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96권 5
大智度論 釋涅槃如化品 第八十七卷 第九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8. 살타파륜품(薩陀波崙品)을 풀이함 ① 2
問曰:薩陁波崙未得阿鞞跋致,何以故名菩薩摩訶薩?
묻나니, 살타파륜(薩陀波崙, Sādapraruta, 상제常啼) 보살은 아직 아비발치(阿鞞跋致, 불퇴전)를 얻지 못하였거늘,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이라 부르는 것입니까?
答曰:以有大菩薩故,小者亦名大。又以其雖未得實智慧而能深念般若波羅蜜故,不惜身命、有大功德故,亦名菩薩摩訶薩。
답하나니, 큰 대보살(大菩薩)이 있기 때문에 작은 소자(小者)에게도 역시 대(大)라 하기도 하며,
또 비록 그가 아직 진실한 지혜를 얻지는 못하였을지라도 반야바라밀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며,
또 몸과 목숨의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으며, 큰 공덕이 있기 때문에 역시 보살마하살이라 부르는 것이다.
問曰:何以名“薩陁波崙薩陁秦言常波崙名啼 ”?爲是父母與作名字?是因緣得名字?
묻나니, 무엇 때문에 살타파륜이라 부르는 것입니까? - 살타(薩陀, sadā)는 진(秦, 중국)나라 말로 ‘항상의 상(常)’이라는 말이요, 파륜(波崙, prarudita)은 ‘운다는 제(啼)’ -
그의 부모가 지어 준 이름입니까? 아니면,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얻게 된 이름입니까?
答曰:有人言:以其小時喜啼,故名常啼。
有人言:此菩薩行大悲心柔軟故,見衆生在惡世,貧窮、老病、憂苦,爲之悲泣,是故衆人號爲“薩陁波崙”。
답하나니, 어떤 분은 말하기를 “그가 어릴 때에 늘 울기를 좋아한 까닭에 ‘항상 우는 상제(常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대비(大悲)를 행하면서 그 마음이 부드러운 까닭에 중생들이 악한 세상에 있으면서 가난하고ㆍ늙고ㆍ병들고ㆍ근심하고ㆍ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을 위하여 슬피 울었기 때문에 뭇 사람들이 그를 살타파륜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有人言:是菩薩求佛道故,遠離人衆,在空閑處,求心遠離,一心思惟籌量,勤求佛道,時世無佛。
是菩薩世世行慈悲心,以小因緣故,生無佛世。是人悲心於衆生,欲精進不失,是故在空閑林中。
是人以先世福德因緣,及今世一心、大欲、大精進 以是二因緣故,聞空中教聲,不久便滅。卽復心念:“我云何不問?”以是因緣故,憂愁啼哭,七日七夜。因是故,天、龍、鬼神號曰常啼。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보살은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기 위하여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고요한 공한처(空閑處)에 있으면서 마음으로 멀리 여읨의 원리(遠離)을 구하고, 일심으로 사유하고 헤아리면서 부처님의 불도를 힘써 구하였는데, 그 때의 세상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였으며,
이 보살은 세세마다 자비심을 행하였으나, 인연이 작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이 사람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비심(悲心)을 정진하여 잃지 않기를 원한 때문에 고요한 공한처(空閑處)의 숲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전생에 쌓은 복덕의 인연과 이 세상에서의 일심(一心)으로 큰 서원을 낸 대욕(大欲)으로 크게 정진한 대정진(大精進)의 이 두 가지 인연으로 공중에서 가르침을 교시하는 음성을 듣게 되었으나, 오래지 앉아 곧 사라져버렸으므로 그가 생각하기를 ‘나는 어찌하여서 묻지 않았던 것일까?’라고 하며, 이 인연으로 밤낮 7일 동안을 근심하면서 슬피 울었으니, 이로 인하여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항상 우는 상제(常啼)’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佛答須菩提:“過去世有薩陁波崙菩薩,不惜身命,不貪財利。”“求般若波羅蜜時,在空閑林中,聞空中聲,到空林中”,如上說。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대답하시기를 “과거 세상에 살타파륜(薩陁波崙)이라는 보살이 있었으니, 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명리를 탐내지 않았으며, 반야바라밀을 구할 때, 텅 비고 고요한 숲 속의 공한림(空閑林) 중에 있었는데, 허공에서 소리가 나서 텅 빈 숲에까지 들려왔느니라”고 하셨으니, 앞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問曰:空中聲爲是何聲?
