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96권 1
大智度論 釋涅槃如化品 第八十七卷 第九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7. 열반여화품(涅槃如化品)을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若諸法平等、無所爲作,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於平等中不動而行菩薩事,以布施、愛語、利益、同事?”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평등하여 작위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라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평등한 가운데에서 동요하지 않으면서도 보시(佈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로써 보살의 일을 행하는지요?”
佛告須菩提:“如是!如是!如汝所說:‘是諸法平等、無所作。’若是衆生自知諸法平等,佛不用神力,於諸法平等中不動而拔出衆生吾我想,以空度五道生死乃至知者、見者相;度色相乃至識相,眼相乃至意相,地種相乃至識種相;遠離有爲性相,令得無爲性相,無爲性相卽是空。”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이 제법은 평등하여 짓는 바가 없느니라.
만약 이 중생이 스스로 제법이 평등하다는 것을 안다면, 부처님께서 신력으로써 제법의 평등한 가운데에서 부동하면서도 중생들을 아집에서 구출하거나, 공으로써 5도(道)의 생사 내지는 아는 지자(知者)ㆍ보는 견자(見者)의 상(想)에서 제도하거나,
물질의 색상(色相)ㆍ 느낌의 수상(受相)ㆍ생각의 상상(想相)ㆍ 지어감의 행상(行相)ㆍ분별의 식상(識相)과
눈의 안상(眼相)ㆍ 귀의 이상(耳相)ㆍ코의 비상(鼻相)ㆍ혀의 설상(舌相)ㆍ몸의 신상(身相) ㆍ 뜻의 의상(意相)과
땅의 요소인 지종상(地種相) 내지는 식의 요소인 식종상(識種相)에서 제도하거나,
유위의 성상(性相)을 멀리 여의면서 무위의 성상(性相)을 얻게 할 필요가 없었으리니,
무위의 성상(性相)이 곧 공(空)이니라.”
須菩提言:“世尊!用何等空故一切法空?”
佛言:“菩薩遠離一切法相,用是空故一切法空。須菩提!於汝意云何?若有化人作化人,是化頗有實事不空者不?”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공(空)으로써 일체법이 공(空)한 것이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일체법의 법상(法相)을 멀리 여의나니, 이 공(空)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체법이 공(空)한 것이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변화로 된 화인(化人)이 변화한 화인(化人)을 만들 때, 이 변화에 행여 진실함이 있고 공(空)하지 않음이 있는 것인가?”
須菩提言:“不也!世尊!是化人無有實事而不空。”“是空及化人二事不合不散,以空空故空,不應分別是空、是化。何以故?是二事等,空中不可得,所謂是空、是化。所以者何?
須菩提!色卽是化,受、想、行、識卽是化,乃至一切種智卽是化。”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변화로 된 화인(化人)은 진실함이 있거나 공(空)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이 공(空)과 변화한 화인(化人), 두 가지는 는 불합(不合), 흩어지지 않는 불산(不散)이며, 공조차도 공하다는 공공(空空, śūnyatāśūnyatā)이기 때문에 공한 것이니, ‘이것이 공(空)이요, 이것이 변화의 화(化)이다’라고 분별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두 가지는 똑같이 공(空)한 것 가운데서 이른바 ‘이것이 공(空)이다, 이것이 변화(化)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色)이 곧 변화인 색즉시화(色卽是化)요, 느낌의 수(受)ㆍ생각의 상(想)ㆍ 지어감의 행(行)ㆍ분별의 식(識)이 곧 변화(化)이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곧 변화인 일체종지즉시화(一切種智卽是化)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世閒法是化,出世閒法,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三解脫門,佛十力、四無所畏、四無礙智、十八不共法,幷諸法果;及賢聖人,所謂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菩薩摩訶薩、諸佛。世尊!是法亦是化不?”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법이 곧 변화(化)라면 출세간법(出世間法)도 역시 변화(化)인지요?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ㆍ3해탈문(解脫門)과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과 아울러 제법의 과위와
성현으로서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과 보살마하살 그리고 모든 불ㆍ세존 등의 이러한 법 또한 변화(化)인지요?”
佛告須菩提:“一切法皆是化。於是法中,有聲聞法變化,有辟支佛法變化,有菩薩摩訶薩法變化,有諸佛法變化,有煩惱法變化,有業因緣法變化。以是因緣故,須菩提!一切法皆是化。”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법은 모두가 변화(化)이니라. 이 법에서는 성문법의 변화(變化)가 있고, 벽지불법의 변화(變化)가 있으며, 보살마하살법의 변화(變化)가 있고, 모든 부처님의 불법의 변화(變化)가 있으며,
번뇌법의 변화(變化)가 있고, 업 인연법의 변화(變化)가 있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수보리야, 일체법은 모두가 변화(化)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是諸煩惱斷,所謂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佛道,斷諸煩惱習 皆是變化不?”
