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

연생론(緣生論) 4

Skunky 2024. 12. 21. 09:00

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又節分摠略有節所攝故 二節及三略 因果雜爲節三四節摠略。

본송의 "() 마디인 유절(有節) 포함되기 때문에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 가지 요약인 삼약(三略) 있으며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 섞여서 마디() 이루므로
개의 마디와 개의 전체적인 요약의 총략(摠略) 있는 것이다." 에서,

 

有節爲本,發起二節所謂有生兩閒,爲第一節。行識兩閒,是第二節。此二竝爲業果節

() 마디의 기본이 되어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 생기나니,

이를테면 유(有)와 생(生), 가지 사이가 번째 마디인 제일절(第一節)이며,

행(行)과 식(識)의  가지 사이가 번째 마디인 제이절(第二節)이며,

개의 마디는 모두 업과 과보의 마디인 업과절(業果節)이 되며,

 

受渴愛中,因果共雜。是第三節 此之三節,復爲四種:摠略無明、行二種是第一摠略。

識、名色、六入、觸受五種,是第二摠略。

渴愛取有三種,是第三摠略,生老死二種,是第四摠略,此謂三節及四摠略。

수(受)와 갈애(渴愛) 중에는 원인과 결과가 함께 섞여 있으므로 번째 마디인삼절(第三節) 되며,

개의 마디인 삼절(三節) 다시 가지의 전체적인 요약인 총략(總略) 있으니,

무명ㆍ행의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일총략(一摠略)이고,

식ㆍ명ㆍ색ㆍ육입ㆍ촉ㆍ수의 다섯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이총략(二摠略)이며,

갈애ㆍ취ㆍ유,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삼총략(三摠略)이며,

생ㆍ노사,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사총략(四摠略) 것이니,

이를 개의 마디인 삼절(三節) 개의 전체적인 요약인 사총략(四摠略)이라 하며, 

 

 

又此等法中住時差別。 ‘二二三三二 苦時有五法 作者胎境界發轉生流行。

또 이러한 등의 법 가운데에는 머무는 시간의 주시(住時)의 차별이 있는 것으로,

본의 "둘과 둘과 셋과 셋과 둘로써 괴로울 때에는 다섯 가지 오법(五法) 있으니

짓는 작자(作者) 모태의 태세(胎歲)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 흘러감의 유행(流行) 것이다." 에서

 

二二法者,無明行,說爲二種識名色說爲二種

둘과 이란 무명ㆍ행의 가지와 식ㆍ명색의 가지를 말하며,

 

三三者,六入觸受,說爲三種,渴愛取有說爲三種。

셋과 이란 육입ㆍ촉ㆍ수의 가지와 갈애ㆍ취ㆍ유의 가지를 말하며,

 

又二者,生老死說爲二種。此等五法,是苦時中作者 胎藏境界發轉出生,於中流行。

如數當知於中,無明、行二種,說爲苦時中作者。應如是見。

識、名色二種,說爲苦時中胎藏。應如是見。

六入、觸、受三種,說爲苦時中境界。

渴愛、取、有三種、說爲苦時中發轉。

生、老死二種,說爲苦時中出生。

이란 생ㆍ노사의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다섯 가지의 법은 괴로운 상태의 짓는 작자(作者) 모태의 태세(胎歲)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으로, 태어남의 출생(出生)이며, 흘러감의 유행(流行)인 것이다.

가운데의 흘러감의 유행(流行) 순서대로 알아야 하나니,

가운데 무명ㆍ행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에서의 짓는 작자(作者)라고 설하는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는 것이며
식ㆍ명색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모태의 태세(胎歲)이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며,

육입ㆍ촉ㆍ수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괴로운 상태의 경계(境界)이며,

갈애 취 유의 세 가지는 상태의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이며,

생ㆍ노사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태어남의 출생(出生) 말하는 것이다.

 

又果差別。迷惑發起果 報流果爲二 相應根分中一一三二分

또한 과(果)에 차별이 있으니, 
본송의 "미혹과(迷惑果)와 발기과(發起果)와 보과(報果)와 진류과(津流果)의 둘은
상응하는 근(根) 중에서 하나ㆍ하나ㆍ셋ㆍ둘이다." 에서, 

 

如前所說,此無明根及渴愛根於無明根,第一分中,迷惑、發起、報、流,名四種果。

一、一三、二數分之中,隨其次第。當與相應。

於中無明是迷惑果。行是發起果。識、名色、六入是報果。觸、受是津流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것은 무명근(無明根)과 갈애근(渴愛根)이니, 

첫 번째 무명근에는 미혹과ㆍ발기과ㆍ보과ㆍ진류과가 있으니 네 가지의 사종과(四種果)라 하며,

하나ㆍ하나ㆍ셋ㆍ두 가지로 나뉜 가운데 차례대로 상응해야 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무명은 미혹과(迷惑果)이고,

행은 발기과(發起果)이며,

식ㆍ명색ㆍ육입은 보과(報果)이고,

촉ㆍ수는 연줄이 되는 진류과(津流果)인 것이다.

