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수의경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하권 3

Skunky 2024. 12. 26. 09:00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하

후한(後漢) 안식(安息) 안세고(安世高) 한역 後漢安息三藏安世高譯

佛說大安般守意經 卷下  3

 

數息亦墮信力,用不疑,故爲信力;亦墮進力,用精進,故爲進力;亦墮念力,用餘意不能攘,故爲念力;

亦墮定力,用一心,故爲定力;亦墮黠力,用前分別四意止、斷、神足,故爲黠力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하면, 신력(信力)에 떨어지나니, 의심하지 않는 까닭에 신력이 되며, 

또한 진력(進力)에 떨어지나니, 정진하는 까닭에 진력이 되며, 

또한 염력(念力)에 떨어지나니, 그 속 뜻의 여의(餘意)가 능히 쇠하지 않는 까닭에 염력이 되며, 

또한 정력(定力)에 떨어지나니, 마음이 한결같은 까닭에 정력이 되며, 

또한 혜력(慧力)에 떨어지나니, 앞에서 말한 4의지와 4의단과 4신족을 분별하는 까닭에 혜력이 되는 것이다.

 

數息亦墮覺意。用識苦,故爲覺意;亦墮法識覺意,用知道因緣,故爲法覺意;亦墮力覺意,用棄惡,故爲力覺意;亦墮愛覺意,用貪樂道,,故爲愛覺意;亦墮息意覺,用意止,故爲息意覺;亦墮定覺意,用不念,故爲定覺意;亦墮守覺意,用行不離,故爲守覺意也。

수식(數息)을 하면, 또한 깨달음의 각의(覺意)에 떨어지나니, 고(苦)를 인식하는 까닭에 각의가 되며, 

또한 법을 분멸하는 법식각의(法識覺意)에 떨어지나니, 도의 인연을 아는 까닭에 법각의(法覺意)가 되며, 

또한 역각의(力覺意)에 떨어지나니, 악을 버리는 까닭에 역각의가 되며, 

또한 애각의(愛覺意)에 떨어지나니, 도를 탐내고 좋아하는 까닭에 애각의가 되며, 

또한 식각의(息覺意)에 떨어지나니, 뜻을 멈추는 까닭에 식각의가 되며, 

또한 정각의(定覺意)에 떨어지나니,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정각의가 되며,

또한 수각의(守覺意)에 떨어지나니, 행을 여의지 않는 까닭에 수각의가 되는 것이다.


數息亦墮八行,用意正,故入八行。定意、慈心、念淨法,是爲直身;至誠語、軟語、直語、不還語,是爲直口。黠在意,信在意,忍辱在意,是爲直心。所謂以聲息,是爲十善墮道行也。

수식(數息)을 하면, 또한 8행(行)에 떨어니나니, 뜻이 바른 까닭에 8행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정의(定意)와 자심(慈心)과 정념(正念)과 정법(凈法)은 바른 몸의 직신(直身)이 되고,

지성스러운 지성어(至誠語)와 부드러운 말의 연어(軟語)와 곧은 말의 직어(直語)와 돌이키지 않는 불환어(不還語)는 바른 입의 직구(直口)가 되며,

지혜에 뜻을 두며, 믿음에 뜻을 두며, 인욕에 뜻을 두는 것은, 바른 마음의 직심(直心)이 되나니, 

이른바 소리와 숨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이러함이 10선(善)으로 도행(道行)에 떨어짐이 되며, 

 

數息亦墮直見,用諦觀,故爲直見;亦墮直行,用向道,故爲直行;亦墮直治,用行『三十七品經』,故爲直治;亦墮直意,用念諦,故爲直意;亦墮直定,用意白淨,壞魔兵,故爲直定,是爲八行。

수식(數息)을 하면, 또한 바른 소견의 직견(直見)에 떨어지나니, 자세히 관하는 까닭에 바른 소견이 되며, 

또한 바른 행의 직행(直行)에 떨어지나니, 도를 향하는 까닭에 바른 행이 되며, 

또한 바른 대치(對治)의 직치(直治)에 떨어지아니, '37품경(37 조도품)'을 행하는 까닭에 바른 대치의 직치가 되며, 

또한 바른 뜻의 직의에 떨어지나니, 진리의 제(諦)를 생각하는 까닭에 바른 뜻이 되며, 

또한 바른 선정의 직정(直定)에 떨어지나니, 뜻이 청백하여서 악마의 마병(魔兵)을 파괴하는 까닭에정이 되나니,

이것이 바로행(八行, 팔정도)이다.