묻나니, 공중에서의 소리란, 어떤 소리였던 것입니까?
答曰:若諸佛、菩薩、諸天、龍王憐愍衆生故,見是人不著世閒法、一心求佛道,以時無佛法,欲示其得般若因緣故,空中發聲。
有人言:是薩陁波崙先世善因緣人,在此林中作鬼神,見其愁苦。以其是先世因緣故,又是神亦求佛道 以是二因緣故發聲。
답하나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용왕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이 사람이 세간법에 탐착하지도 않고 일심으로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것을 보았으나, 그때는 아직 부처님의 불법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반야를 얻는 인연을 보여주고자 공중에서 소리를 낸 것이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살타파륜과 전생에 좋은 인연을 지었던 사람이 이 숲속의 귀신이 되어 있었는데, 그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그 귀신도 전생에 지은 인연으로 역시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고 있었으니,
이 두 가지 인연 즉, 살타파륜과의 전생의 인연과 스스로 불도를 구하는 두 인연 때문에 소리를 낸 것이다”라고 하며,
如蜜膊婆羅門爲須達多至王舍城,詣大長者家求兒婦時,蜜膊於王舍城大婆羅門衆中,飮食過度,腹脹而死,作鬼神,於王舍城城門上住。須達多聞是婆羅門已死,自往長者家宿。長者於後夜,起辦具飮食。
須達多問言:“汝有何事?爲欲娶婦嫁女?爲欲請大國王?爲是邑會?何其悤悤營事乃爾?”
長者答言:“我欲請佛及僧。”須達多聞佛名,驚喜毛豎。長者先得道迹,爲其廣說佛德。
이는 마치 밀박(密膊) 바라문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수달다(須達多)라는 이가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며느리를 구하고자 큰 장자(長者)의 집에 들렀을 때, 밀박(密膊) 바라문은 왕사성에 모인 큰 바라문들 가운데에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은 탓으로 배가 터져 죽은 뒤에 귀신이 되어서는 왕사성의 성문 위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었다.
수달다도 이 바라문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장자의 집에 가서 묵었는데, 그 집 장자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으므로 수달다가 묻기를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들을 장가를 들이시는 것입니까? 딸 시집을 보내시는 것입니까? 아니며, 대국의 왕을 청하시는 것입니까? 고을 사람들을 모아서 잔치를 벌이시는 것입니까?
어찌 그렇게 서두르면서 일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하였다.
장자가 답하기를 ‘나는 부처님과 승가를 청하고자 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수달다는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듣고 한편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 장자는 이미 성인의 도에 머무는 도적(道跡)을 얻은 사람이라서, 수달다를 위하여 부처님의 위덕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須達多聞已,愛樂情至,甚欲見佛。乘念佛心而小睡,以念佛情至故,須臾便覺,夜見月光,謂爲日出,卽起趣門,見城門已開 王舍城門初夜未閉,爲客來故;後夜早開,爲客去故。旣見門開,卽直向佛。
수달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좋아하는 정(情)이 우러나면서 부처님이 몹시 뵙고 싶어졌으며, 부처님에 대한 생각으로 잠도 자지 못하였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지극하였던 까닭에 잠깐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밤에 떠 있는 달빛을 날이 새어서 해가 뜬 것이라 여기고는, 곧 일어나서 성문으로 나아가서 보니 성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왕사성의 성문을 초저녁에 아직 닫지 않는 것은 손님들이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요, 새벽에 일찍 여는 것은 손님들이 떠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는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곧장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나아갔다.