佛告須菩提:“若有法生滅相者,皆是變化。”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번뇌가 끊어진 것, 다시 말해서 수다원의 과와 사다함의 과와 아나함의 과와 아라한의 과와 벽지불도로써 모든 번뇌와 습기가 끊어진 것 모두도 변화(變化)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법에 나고 없어지는 생멸상(生滅相)이 있으면, 그러한 모두는 변화(變化)이니라.”
須菩提言:“世尊!何等法非變化?”佛言:“若法無生無滅,是非變化。”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법이 변화(變化)가 아닌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법으로서 나는 생(生)도 없고 없어지는 멸(滅)도 없다면, 그것은 곧 변화(變化)가 아니니라.”
須菩提言:“何等是不生不滅非變化?”佛言:“無誑相涅槃,是法非變化。”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나지도 않는 불생(불不生)이고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라서 변화가 아닌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이 없는 무광상(無誑相)의 열반이니, 이 법이 변화가 아니니라.”
“世尊!如佛自說:‘諸法平等,非聲聞作、非辟支佛作、非諸菩薩摩訶薩作、非諸佛作,有佛、無佛諸法性常空。’性空卽是涅槃,云何言涅槃一法非如化?”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한 바와 같이 제법의 평등은 성문이 만든 것도 아니고, 벽지불이 만든 것도 아니며,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든 것도 아니고, 모든 부처님께서 만든 것도 아닌 것으로,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제법의 법성(法性)은 언제나 공(空)하며, 그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 곧 열반이거늘,
어찌하여 ‘열반의 일법(一法)만이 변화와 같은 것이 아닌, 비여화(非如化)이니라’고 말씀하시는지요?”
佛告須菩提:“如是!如是!諸法平等,非聲聞所作,乃至性空卽是涅槃。若新發意菩薩聞是一切法皆畢竟性空乃至涅槃亦皆如化,心則驚怖;爲是新發意菩薩故,分別生滅者如化、不生滅者不如化。”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제법의 평등은 성문(聲聞)이 만든 것이 아니요, 나아가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 곧 열반이니라.
만약 새로 뜻을 낸 초발의 보살이 ‘이 일체법은 마침내 성품이 공한 필경성공(畢竟性空)이며 나아가 열반 또한 모두가 변화와 같은 여화(如化)이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으로 곧 놀라고 두려워하나니,
이 새로 뜻을 낸 초발의 보살을 위하여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은 변화와 같으며,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멸(不生滅)은 변화와 같지 않다’고 분별하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教新發意菩薩,令知是性空?”
佛告須菩提:“諸法本有今無耶?”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새로 뜻을 낸 초발의 보살들을 교화하여 이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을 알게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제법이 본래는 있었다가 지금에 와서 없어진 것이던가?”
▶論. 問曰:是事佛先已答,須菩提今何以更問?所謂:“世尊!若諸法平等,無所作爲,云何菩薩於諸法平等中不動而大利益衆生?”
▷논. 묻나니, 이러함에 대해서는 앞에 부처님께서 이미 대답하신 것이거늘,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다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평등하여서 지음이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라면, 어떻게 보살이 제법의 평등한 가운데에서 동요하지 않으면서 중생들을 크게 이롭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입니까?
答曰:以是事難解故,雖先說而更問。又經將訖,佛說“深空,凡夫、聖人所不能行、所不能到”;是故須菩提知一切法平等相定空,云何菩薩住是法中而能利益衆生?平等法無作相,利益是有作相。
답하나니, 이것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록 앞에서 말씀하셨을지라도 다시 여쭌 것이며,
또한 이제 경을 마치고자 하시면서 부처님께서는 깊은 심공(深空)에 대하여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범부나 성인이 행할 수 없는 것이요, 도달할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일체법의 평등한 평등상(平等相)은 결정코 공(空)이라는 것을 알겠거늘, 어떻게 하여 보살이 이러한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이롭게 할까?”라고 한 것이니,
평등법은 조작이 없는 무작상(無作相)이요, 이롭게 하는 것은 조작이 있는 유작상(有作相)이기 때문이다.
佛可須菩提意,還以須菩提問而答。可其平等,答其利益衆生,所謂若衆生自知諸法平等畢竟空,佛無恩力。若病人自知將適,則藥師無功。
須菩提復問:“若諸法實相畢竟空、無所能作,菩薩何以住是中而利益衆生?”若菩薩用是平等利益衆生,則壞實相!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의 뜻을 인가하시고, 도리어 수보리의 물음으로 대답하셨으니,
곧, 평등을 인정하시면서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에 대하여 답하시기를, “만약 중생들 스스로가 제법의 평등과 필경공임을 안다면, 부처님의 은혜나 힘도 없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가령 병든 사람이 스스로 알맞게 약을 고를 줄 안다면, 곧 약사(藥師)의 공력도 없게 되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또 여쭈기를 “만약 제법의 실상(實相)이 필경공이라서 짓는 것이 없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지요?
