상응해야 할 것이니, 이 심왕은 자성선(自性善)이나 승의선(勝義善)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자기 학파의 근본진리에 위배되기 때문이고 선근 등이 곧 열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량부의 본파(本派)를 논파한 것이다. 멸진정 중의 심왕이 선(善)이고, 열한 가지 선심소(善心所)가 상응하므로 상응선(相應善)이라고 말한다면, 무탐(無貪) 등의 선근도 상응하므로 멸진정에는 모든 심소가 없다는 자종(自宗)에 위배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4종선(四種善) 또는 4선(四善); 자성선(自性善)은 본질상 선(善)을 말하며, 참(慚)과 괴(愧) 선근(善根)이 자성선에 해당한다. 선근(善根)은 온갖 선을 내는 근본이란 뜻으로,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3선근(三善根)을 말하고, 자성선은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5가지의 선을 말한다. 즉, 이들 5가지는 그 본질상 편안하고 즐거운 낙보(樂報)를 낳는 것이며 또는 현재 · 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이다.
상응선(相應善, 무탐無貪 등에 상응하는 심심소心心所), 이란 본질상 무기(無記)이지만 자성선과 상응함으로써 비로소 선(善)이 되는 법(法, 특히 마음작용)을 말한다
등기선(等起善, 선심소가 일으킨 신어업 身語業의 무표업 無表業)이란 자성선이나 상응선에 상응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의해 일으켜져서 해당 자성선 또는 상응선과 등기(等起: 함께 일어남)하는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그리고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자성선이나 상응선과 상응할 때와 이 상응의 결과 해당 자성선이나 상응선이 일어나는 현행(現行)일 때 일종의 원리들 또는 법칙들로서 등기(等起)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을 통칭하여 말한다.
승의선(勝義善, 열반)은 '궁극적 의미에서의 선(善), 가장 뛰어난 선(善), 최고의 선(善), 가장 훌륭하며 진실한 선(善), 또는, 우주 만유의 평등하고 무차별한 절대적 진리의 선(善)'으로, 무위(無爲)의 선(善), 즉 진해탈(眞解脫), 즉 열반(涅槃)을 말한다. 열반은 최고로 안온(安隱)하며 모든 괴로움이 영원히 적멸해 있기 때문에 승의선이라고 한다. - 위키
若謂此心是等起善,加行善根所引發故,理亦不然。違自宗故,如餘善心非等起故。善心無閒起三性心。如何善心由前等起?
만약 이 심왕이 등기선(等起善)이고, 가행의 선근에 이끌려서 인발(引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논리가 그렇지 않은 것이니, 자기 학파의 근본진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며, 나머지 다른 착한 심왕의 선심(善心)과 같이 등기선이 아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심왕의 선심(善心) 바로 다음 찰나에는 세 가지 성(性)의 심왕을 일으키나니, 어떻게 착한 심왕의 선심(善心)만을 이전의 착한 심왕의 선심(善心)에 의해 함께 일어나는 등기(等起)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故心是善由相應力。旣爾必與善根相應。寧說此心獨無心所?故無心所,心亦應無。
따라서 심왕이 착한 성품인 것은 상응하는 힘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선근과 상응해야 할 것이거늘, 어째서 이 심왕만을 홀로 심소가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 심소가 없다면 심왕 역시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如是推徵,眼等轉識於滅定位,非不離身故。契經言不離身者,彼識卽是此第八識。入滅定時,不爲止息此極寂靜執持識故。無想等位類此應知。
▷정의한다; 이와 같이 논리적으로 추구한다면, 안식 등의 전식(轉識)은 멸진정 중에 몸(身)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전에서 몸(身)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한 그 식이 바로 제8식인 것이다.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매우 고요하고 이 집지식(執持識, 아타나식)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니, 무상정, 즉 무심천(無心天)등의 지위도 이에 비추어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10리증(理證) 가운데 제10염정증(染淨證)
又契經說:“心雜染故有情雜染,心淸淨故有情淸淨。”若無此識,彼染淨心不應有故。謂染淨法以心爲本,因心而生依心住故。心受彼熏,持彼種故。
또한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의 상권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잡염되기 때문에 유정이 잡염되고,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유정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취지의 문장이 '잡아함경' 제12권에도 있음.
만약 이 식(識)이 없다면, 그 잡염ㆍ청정한 마음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며, 잡염법ㆍ청정법은 마음(心, 근본식)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마음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마음에 의지해서 머물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것의 훈습을 받고 그것의 종자를 지니기 때문이다.
먼저 총체적으로 해설하였다.
然雜染法略有三種:煩惱、業、果種類別故。若無此識持煩惱種,界、地往還,無染心後,諸煩惱起皆應無因。餘法不能持彼種故。過去、未來非實有故。若諸煩惱無因而生,則無三乘學、無學果。諸已斷者皆應起故。
그런데 잡염법에 대략 세 종류가 있으니, 번뇌ㆍ업ㆍ과보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식(識)이 유루종자를 지니지 않는다면, 3계(界)ㆍ9지(地)에 오고 갈 때와 잡염이 없는 무염심(無染心) 이후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것에 원인이 없어야 할 것이니,
번뇌를 다스리는 대치(對治)식이 견도에서 일어나면, 모든 세간의 식은 이미 멸한다. 만약 그 때에 아뢰야식이 없다면, 나머지 번뇌의 종자의 의지처인 소의(所依)가 없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원인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논파한 것이다.