何等爲魔兵?謂色、聲、香、味、細滑,是爲魔兵。不受是爲壞魔兵。三十七品應斂。

무엇이 악마의 마병(魔兵)인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이 바로 악마의 마병(魔兵)이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바로 악마의 마병(魔兵)을 파괴함이 되나니, 37조도품으로 응당 거두어 들여야 하는 것이다.

 

設自觀身,觀他人身,止婬,不亂意,止餘意;自觀痛痒,觀他人痛痒,止瞋恚;自觀意,觀他人意,止癡;自觀法,觀他人法,得道,是名爲四意止也。

만약 스스로 몸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한다면, 음심을 멈추고 뜻이 어지럽지 않게 되어서 그 나머지의 뜻들도 멈추게 되며, 

스스로의 통양(痛痒)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통양을 관한다면, 성냄의 진에(瞋恚)을 멈추게 되며,

스스로의 뜻(意)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관하면 어리석음의 우치(愚癡)을 멈추게 죄며, 

스스로의 법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법을 관하면 도를 얻으니, 이것을 4의지(四意止, 사념처)라 하며, 


避身爲避色,避痛痒爲避五樂,避意爲避念,避法不墮願業治生,是名爲四意念斷也。

몸을 피하는 피신(避身) 경계를 피하는 피색(避色)이 되며, 통양(痛痒)을 피하는 것은 5락(樂)을 피함이 되며, 

뜻을 피하는 피의(避意)는 생각을 피하는 피념(避念)이 되며, 

법을 피하는 피법(避法)하여서 원업(願業)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생(生)을 대치하는 것이니, 

이것을 4의념단(四意念斷)이라 하며, 


識苦者,本爲苦,爲苦者,爲有身。從苦爲因緣起者,所見萬物。苦習者,本爲苦,從苦爲因緣生。盡者,萬物皆當敗壞。爲增苦習,復當爲墮八道中。道人當念是八道,是名爲四,爲四收苦,得四神足念也。

고(苦)를 인식한다는 것은 본래 고이기 때문이며, 고(苦)가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이며, 

고(苦)를 좇아 인연이 일어난다는 것은 보는 바의 만물이 고(苦)이기 때문이며,

습(習)이라는 것은, 본래 고(苦)가 되기 때문에 고를 좇아 인연이 생기는 것이며,

다할 진(盡)이라는 것은, 만물이 모두 파괴되어서 고(苦)와 습(習)을 늘리기 때문에 다시 8도(道)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니, 도인은 마땅히 이러한 팔도(八道)를 생각해야 하나니, 

이를 4위(四爲)와 4수고(四收苦)라고 하며, 4신족념(四神足念)을 얻게 되며, 


信佛意喜,是名爲信根。爲自守行法,從諦身意受,是名能根,爲精進;從諦念遂諦,是名識根,爲守意;從諦一意,從諦一意止,是名定根,爲正意;從諦觀諦,是名黠根,爲道意,是名爲五根也。

부처님을 믿고 뜻으로 기뻐하는 것을 신근(信根)이라고 하나니, 스스로 지키고 행하는 법이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몸과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능근(能根)이라 하나니, 정진이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생각하여 제(諦)를 이루는 것을 제근(諦根)이라 하나니 수의(守意)가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뜻을 한결같으며, 제(諦)를 좇아  뜻에 멈추는 것을 정근(定根)이라 하나니 정의(正意)가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제를 관하는 것을 혜근(慧根)이라 하나니 도의(道意)가 되는 것으로, 이러함 바로 5근(根)이며, 


