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96권 4

Skunky 2024. 12. 5. 09:01

大智度論  釋涅槃如化品 第八十七卷 第九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8. 살타파륜품(薩陀波崙品) 풀이함 ① 1

 

▶經.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求般若波羅蜜,當如薩陁波崙菩薩摩訶薩。是菩薩今在大雷音佛所行菩薩
道。”

▷경.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구할 때에는 마땅히 반야의 가르침을 구하느라

‘항상 눈물을 흘리며 반야를 구하는 사람인, 살타파륜(薩陀波崙, Sādapraruta, 상제常啼) 보살마하살과 같이 해야만 하느니라. 

 보살은 지금 대뢰음(大雷音)부처님의 처소에 있으면서 보살도(菩薩道)를 행하고 있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薩陁波崙菩薩摩訶薩云何求般若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구한 것인지요?”


佛言:“薩陁波崙菩薩摩訶薩本求般若波羅蜜時,不惜身命,不求名利。

於空閑林中,聞空中聲言:‘汝善男子!從是東行,莫念疲極,莫念睡眠,莫念飮食,莫念晝夜,莫念寒熱,莫念內外。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이 본래 반야바라밀을 구할 때, 몸과 목숨의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았으며, 세상의 명성과 이익의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았느니라. 

그가 고요한  속의 공한림(空閑林) 가운데에 있었는데, 공중에서 소리가기를 ‘그대 선남자여, 이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가되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잠을 자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며,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낮과 밤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며, 춥고 덥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안과 밖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라.

 

善男子!行時莫觀左右。汝行時莫壞身相,莫壞色相,莫壞受、想、行、識相。何以故?若壞是諸相,則於佛法有㝵;若於佛法有㝵,便往來五道生死中,亦不能得般若波羅蜜。’

선남자여, 길을  때에는 좌우를 보지 말고, 그대가  때에 몸의 신상(身相) 파괴하지도 말며, 물질의 색상(色相) 파괴하지 말고, 수상행식(受想行識) 상(相) 파괴하지 말지니,  

왜냐 하면 만약  모든 상(相) 파괴하게 되면, 부처님의법에 장애가 있게 되고,

만약 부처님의법에 장애가 있으면 도(五道)의 생사(生死) 가운데서 왕래하게 되며, 반야바라밀을 얻을  없게 되기 때문이다’고 하였느니라.


爾時,薩陁波崙菩薩報空中聲言:‘我當從教!

何以故?我欲爲一切衆生作大明,欲集一切諸佛法,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그 때에 살타파륜보살이 공중의 소리에 대답하기를 ‘저는 마땅히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광명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요, 

일체 부처님의 불법을 쌓고자 하기 때문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느니라.


薩陁波崙菩薩復聞空中聲言:‘善哉!善哉!善男子!汝於空、無相、無作之法,應生信心,以離相心求般若波羅蜜,離我相乃至離知者、見者相。

當遠離惡知識,當親近供養善知識。何等是善知識?能說空、無相、無作、無生、無滅法及一切種智,令人心入歡喜信樂,是爲善知識。

살타파륜보살에게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으니,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법에 믿는 신심(信心) 내어야 하며 

상(相)을 여의는 마음으로써 반야바라밀을 구하면서, 나라는 아상(我相)을 여의야 하며,

나아가 , 오식(五識)으로 알아차리는 지자(知者)ㆍ색(色)을 보는 견자(見者)라는 상(相) 여의야 하느니라. 

마땅히 나쁜 벗을 멀리 여의어야 하고, 선지식(善知識)을 친근하면서 공양해야 하나니, 

어떤 이가 선지식인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 무생(無生)ㆍ무멸(無滅)의 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지를 설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믿음의 즐거움에 들게 하는 이가  선지식이니라.


