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94권 1
大智度論 釋畢定品 第八十三之餘卷 第九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2. 정불국토품을 풀이함 ② 1
▶經. “世尊!菩薩摩訶薩住何等白淨法,能作如是方便力而不受染污?”
佛言:“菩薩用般若波羅蜜作如是方便力,於十方如恒河沙等國土中饒益衆生,亦不貪著是身。何以故?著者、著法、著處,是三法皆不可得,自性空故。空不著空,空中無著者,亦無著處。何以故?空中空相不可得。
須菩提!是名不可得空。菩薩住是空中,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떠한 깨끗한 백정법(白淨法)에 머무르기에 이와 같은 방편력을 쓰면서도 오염(汚染)되지 않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로써 이와 같은 방편력을 쓰는 것이며, 시방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에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자신의 몸에 탐착(貪著)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집착하는 착자(著者)와 집착하는 착법(著法)과 집착하는 곳의 착처(著處), 이 세 가지의 법은 모두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며 자성공(自性空)이기 때문이니,
공은 공을 탐착하지 않는 공불착공(空不著空)이고, 공에서는 탐착하는 이도 없는 공중무착자(空中無著者)이며, 탐착할 곳도 없는 역무착처(亦無著處)이니,
왜냐 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공한 공상(空相)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를 이름하여 불가득공(不可得空)이라 하며, 보살은 이러한 불가득공 가운데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니라.”
백정법(白淨法), 청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밝고 맑은 것을 의미하지만, 신· 구· 의 삼업(三業)의 모든 수행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원만한 신심'을 ‘백정법(白淨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世尊!菩薩但住般若波羅蜜中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住餘法中耶?”
“須菩提!頗有法不入般若波羅蜜者不?”
“世尊!若般若波羅蜜自性空,云何一切法皆入般若波羅蜜中?世尊!空中無有法若入、若不入。”
“세존이시여, 보살은 다만 반야바라밀에만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그 밖의 법 가운데에는 머무르지 않는 것인지요?”
“수보리야, 어떠한 법이라도 무릇 반야바라밀에 들지 않는 법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만약 반야바라밀이 자성공(自性空)이라면, 어떻게 일체법이 모두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지요?
세존이시여, 공한 가운데에는 들어간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는 어떠한 법도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一切法、一切法相空不?”“世尊!空。”
“수보리야, 일체법과 일체법의 상(相)은 공한 것인가?”
“세존이시여, 공한 것입니다.”
“須菩提!若一切法、一切法相空,云何言一切法不入空中?”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一切法空中,能起神通波羅蜜;住是神通波羅蜜中,到十方如恒河沙等國土,供養現在諸佛,聞諸佛說法,於諸佛所種善根?”
“수보리야, 만약 일체법과 일체법의 상(相)이 공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일체법이 공한 가운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일체법이 공한 가운데에 머물러서 신통바라밀(神通波羅密)을 일으키며, 이 신통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시방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에 이르러서 그 곳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선근을 심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觀是十方如恒河沙等國土皆空,是國土中諸佛亦性空,但假名字故,諸佛現身所假名字亦空。若十方國土及諸佛性不空者,空爲有偏;以空不偏故,一切法、一切法相空。以是故,一切法、一切法相空。是故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用方便力,生神通波羅蜜;住是神通波羅蜜中,起天眼、天耳、如意足、知他心智、宿命智,知衆生生死。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시방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국토들 모두가 공하고, 이 국토에 계신 모든 부처님 또한 성품이 공하여서 다만 임시로 붙인 가명일 뿐이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면서 붙이는 이름 또한 공한 것이라고 관찰하느니라.
만약 시방의 국토와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 공하지 않다면, 그 공에는 치우침이 있게 되지만, 공은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일체법과 일체법의 상(相)은 공한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방편력으로써 신통바라밀을 내며, 이 신통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천안(天眼)과 천이(天耳)와 여의족(如意足)과 지타심지(知他心智)와 숙명지(宿命智)의 오신통을 일으켜 중생의 나고 죽는 일을 아는 것이니라.
若菩薩遠離神通波羅蜜,不能得饒益衆生,亦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摩訶薩神通波羅蜜,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何以故?用是天眼自見諸善法,亦教他人令得諸善法,於善法亦不著,諸善法自性空故,空無所著,若著則受味,是空中無有味。
만약 보살이 신통바라밀을 멀리 여읜다면, 중생을 이롭게 할 수도 없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을 수 없나니, 이 보살마하살의 신통바라밀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인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이 천안(天眼)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모든 착한 선법을 보고 또한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모든 착한 선법을 얻게 하나, 착한 선법에 대하여서 탐착하지도 않기 때문이니,
모든 착한 선법은 자성공(自性空)이기 때문에, 그 공함 가운데에는 탐착할 것이 없는 것이며,
만약 탐착한다면 그 맛(味)을 느끼게 되겠지만, 이 공한 가운데에는 맛(味) 또한 없느니라.