從諦信不復疑,是名信力;棄貪行道從諦自精進,惡意不能敗精進,是名進力;惡意欲起當卽時滅,從諦是意無有能壞意,是名念力;內外觀從諦以定,惡意不能壞善意,是名定力;念四禪從諦得黠,惡意不能壞黠意,是名黠力。念出入盡復生,是名爲五力也。

진리의 제(諦)를 좇아서 믿고 다시 의심하지 않는 것을 신력(信力)이라 하나니, 탐(貪)을 버리고 도를 행하며,

진리의 제(諦) 좇아 스스로 정진하여서 나쁜 뜻이 능히 정진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진력(進力)이라 하나니, 나쁜 뜻이 일어나려 하다가 즉시 없어지게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바른 뜻으로  뜻을 능히 파괴할  없는 것을 염력(念力)이라 하나니, 안과 밖을 관(觀)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정(定)하여 나쁜 뜻이 능히 좋은 뜻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정력(定力)이라 하나니, 4선(禪)을 생각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지혜를 얻어서 나쁜 뜻이 능히 지혜의 뜻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혜력(慧力)이라 하나니, 나고 들며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남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를 5력(力)이라 하며, 


從諦念諦,是名爲覺意得道意。從諦觀諦,是名法名法識覺意;得生死意,從諦身意持,是名力覺意;持道不失爲力,從諦足喜諦,是名愛覺意;貪道法行道行道法,從諦意得休息,是名息意,覺已息安隱,從諦一念意,是名定覺意;自知意,以安定從諦自在意在,所行從觀,是名守意覺;從四諦觀意,是名爲七覺意也。

진리의 제(諦)를 좇아 진리를 염하는 것을 각의(覺意)라 하나니, 도의 뜻을 얻게 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제를 관하는 것을 법식각의(法識覺意)라 하나니, 생사의 뜻을 얻게 되는 것이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을 역각의(力覺意)라 하나니, 도를 지녀서 잃지 않으니 힘이 되는 것이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희제(喜諦)를 구족하는 것을 애각의(愛覺意)라 하나니, 도법(道法)을 구하여 도행(道行)과 도법을 행하는 것이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뜻이 쉼을 얻는 것을 식각의(息覺意)라 하나니, 이미 뜻을 쉬어 안온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생각과 뜻을 한결같이 하는 것을 정각의(定覺意)라 하나니, 스스로 뜻을 알아서 안정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뜻을 자재하고 행하는 바를 좇아 관하는 것을  수의각(守意覺)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렇게 4제(사성제)를 좇아 뜻을 관하는 것을 7각의(覺意)라 하는 것이다.


從諦守諦,是名直信道;從諦直從行諦,是爲直從行念道;從諦身意持,是名直治法。不欲墮四惡者,謂四顚倒。從諦念諦,是名直意不亂意;從諦一心意,是名直定。

진리의 제(諦)를 좇아 제를 지키는 것을 바른 믿음의 신도(信道)라 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바르게 진리 행하는 것을 바른 염도(念道)라 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을 바른 치법(治法)이라 하나니, 

 가지 악즉 4전도(四顚倒)에 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것이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진리 생각하는 것을 바른 뜻의 직의(直意)라 하며, 뜻을 어지럽히지 않는 불난의(不亂意)라고 하며, 

진리의 제(諦)를 좇아 마음과 뜻을 한결같이 하는 것을 바른 정(定)이라고 하는 것이다.


爲一心上頭,爲三法意行,俱行以聲身心,如是佛弟子八行,是名四禪,爲四意斷也。

 마음의 일심을 우두머리로 삼아  가지 법의(法意)의 행인 삼법의행(三法意行)을 지을 것이니, 

소리의 성(聲)과 몸(身)과 마음(心)의 행을 갖춘다면, 

이와 같은 것이 불제자(佛弟子)의 팔행(八行, 팔정도)이니, 이를 4선(禪)이라 하며, 4의단(意斷, 사정단)이 되는 것이다.