善男子!汝若如是行,不久當聞般若波羅蜜 若從經卷中聞,若從菩薩所說聞。

善男子!汝所從聞是般若波羅蜜處,應生心如佛想。

善男子!汝當知恩,應作是念:“所從聞是般若波羅蜜者,卽是我善知識。我用聞是法故,疾得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親近諸佛,常生有佛國中,遠離衆難,得具足無難處。”

善男子!當思惟籌量是功德,於所從聞法處,應生心如佛想。

선남자여, 만약 이와 같이 행한다면 오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리니, 혹은 경권 가운데에서 듣게 되거나 혹은 보살의 설명으로부터 듣게  것이니,

선남자여, 그대가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는 곳은 마땅히 부처님과 같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은혜를 알아야 하며, 또한 생각하기를 ' 반야바라밀을 들려주는 이가  나의 선지식이니, 나는  법을 들음으로써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신속히 얻어서 모든 부처님을 친근(親近)하며, 항상 부처님이 계신국토에 태어나서 여러 재난을 멀리 여의어서 재난이 없는 무난처(無難處)를 완전히 갖추리라.'라고 하여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공덕을 사유하고 헤아리면서  법을 듣게 되는 곳이라면, 마치 부처님과 같다고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汝善男子!莫以世利心故隨逐法師,但爲愛法、恭敬法故,隨逐說法菩薩。

爾時,當覺知魔事。若惡魔與說法菩薩作五欲因緣,假爲法故令受;若說法菩薩入實法門,以德力故受而無所染。

又以三事故受是五欲:以方便力故,欲令衆生種善根故,欲與衆生同其事故。

汝於是中莫生污心,當起淨想!自念:“我未知漚和拘舍羅,大師以方便法,爲度衆生,令得福德故,受是諸欲,於智慧無著無㝵,不爲欲染。” 

그대 선남자여, 세간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법사(法師)를 따르지 말것이며, 

다만 법을 사랑하고 법을 공경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보살을 따르라.

그 때에는 악마의 마사(摩事)를 깨달아 알아야 하나니, 만약 악마가 설법하는 보살에게욕(五欲)의 인연을 지어주면서 거짓된 법을 위하여 그로 하여금 받게 하여도,  설법하는 보살이 진실한 실법(實法)의 문에 들어 갔다면,  공덕의 힘때문에 받고서도 물듦이 없을 것이니라. 

  가지  때문에 이 욕을 받는 것이니,  방편력 때문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심게 하기 위한 때문이요, 중생들과 일을 함께 하기 위한 때문이니라.

그대는  가운데에서 물든 마음의 오심(污心)을 내지 말고 깨끗한 생각을 일으키며 생각하기를,

'나는 아직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 upāyakauśalya. 방편선교方便善巧)를 알지 못하나, 대사(大師)가 방편의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복덕을 얻게 하기 위하는 것이니, 이 모든욕을 받되, 지혜에 있어서 집착도 없고 장애도 없으며, 욕탐에 물들지도 않으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善男子!卽當觀諸法實相!諸法實相者,所謂一切法不垢不淨。

何以故?一切法自性空,無衆生、無人、無我,一切法如幻、如夢、如響、如影、如炎、如化。

善男子!觀是諸法實相已,當隨法師,汝不久當成就般若波羅蜜。

復次,善男子!汝當復覺知魔事:若說法菩薩見欲受般若波羅蜜人,意不存念,汝不應起心怨恨;汝但當以法故恭敬,莫起厭懈意,常應隨逐法師。’”

선남자여, 법의 실상(實相)을 관찰해야 하나니, 제법의 실상이란, 이른바 일체법이 더럽지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이니, 

왜냐 하면, 일체법은 스스로의 성품이 공한, 자성공(自性空)이며, 중생도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고, 무인(無人), 무아(無我)이며,

일체법은 마치 환과 같은 여환(如幻)이고,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고,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이며, 그림자와 같은 여영(如影)이며, 꿈아지랑이와 같은 여염(如焰)이고, 변화한  것과 같은 여화(如化)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법의 실상을 관찰한 뒤에는 법사를 따라야 하나니, 그대는 오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성취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다시 악마의 마사(摩事)를 깨달아야 하리니, 설령 설법하는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을 보고도 염두에 두지 않을지라도, 그대는 마음에 원한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대는 오직 법을 공경할 뿐이요, 싫증을 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하며, 언제나 법사를 따라야 하느니라.”