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能生如是天眼,用是眼觀一切法空;見是法空,不取相、不作業;亦爲人說是法,亦不得衆生相、不得衆生名。如是菩薩摩訶薩用無所得法故起神通波羅蜜,用是神通波羅蜜,神通所應作者能作。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와 같은 천안(天眼)을 내고, 이러한 천안으로써 일체법이 공한 것을 관찰하며, 이 법이 공한 것을 보고서 상(相)을 취하지도 않고 업(業)을 짓지도 않으며, 또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하면서도 또한 중생의 상(相)을 얻지 않고 중생이라는 이름(名)도 얻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 법에 의하기 때문에 신통바라밀을 일으키나니, 이 신통바라밀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능히 하는 것이니라.
是菩薩用天眼通過於人眼,見十方國土;見已,飛到十方,饒益衆生 或以布施、或以持戒、或以忍辱、或以精進、或以禪定、或以智慧,饒益衆生;或以三十七助道法,或以諸禪、解脫、三昧,或以聲聞法、或以辟支佛法、或以菩薩法、或以佛法,饒益衆生。
이 보살이 천안통(天眼通)으로써 사람의 눈(眼)을 뛰어넘어서 시방의 국토들을 보며, 본 뒤에는 시방으로 날아가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혹은 보시(報施)로써 혹은 지계(持戒)로써 혹은 인욕(忍辱)으로써 혹은 정진(精進)으로써 혹은 선정(禪定)으로써 혹은 지혜(智慧)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혹은 37조도법(助道法)으로써 혹은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로써 혹은 성문의 법으로써 혹은 벽지불의 법으로써 혹은 보살의 법으로써 혹은 부처님의 법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爲慳者如是說法:‘諸衆生!當行布施,貧窮是苦惱法,貧窮之人自不能益,何能益他?以是故,汝等當勤布施,自身得樂,亦能令他得樂;莫以貧窮故共相食噉,不得離三惡道。’
또 간탐하는 이에게는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되 ‘중생들이여, 마땅히 보시를 행하여야 하나니, 빈궁(貧窮)이란 바로 고뇌의 법이다. 빈궁한 사람은 스스로도 이롭게 할 수 없거늘 어떻게 남을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들은 부지런히 보시하여 스스로도 즐거움을 얻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얻게 하여야 하나니, 빈궁 때문에 서로가 헐뜯고 할퀴지 말라! 그렇게 한다면 삼악도를 여의지 못하리라’고 하며,
爲破戒者說法:‘諸衆生!破戒法大苦惱!破戒之人自不能益,何能益他?破戒法受苦果報:若在地獄,若在餓鬼,若在畜生。汝等墮三惡道中,自不能救,何能救人?以是故,汝等不應隨破戒心,死時有悔。’
또한 파계하는 파계자에게는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기를, ‘여러 중생들이여, 계법(戒法)을 깨뜨리면 큰 고뇌가 있게 되나니, 파계한 사람은 스스로도 이롭게 할 수 없거늘 어떻게 다른 이를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
계법을 깨뜨리면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되어 지옥에 들어가고 아귀나 축생에 태어나게 되나니, 그대들이 삼악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거늘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들은 파계하는 마음을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니, 죽을 때에 뉘우침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며,
若有共相瞋諍者,說如是法:‘諸衆生!莫共相瞋!瞋亂心人,不順善法。汝等今共相瞋亂心,或墮地獄,若餓鬼、畜生中。以是故,汝等不應生一念瞋恚心,何況多!’
爲懈怠衆生說法,令得精進;散亂衆生,令得禪定,愚癡衆生,令得智慧亦如是。
만약 서로가 성을 내면서 다투는 이가 있으면, 그들에게 법을 설하되 ‘여러 중생들이여, 서로 성을 내지 말라. 성을 내어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착한 선법을 따를 수가 없으니, 그대들이 지금 서로가 성을 내어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혹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아귀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축생에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그대들은 한 생각의 일념(一念)이라도 성내는 마음의 진에심(瞋恚心)을 일으키지 않아야하거늘, 하물며 진에심(瞋恚心)을 많이 내는 것이겠는가!’라고 하며,
또한 게으른 해태(懈怠) 중생들을 위해서는 법을 설하여 정진을 얻게 하고,
산란한 중생들에게는 선정을 얻게 하며
어리석은 우치(愚癡) 중생들에게는 지혜를 얻게 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行婬欲者,令觀不淨;瞋恚者,令觀慈心;愚癡衆生,令觀十二因緣。行非道衆生,令入正道,所謂聲聞道、辟支佛道、佛道。爲是衆生如是說法:‘汝等所著是法性空,性空法中不可得著,不著相是空相。’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神通波羅蜜中,爲衆生作利益。
음욕을 행하는 이에게는 부정(不淨)을 닦게 하고, 화를 내는 진에자(瞋恚者)에게는 자심(慈心)을 닦게 하며,
어리석은 우치(愚癡) 중생에게는 12인연(因緣)을 닦게 하느니라.
