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제2 권 4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 권 4
亦非離此有別方便,施設自相爲假所依。然假智、詮必依聲起,聲不及處,此便不轉,能詮、所詮俱非自相。故知假說不依眞事。
또한 이러한 가지(假智)와 가전(假詮)을 떠나서 별도의 방편이 있으나,
자상을 시설하여서 임시적인 의지처인 소의(所依, 실구 實句)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임시적 존재를 아는 지혜인 가지(假智)와 임시적 존재를 표현하는 가전(假詮)은 반드시 소리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소리는 자상에는 미치지 못하며, 가지(假智)와 가전(假詮)은 전전하여서 자상에 미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표현의 주체인 능전(能詮)도 표현의 대상인 소전(所詮)도 자상이 아니니,
가설은 참된 진사(眞事)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由此但依似事而轉,似謂增益非實有相,聲依增益似相而轉,故不可說假必依眞。是故彼難不應正理。然依識變,對遣妄執眞實我、法,說假似言。由此契經伽他中說:
이러한 까닭으로 다만 사현된 사물, 즉 의타기성의 공상(共相)에 의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며,
사현(似現)된 것은 증익(增益, 공상 共相)의 실유상(實有相)이 아니며,
소리는 공상의 사현된 상인 증익사상(增益似相)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따라서 허망한 가(假)를 표현하는 것이 반드시 참된 실(實, 자상)에 의지한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따라서 그들의 비판은 정리(正理)가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전변인 식변(識變)에 의해서 참다운 자아와 법이라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임시적 존재인 가(假)와 사현된 존재인 사(似)라고 하는 것이며, (유식학에서의 사현된 자아인 사아(似我)와 사현된 법의 사법(似法)이라 하는 근거를 밝힌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경전(후엄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爲對遣愚夫,所執實我法,故於識所變,假說我法名。
어리석은 범부가 참다운 자아인 실아(實我)와 법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
식이 전변한 식소변(識所變)한 것의 견분(見分, 주관)과 상분(相分, 객관)에 대해서
가정적으로 자아(我)와 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 후엄경의 게송
識所變相雖無量種,而能變識類別唯三:一謂異熟,卽第八識,多異熟性故;二謂思量,卽第七識,恒審思量故;三謂了境,卽前六識,了境相麤故。及言顯六合爲一種。此三皆名能變識者。
‘식이 전변한 것의 식소변(識所變, 의타기성의 상분과 견분)’의 상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나,
능변식(能變識)의 종류를 구별하면 오직 세 가지이니,
첫째는 이숙식(異熟識)으로, 곧 제8식이며, 대부분 이숙성(異熟性)이기 때문이며,
(유식삼십송의 제1ㆍ2 게송 중 앞의 본 논서 제1권에서 말한 “이 능변식……”의 세 구를 설명한다)
둘째는 사량식(思量識)이니, 곧 제7식이며, 항상 살피고 사량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요별경식(了別境識)이니, 곧 전6식(前六識)으로,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요별하기 때문이다.
('유식삼십송.의 제2게송에서) ‘및(及)’이라는 말은 여섯 가지 식을 합해서 한 종류가 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세 종류를 모두 능변식(能變識)이라 이름한다.
이숙식(異熟識, vipāka vijñāna)은 범부로부터 보살은 제10지(地)의 맨 나중인 금강심보살까지, 2승(乘)은 무학과의 성자(아라한)까지의 지위에서의 제8식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숙식이라는 명칭이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초위(初位:藏識)와 제2선(선악업과위)에 통하고 다위(多位)에서 항상 하기 때문에, 본문에서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숙식(異熟識, vipāka vijñāna, consciousness differing in maturation,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은 제8식의 다른 명칭 가운데 하나이며, 음역하여 비파가식(毘播迦識) 또는 비파가비약남(毘播迦毘若南)이라고도 한다.
또 이숙보식(異熟報識) · 과보식(果報識) 또는 이숙심(異熟心)이라고도 한다.
이숙식과 비파가식을 간단히 줄여서 이숙(異熟) 또는 비파가(毘播迦)라고도 한다.
《성유식론》 제3권에 따르면, 제8식은 능히 생사를 인기(引起)하는 선업 · 불선업이 다르게(異) 익어서(熟) 나타난 이숙과(異熟果)이기 때문에 이숙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숙식이라는 명칭은 범부 · 2승 · 보살의 지위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부처의 지위인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제외한다. 즉, 부처를 제외한 범부와, 유학 · 무학의 성자(즉 4향4과의 성인), 그리고 연각(또는 독각), 그리고 10지의 보살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여래지에 대해서는 이숙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여래지에서는 이숙무기(異熟無記)의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능변(能變, pariṇām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변화시킬 수 있음'이며, 파리나마는 다음의 뜻을 갖는다.
