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成唯識論)

성유식론(成唯識論) 제1 권 4

Skunky 2024. 12. 28. 09:01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1 권 4

 

如何識外實有諸法不可得耶?外道、餘乘所執外法理非有故。

▷묻습니다; 어째서 () 외부인 식외(識外), ()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일체법이 있을 없다는 것입니까?

위에서 말한 자아는 () 내부에도 외부에도  자체가 없는 것이다법에서 내부의 내식(內識) ()이고(似法이므로),  외부의 식외(識外) () 것이다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외부에도 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논파하고자 묻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실법(實法) 존재한다는 주장을 논파하는 것으로외도의 법집(法執) 중에서 13외도를 논파하는 것으로,

수론학(數論學) 즉 상캬 철학이다. 

外道所執,云何非有?

▷답한다 외도와 다른 교법()에서 집착하는 실법(實法)이라는 것에는 바른 논리의 정리(正理) 없기 때문이다.

 

且數論者,執我是思,受用薩埵、剌闍、答摩所成大等二十三法,然大等法三事合成,是實非假,現量所得

외도가 집착하는 것이 어찌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우선 수론자(數論者) 집착하여서 주장하는 것의 모순점을 비판하여 말하자면

신아(神我, 뿌루사) 순수정신이며살타(, 사뜨와) 자사(刺闍, 라자스) 답마(答摩, 따마스) 성립된 지성(知性, 覺각ㆍ大대) 스물세 가지 법을 수용하며,

그리고 지성 등의 법은 가지 속성인 삼덕(三德) 요소인 사뜨와 등이 합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것은 실체이지 허망한 존재가 아니며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을 통한, 감관적인 직접 자각인 현량(現量, pratyakṣa)으로 인식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수론자(數論者)= 상캬 철학은 세계를 25원리에 의해 설명하므로 () 중요해서 수론(數論)으로 불린다 대략적인 원리는뿌루사(puruṣa, 神我) 쁘라끄리띠(prakṛti, 原質) 관조함으로써 쁘라끄리띠로부터 지성의 (, buddhi) 생기고,  지성으로부터 아만(我慢, ahaṁkāra) 생겨나며,

아만으로부터 5() 11() 생기고, 5()로부터 5() 생기는 것으로

5유는 ()ㆍ촉()ㆍ색()ㆍ미()ㆍ향() 본질을 이루는 미세한 물질이며,

11() 의근(意根), 5지근(知根:眼ㆍ耳ㆍ鼻ㆍ舌ㆍ身根), 5작근(作根:언어ㆍ손ㆍ발ㆍ배설ㆍ생식근) 말하며,

5() 공대(空大)ㆍ풍대(風大)ㆍ화대(火大)ㆍ수대(水大)ㆍ지대(地大)이다.

 

*신아(神我, 뿌루사) 순수정신으로서 신아(神我) 한역된다. 이것은 쁘라끄리띠의 활동을 보고 아는 자이며스스로 활동하지 않는 비작자(非作者)이며, 자체는 무인(無因), 상주편재유일(唯一), 무활동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아무 것에도 몰입하지 않으며분석되지 않는, 독립된 아홉 가지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

*쁘라끄리띠(prakṛti, 原質, 自性) 근본원질ㆍ근본자성ㆍ제1원인인 승인(勝因) 등의 의미로서, 지성() 등을 낳는 활동을 지닌 작자(作者)이다쁘라끄리띠는 종류의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뜨와(sattva, 純質) 지성(知性)ㆍ빛남ㆍ가벼움ㆍ즐거움ㆍ흰 색깔의 성질을 갖고 있고,

라자스(rajas 動質) 힘ㆍ끊임없는 운동ㆍ고통ㆍ빨간색의 속성을 지니며,

따마스(tamas 暗質) 질량ㆍ무거움ㆍ저지(沮止)ㆍ무감각ㆍ검은색의 성질을 갖는다.

상캬 철학에 의하면 세계 만물의 차이는 쁘라끄리띠의 가지 요소가 어떤 비율로 결합되고 중의 어떤 요소가 지배적인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다.

신아(神我, 뿌루사) 쁘라끄리띠(prakṛti, 原質) 접촉에 의해서 후자의 내적인 평형상태가 깨어져서 23원리가 전개되는 것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사뜨와(sattva, 純質) 지배적인 성품으로 하는 붓디(buddhi)이다.

붓다는 우주론적으로는 그로부터 다른 모든 물질적 세계가 전개되므로 위대한 것이라고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을 인식할 있는 기관으로서 (), 지성(至性)이라 한다.


彼執非理,所以者何?大等諸法多事成故,如軍、林等應假非實,如何可說現量得耶?

그들이 집착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니, 어떻게 바른 논리가 아니 있는 것인가?

지성(知性:大) 등의 여러 , 23원리 하나하나는 모두 가지 근본속성인 삼덕(三德)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군대나 등과 같이 허망한 존재일 실체가 아닌것이,

어떻게 직접적인 자각인 현량(現量, pratyakṣa)으로 인식할 있다고 있겠는가?


又大等法若是實有,應如本事,非三合成。薩埵等三卽大等故,應如大等亦三合成。

또한 지성(知性:大) 등의 법은 실체라고 하기 때문에, 근본속성과 같이  가지가 합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며, 

살타(薩埵, 사뜨와), 자사(刺闍, 라자스), 답마(答摩, 따마스) 등의  가지는  지성(知性, 覺각ㆍ大대) 등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성 등도 역시  가지가 화합해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것이.