佛時在寒林中住。於其中路,月沒還闇,須達多心悔躊躇,欲還入城,時蜜膊神放身光明,照諸林野,告言:“居士!居士!莫怖莫畏,直去莫還,去得大利!”如彼經偈中廣說。
그때 부처님께서는 한림(寒林, śītavana. 시신을 버리는 장소로, 주로 도시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운데에 머물고 계셨으니, 그 중간쯤 갔을 때에 달이 졌으므로 다시 어두워졌으므로, 수달다는 마음으로 후회하고 주저하면서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그 때에 밀박신(密膊神)이 몸으로 광명을 놓아 모든 숲과 들을 환히 비추어 주면서 거사(居士)에게 말하기를 ‘거사여,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곧장 나아가되 돌아서지 마시오. 가게 되면 큰 이익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고 하였으니,
이는 경에서 게송으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須達多見佛,得須陁洹道,請佛及僧於舍衛城,盡形供養。
佛令舍利弗爲須達師,於舍衛作精舍。如須達知識神示導,薩陁波崙知識示導亦如是,是故見其愁苦而示導之。作是言:“善男子!汝從是東行,行時莫念疲極等。”
수달다가 부처님을 뵙고 수다원의 도를 얻었으며 부처님과 승가를 청하여 사위성(舍衛城)에서 그의 몸이 다하도록 공양하였다.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로 하여금 수달다의 스승이 되게 하셨으며, 사위성에 정사(精舍)를 짓게 하셨다.
마치 수달다에게 지식(知識, 선지식)의 신(神)이 교시하여 인도한 것과 같이, 살타파륜의 선지식이 교시하여 인도한 것 또한 그러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르쳐주고 인도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여기서부터 동쪽을 향해 가라. 갈 때에 고달픔 등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問曰:疲極、飢渴,交來切身,云何不念?
묻나니, 고달픔과 배고프고 목마름이 한꺼번에 어울려 오면 몸이 절박할 것이거늘,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答曰:大欲精進力故,一心愛樂佛道,不惜身命。休息、飮食等皆是助身法。是事雖來,不爲亂心,知皆虛誑無常、無實,如怨、如賊,但爲身樂故,何足存念!莫爲飢渴、疲極等故而捨佛道!
莫念晝夜者,莫念:“晝是行法,夜應止息。”實無晝夜,所以者何?日依須彌,影翳故名夜。
답하나니, 커다란 서원의 대욕(大欲)과 정진력 때문에 일심으로 부처님의 불도를 좋아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니, 휴식과 음식 등은 모두가 몸을 돕는 조신법(助身法)일 뿐인 것이다.
고달픔과 배고프고 목마름 등이 비록 닥쳐올지라도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모두가 거짓이요 무상하며 진실하지 않아서 마치 원수와 같고 도적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몸의 즐거움인 신락(身樂)을 위한 것일 뿐이거늘 어떻게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는가?
배고프고 목마르며 고달픔 등 때문에 부처님의 불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낮과 밤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막념주야(莫念晝夜)’라고 함이란, 낮에는 법을 행하고 밤에는 쉬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 실로 밤과 낮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해가 수미산(須彌山)에 의하여 그림자가 가려지므로 밤이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莫念內外者,衆生多著內法。內法名身,外法名五欲。內外法不定,性空故,不應著。
‘안과 밖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막념내외(莫念內外)’라고 함이란, 중생은 대개가 안의 내법(內法,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에 탐착하나니, 안의 내법은 몸을 말하는 것이고,
밖의 외법(外法,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은 눈의 경계(眼境)ㆍ 귀의 경계(耳境)ㆍ코의 경계(鼻境)ㆍ혀의 경계(舌境)ㆍ몸의 경계(身境)의 오욕(五欲)을 말하는 것이다.
