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3
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無智與業識 名色根三和 知渴及以取 集出熟後邊'
본송의 "무지(無智, 무명) 즉 업(業)의 식(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세 가지 삼화합(三和合)과
앎의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취(取)와
모임의 집(集, 유有), 나옴의 출(出, 생生), 성숙됨의 숙(熟, 노老), 그리고 그 끝의 후변(後邊, 사死)이니" 에서
於中無智者是無明。業者是行,識者是,解。名色者是五衆摠聚,根者是入。三和者是觸。
무지(無智)란 무명이며, 업이란 행(行)이고, 식은 이해의 해(解)이고,
명색이란 오온이 모두 모이는 것이고,
근이란 육입이고, 세 가지의 삼화합(三和合)화합이란 촉(觸)이며,
知者是受。渴者是渴愛。取者是執持。集者是有。出者是生。熟者是老。後邊者是死。
앎이란 수(受)이고, 갈증이란 갈애(渴愛)이고, 취함이란 잡아 지니는 집지(執持)이고,
모임의 집(集)이란 유(有)이며, 나옴의 출(出)이란 태어남의 생(生)이고,
무르익음이란 늙음의 노(老)이고, 뒤의 끝이라는 후변(後邊)이란 죽음의 사(死)이다.
又此等差別相攝,我當次第說之於中業煩惱、報差別。
이러한 등의 차별은 서로를 포섭하는 것으로, 그것을 차례대로 설명하였으니,
그 속에는 업과 번뇌와 과보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初八九煩惱 第二第十業 餘七皆是苦三攝十二法。’
본송의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이고,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이며,
나머지 일곱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은 모두 고(苦)이니,
이 번뇌, 업(業), 고(苦)의 셋의 분류에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이 포함되는 것이다." 에서
三煩惱者,無明渴愛取 二業者,行有七報者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等此十二法,三種所攝。
세 가지의 삼번뇌(三煩惱)란 무명ㆍ갈애ㆍ취이며,
두가지 업이란 행(行)과 유(有)이며,
일곱 가지 과보란 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 등이니,
이러한 열두 가지 법이 세 가지에 포함되며,
又時差別。‘初二是過去 後二未來時 餘八是現在此謂三時法。’
또 시간(時)에 의한 차별이 있으니,
본송의 "처음의 둘은 과거이고, 뒤의 둘은 미래이고, 나머지 여덟은 현재이니
이것을 삼시법(三時法)이라고 한다." 에서
無明行初二種過去時中。生老死後,二種未來時中。識名色六入觸受、渴愛、取、有八種,現在時中。
又此等各各次第相生。
처음의 두 가지인 무명과 행은 과거이고,
뒤의 두 가지인 생과노사는 미래이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갈애ㆍ취ㆍ유의 여덟 가지는 현재이며,
이러한 것들은 각각 차례대로 생겨나는 것이다.
‘惱起業感報 報還生煩惱 煩惱復生業亦由業有報’
본송의 "번뇌가 일어나면 업이 과보를 감응하며, 과보는 다시 번뇌를 생기게 한다.
번뇌는 또 업을 생기게 하고, 업으로 인하여 또 과보가 있게 된다." 에서
煩惱業報三種如前所說。由彼煩惱故有業。由業故有報。還由報故有煩惱。
由煩惱故有業。由業故有報。
번뇌(煩惱)ㆍ업(業)ㆍ과보(果報)의 세 가지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저 번뇌로 인하여 업이 있고,
업 때문에 과보가 있게 되며,
또 과보 때문에 번뇌가 있고,
번뇌 때문에 업이 있으며, 업이 있기 때문에 과보가 있게 되는 것이다.
問曰:由煩惱盡,各各寂滅。其義云何?
묻겠습니다. ‘번뇌가 다하게 되면 업과 과보가 각각 없어지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가?
답한다. 게송으로 말하겠으니,
答曰:‘離惱何有業 業壞亦無報 無報則離惱此三各自滅。’
번뇌를 여의고 어찌 업이 있을 수 있으리!
업을 없애면 과보 또한 없으며,
과보가 없으면 곧 번뇌를 여의는 것이니
이 셋이 저절로 각각 자멸(自滅)하는 것이다.
若其此心無煩惱染,則不集業。若不作業則不受報若滅,報者亦不。生煩惱。如是此三,各各自滅。
만약 이 마음이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다면 곧 업이 쌓이지 않게 되며,
업을 짓지 않는다면 곧 과보를 받지 않게 되며,
과보가 소멸하면 번뇌 또한 생겨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세 가지가 각각 저절로 자멸(自滅)하는 것이다.
