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95권 3
大智度論 釋七喩品 第八十五卷 第九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5. 칠유품(七喩品)을 풀이함 3
雖二法皆不實,而不實中有差別。如十善、十不善二事,皆有爲法故,虛誑不實;而善、不善有差別 殺生法故,墮惡道;不殺故,生天上。如布施、偸盜二事,雖取相著心,是虛誑不實,而亦有差別。如衆生乃至知者、見者無所有,而惱衆生有大罪,慈念衆生有大福。
비록 불청정법(不淸淨法)과 청정법(淸淨法)의 두 가지 법 모두가 진실하지 않을지라도 진실하지 않은 가운데에서 차별이 있는 것이니, 마치 열 가지의 십선(十善)과 열 가지의 십불선(十不善)과 같은 것으로, 두 가지 모두가 유위법(有爲法)이기 때문에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으며,
선(善)과 불선(不善)에는 차이가 있나니, 산목숨을 죽인 까닭에 악도에 떨어지고,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보시와 도둑질의 두 가지에서도 비록 상(相)을 취하여 마음으로 집착하는 착심(著心)하는 모두가 바로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은 것이지만, 또한 그 중에서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며,
마치 중생 내지는 아는 지자(知者)ㆍ보는 견자(見者)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지만, 중생들을 괴롭히면 큰 죄가 있게 되고, 중생을 자비로 대하면 큰 복이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如慈能破瞋、施能破慳,雖二事俱是不實,而能相破。是故佛說:“諸法無有根本定實如毫釐許所有。”欲證明是事故,說夢中受五欲譬喩。
'인자한 자(慈)'는 성내는 진(瞋)을 깨뜨리고, '베푸는시(施)'는 간탐을 깨뜨리나니,
이 두 가지가 비록 다 같이 진실하지 않다 할지도 서로를 파괴할 수가 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제법에는 털끝만큼도 그 근본과 정해진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이러함을 증명하시고자 ‘꿈속에서 오욕(五欲)을 받는 등’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須菩提意:若一切法畢竟空無所有性,今何以故現有眼見、耳聞法?以是故,佛說夢譬喩。
如人夢力故,雖無實事而有種種聞見,瞋處、喜處;覺人在傍,則無所見。如是,凡夫人無明顚倒力故,妄有所見;聖人覺悟,則無所見。一切法若有漏若無漏、若有爲若無爲,皆不實,虛妄故有見聞。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일체법이 필경공이라서, 지닌 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무엇 때문에 지금 눈으로는 빛깔(色)을 보고, 귀로는 법(法)을 듣게 되는 것인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꿈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니,
마치 사람이 꿈이라는 힘 때문에 비록 진실함이 없을지라도 갖가지를 듣고 보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은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범부인은 무명(無明)의 뒤바뀐 전도력(顚倒力) 때문에 망령되이 보는 것이 있지만,
성인은 깨친 분이시므로 보는 것이 없으니,
일체법은 유루(有漏)ㆍ무루(無漏)와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모두는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기 때문에 보거나 듣는 일이 있는 것이다.
又如夢中見六道生死往來、見須陁洹乃至阿羅漢,夢中無是法而夢見,夢中實無淨、無垢。業果報六道亦如是,顚倒因緣故起業,業果報亦應空。除卻顚倒故名爲道;顚倒無實故,道亦不應實。鏡中像、嚮、焰乃至如化亦如是。
또한 마치 꿈속에서 육도(六道)에 생사 왕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도 보게 되나니,
꿈속에서는 이러한 법이 없음에도 꿈으로는 보는 것이며, 꿈속에서는 실로 깨끗한 정(淨)도 없고 더러운 구(垢)도 없는 것이니, 업의 과보와 육도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나, 뒤바뀐 전도인연(顚倒因緣) 때문에 업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업의 과보 또한 마땅히 공한 것이다.
뒤바뀜의 전도(顚倒)를 물리쳐 없애기 때문에 도(道)라 하지만, 뒤바뀜의 전도(顚倒)는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도(道) 또한 진실하지 않아야 하나니, 거울 속의 형상과 메아리와 아지랑이에서 변화한 화(化) 등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佛反問須菩提:“於是法中有垢者、有淨者不?”
須菩提意:一切法中無我,云何當說有垢、有淨者?是故言無。
佛言:“若無受垢、受淨者,垢、淨亦無。”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반문(反問)하시면서 “이 법에도 더러운 구(垢)가 있고 깨끗한 정(淨)이 있는가?”라고 하시니,
수보리 존자가 ‘일체법은 나가 없는 무아(無我)이거늘, 어떻게 더러운 구(垢)가 있고 깨끗한 정(淨)이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생각한 때문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더러운 구(垢)를 받아들이는 이나 깨끗한 정(淨)을 받아들이는 이가 없다면,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것 또한 없는 것이다”고 하셨다.