第一行爲直念,屬心,常念道;第二行爲直語,屬口,斷四意;第三行爲直觀,屬身,觀身內外;第四行爲直見信道;第五行爲直行,不隨四惡,謂四顚倒;第六行爲直治,斷餘意;第七行爲直不墮貪欲;第八行爲直定正心,是爲八行。佛、辟支佛、阿羅漢所不行也。

 번째의 제일행(第一行)은 바른 생각의 직념(直念, 정념)이니, 마음을 거두어 항상 도를 생각하는 것이요, 

 번째의 제이행(第二行)은 바른 말의 직어(直語, 정어)이니, 입을 단속하여 4의(意)를 끊음이요, 

 번째의 제삼행(第三行)은관(直觀, 정사유)이니, 몸을 이르는 것으로 안팎의 몸을 관찰함이요, 

 번째의 제사행(第四行)은 바른 소견의 직견(直見, 정견)이니 도를 믿음이요, 

다섯 번째의 제오행(第五行)은 바른 행의 직행(直行, 정정)이니  가지 악인 4전도에 떨어지지 않음이요, 

여섯 번째의 제육행(第六行)은 바른 대치의 직치(直治, 정명)이니 나머지의 뜻을 끊음이요, 

일곱 번째의 제칠행(第七行)은 바른 뜻의 직행(直行, 정업)이니 탐욕에 떨어지지 않음이요, 

여덟 번째의 제팔행(第八行)은 바른정의 직정(直定, 정정진)이니 마음을 바르게 함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의 팔행(八行, 팔정도)이니, 행이니, 벽지불과 아라한은 행하지 않는 바이다.

 

第一行爲直念。何等爲直念?謂不念萬物,意不墮是中,是爲直念;念萬物,意墮中,爲不直念也。

 번째의 제일행(第一行)인 바른 생각의 직념(直念)에서, 무엇이 바른 생각의 직념(直念, 정념)인가? 

이른바 만물을 생각하지 않아서 뜻이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음이 바로 바른 생각이요, 

만물을 생각하여서 뜻이  가운데 떨어진다면 이것은 바른 생각의 직념(直念)이 아닌 것이다.


四意止者:一意止爲身念息,二意止爲念痛痒,三意止爲念意息出入,四意止爲念法因緣,是爲四意止也。道人當念是四意止:一者、爲我前世愛身,故不得脫;二者、今有劇怨家。何以故?所欲者愛生,當斷已斷,爲外身觀止也。

4의지(四意止)란,  번째의 일의지(一意止)는 몸과 생각을 쉬는 것이요, 

 번째의 이의지(二意止) 의지는 통양(痛痒)을 생각하는 것이요, 

 번째의 삼의지(三意止) 의지는 숨의 나고 듦을 생각하는 것이요, 

 번째의 사의지(四意止) 의지는 법의 인연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4의지가 되는 것으로, 

도인은 마땅히  4의지를 생각해야 하나니, 

첫째는 내가 전생에 몸을 사랑했던 까닭에 해탈을 얻지 못하였으며, 

둘째는 극심한 원수가 지금 함께하 때문이니, 왜냐하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삶에 애착하는 것이니 마땅히 끊어야 하고, 이를 이미 끊었다면 외신(外身) 관하여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四意止者,意止者,意不在身爲止意,不在痛痒爲止意,不在意爲止意,不在法爲止意。隨色誠便生,是爲不止也。

4의지(意止)에서 뜻을 멈춘다는 의지(意止)라는 것은, 뜻을 몸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고, 

뜻을 통양(痛痒)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며, 뜻을 뜻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고, 

뜻을 법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지만, 

뜻이 색(色)과 식(識)을 따라서 곧바로 생겨나면 이것은 멈추지 않음의 불지(不止)인 것이다.

 

問:人何以故不墮四意止?

報:用不念苦、空、非身、不淨故,不墮四意止。若人意常念苦、空、非身、不淨,行道者常念是四事不離,便疾得四意止也。

묻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4의지(四意止)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답하나니;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과 부정(不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4의지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뜻으로  고와 공과 비신과 부정을 생각하면서 도를 행한다면, 이러한  가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여의지 않는 것이므로, 신속히 4의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問:何等爲身意止?