▶論. 釋曰:上品中說:“新發意菩薩云何教性空法?”性空法畢竟無所有空,難解難得故。

佛答:“法先有今無耶?”
佛意:性空法非難得難知。何以故?本來常無,更無新異,汝何以心驚謂爲難得?是性空法雖甚深,菩薩但能一心勤精進,不惜身命,作如是一心求,便可得。此中說薩陁波崙本生爲證。

▷논. 해석하겠다. 앞의 품인 상품(上品, 열반여화품 涅槃如化品)에서 말하기를 “새로 뜻을  초발의 보살에게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까?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 필경에 있는 바가 없는 필경무소유공(畢竟無所有空)이라서, 알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반문하시기를 “앞에서는 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인가?”라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 뜻하신 바는,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 얻기 어렵거나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이니, 

왜냐 하면, 본래부터 항상 없던 무상(常無)한 것이요, 새로이 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마음으로 놀라면서 얻기 어렵다고 여기는 것인가!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 비록 심히 깊을지라도, 보살은 다만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 뿐이니, 이와 같이 일심으로 구한다  얻을  있다’는 것으로,  

여기에서 살타파륜의 본생(本生)을 말씀하시어 그것을 증명하셨다.


佛法有十二部經,或因修妒路、偈經、本生經得度;今佛以本生經爲證。若有聞者,作是念:“彼人能得,我亦應得。”是故說薩陁波崙菩薩本生因緣。佛告須菩提:“菩薩求般若波羅蜜,應如薩陁波崙。”

부처님의법에는 12부경(部經)이 있어서 혹은 수투로(修妬路, 수타라,  sūtra, 산문 형식의 경)와 게경(偈經,  gāthā, 가타伽陀)과 본생경(本生經, 본생담, 자타카 Jataka)으로 인하여 제도되기도 하나니,  

지금 부처님께서는 본생경으로써 증명을 삼으시는 것이니, 들은 이가 생각하기를 ‘그 사람도 얻었으니, 나 또한 얻을 수 있으리라.’고 하게 되기 때문에 살타파륜보살의 본생의 인연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신 바는 “보살이 반야바라밀 구하기를 마땅히 살타파륜 보살과 같이 해야 한다”라고 하신 것이다.

 

반야경의 십이부경= 계경(契經), 응송(應頌), 기별(記別) 또는 기별(記莂), 풍송(諷頌), 자설(自說), 인연(因緣)

또는 연기(緣起),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희법(希法), 비유(譬喩), 논의(論議)이며,

장아함, 칠지경, 잡아함, 본사경의 12부경이 있음.


問曰:若般若波羅蜜無相、畢竟空,行禪定猶尚難得,何況憂愁啼哭散心求覓而當可得!

묻나니, 만약 반야바라밀이 무상(無相)이고 필경공(畢竟空)이라면, 선정을 행하여도 오히려 얻기 어려울 것이거늘, 하물며 근심하고 슬피 울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구하여서 얻을  있겠습니까?


答曰:爲新發意菩薩說薩陁波崙。

답하나니, 새로이 뜻을  신발의 보살을 위하여 살타파륜을 말씀하신 것이다.


問曰:若薩陁波崙是新發意,十方諸佛云何現在其前,得諸三昧?不惜身,又見曇無竭,復得無量阿僧祇三昧,云何名新發意?

묻나니, 만약 살타파륜이 바로 새로이 뜻을 낸 신발의라면, 어찌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신 것이며? 모든 삼매(三昧)를 얻은 것입니까?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다시 담무갈(曇無竭, 다르모가타, Dharmogata, 법기 보살法起菩薩)을 뵙고 다시 무량한 아승기의 삼매를 얻었거늘, 어떻게 ‘새로이 뜻을  신발의(新發意)’라 것입니까?