 

復有餘殘果 ‘熱惱貧乏果 轉出 津流果 相應他分中二一一一法。’

본송의 "또 다른 과(果)가 남아 있으니, 열뇌과(熱惱果)ㆍ빈핍과(貧乏果)와 

전출과(轉出果)ㆍ진류과(津流果)는 남은 부분의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과 상응한다."에서

 

如前所說,第二渴愛根分中,熱惱貧乏轉生、津流果等,隨其數分二、一、一、一,於此法中,當與相應。

於中渴愛、取。是熱惱果有是貧乏果生是轉出果。老死是津流果 如是此等,則有八果

앞에서 말한 두 번째 갈애근 중에서 열뇌ㆍ빈핍ㆍ전생ㆍ진류과 등은 숫자의 순서대로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에 상응하며,

그 중에서 갈애ㆍ취는 열뇌과이고,

유는 빈핍과이고, 생은 전출과이고,

노사는 진류과이니,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팔과(八果)가 있는 것이다. 

 

‘此有十二種 等力緣自生 無衆生無命無動 以慧知’ 

본송에서 "이 열두 가지는 똑같은 힘의 반연으로써 스스로 생겨나는 자생(自生)인 것이니,
중생도 없는 무중생이고, 수명도 없는 무명(無命)이고, 움직여 짓는 동작자(動作者)도 없음을 지혜로 알아야 한다."에서,

 

如是無明爲初,老死爲邊,有十二分。平等勝故。各各緣生,而無衆生,無壽命,無動作。以慧應知。

이와 같이 무명이 처음이고, 노사가 끝인 열두 가지의 십이분(十二分)은 똑같이 수승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반연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중생도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고, 수명도 없는 무수명(無壽命)이며,

움직여 지음도 없는 무동작(無動作)을 지혜로써 알아야 하나니,

 

於中無衆生者,以不牢固故。無壽命者,以無我故。無動作者,以無作者故。

그 중에서 ‘무중생(無衆生)’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며,

‘무수명(無壽命)’은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며,

‘무동작(無動作)’이라는 것은 짓는 작자(作者)가 없기 때문이다. 

 

‘無我無我所 無我無我因 四種無智空餘分亦如是’

본송의 "무아(無我)이고, 나의 것도 없는 무아소(無我所)이며,
무아(無我)이라서,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을 지혜로서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네 가지는 무지공(無智空)이니, 그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에서

 

於無我中無智,無我所中無智,無我中無智,無我因中無智,此中以無我故,四種無智空。

如四種次第,無智空如是行等餘分。亦皆是空。

무아(無我)라는 것에 대한 무지,

나의 것이 없다는 무아소(無我所)에 대한 무지,

결과로서의 무아(無我)라는 것에 대한 무지,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이니,

이 가운데에서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네 가지의 무지(無智)는 공한 것이니,

이 네 가지가 차례대로 공한 무지공(無智空)이듯이,

행(行) 등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應當知之‘斷常二邊離 此卽是中道 若覺已成就覺體是諸佛。’

본송의 "단멸(斷滅)과 상주(常住)의 두 극단인 이변(二邊)을 여읜다면,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니
만약 이를 깨달아 성취한다면, 그 깨달음의 주체인 각체(覺體)가 바로 모든 부처이라."에서

 

有是常攝,無是斷攝。如此二邊,彼作緣彼處。彼處諸有轉生。

離此二邊,卽是中道。若無智諸外道,則墮於邊。

若已覺悟諸佛世尊,則爲覺體於此世閒,獨能成就。餘人悉無此義。

있음의 유(有)는 항상한 상(常)에 포섭되고, 없음의 무(無)는 단멸의 단(斷)에 포섭된다.

이와 같은 두 극단의 이변(二邊)이 서로를 반연하게 되면, 그곳에서 모든 존재의 유(有)가 전변하여 생기게 되나니,

이 두 극단을 여의면 바로 중도(中道)인데, 지혜가 없는 외도들은 극단에 떨어지나,

깨달은 모든 부처님이라면 깨달음의 주체가 되어서 이 세간에서 홀로 성취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覺已於衆中 仙聖說無我 曾於城喩經導師說此義。’

본송의 "선성(仙聖, 부처님)은 다 깨달은신 뒤에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일찍이 '성유경(城喩經)'에서 큰 스승이신 도사(導師)께서 이러한 뜻을 설하셨다." 에서,

彼亦是此中道覺已,於諸衆中佛說無我,所謂比丘,有我我所小兒、凡夫、無聞之類順墮假名。

於中無復我及我所比丘生時,但苦生。滅時,但苦滅。

세존께서는 이 중도를 깨닫고 나서 모든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비구들이여, 나와 나의 것이 있다고 여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범부와

법을 듣지 못한 부류는 가명(假名)을 따라 갈 뿐이나,

그 가운데에서도 또한 나와 나의 것이 없는 무아(無我)이고,  무아소(無我所)일 뿐이니,

비구들이여, 생길 때에는 고통이 생길 뿐이고, 소멸할 때에는 다만 고통이 소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