변화(change), 변경(alteration), 변형(transformation), 발달(development), 진화(evolution)
익음(ripeness), 성숙(maturity)
음식의 변질(alteration of food), 소화(digestion)
시듦(withering), (색이) 점점 희미해짐 또는 바램(fading)
(시간의) 경과(lapse [of time])
(나이가 들어) 쇠퇴함(decline [of age]), 늙어감(growing old)
결과(result, consequence), 결말(issue, end) - 위키
*식(識)의 명명법; 8식 중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은 모두 각자의 소의근(所依根), 즉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 · 의근(意根)을 따라 그 이름이 세워진 식(識)들로써, 본래 1가지로 단일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구분할 때 소의근에 따라 6가지 식(識)으로 구분한 것이다.
8식 중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그 본질적 성질 즉 자성(自性)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식(識)들이다.
*말나식(末那識)의 본질적 성질은 언제나 심세하게 생각하는 긍심사량(恆審思量)으로,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사량(思量) 또는 의(意)라고 하며, 이 두 낱말은 모두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를 의역한 것이며 마나스를 음역하여 말나(末那) 또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본질적 성질은 인과의 종자를 함장하고 인연에 따라 그 종자를 현행 상태로 일으키는 것으로,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집기(集起: 쌓고 일으킴) 또는 심(心)이라고 하며, 이 두 낱말은 모두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를 의역한 것이며, 이러한 성질을 가진 식을 아뢰야(阿賴耶) 또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 - 위키
能變有二種:一因能變,謂第八識中等流、異熟二因習氣。等流習氣由七識中善、惡、無記熏令生長。異熟習氣由六識中有漏善、惡熏令生長。
능변(能變)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인능변(因能變)으로, 제8식 중의 등류습기와 이숙습기의 두 가지 인(因, 업종자)의 습기를 말하는 것으로,
등류습기(等流習氣)는 7식 중의 선ㆍ악ㆍ무기에 의해 훈습하여 생성ㆍ증장하게 하며,
이숙습기(異熟習氣)는 6식 중의 유루의 선ㆍ악에 의해 훈습하여 생성ㆍ증장하게 한다.
*인능변(因能變), 인(因)은 제8식이 집지(執持)하는 종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 인(因)의 종자로부터 전변해서 만법을 생겨나게 하므로 종자를 능변의 체(體)로 한다. 여기서 변(變)은 전변(轉變, parinama)의 뜻으로서 원인이 전변하여 결과가 생겨나는 것을 나타낸다.
*등류습기(等流習氣), 등류(等流)에서 등(等)은 상사(相似)의 뜻으로서 원인(因)이 과성(果性)과 비슷하기 때문이고, 유(流)는 유류(流類)의 의미로서 결과가 원인의 부류(類)이므로 류(流)라고 하며, 등류(等流)는 같은 종류라는 뜻으로서, 자기와 같은 종류의 결과를 내는 종자를 말한다.
선인(善因)에서 선과(善果)를 내고, 악인(惡因)에서 악과(惡果)를 내는 것과 같이, 종자로부터 일어나는 결과인 현행법과 비슷할 때, 그것을 등류습기라고 한다.
*이숙습기(異熟習氣), 이숙(異熟)은 성류(性類)를 달리해서 성숙되는 것을 뜻하며, 이숙습기(異熟習氣)는 이숙과(異熟果)를 가져오는 습기이다. 원인은 선이나 악이지만 그 과체(果體)는 무기인 것을 말하는 것으로, 무기성(無記性)인 신체인 유근신(有根身)을 나게 하는 선ㆍ악업의 종자이다.
二果能變,謂前三種習氣力故,有八識生現種種相。等流習氣爲因緣故,八識體相差別而生,名等流果,果似因故。異熟習氣爲增上緣,感第八識酬引業力,恒相續故,立異熟名。感前六識,酬滿業者,從異熟起,名異熟生。不名異熟,有閒斷故。
둘째는 과능변(果能變)이니, 앞에서 말한 등류습기와 이숙습기의 두 세력에 의해서 8식인 자체분(自體分)이 생겨나서 갖가지 양상을 나타냄을 말하는 것이다.
