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0권 3

Skunky 2024. 12. 13. 09:02

大智度論 論釋曇無竭品 第八十九 卷第一百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9. 담무갈품을 풀이함 3


如五衆無邊者,五衆常遍滿世間;般若波羅蜜亦如是,不遠離於五衆,五衆實相卽是般若波羅蜜。

復次,如色等法,分析破裂,乃至微塵則無方,無方故無邊;無色法,無形故無此彼,無此彼故無邊。

般若波羅蜜亦如是,於一切法,分別色乃至微塵、分別無色法乃至一念中,不見決定有常樂我淨。

是故說色無邊故般若無邊。

‘오중(五衆)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함이란, 마치중이 항상 세간에 가득  있는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 또한 이와 같아서 5중을 멀리 여의지 않는 것이니, 오중의 실상이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또한 마치 형색이 있는 색법(色法) 등은 낱낱이 쪼개고 깨뜨려서 작은 티끌이 되면 방소가 없게 되고, 방소가 없기 때문에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며, 무색법이라서 형태가 없는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이것이라거나 저것이라는 것도 없으며, 

이것저것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끝이 없는 무변(無邊)인 것이니,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일체법에 대하여 색(色)을 분별해서 작은 티끌에까지 이르고, 형색 없는 무색법(無色法)을 분별하여  생각의 일념(一念)에 이르기까지도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 있는 것을 결정코 보지나니, 

 때문에 “물질(色)이 끝이 없는 무변한 것이기 때문에 반야도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하는 것이다.


乃至虛空六種,亦如是。如金鋼等者,如天王所執金鋼,無憎無愛,隨所用處,無不摧碎;諸佛一切智前心,此心中三昧能斷一切結使煩惱顚倒及習皆滅,故名爲如金鋼。

如金鋼三昧相應智慧觀一切法皆平等,般若波羅蜜觀諸法平等亦如是。何以故?般若先觀諸法平等,然後得是三昧。

나아가 허공에 이르기까지의 여섯 가지 또한 이와 같으니,

‘금강과 같이 평등한 여금강등(如金剛等)’이라 함은, 마치 천왕(天王)이 가지고 있는 금강은 미워함도 없고 사랑함도 없어서 사용하는 곳마다 자르고 부수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 앞에서의 전심(前心)이라는  마음 속의 삼매는 일체의 결사(結使)의 번뇌와 뒤바뀜의 전도(顚倒)와 습기(習氣)를 모두 끊어서 소멸시키기 때문에 금강과 같다고 하는 것이며, 

여금강(如金剛)삼매와 상응하는 지혜로 일체법 모두가 평등하다고 관찰하나니, 반야바라밀이법을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왜냐 하면, 반야로 먼저법이 평등하다고 관찰한 연후에  삼매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諸法無分別者,世間凡夫煩惱力故,種種分別諸法;得諸法實相,則皆破壞、變異。是故聖人得般若波羅蜜,不隨憶想分別諸法,入空、無相、無作三昧中;若得諸法變異時,則不憂愁,以先來不分別取諸法相故。

‘제법은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다’고 함이란, 세간의 범부들은 번뇌의  때문에 갖가지로 법을 분별하지만, 법의 실상을 얻으면 모두가 파괴되고 변하여 달라지기 때문에 성인은 반야바라밀은 얻음으로써 생각하고, 분별하는 제법을 따르지 않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에 들어가며, 

설령 법이 변하여 달라질 때에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나니, 그것은 이미 제법의 법상(法相) 분별하거나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諸法性不可得者,一切法皆從因緣和合生,無有無因緣、若少因緣而起者;若從因緣生,則無自性。

性者,名本有決定實事。

‘제법의 성품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다’고 함이란, 일체 모두는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요, 인연없이 있게 되는 것이 없으니,

만약 작은 인연으로도 생기게 되거나, 또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면,  스스로의 성품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니, 성품의 성(性)이란 본래부터 있는 본유(本有)의 결정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若性從因緣和合邊生,當知未和合時則無;若先無今從因緣和合有者,則知無性。

若從因緣而生性者,性卽是作法。性名不相待、不相因,常應獨有;如是有爲法則無。

是故言“一切諸法性不可得,般若波羅蜜性亦爾”。

만약 성품(性)이 인연 화합의 편에서 생긴다면, 아직 화합하지 않았을 때에는  없다는 것을   있으며, 

앞에서 없었는데 지금은 인연의 화합으로부터 있게 된 것으로, 곧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라는 것을   있는 것이다.