사뜨와 등의 셋은 본법(本法)이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데, 사뜨와 등이  지성(知性:大등이라고 한다면, 사뜨와 등도 역시 각각  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轉變非常爲例亦爾。

전변해서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 드는  역시도 그러한 것이니, 

쁘라끄리띠(prakṛti, 原質, 自性)를 논파하는 것으로, 살타(薩埵, 사뜨와), 자사(刺闍, 라자스), 답마(答摩, 따마스) 등의 3법(法)은  지성(知性:大등이며, 지성 등은 변천하여 변이(變異)한다고 인정한 때문에, 사뜨와 등도 역시 전변 무상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又三本事各多功能,體亦應多,能體一故。三體旣遍,一處變時餘亦應爾,體無別故。

또한 가지 근본속성인 삼본(三本)에는 각각의 공능(功能) 많다고 하였기 때문에, 본체 역시도 공능이 많아야 할 것이니, 공능과 본체는 하나가 되기 때문이며, 

가지의 본체인 삼체(旣遍)가 이미 두루하다고 말한다면,  장소가 변화할 때에는 다른  역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니, 본체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許此三事體、相各別,如何和合共成一相?不應合時變爲一相,與未合時體無別故。

若謂三事體異相同,便違己宗體相是一。體應如相,冥然是一。相應如體,顯然有三。故不應言三合成一。

  가지 근본속성이 본체(體)와 상(相) 각각 다른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어떻게 화합해서 하나의 일상(一相) 될 수 있겠는가?

화합할 때에도 변화해서 하나의  일상(一相)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니,

화합하지 않았을 때와 본체가 차이가 없기 때문이며, 

만약  가지 근본 속성인 삼본(三本)의 본체는 달라도 상(相) 같은 것이라 한다면, 

문득 자기 학파에서 근본진리로 하고 있는 본체와 상(相) 하나라고 하는 것에 위배되는 것이니,

본체도 상(相)과 같이 고요해서 하나이어야 하는 것이며, 상(相)도 본체와 같이 현현해서 셋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셋이 화합해서 하나가 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又三是別,大等是摠,摠別一故,應非一三。此三變時,若不和合成一相者,應如未變,如何現見是一色等?

또한 셋은 개별적인 별(別)이고, 지성(知性:覺ㆍ大) 등은 총체적의 총(總)이니,

총체와 개별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니어야 할 것이며, 

 셋이 전변하여서, 만약 화합해서 하나의 일상(一相)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전변하지 않았을 때와 같아야 할 것이니,  어떻게 현재 하나의 일색(一色)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겠는가?

 

若三和合成一相者,應失本別相,體亦應隨失。不可說三各有二相,一摠二別。摠卽別故,摠亦應三,如何見一?若謂三體各有三相和雜難知故見一者,旣有三相,寧見爲一?

만약 셋이 화합해서 하나의 일상(一相) 된다고 한다면, 본래 각각의 개별적인 별상(別相) 잃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본체 역시도 잃어야 할 것이며, 

셋에 각각  가지의 상(相)이 있어서,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니, 총체가  개별이 되기 때문에 총체에도 역시 셋이 있어야 할 것이니, 어떻게 하나로 불 수 있다는 것인가?

만약 셋의 본체에 각각의 세 가지의 삼상(三相) 있어서 뒤섞여서 알기 어려워서 하나로 보는 것이라 한다면, 이미  가지의 삼상(三相)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로 본다는 것인가?

 

復如何知三事有異?若彼一一皆具三相,應一一事能成色等,何所闕少待三和合?體亦應各三,以體卽相故。

또한 어떻게  가지의 각각의 속성의 요소에 차이가 있다고 알 수 있겠는가?

만약  하나하나가 모두  가지의 삼상(三相)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속성의 요소 하나하나가 능히 색법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니, 무엇이 부족해서 이러한 셋의 화합을 필요로 하겠는가?

본체도 역시 각기 셋이어야 할 것이니, 본체가  상(相)이기 때문이다.

 

又大等法皆三合成,展轉相望應無差別,是則因果、唯量、諸大、諸根差別皆不得成。若爾一根應得一切境,或應一境一切根所得,世閒現見情與非情,淨、穢等物,現、比量等,皆應無異,便爲大失。故彼所執實法不成,但是妄情,計度爲有。

또한 살타(薩埵, 사뜨와)와 자사(刺闍, 라자스)와 답마(答摩, 따마스)로 성립된 지성(知性, 覺각ㆍ大대) 등의 법 모두는 세 가지 속성의 요소가 합해서 이루어지는 삼합성(三合成)이라 한다면, 

전변하여서 서로 관련될 때에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니, 원인인 대(大)ㆍ결과인 아만(我慢)ㆍ5유(唯)ㆍ모든 요소인 오대(五大)ㆍ모든 인식기관인 십일근(十一根)에 차별이 있다고 한다면, 모두 성립될 수는 없을 것이며,

만약 그렇게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의 인식기관이 모든 대상을 인식해야 할 것이고, 혹은 하나의 대상이 모든 인식기관의 인식하는 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세간에서 보는 유정과 무생물, 청정과 더러움 등의 사물, 직접적 자각인 현량(現量, pratyakṣa)과 추리의 비량(比量, anumāna) 등의 모두에 차이가 없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큰 오류가 될 것이니,

따라서 그들이 집착한 실법(實法)은 성립되지 않게 되는 것으로, 다만 허망한 생각으로 계탁하여 실재한다고 말할 뿐인 것이다.

 

*비량(比量, anumāna)은 추리지(推理知)ㆍ개념지(槪念知)ㆍ추론지(推論知)이다. 감각기관에 직접 접촉되지 않은 대상을 논리적인 일치성에 의해 아는 것으로, 즉 언어를 매개로 한 개념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