又此等有因果分。五分因生果 名爲煩惱業 七分以爲果七種苦應念。’
또한 이러함에는 원인과 결과의 구별인 인과분(因果分)이 있으니,
본송의 "다섯 가지의 원인인 오분인(五分因)이 결과를 생기게 하는 것이니, 이를 번뇌업(煩惱業)이라 하며,
일곱 가지는 결과이니, 일곱 가지 괴로움인 칠종고(七種苦)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에서,
五種因名爲煩惱業者 如前所說 無明行渴愛取有是也
‘다섯 가지의 원인인 오분인(五分因)을 번뇌와 업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무명ㆍ행ㆍ갈애ㆍ취함ㆍ유이며,
七種果轉生者亦、如、前所、說、七種苦。所謂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是也
‘일곱 가지의 결과가 생긴다’는 것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곱 가지의 괴로움이니,
이를테면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인 것이다.
又此因果二種空因、中、空、無、果 因中亦。無因 果中空無因。
‘果中亦無果 因果二俱空 智者與相應梵本本一偈今爲一偈半
또 이 원인과 결과 두 가지는 공(空)한 것이니,
본송의 "원인의 인(因)이 공(空)하므로 결과가 없는 무과(無果)이고,
원인의 인(因) 가운데에는 원인 또한 없는 무인(無因)이니,
결과가 공하므로 원인이 없는 무인(無因)이고,
결과 가운데에는 결과 또한 없는 무과(無果)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모두 공하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는 공과 상응하는 것이다.
[범본(梵本)에서는 한 게송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한 게송 반(半)으로 하였다.]" 에서
若此所說因果二種於中若因空果果亦空因。如是因亦空因,果亦空果。於此四際,當與相應。
여기에서 말한 원인과 결과 두 가지 중에서,
만약 그 속에 원인이 결과를 갖지 않는다면 결과 또한 원인을 가지지 않으니,
이와 같이, 원인은 원인을 갖지 않으며, 결과 또한 결과를 갖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네 가지의 사제(四際)와 마땅히 상응해야 하는 것이다.
又此更有別分。‘世中四種分 因果合故有 煩惱業果合念欲爲六分。’
이것에 또 다른 구별이 있으니,
본송의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화합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번뇌(煩惱), 업(業) 과보(果報)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한다"에서
世中四種分因、果合故有者,道中五種因及七種果和合故,摠略爲四種。次第有四種分。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가 화합하기 때문에 있다’는 것은
이치상으로 다섯 가지의 원인과 일곱 가지의 결과가 화합하기 때문에, 그 전체를 간략히 하여서 네 가지가 되는 것이니, 차례로 네 가지 구별이 있는 것이다.
於中無明、行過去時中。二法爲第一分。識、名色、六入、觸受現在時中。
爲第二分。渴愛、取、有,亦是現在時中。
爲第三分。生、老死未來時中。二法爲第四分此謂四種分也。
그 중에서 무명과 행은 과거의 법으로써 이 두 법이 제1분(第一分)이며,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는 현재의 법으로써 제2분(第二分)이며,
갈애ㆍ취ㆍ유 역시도 현재의 법으로써 제3분(第三分)이며,
생ㆍ노사는 미래의 법으로써, 이 두 법이 제4분(第四分)이니,
이 네 가지 구별을 사종분(四種分)이라 하는 것이다.
煩惱業果合,念欲爲六分者,煩惱業報三種和合。
以次第故,於二根本,有六種分於中無明所攝,乃至受以無明爲根渴愛所攝,乃至老死,以渴愛爲根。
‘번뇌ㆍ업ㆍ과보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한다’에서,
번뇌ㆍ업ㆍ과보의 세 가지가 화합한다면 그 순서 때문에 두 근본에서 여섯 가지의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 무명을 포함한 수(受)까지는 무명을 근본으로 하고,
갈애(渴愛)를 포함한 노사(老死)까지는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無明根中無明,是煩惱分。行是業分。識、名色、六入、觸受是報分。
무명이 근본이 되는 무명근(無明根) 중에서 무명은 번뇌의 부분인 번뇌분(煩惱分)이고,
행은 업의 부분인 업분(業分)이며,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는 과보의 부분인 보분(報分)이며,
渴愛根中,渴愛、取是煩惱分。有是業分。生老死是報分。
갈애가 근본이 되는 갈애근(渴愛根) 중에서
갈애와 취는 번뇌의 부분인 번뇌분(煩惱分)이고,
유는 업의 부분인 업분(業分)이며,
생ㆍ노사는 과보 부분인 보분(報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