색법 등의 다른 법은 유루의 종자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고, 과거와 미래는 실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번뇌가 원인없이 생겨난다고 한다면, 3승(乘)의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과보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니, 이미 끊어진 모든 것이 원인없이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若無此識持業、果種,界、地往還,異類法後,諸業果起亦應無因。餘種、餘因,前已遮故。若諸業果無因而生,入無餘依涅槃界已,三界業、果,還復應生。煩惱亦應無因生故。
만약 이 식(識)이 업ㆍ과보의 종자를 지니지 않는다면, 3계ㆍ9지에 오고갈 때와 다른 종류의 법인 무루심(無漏心) 이후에 모든 업ㆍ과보가 일어나는 것에도 역시 원인이 없어야 할 것이니, 색법 등의 다른 법의 종자와 과거ㆍ미래세의 다른 원인은 앞에서 이미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업ㆍ과보가 원인이 없이 생겨난다고 한다면,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세계에 들어간 사람의 3계의 업ㆍ과보가 다시 생겨나야 할 것이니, 번뇌 역시도 원인이 없이 생겨나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又行緣識應不得成。轉識受熏前已遮故。結生染識非行感故。應說名色行爲緣故,時分懸隔無緣義故。此不成故後亦不成。
또한 행(行)은 식(識)의 연(緣)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성립될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니,
전식이 훈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앞에서 이미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선악의 행업(行業)이 연(緣)이 되어 미래의 제8식을 야기하나, 만약 제8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전식(轉識)은 수훈(受熏)의 뜻이 없으므로 행(行, saṃskāra)이 식(識)에 연(緣)이 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고 논파하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때의 잡염식, 즉 중유(中有)의 말심(末心)에서 애욕과 성냄의 전도된 마음을 일으키는 번뇌에 상응하는 제6식은 행(行)에 초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명색(名色)은 행을 연(緣)으로 한다고 말하는 것은, 행(行)은 과거에 있고, 식(識)의 과보는 현재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현격하게 떨어져 있어서 연의 뜻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량부의 해명발언을 논파한 것으로, 명색(名色) 중의 이숙식을 식지(識支)로 이름하여서 행지(行支)가 그것을 초감하므로 행(行)이 식(識)에 연(緣)이 된다고 말한다. 논주가 그것을 비판하여 말하기를,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에 의하면 행(行)은 과거에 있고, 식(識)의 과보는 현재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현격히 떨어져 있어서 연(緣)의 뜻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논파한 것이다.
이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후의 취(取, upādana)가 유(有, bhāva)의 연(緣)이 된다는 것도 역시 시간이 현격하게 떨어져 있어서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諸淸淨法亦有三種:世、出世道,、斷果別故。若無此識持世、出世,淸淨道種,異類心後起彼淨法,皆應無因。所執餘因前已破故。若二淨道無因而生,入無餘依涅槃界已,彼二淨道還復應生。所依亦應無因生故。
모든 청정법에도 역시 세 종류가 있으니, 유루(有漏)의 6바라밀(波羅蜜)을 닦는 지혜의 세간의 세도(世道)와
무루(無漏)의 능히 다스리는 능대치(能對治)의 지혜인 출세간의 출세도(出世道) 및
단멸된 증과인 단과(斷果)의 무위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식(識)이 세간과 출세간의 청정도(淸淨道)의 종자를 지니지 않는다면,
욕계 이후에 색계의 선(善)을 일으키거나, 악(惡)과 유부무기(有覆無記) 이후에 유루선(有漏善)을 일으키거나, 유루선 이후에 무루선(無漏善)을 일으키는 것 등의 다른 종류의 마음 이후에 그 청정법을 일으키는 것 모두에 원인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이 집착하는 전식(轉識), 색법(色法), 과거ㆍ미래의 불상응행법 등은 원인(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원인은 앞에서 이미 논파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세간ㆍ출세간의 두 가지 청정도가 원인이 없이 생겨난다고 말한다면, 무여의열반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의 그 두 가지 청정도가 다시 생겨나야 할 것이니, 의지처인 소의(所依) 역시 원인없이 생겨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又出世道初不應生。無法持彼法爾種故。有漏類別,非彼因故。無因而生非釋種故。初不生故,後亦不生。是則應無三乘道果。
또한 출세간도는 처음의 견도(見道)에서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니, 법이 그 본래부터 있는 종자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며, 유루법은 종류가 다르므로 그것의 원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이 없이 생겨난다고 한다면, 석존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며,
처음의 견도 초기의 무루(無漏)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이후의 후시(後時)의 무루 역시도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곧 3승의 도과(道果)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