問曰:若分別諸法,阿毘曇等經中有垢、有淨,但受垢淨者無。三毒等諸煩惱是垢,三解脫門諸助道法等是淨。
묻나니, 만약 제법을 분별한다면 '아비담(阿毘曇)' 등의 경에서는 “더러운 구(垢)도 있고 깨끗한 정(淨)도 있으나, 다만 더러운 구(垢)와 깨끗한 정(淨)을 받아들이는 이가 없을 뿐이니,
삼독(三毒) 등의 모든 번뇌가 바로 더러운 구(垢)요,
삼해탈문(三解脫門) 등의 모든 도를 돕는 조도법(助道法)이 바로 깨끗한 정(淨)이다”고 하였습니다.
答曰:雖有是說,是事不然!若衆生法無所屬,亦無作者;若無作者,亦無作法,無縛無解。如人爲火所燒,畏而捨離,非火離火;衆生亦如是,畏五衆苦故捨離,非苦離苦。若無垢淨者,無有解脫。
답하나니, 비록 그러한 설명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만약 중생과 법이 속한 데가 없는 무소속(無所屬)이라면, 또한 짓는 작자(作者)도 없을 것이고,
만약 짓는 작자(作者)가 없다면 또한 짓는 작법(作法)도 없어서, 속박도 없는 무박(無縛)이고 벗어남도 없는 무해(無解)이니,
마치 사람이 불에 데이면 불이 두려워서 버리고 여의나, 불이 불을 여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중생들 또한 이와 같아서, 오중(五衆, 오온)의 괴로움이 두렵기 때문에 버리고 여의는 것이요
괴로움이 괴로움을 여의는 것은 아니니, 만약 더러운 구(垢)와 깨끗한 정(淨)이 없으면 해탈도 없는 것이다.
復次,佛此中自說因緣,所謂:“我、我所法中住,衆生受垢、受淨。
我畢竟無故,垢淨無住處;住處無故,無垢、無淨。”
또한 부처님께서 친히 이 가운데에서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나(我)와 내 것의 아소(我所)라는 법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은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깨끗한 것도 받아들이지만, 나(我)는 끝내 없는 필경무(畢竟無)이기 때문에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머무를 곳이 없으며,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에 더러운 구(垢)도 없고 깨끗한 정(淨)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問曰:我雖無,我見實有,凡夫人住此中起諸煩惱。
묻나니, 나(我)에게는 비록 나라는 견해의 아견(我見)이 없다고 할지라도, 범부인은 실로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答曰:若無我,我見無所緣,無所緣云何得生?
답하나니, 만약 나(我)와 나라는 견해의 아견(我見)이 없으면 반연할 소연(所緣)도 없나니,
반연할 소연(所緣)이 없거늘 어떻게 번뇌를 내겠는가?
問曰:雖無我,於五衆中邪行謂有我,生我見;五衆是我、我所。
묻나니, 비록 나가 없는 무아(無我)일지라도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에서 삿된 사행으로 나(我)가 있고 나라는 견해의 아견(我見)을 내면서 ‘오중(五衆, 오온)이 곧 나요, 내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答曰:若以五衆中定生我見因緣,於他五衆中何以故不生?
若於他五衆生者,則爲大錯亂!是故我見無有定緣,但顚倒故生。
답하나니, 만약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에서 결정코 나라는 아견(我見)을 내는 인연이 있다면,
타인의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에서는 무엇 때문에 내지 않는 것인가?
만약 타인의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에서도 낸다면 큰 혼란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소견의 아견(我見)은 일정한 인연이 없는 것이나, 다만 뒤바뀌어 전도된 것이기 때문에 낼 뿐인 것이다.
問曰:若顚倒生,何以故但自於己身生見?
묻나니, 만약 뒤바뀜의 전도 때문에 내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다만 자신의 몸에 대해서만 견해를 내는 것입니까?