등류습기를 인연으로 함으로써는 8식의 체상이 차별적으로 생겨나므로, 이를 등류과(等流果)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결과가 원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며,
이숙습기를 증상연으로 하여서 제8식을 받아들여서 초감(招感)하는 인업(引業)의 힘에 응하여 항상 상속하기 때문에 이숙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며,
전6식을 받아들여서 초감하는 만업(滿業)에 응하는 것은 이숙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숙생(異熟生)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이숙이(異熟果)라고는 이름하지 않는 것이니, 잠시 단절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숙인 진이숙(眞異熟)은 선악업의 결과이고, 부단(不斷)이며, 3계에 두루한다는 세 가지의 뜻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5식(識)은 잠시 단절됨이 있고, 제6식도 5위무심(位無心)이라 하여서 5위(位, 무상천無想天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극수면極睡眠ㆍ극민절極悶絶)에서는 작용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6식은 잠시 단절됨이 있으므로, 이숙(異熟)의 조건인 부단(不斷)의 의미를 잃는(缺) 것이며,
이것은 이숙식에서 생겨난 것의 이숙생(異熟生)으로, 진이숙(眞異熟)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卽前異熟及異熟生,名異熟果。果異因故。此中且說我愛執藏,持雜染種能變果識,名爲異熟,非謂一切。
곧 앞의 이숙(제8식)과 이숙생을 이숙과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결과가 원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선 아애(我愛)로써 집착하고 잡염의 종자를 지니는 능변의 과식(果識)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이름하여 이숙식이라고 하는 것일 뿐, 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능변(果能變), 여기서 과(果)는 8식의 현행(現行)을 말하며, 과능변(果能變)은 현행식을 능변의 체(體)로 하며, 과능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변이 포함된다.
첫째는 과거의 업력(業力)이 증장됨으로써 이숙습기가 활동할 수 있게 하여서 아뢰야식이 다른 중동분(衆同分)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등류습기가 활동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뢰야식으로부터 전식(轉識)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셋째는 현행된 8식의 자체분에서 견분(주관)과 상분(객관)이 변현되는 것이다.
*인업(引業), 총보업(總報業)을 가리키며, 이숙과(異熟果)를 초래하는 선ㆍ악업에 총보업ㆍ별보업(別報業)이 있다. 총보업은 총체적인 과체(果體)로서의 제8식을 이끌어 내므로 인업(引業)이라고도 한다.
*만업(滿業), 별보업(別報業)은 6식을 이끌어 내는 업으로서, 총보의 과체(果體, 제8식)를 장엄 원만하게 하므로 만업(滿業)이라고도 한다.
*이숙생(異熟生), 총보업(인업)에 이끌려 생긴 인생(引生)의 제8식을 진이숙(眞異熟)이라고 하고,
별보업(만업)에 이끌려 생기된 6식을 이숙생(異熟生)이라고 이름하며,
총보업(인업)과 별보업(만업)은 별개의 체가 아니라 총보의 과체(果體)인, 앞에서의 별보의 결과(果)도 감득(感得)하는 것이다.
雖已略說能變三名,而未廣辯能變三相,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앞에서 능변의 세 가지 명칭을 간략하게 설하였으나, 능변의 세 가지 체상인 삼삼(三相)을 자세하게 판별하지 않았으니,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체상은 어떠한 것인가? '삼십송'의 제2ㆍ3ㆍ4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하는 초능변식(初能變識)에 관한 게송을 총체적으로 열거한 것이다.
初阿賴耶識,異熟一切種。
첫 번째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고, 이숙식(異熟識)이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
不可知執受處了 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唯捨受。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의 심소 같이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是無覆無記,觸等亦如是。恒轉如瀑流,阿羅漢位捨。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촉 등도 역시 그러하며,
항상 폭류(暴流)와 같이 흘러서 유전(流轉)하는 것이나, 아라한의 지위에서 버리네.
이 게송들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유식론 2ㆍ3ㆍ4 권에 걸쳐 8단(段) 10의문(義門)으로 설명한다.
우선 10의문은, ①자상문(自相門, 아뢰야식), ②과상문(果相門, 이숙식), ③인상문(因相門, 일체종자식),
④소연문(所緣門, 執受와 處), ⑤행상문(行相門, 요별),
⑥상응문(相應門, 촉ㆍ작의ㆍ수ㆍ상ㆍ사),
⑦수구문(受俱門, 捨受), ⑧3성문(性門, 무부무기성ㆍ촉 등도 그러함), ⑨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 항상 폭류의 흐름처럼 유전함), ⑩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 아라한위이다)이며,
다음의 8단문(段門)은 ①②③을 합하여 3상문(相門)으로 하고,
④⑤를 합하여 소연행상문(所緣行相門)으로 하며,
제6에 심소동례문(心所同例門)을 첨가하여 총 여덟 가지로 분단(分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