만약 인연으로부터 성품(性)이 생겼다면, 성품(性)은  짓는 작법(作法)이며, 성품(性)은 서로 기다리지 않는 불상대(不相待)이며, 서로 의지하지 않는 불상인(不相因)이라서 언제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니,

유위법(有爲法)은 곧 이와 같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법의 성품(性)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다’고 말하며, 반야바라밀의 성품(性) 역시도 그러한 것이다.


諸法無所有等故者,諸法性不可得故,衆因緣亦不可得;衆因緣亦不可得故,皆是無所有;入無所有中故,則皆平等。所以者何?有,故有分別;無,故無分別。如草香、栴檀香,燒時有分別。滅時無分別。

‘제법은 있지 않은 무소유(無所有)이니, 평등하기 때문이다’고 함이란,법의 성품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인연 또한 얻을  없는 것이고,  인연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있지 않은 무소유이며, 무소유 가운데에 들어간 때문에  모두가 평등한 것이니,

왜냐하면, 있는 유(有)이기 때문에 분별이 있으며, 없는 무(無)이기 때문에 분별이 없는 것이니, 

마치 초향(草香)과 전단향(栴檀香)을 사를 때에는 분별이 있지만, 둘  없어졌을 때에는 분별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諸法無作者,衆生空、法空故,則皆無作。衆生所作者,所謂十善、十不善等。

‘제법은 짓는 바가 없는 무작(無作)이다’고 함이란, 중생공(衆生空)이 공(法空)이기 때문에 모두가 짓는 바가 없는 무작(無作)이라 것으로,

중생으로서 짓는 소작(所作)이란 이른바  가지의 착한 십선(十善)과  가지의 착하지 않는 십불선(十不善) 등을 말하는 것이며, 

 

法作者,所謂火然、水流、風動、識能識,智能知如是法,各各自有力。無衆生乃至無知者、見者,無色等乃至一切種智,先已破。破衆生故無作者,破法故無所作;但凡夫人顚倒覆故言:“我有所作。”

‘법작(法作)’이라 함이란, 이른바 불은 타는 것이며, 물은 흘러 가는 것이며, 바람은 움직이는 것이고, 의식(識)은 식별하며, 지혜는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이 법에는 저마다 각각의 자신이 지니고 있는 힘이 있으며,

중생도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고 나아가 아는 지자(知者)ㆍ보는 견자(見者)도 없으며, 물질(色) 등과 일체종지까지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파괴하였으니, 중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고, 법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짓는 바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거늘, 다만 범부인은 뒤바뀌고 가려진 까닭에 ‘나는 짓는 바가 있는 아유소작(我有所作)이다’고 말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諸法不可思議者,色等一切法不得決定 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實、若空,若我、若無我,若生滅、若不生滅,若寂滅、若不寂滅,若離、若不離,若有、若無等種種門分別,亦如是不可得思議。

‘제법불가사의(諸法不可思議)’란, 물질(色) 등의 일체법은 항상 있는 상(常) 이라거나, 무상(無常)이라거나, 괴롭다거나 즐겁다거나, 진실하다거나 공하다거나, 나(我)라거나, 무아(無我)라거나,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하는 것이라거나, 불생멸(不生滅)이라거나,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이라거나, 불적멸(不寂滅)이라거나, 여의는 이(離)라거나, 불리(不離)라거나, 있다는 유(有)라거나, 없다는 무(無)라는 등으로 결정할 수도 없으며, 

갖가지의 문으로 분별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미루어 헤아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所以者何?是法皆從心中憶想分別生,亦不可決定;一切法實性,皆過心、心數法、出名字語言道。如前品說:“一切諸法平等,一切賢聖不能行、不能到。”是故不可思議。般若波羅蜜亦爾,觀是法故生。是時,薩陁波崙卽於坐上得諸三昧

왜냐하면, 이러한  모두는 마음속의 생각과 분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또한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체법의 진실한 성품의 실성(實性) 모두는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을 벗어나고, 이름과 말의 언어도(言語道)를을 초월한 것이니, 

앞의 품에서 “일체법의 평등은 일체의 성현들도 행할  없고 도달할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이러한 때문에 불가사의한 것이니, 반야바라밀 또한 그러한 것으로, 이러한 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때에 살타파륜보살은 바로  자리에서 모든 삼매를 얻게 되었다.


問曰:薩陁波崙先已知諸法空相,今種種勤苦,住立七歲,見曇無竭得何等利益?