答曰:是顚倒狂錯,不應求其實事。又復於無始生死中來,自於相續五衆中生著;是故佛說:“住我心衆生受垢、受淨。”
답하나니, 이 뒤바뀜의 전도는 미치고 그릇된 광착(狂錯)이라 그 실제의 일을 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비롯함이 없는 무시(無始)로부터 나고 죽는 생사(生死)를 거듭하면서 상속(相續)한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에 스스로 탐착을 내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我)라는 마음의 아심(我心)에 머무르는 중생은 더러운 구(垢)도 받고 깨끗한 정(淨)도 받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又實見者無垢無淨;若我定有實見者應有垢淨!如實見者不垢不淨,以是因緣故無垢無淨。無垢無淨者,見諸法實相。又於諸法實相亦不著,是故無垢;諸法實相無相可取,是故無淨。
復次,八聖道中不著,是名無淨;除諸煩惱,不著顚倒,是名無垢。
또한 여실하게 보는 실견자(實見者)는 더러운 구(垢)도 없고 깨끗한 정(淨)도 없지만, 만약 나(我)는 결정코 진실한 것이 있다고 보는 이에게는 더럽고 깨끗함이 있어야 하나니,
여실하게 보는 실견자(實見者)는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는 이는 제법의 실상을 보게 되나, 또한 제법의 실상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더러운 구(垢)가이 없으며, 제법의 실상은 취할 만한 상이 없는 무상가취(無相可取)인 까닭에 깨끗한 정(淨)도 없는 것이다.
또 팔성도(八聖道) 가운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바로 깨끗함이 없는 무정(無淨)이라 하며,
모든 번뇌를 없애고 뒤바뀜의 전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바로 더러움이 없는 무구(無垢)라 하는 것이다.
大智度論 論釋平等品 第八十六 第九十五
86. 평등품(平等品)을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見實者不垢不淨,見不實者亦不垢不淨。何以故?一切法性無所有故。
世尊!無所有中無垢無淨,所有中亦無垢無淨。世尊!無所有中有所有中亦無垢無淨。
世尊!云何如實語者不垢不淨,不實語者亦不垢不淨?”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진실이라고 보는 이도 더럽지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이며,
진실하지 않다고 보는 이도 더럽지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이니,
왜냐 하면, 일체법의 법성(法性)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 가운데에는 더러움이 없는 무구(無垢)이고 깨끗함도 없는 무정(無淨)이라면,
있는 것의 소유(所有) 가운데에서도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없는 무구무정(無垢無淨)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 가운데에 있는 바의 소유(所有)가 있으며 또한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무구무정(無垢無淨)입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여실하게 말하는 여실어자(如實語者)도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여실하게 말하지 않는 불실어자(不實語者) 또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인지요?”
佛告須菩提:“是諸法平等相,我說是淨。
須菩提!何等是淨是諸法平等?所謂如、不異、不誑,法相、法性、法住、法位、實際,有佛、無佛法性常住,是名淨。世諦故說,非最第一義;最第一義,過一切語言論議音聲。”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제법의 평등한 평등상(平等相)을 나는 곧 ‘깨끗한 정(淨)이다’고 말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것이 깨끗한 정(淨)인가?
그것은 제법의 평등함이니, 이른바 여(如)와 불이(不異)와 불광(不誑)과 법상(法相)과 법주(法住)와 법위(法位)와 실제(實際)으로,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법성(法性)이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하는 것을 곧 깨끗한 정(淨)이라 하느니라.
하지만,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로써 말하는 것일 뿐, 최제일의(最第一義)는 아니니,
최제일의(最第一義)는 일체의 언어와 논의와 음성을 초월한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空、不可說,如夢、如嚮、如焰、如影、如幻、如化,云何菩薩摩訶薩用是如夢、如嚮、如焰、如影、如幻、如化法,無有根本定實,云何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作是願 ‘我當具足檀波羅蜜,乃至具足般若波羅蜜;我當具足神通波羅蜜,具足智波羅蜜,具足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具足八聖道分;我當具足三懈脫門、八背捨、九次第定;
我當具足佛十力,乃至具足十八不共法;我當具足三十二相、八十隨形好,具足諸陁鄰尼門、諸三昧門;我當放大光明遍照十方,知諸衆生心,如應說法’?”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이 공(空)하여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마치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고,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이며, 아지랑이와 같은 여염(如焰)이고, 그림자와 같은 여영(如影)이며, 환과 같은 여환(如幻)이고, 변화한 것과 같은 여화(如化)이라면,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이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은 법이라서, 그 근본이 없고 정해진 실체가 없는 것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리고 원하기를 ‘나는 마땅히 단(檀, 보시)바라밀을 완전히 갖출 것이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를 완전히 갖추리라.
나는 마땅히 신통(神通)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 지혜바라밀을 완전히 갖추며,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4념처(念處)를 완전히 갖추고 나아가 8성도분(聖道分)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 나는 마땅히 3해탈문과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을 완전히 갖추리라.
나는 마땅히 부처님의 십력을 완전히 갖출 것이며, 나아가 18불공법까지를 완전히 갖추리라.
나는 마땅히 32상호와 80수형호(隨形好)와 모든 다린니(陀鄰尼, dhāraṇī, 다라니)의 문과 모든 삼매의 문을 완전히 갖추리라.
나는 장차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어서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 그들이 응하는 바에 따라 법을 설하리라’고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