答曰:新學菩薩有二種:一者、深心著世閒樂,軟心發意;二者、深心發意,不著世閒樂。軟心發意者,佛不以爲發心;深心發意者,乃名爲發心。如聲聞法中,佛語二比丘:“於我法中,乃至無如毛釐煖法。”佛觀是煖法最爲微小,凡人觀之以爲大;譬如國王,見一張㲲,不以爲多,貧者見之以爲多。以一心不惜身故,說薩陁波崙爲證。

답하나니, 새로이 배우는 신학(新學) 보살에는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깊은 심심(深心)으로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하면서 연한 마음으로 뜻을 내는 연심발의(軟心發意)요, 

둘째는 깊은 심심(深心)으로 뜻을 내어서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하지 않는 이이다. 

부처님께서는 연심발의(軟心發意)한 이는 발심하였다고 하시지 않으시며,

깊은 마음의  심심(深心)으로 뜻을  이라야 비로소 발심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성문법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가운데에는 털끝만큼의 난법(煖法, uṣmagata-dharma. 4제 四諦의 이치에 가까이 다가선 지혜)도 없다”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는 이 난법(煖法)을 가장 미미하고 작은 것으로 보시는 것이지만, 범부인은 그것을 크다고 보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국왕은  장의 담요를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지만, 가난한 이는 그것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나니, 

일심으로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살타파륜으로 증명을 삼으신 것이다.


問曰:若薩陁波崙菩薩能作如是苦行、從曇無竭得諸三昧,應當作佛,今何以故在大雷音佛所修菩薩行?

묻나니, 만약 살타파륜보살이 이와 같이 고행(苦行)할  있었다면, 담무갈(曇無竭, 다르모가타, Dharmogata, 법기 보살法起菩薩)로부터 모든 삼매를 얻고는 마땅히 부처님을 이루었어야 하셨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대뢰음(大雷音) 부처님 처소에서 보살의 행을 닦고 있는 것입니까?


答曰:佛法無量無邊,若千萬阿僧祇劫修勤苦行尚不可得,何況薩陁波崙一世苦行!復有菩薩具足菩薩道、十力、四無所畏等,爲衆生故住世閒,未取實際,如文殊師利等;薩陁波崙或能如此,故未作佛。

답하나니, 부처님의법은 무량하고 무변하나니, 아승기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을 닦을지라도 오히려 얻기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살타파륜의  세상 동안의 고행이겠는가!

 어떤 보살은 보살도와 10력과 4무소외 등을 완전하게 갖추었으면서도 중생들을 위한 까닭에 세간에 머무르면서 실제(實際)를 아직 취하지 않는 이도 있나니, 마치 문수사리(文殊師利) 등과 같으며,

살타파륜도  이러한 이일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부처님이 되지 않은 것이리라.


菩薩三昧如十方國土中塵數,薩陁波崙所得六萬三昧何足爲多!

大雷音佛者,應如大龍王將欲降雨,震大雷音,烏雀、小虫悉皆怖畏;是佛初轉法輪時,十方衆生皆發心,外道邪見皆恐怖懾伏,是故天人衆生稱佛爲大雷音。是佛今現在。須菩提問:“薩陁波崙菩薩摩訶薩云何求般若波羅蜜?”

보살삼매(菩薩三昧)는 시방의 국토에 있는 미진과 같으나, 살타파륜이 얻은 것은 6만의 삼매이거늘 어찌 이것을 많다 할 수 있겠는가?

‘대뢰음불(大雷音佛)’이란, 마치 큰 용왕이 장차 비를 내리고자 할 때 크게 우레 소리를 떨치면 까마귀ㆍ참새ㆍ작은 곤충까지도 모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이 부처님께서 처음에 법륜을 굴리신, 초전법륜(初轉法輪) 하실 때에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발심하였으며, 외도(外道)와 삿된 사견을 지닌 이들이 모두 다 두려워하면서 굴복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하늘과 사람과 중생들이 그 부처님을 ‘대뢰음(大雷音)’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부처님께서는 지금 현재도 계시나니, 따라서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구한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