안팎의 내외법(內外法, 12입)은 일정하지 않으며,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기 때문에 탐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莫觀左右者,人散心行道故,左右顧看;行者無緣觀後,當前則不得不視,故但言莫左右顧看。復次,惡魔常惑亂行者,或作種種形、或作好色、或作畏獸,在道左右,故言莫觀。是皆止其麤念。
‘왼쪽과 오른쪽을 돌아보지 말라는 막관좌우(莫觀左右)’라고 함이란,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길을 가기 때문에 좌우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니, 길을 가는 이가 이유도 없이 뒤를 본다면 당연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따라서 ‘좌우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 것이다.
또 악마는 항상 수행하는 이를 미혹하고 어지럽게 하고자 혹은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도 하고, 혹은 두려운 짐승이 되기도 하여서 길의 좌우에 있으므로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니,
이러한 것은 모두가 거친 생각의 추념(麤念)을 그치라는 것이다.
莫壞身相、色等相者,五衆和合故假名爲身。若說別更決定有身法,是則壞身相;若著無身法,是亦壞身相。
離是一異、有無等邊,行於中道,則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說莫壞身相等。
此中佛自說因緣:“若壞是諸相,則於佛法有㝵;佛法有㝵者,則往來五道生死中,不能得般若波羅蜜。”
‘몸의 신상(身相)과 물질의 색상(色相) 등을 파괴하지 말라’고 함이란, 5중(衆, 오온)이 화합한 까닭에 몸이라는 가명을 임시로 붙인 것인데,
만약 다시 몸의 신법(身法)이 결정코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몸의 신상(身相)을 파괴하는 것이며,
또한 몸이 없다는 무신법(無身法)에 집착한다면, 이 또한 몸의 신상(身相)을 파괴하는 것이니,
동일한 일(一)ㆍ다른 이(異)ㆍ있음의 유(有)ㆍ없다는 무(無) 등에 치우친 소견을 여의고 중도(中道)를 행한다면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신상(身相)을 파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만약 이 모든 상(相)을 파괴한다면 곧 부처님의 불법에 장애가 있게 되나니,
부처님의 불법에 장애가 있으면, 곧 오도(五道)의 생사 가운데를 왕래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薩陁波崙報空中聲言:而自說因緣,所謂:“薩陁波崙見一切衆生墮在無明黑闇中,我欲爲然智慧光明;
一切衆生有一切煩惱,我欲設一切佛法藥;一切衆生皆墮邪道,我爲是衆生故求無上道。”
是三種願,得般若波羅蜜則能具足,是故言受教。
살타파륜은 공중의 소리에 답하면서 그 자신이 인연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살타파륜이 일체 중생들을 보건대 무명(無明)의 어둠 속에 떨어져 있으므로, 저는 지혜의 광명이 되고자 합니다.
일체 중생에게는 일체의 번뇌가 있으므로, 저는 일체 부처님 불법의 즐거움인 불법약(佛法樂, 불법락佛法藥)을 베풀고자 합니다.
일체 중생 모두가 삿된 사도(邪道)에 떨어져 있으므로, 저는 이 중생들을 위하여 위없는 무상도(無上道)를 구하고자 합니다”고 한 것으로,
이 세 가지의 삼종원(三種願)은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곧 완전히 갖출 수 있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교시를 받는 수교(受教)’을 말하는 것이다.
問曰:薩陁波崙不見其形,但聞其聲,何以便言受教?
묻나니, 살타파륜은 그의 형상을 보지도 못하고 다만, 소리만 들었을 뿐이거늘, 무엇 때문에 곧 교시를 받는 수교(受教)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人所求事急故,聞聲則應;薩陁波崙亦如是。
復次,聞其所說理好,則知其人亦好故,不須眼見;如黑闇中有種種衆生,眼雖不見,聞其聲則知其種類。
답하나니, 사람이 다급하게 구하는 것이 있으며, 소리만을 듣고도 응하는 것이니, 살타파륜도 이와 같은 것이며,
또한 그가 하는 말의 이치가 바른 것으로 들리면 그 사람 또한 좋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꼭 눈으로 보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
마치 어둠 속에 여러 중생이 있을 때, 비록 눈으로는 보지 못할지라도 그 소리만을 듣고도 그 종류를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