만약 보살이 이 평등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한다면, 곧 실상(實相)을 파괴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佛答:“菩薩不以諸法實相利益衆生,但衆生不知畢竟空故,菩薩教詔令知。”菩薩教化衆生,是爲對治悉檀;須菩提以第一義悉檀無利益爲難。佛答:衆生顚倒不知,佛但破其顚倒。不言是實。是故菩薩住是平等相中,遠離我相乃至知者、見者相,是名“衆生空”;以是一切無吾我法,教化衆生。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보살은 제법의 실상(實相)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중생들이 필경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보살이 가르쳐 주어서 알게 하는 것일 뿐이니라”고 하셨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미혹을 대치하여서 이익을 주는, 대치실단(對治悉檀, prātipākṣika-siddhānta)으로, 수보리 존자는 제일의(第一義)의 입장인, 실단(悉檀, siddhānta)에서는 이익이 없다는 것으로 따진 것이나,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중생들이 뒤바뀌어 전도되어서 모르고 있으므로 부처님은 다만 그 뒤바뀜의 전도만을 깨뜨릴 뿐이니, ‘이것은 진실하다’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에 보살은 이 평등상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나라는 아상(我相) 내지는 아는 지자(知者)와 보는 견자(見者)의 상(相)을 멀리 여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중생공(衆生空)이라 하며,
이러한 일체의 무아법(無我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느니라”고 하셨다.
실단(悉檀, siddhānta)은 ‘범주’나 ‘입장’을 의미하며 ‘성취’ ‘종(宗)’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衆生有二種:一者、愛多,二者、見多。愛多者,得是無我法,則生厭心、離欲;作是念:“若無我,何用餘物!”見多者,雖知無我法,於色等法中戲論若常、若無常等;是故次說色相、五衆、十二入、十八界,乃至遠離有爲性相,令得無爲性相 無爲性相卽是空。是名法空。
중생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애욕(愛)이 많은 이요, 둘째는 소견(見)이 많은 이이다.
애욕이 많은 이는 나 없는 무아법(無我法)을 얻으면 곧 싫증을 내고 욕탐을 여의면서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없는 무아(無我)라면 그 밖의 물건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며,
소견이 많은 이는 비록 무아법(無我法)을 알지라도 물질(色) 등의 법에 대하여 ‘항상 하다’거나 ‘무상하다’는 등의 희론을 하기 때문에 물질의 색상(色相)과 5중(衆, 오온)ㆍ12입(入)ㆍ18계(界)를 따라서 말하여 주며, 나아가 유위의 성(性)과 상(相)을 멀리 여의게 하고, 무위의 성(性)과 상(相)을 얻게 하나니,
무위의 성(性)과 상(相)이 곧 공(空)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공(法空)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須菩提何以作是問:“用何等空故一切法空?”
묻나니,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하였으며 또 “어떠한 공(空)을 쓰기 때문에 일체법이 공(空)한 것입니까”라고 여쭌 것입니까?
答曰:空有種種:如火中無水、水中無火,亦是空;五衆中無我亦如是,或有衆生空,或有法空。
法空中,或有人言:“諸法雖空,亦不盡空,如色空中有微塵根本在。”
是故須菩提問:“以何等空故,一切法空?”
佛答:“以無所得畢竟空故,遠離一切相。”是故此中說衆生空、法空,是二空故,一切法無不空。
답하나니, 공(空)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마치 불 속에는 물이 없고, 물 속에는 불이 없는 것과 같은 것도 역시 공(空)이요,
5중(衆) 속에 무아(無我)인 것 또한 그와 같아서 혹은 중생공(衆生空)이 있기도 하고 혹은 법공(法空)이 있기도 하나니,
법공(法空)에 대하여 어떤 분이 말하기를 “제법이 비록 공(空)할지라도 역시 모두가 다 공한 것은 아니니, 마치 공한 가운데에는 작은 티끌의 근본은 존재하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기 때문에 수보리가 여쭈기를 “어떠한 공을 쓰기 때문에 일체법이 공한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며,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며서 필경공이기 때문에 일체의 상(相)을 멀리 여의느니라”고 하셨으며, 이러한 까닭에 이 가운데에서는 중생공(衆生空)과 법공(法空)을 말씀하신 것이며, 이 두 가지 공 때문에 일체법이 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