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99권 6

Skunky 2024. 12. 12. 09:02

大智度論 釋曇無竭品 第八十九 卷第九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9. 담무갈품(曇無竭品) 풀이함 6

 

問曰:不見水時,何以不作是念:“當於何處得水灑地?”

묻나니, 물을 보지 못하였을 때, 무엇 때문에 “나는 어디서 물을 얻어와서 땅에 뿌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薩陁波崙以先有水處,卽時皆無,知魔所作;是故自於四大分中刺水分灑地。身中水種雖多,血是命之所在,是故刺以灑地。

華不自有,曇無竭出時欲至,不容遠求;又所須復多,當以遍覆其地,是故生念欲得。

답하나니, 살타파륜은 먼저 물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바로 그 때에는 물이 전혀 없었으므로 악마가 하는 짓임을 알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4대(大)로 나눈 가운데서 수분(水分)을 내어 땅에 뿌린 것이다. 

 가운데는 비록 물의 요소인 수종(水種)이 많다 할지라도  피는 생명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몸을 찔러서 피를 내어서는 땅에 뿌린 것이며, 

꽃은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며, 담무갈이 나오실 때가 되었으므로 멀리까지 가서 구할 여유도 없었으며,  그 땅에다 두루 깔아야 했으므로 소요될 꽃이 많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기를 생각한 것이니, 


帝釋知其念,卽以天華中妙者,名曼陁羅,三千石與之,足以周事。帝釋所以不以人華與者,欲令發希有心故。

薩陁波崙受華已,分作二分:好者留以說法時散,餘者覆地。其國俗法以華覆地,令行其上,以爲供養。

爾時,曇無竭如其先要,滿七歲已,從三昧起,與無量百千衆恭敬圍繞,直趣法座,爲說般若故。

제석이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하늘의  가운데에서도 묘한 꽃인 만다라화를 3천 석(石)이나 가져다 그에게 주면서,  일에 충분히 쓰게 하였으나,

제석이 인간 세상에 있는 꽃을 주지 않은 까닭은 희유한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살타파륜은  꽃을 받은 뒤에  몫으로 나누어서 좋은 꽃들은 법을 설할 때에 뿌리고자 남겨 두었고,  나머지의 꽃들로 땅을 덮었으니, 그 나라의 풍속으로는 꽃을 땅에다 깔은 뒤에  위를 걸어가게 하는 것으로 공양을 삼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담무갈이 그가 먼저 약속한 대로 7년을  채운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무량한 백천 대중에게 공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곧장 법좌(法座)가 있는 곳으 나아갔으니, 반야를 설하기 위하여서였다.

 

섬 또는 석(䄷, 石)은 부피의 단위이다. 한 섬은 용량 180리터이며, 곡식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벼는 200 kg, 쌀은 144 kg, 보리쌀은 138 kg이다. 한 섬은 열 말이며, 신라시대 부피의 단위인 점(苫)에서 유래했으며, 신라시대의 점은 15말이었다. 최치원의 〈연복사비문〉(演福寺碑文) 주석에 ‘유제일두위점(斞除一斗爲苫) 십육두위유(十六斗爲斞)’라고 적혀 있는데, 당시에는 유(斞 : 16말)에서 1말을 뺀 15말을 점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위키


問曰:若諸菩薩入微妙三昧中,誰能令起?

묻나니, 만약 모든 보살이 미묘한 삼매에 들어가면, 누가 그를 일어나게   있는 것입니까?


答曰:行者初入時,自作限齊,然後入定;時至,其心自在從三昧起,悲心故而生覺觀。

如一比丘,入滅受定三昧時,自期聞犍搥時當起。旣入已,時僧坊失火,諸比丘惶懅,不打犍搥而去。

爾時,過十二歲已,檀越更和合衆僧欲起僧坊,方打犍搥;聞犍搥聲起,卽身散而死。後諸得道者,說其如此。

답하나니, 수행하는 행자 처음 들어갈 때에는 자기 스스로가 기한을 정한 뒤에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그 때가 되면  그 마음이 자재롭게 삼매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비심(悲心) 때문에 거칠고 미세한 생각의 각관(覺觀)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어떤 비구는 멸수정삼매(滅受定三昧)에 들어갈 때, 자기 자신이 건추(犍槌, chaṇṭā. 사람을 모으기 위해 두들겨 소리를 내는 기구) 소리를 듣고 일어나겠다고 정하고는 들어가 있었는데, 이 때에 마침 승방(僧坊)에 불이 나서 비구들이 당황한 끝에 건추를 치지도 않고 모두 떠났으니,

 뒤에 12년이 경과하고 나서 단월(檀越, dāna-pati. 시주施主)들이 화합하여서, 비로소 스님들이 승방을 일으키고자 건추를 쳤는데, 그가  건추 소리를 듣고 일어났으나 몸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죽었다는 것을 훗날 도를 얻은 여러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다.