謂念老、病、死,是爲身意止。何等爲痛痒意止?謂所不可意,是爲痛痒意止。何等爲意意止?謂已念、復念,是爲意意止。何等爲法意止?謂往時爲行,還報爲法,亦謂作是得是,是爲法意止也。

묻습니다; 무엇이 몸의 의지(意止)입니까? 

답하나니; 이른바 늙고 병들고 죽음을 생각함이니, 이것이 몸의 의지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 통양의지(痛痒意止)인가? 이른바 옳지 못한 뜻이니, 이것이 통양의 의지가 되며, 

무엇이 뜻의지(意意止)인가? 이른바 이미 생각하고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뜻의 의지가 되며, 

무엇이 법의지(法意止)가 되는가? 이른바  때에는 행(行)이 되고 돌아올 때에는 법이 되며, 또한 이러함을 지어서 이러함을 얻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법의 의지인 것이다.

 

四意止有四輩:一者、念非常意止,;二者、念苦身意止;三者、念空有意止;四者、念不淨樂意止,是爲四意止。
一切天下事皆墮身痛痒、墮法,都盧不過是四事也。

4의지(四意止)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상(無常)을 생각하는 의지요, 

둘째는 고(苦)와 몸(身)을 생각하는 의지요, 셋째는 공(空)과 유(有)를 생각하는 의지요, 

넷째는 부정(不淨)과 낙(樂)을 생각하는 의지이니, 이것이 4의지(四意止)이니, 

천하의 모든 일은 모두 몸의 통양(痛痒)에 떨어지고 법에 떨어지나니,

그 모두를 합쳐도   가지 불과할 뿐인 것이다.


四意止者:一者、但念息不邪念;二者、但念善不念惡;三者、自念身非我所,萬物皆非我所,便不復向;四者、眼不視色,意在法中,是名爲四意止也。

4의지(四意止)란, 첫째는 다만 숨을 생각하여 뜻을 삿되게 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다만 선(善)을 생각하고 악을 생각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몸도 내것의 아소(我所)가 아니며, 모든 만물도 내것의 아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다시는 향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눈으로 색(色)을 보지 않아서 뜻을  가운데 두는 것이니, 이것을 4의지(四意止)라 하는 것이다.

 

道人當行四意止:一者、眼色當挍計身中惡露;二者、意歡喜念樂,當念痛痒苦;三者、我意瞋他,人意亦瞋;我意轉他,人意亦轉,便不復轉意;四意者,我意嫉他,人意亦嫉;我念他人惡,他人亦念我惡,便不復念,是爲法也。

도인은 마땅히 4의지(四意止)를 행할 것이니, 첫째는 눈으로 마땅히  가운데 악로(惡露)를 헤아릴 것이요, 

둘째는 뜻으로 기뻐하여 즐거움을 생각함에 마땅히 통양(痛痒)의 고(苦)를 생각할 것이요, 

셋째는 나의 뜻이 성을 내면 다른 사람의  또한 성을 낼 것이고, 나의 뜻이 옮겨가면 다른 사람의  또한 옮겨갈 것이므로 다시는 뜻을 굴리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나의 뜻이 질투하면 다른 사람의  또한 질투할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의 악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 또한 나의 악을 생각할 것이므로,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법이 되는 것이다.


身意止者,自觀身,觀他人身。何等爲身?欲言痛痒是身,痛無有數;欲言意是身,復非身有過去,意未來意;欲言法是身:復非身有過去未來法;欲言行是身,行無有形,知爲非身。得是計,爲四意止也。

몸의 신의지(身意止)란,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는 것이니,

무엇이 몸이 되는가? 통양(痛痒)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고자 하여도 통양은 수(數)가 있지 않으며,

뜻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고자 하여도 과거의 뜻과 미래의 뜻이 있으므로 또한 몸이 아닌 것이며,

법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고자 하여도 과거와 미래의 법이 있으므로 또 한 몸이 아닌 것이며,

행(行)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고자 하여도 행은 형용이 없으므로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

이렇게 헤아려야 4의지(四意止)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