그릇된 비도(非道)를 행하는 중생에게는 바른 정도(定道), 즉 성문의 도와 벽지불의 도와 부처님의 불도에 들게 하나니,
이러한 중생들을 위해서는 법을 설하되 ‘그대들이 탐착하고 있는 이 법은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니,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가운데에서는 탐착을 얻을 수 없으니, 탐착하지 않는 불착상(不著相)이 바로 공한 공상(空相)이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신통바라밀 가운데에 머물러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을 짓느니라.
須菩提!菩薩若遠離神通,不能隨衆生意善說法。以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起神通。
須菩提!譬如鳥無翅不能高翔;菩薩無神通,不能隨意教化衆生。
以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應起諸神通;起諸神通已,若欲饒益衆生,隨意能益。
수보리야, 만약 신통을 멀리 여의면 중생들의 뜻을 따라 법을 잘 설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신통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새가 날개가 없다면 높이 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에게 신통이 없다면 마음대로 중생들을 교화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마땅히 모든 신통을 일으켜야 하나니, 모든 신통을 일으킨 뒤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뜻대로 이롭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니라.
是菩薩用天眼見如恒河沙等諸國土及見是國土中衆生;見已,用神通力往到其所,知衆生心,隨其所應而爲說法,或說布施、或說持戒,或說禪定乃至或說涅槃法,是菩薩用天耳,聞二種音聲:若人、若非人。用天耳聞十方諸佛所說法,皆能受持;如所聞法爲衆生說,或說布施乃至或說涅槃。
이 보살은 천안으로써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를 보며, 그 국토 안에 있는 중생들을 보나니,
본 뒤에는 신통력으로 그곳에 가서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서 그 응하는 바를 따라 그들에게 법을 설하나니,
혹은 보시를 설하기도 하고 혹은 지계를 설하기도 하고 혹은 선정을 설하기도 하며,
나아가 열반의 법을 설하기도 하느니라.
이 보살은 천이(天耳)로써 두 가지의 음성 즉 사람의 음성과 사람이 아닌 비인(非人)의 음성을 들으며,
천이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모두 잘 받아 지니어서 들은 법 그대로를 중생들에게 설하는 것이니, 혹은 보시를 설하기도 하고 나아가 열반의 법을 설하기도 하느니라.
是菩薩淨他心智,用他心智知衆生心,隨其所應而爲說法,或說布施乃至或說涅槃。
是菩薩宿命智憶念種種本生處,亦自憶、亦憶他人;用是宿命智,念過去在在處處諸佛名字及弟子衆;有衆生信樂宿命者,爲現宿命事而爲說法,或說布施乃至或說涅槃。
이 보살은 타심지(他心智)를 깨끗하게 하며, 타심지로써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서 그 응하는 바를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혹은 보시를 설하기도 하고 나아가 열반까지도 설하느니라.
이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갖가지의 본래 태어났었던 본생처(本生處)를 기억하며, 자기 스스로의 일을 기억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일도 기억하며, 이 숙명지로서 과거 세상의 태어난 곳곳에서마다 그 곳에 계셨던 모든 부처님의 명호와 그 제자들을 기억하나니,
만약 어떤 중생이 전생의 일인 숙명(宿命)을 믿고 좋아하면, 그들을 위하여 전생의 일을 들어내 보이며 법을 설하나니, 혹은 보시를 설해 주기도 하고 나아가 열반을 설해 주기도 하느니라.
用如意神通力到種種無量諸佛國土,供養諸佛,從諸佛種善根,還來本國。是菩薩漏盡神通智證,用是漏盡神通智證故,爲衆生隨應說法,或說布施乃至或說涅槃。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如是起諸神通。
菩薩用修是神通故,隨意受身,苦樂不染;譬如佛所化人,作一切事,苦樂不染。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如是遊戲神通,能淨佛國土、成就衆生。
이 보살은 여의신통(如意神通)의 힘으로써 갖가지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에 가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을 따라 선근을 심은 뒤에 본국으로 돌아와서 누진신통지(漏盡神通智)를 증득하며,
이 누진신통지를 증득한 까닭에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맞추어 법을 설하나니, 혹은 보시를 설해 주기도 하고 나아가 열반을 설해 주기도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은 신통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신통을 닦은 까닭에 뜻대로 몸을 받으면서도 괴로움과 즐거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 마치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화인(化人)이 일체의 일을 하면서도 괴로움과 즐거움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도 마땅히 이와 같이 신통에 유희(遊戱)하면서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不淨佛國土、不成就衆生,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因緣不具足故,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 중생을 성취시키지 않는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인연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