묻나니, 살타파륜은 이미 앞에서 제법의 공한 법공상(法空相) 알았으며, 지금은 갖은 고행을 하면서 서서 7년 동안 지내다가 담무갈을 보게 되었는데, 어떠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까?


答曰:薩陁波崙先見諸佛,得諸三昧,貴重般若波羅蜜生著相;今曇無竭七歲從定起,爲說般若破其著心,一切法性自空,非般若波羅蜜令其空。是故說:“諸法等故,般若波羅蜜等;諸法離相,乃至諸法不可思議故,般若不可思議。”

답하나니, 살타파륜은 이미 모든 부처님을 뵈었으며, 모든 삼매를 얻었으나, 반야바라밀을 귀중히 여기어서 탐착하는 착상(著相) 내고 있으므로, 이제 담무갈은 7년 만에정에서 일어나서 그를 위하여 반야를 설해 주어서 그의 탐착하는 착심(著心) 깨뜨려 준 것이다. 

온갖 법의 성품(性)은 본래 공한 자성공(性自空)이요, 반야바라밀이 있어서 그것을 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를 “제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평등하고,법은 여읜 이상(離相)이며, 나아가법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반야도 불가사의한 것이다”라고  것이다.


不令輕賤餘法、貴重般若。何以故?不令因般若故更生垢著。般若波羅蜜雖畢竟淸淨,多所饒益,復不可取相而生著心;如熱金雖好,不可手捉。

薩陁波崙得是教化,斷般若中著心,卽得諸法等諸三昧。句句解說,散亂心中,但有智慧,不名三昧;今從師聞已,一心思惟,名爲三昧,攝心不散,智慧變成三昧。如風中燈不能照明,在靜室閉門,明乃遍照。

 밖의 다른 법을 소홀히 여기거나 반야만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도록  것이니, 

왜냐하면 반야로 인하여 다시 때가 끼는 구착(垢著)을 하게 되어서는  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비록 필경에는 청정하고 요익(饒益)하는 바가 많을지라도, 다시  상(相) 취해서 탐착하는 마음의 착심(著心)을 내어서는  되는 것이니, 마치 불에 달구어진 금이 비록 좋을지라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살타파륜은 이러한 교화를 받고서, 반야에 탐착하는 착심(著心) 끊고 제법등(諸法等)의 모든 삼매를 얻었으니, 구절구절마다 해설하고 있으며, 

산란한 마음 가운데에 다만 지혜만이 있는 것을 삼매라 하지 않는 것으로, 스승으로부터 들은 뒤에 일심(一心)으로 사유(思惟)하는 것을 삼매라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흩어지지 않아서 지혜가 변하여 삼매로 되는 것이니, 

마치 바람 속에서는 등불이 빛을 밝게 비추지 못하다가 문을 닫은 고요한 방에서 비로소 밝게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先已欲界心散亂故,智慧力未成就;今入攝心中,所聞諸法皆名三昧,能破諸煩惱等及魔人民。如水,寒風未至,未成爲冰,則無堅用;若成凍冰,能有所蹈。

得如是等六百萬三昧門:薩陁波崙得聞曇無竭所說法,得諸法中大智慧明,所謂種種諸法實相門。諸法平等 平等是智慧,入薩陁波崙禪定心中,變爲三昧。

앞에서는 욕계의 마음으로 마음이 산란하였기 때문에 지혜의 힘이 성취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마음을 가다듬어서 섭심(攝心)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들은 바의 제법을 모두 삼매라 하는 것이니, 

모든 번뇌 등과 악마의 백성을 파괴할  있는 것이, 마치 찬바람이 불지 않아서 아직 얼음이 얼지 않았을 때에는 견고하지 않으나, 얼음이 얼게 되면 걸어 갈 수도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6백만의 삼매문(三昧門)을 얻었으며, 살타파륜은 담무갈이 설법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으며, 제법 가운데에서  지혜의 광명을 얻었으니, 이른바 갖가지법의 실상문(實相門)인 것이며, 제법의 평등이 그것이니, 

평등이 바로 지혜이니, 살타파륜의 선정심(禪定心) 속에 들어가서 삼매가 된 것이다.