復次,有人言:法性生身大菩薩,如諸佛常入三昧,無散亂麤心;以神通力故,能說法、飛行度脫衆生。

世俗法故,有出入三昧相。是故雖入微妙三昧而能還出,以大悲心牽故;譬如呪術出龍。

大衆圍繞者,是內眷屬;恭敬散華、燒香,隨從而出,爲說般若波羅蜜故。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보살은 모든 부처님과 같이 항상 삼매에 들어가서 산란하거나 거친 마음이 없으며, 신통력으로 법을 설하고 날아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며,

세속의  때문에 삼매에 들고 나는 상(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미묘한 삼매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다시 나올 수가 있으니, 그것은 대비(大悲)의 마음에 끌리기 때문인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주술(呪術)로써 용을 나오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중에게 둘러싸인, 대중위요(大衆圍繞)’라고 함이란, 바로 안(內)의 권속들이 공경하여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며 그의 뒤를 따라 나오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을 설하고자 한 때문이다.


說般若波羅蜜者,因世諦名字語言,欲示衆生第一義不動相故。

薩陁波崙見曇無竭,卽得淸淨歡喜,樂遍其身,如比丘入於三禪。所以者何?多欲衆生,雖非淨妙,得猶喜樂,何況得見眞功德莊嚴身者!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설반야바라밀(說般若波羅蜜)’이라 함이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의 이름과 언어에 의지하여 중생들에게 제일의(第一義)인 동요하지 않는 부동상(不動相)을 보이고자 하는 때문이며, 

살타파륜은 담무갈을 보자마자  청정한 기쁨을 얻었으며,  즐거움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이 마치 비구가 제3선(禪)에 들어간  같았으니, 왜냐하면, 비록 깨끗하고 묘하지 않을지라도 욕탐이 많은 중생도 보면 기쁨과 즐거움을 얻거늘, 하물며 진실한 공덕으로 몸을 장엄한 이를 보게 되는 것이랴!


薩陁波崙從空中佛聞曇無竭,卽生大欲,得諸三昧,見十方諸佛,復聞十方諸佛說先世因緣:“唯有曇無竭能度汝耳。”聞是已,增益其心,渴仰欲見,是故中道欲賣身供養。今於衆香城七歲不坐不臥 欲見曇無竭。如是渴仰,欲樂來久;如人熱渴所逼,得濁煖潦水,猶尚歡喜,何況得淸冷美水!旣以渴仰情久,又曇無竭功德大,是故悅樂。

살타파륜은 공중의 부처님으로부터 담무갈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서원을 내어서 모든 삼매를 얻어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었으며, 다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오직 담무갈만이 그대를 제도할  있느니라”고 하심을 듣게 되었으며,

이러한 말씀을 들은 뒤에 그의 마음이 한층  간절하게 우러르면서 담무갈을 만나고자 하였 것이니,

때문에 도중에서 몸을 팔아서 공양하고자 하였고, 지금은 중향성에서 7년 동안이나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담무갈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간절히 우러르면서 보고 싶어  지가 오래 되었으니, 마치 사람이 목이 몹시 마를 때에는 흐리고 미지근한 길바닥의 물을 만나도 오히려 기뻐하게 되거늘, 하물며 맑고 시원한 맛있는 물을 만나는 것이랴!

이미 간절하게 우러르던 정(情)이 오래였고  담무갈의 공덕이 컸기 때문에 기뻐하고 좋아한 것이다.


問曰:樂有四種,何以但說第三禪樂,而不說上地定樂及解脫樂?

묻나니, 즐거운 낙(樂)에는  가지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제3선의 즐거움만 말하고   경지인 상지(上地)에서의 선정의 즐거움인 정락(定樂)과 해탈의 즐거움인 해탈락(解脫樂)은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以欲界衆生,於三受中多貪樂受。聞涅槃樂無所有,則心不樂喜;以上四禪中斷苦樂故,心亦不樂;
第三禪中樂,樂之極。

復有人言:薩陁波崙新發意未入細深妙定故,見曇無竭發大歡喜,似如三禪樂。

薩陁波崙自覺我大歡喜故,卽時捨喜,得淸淨法性,遍身安樂,是故以三禪樂爲喩。

답하나니, 욕계(欲界)의 중생들은 고수(苦受), 낙수(樂受), 사수(捨受)의 세 가지 느낌인 삼수(三受) 가운데에서 대개 즐거운 느낌의 낙수(樂受)만을 탐하기 때문에 ‘열반의 즐거움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다’라고 들으면 곧 마음으로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위의 제4선(禪)에서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끊어졌기 때문에, 마음도 즐겁지 않은 것이며,

제3선에서의 즐거움은 즐거움 중에서도 가장 극치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분이 말하기를 “살타파륜은 새로이 뜻을 낸 신발의(新發意)라서 아직은 미세하고도 깊고 묘한 선정(禪定)에 들지 못하였으므로, 담무갈을 보자마자 큰 기쁨이 일어나는 것이 마치 3선의 즐거움과 비슷하였다”고 하였다.

살타파륜 보살은 스스로가 ‘아주 기쁜 대환희(大歡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즉시 그 기쁨을 버리고 깨끗한 법의 성품인 청정법성(淸淨法性)을 얻어서 온몸이 편안하여지고 즐거워진 때문에 3선의 즐거움으로 비유한 것이다.


大智度論卷第九十九 終 대지도론 99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