今欲說三昧、智慧今世後世果報故,爾時,佛告須菩提:“如我今在大衆中說般若,以是相、以是像貌、以是名字說般若;薩陁波崙從曇無竭得是三昧,於三昧中見十方佛在大衆中說般若亦如是。

지금 삼매와 지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세와 후세 과보 때문이니, 

이때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기를 “마치 내가 지금 대중 가운데에서 반야를 설하면서 이러한 모양의 이시상(以是相)ㆍ이러한 모습의 이시상모(以是像貌)ㆍ이러한 이름의 이시명자(以是名字)로써 반야를 설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살타파륜이 담무갈로부터  삼매를 얻은 가운데에서 시방의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반야를 설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된 것 역시도 그러하였느니라.


須菩提!薩陁波崙從是以後深愛樂法故,多集諸經,廣誦多聞。如阿難,佛所說皆能持;薩陁波崙亦如是,多聞、智慧不可思議,如大海水。卽於是世常不離佛。”如是等名爲今世果報。

수보리야, 살타파륜은 이로부터는 법을 깊이 좋아한 까닭에 모든 경전을 모아서 널리 독송하고 많이 들었느니라. 

마치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지니는 것과 같이, 살타파륜도 이와 같아서 많은 견문(見聞)과 지혜가 불가사의하여 마치  바닷물과 같았으며,   세상에서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것들을 이름 하여 금세에서의 과보라 하느니라.


捨身常生有佛國中,好修行念佛三昧故,乃至夢中初不離見佛。地獄等諸難皆已永絕,隨意往生諸佛國土;以其深入般若波羅蜜、集無量功德故,不隨業生。薩陁波崙從一佛土至一佛土,供養諸佛,度脫衆生,集無量功德;譬如豪貴長者,從一會至一會,乃至今在大雷音佛所,淨修梵行。若有欲求般若波羅蜜者,當如薩陁波崙菩薩,堅正一心,不可傾動!

몸을 버린 뒤에는 항상 부처님께서 계신 나라에 태어났으며,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수행하기 좋아한 까닭에 꿈속에서까지도 부처님을 뵙는 일을 여의지 않았으며, 지옥 등의 모든 재난은 모두 영원히 끊어졌으며,

뜻하는 바대로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났으니, 그는 깊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서 무량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업(業)을 따라 태어나지 않는 불수업생(不隨業生)이니라.

살타파륜은 한 부처님의 일불토(一佛土)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일불토(一佛土)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제도하여서 벗어나게 하는, 무량한 공덕을 쌓고 있나니, 마치 호귀(豪貴) 장자가 한 모임에서 다른 한 모임에 이르며, 나아가 지금은 대뢰음(大雷音)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범행(梵行)을 깨끗하게 닦는 것과 같았느니라.

만약 어떤 이가 반야바라밀을 구한다면, 마땅히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이 견고하고 바르며 일심이라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해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是故當知般若波羅蜜因緣故,能成就一切功德者,諸菩薩等得般若者,貪欲瞋恚等在家罪垢、邪疑戲論等出家罪垢,皆悉除滅,得心淸淨;心淸淨故,得一切功德成就。

得一切種智者,所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六波羅蜜者,從初地乃至七地得無生忍法;八地、九地、十地,是深入佛智慧,得一切種智,成就作佛。於一切法得自在者,皆應受持,乃至華香、妓樂。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의 인연으로 일체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고 함이란,

모든 보살들로서 반야를 얻은 이는 탐욕ㆍ성냄 등의 재가(在家)하는 이의 허물의 죄구(罪垢)나, 삿된 의심과 희론 등의 출가(出家)한 이의 허물의 죄구(罪垢)들을 모두 다 제거하여서 마음이 깨끗하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일체의 공덕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체종지를 얻는다’고 함이란,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며, 

‘육바라밀’이라 함이란, 초지(初地)에서부터 7지(地)까지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며,

8지ㆍ9지ㆍ10지는 바로 부처님의 지혜인 불지혜(佛智慧)에 깊이 들어가서 일체종지를 얻어서 부처를 이루어서 일체법에서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니, 모두가 받아 지니는 응수지(應受持)하며, 나아가 꽃과 향과 기악으로써 공양해야 하는 것이다.


須菩提雖常樂空行,佛共說般若,又得無諍三昧故,不應囑累。阿難得聞持陁羅尼,又常親近世尊,故廣囑累。

수보리 존자는 비록 항상 공행(空行)을 좋아하였으나, 부처님과 함께 반야를 설하고 또 무쟁(無諍)삼매를 얻었으므로 부탁하여 맡길 수 있는 부촉(囑累)을 할 수 없었으나,

아난(阿難)은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었으며, 또한 항상 세존을 곁에서 가까이 모시고 있었으므로 자세히 부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