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88권 10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을 풀이함 ① 8
度衆生方便者,所謂二力:業力、定力。求其業因緣、生處。人以業因緣故受身、縛著世閒,禪定因緣故得解脫。行者必應求苦從何而生、由何而滅。是故用二力。
業力有二分:一者、淨業,能斷惡業;二者、垢業。淨業名禪定、解脫、諸三昧;不淨業者,能於三界中受身。
人有二種:鈍根,爲受身故作業;利根,爲滅身故作業。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에는 이른바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 두 가지 힘이 있으니, 그 업인연(業因緣)으로 태어나는 생처(生處)를 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업인연으로 몸을 받아 세간에 얽매여 집착하며, 선정인연(禪定因緣)으로 해탈을 얻나니,
수행하는 행자는 반드시 ‘이 괴로움(苦)은 무엇으로부터 생겼으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소멸하는 것인가?’라고 구해야 하나니, 이 때문에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 두 가지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업력(業力)에는 두 갈래가 있으니, 첫째는 깨끗한 정업(淨業)으로써 능히 나쁜 악업(惡業)을 끊는 것이요,
둘째는 더러운 구업(垢業)이다.
깨끗한 정업(淨業)이란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이며,
깨끗하지 않은 구업(垢業)이란 삼계(三界) 가운데서 몸을 받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근기가 둔한 둔근(鈍根)자는 몸을 받기 위하여 업을 짓고,
근기가 영리한 이근(利根)자는 몸을 멸하기 위하여 업을 짓는다.
問曰:若爾者,何以不皆令作淨業?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모두에게 깨끗한 정업(淨業)을 짓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以衆生根有利鈍故。
답하나니, 중생들 중에는 근기가 예리한 이근(利根)자와 둔한 둔근(鈍根)자가 있기 때문이다.
問曰:衆生何因緣故有利鈍?
묻나니, 중생은 무슨 인연 때문에 이근(利根)자와 둔한 둔근(鈍根)자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以有種種欲力故。惡欲衆生常入惡故鈍。欲名嗜好,嗜好罪事、生惡業故鈍。善欲者樂道、修助道法故利。
답하나니, 갖가지의 즐기고 좋아하는 힘의 욕력(欲力)이 있기 때문이니,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악욕(惡欲)의 중생은 항상 악한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둔(鈍)하나니,
이 '욕(欲)'이란 즐기고 좋아함을 말하는 것으로, 죄가 되는 일을 즐기고 좋아하여 나쁜 악업이 생기기 때문에 둔하게 되지만,
선(善)을 즐기고 좋아하는 선욕(善欲)의 중생은 도(道)를 좋아하고 도를 돕는 조도법(助道法)을 닦기 때문에 예리한 것이다.
問曰:衆生何以不皆作善欲?
묻나니, 중생은 무엇 때문에 모든 선(善)을 짓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是故佛說世間種種性,惡性、善性。惡性者惡欲,惡欲故根鈍。如火熱性、水濕性,不應責其所以。
답하나니,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간의 갖가지 성품을 말씀하셨으니,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과 선한 성품의 선성(善性)이 그것이다.
악성(惡性)을 지닌 이는 악을 즐기고 좋아하며,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까닭에 근기가 둔해지나니,
마치 불은 뜨거운 성품이 있고 물은 축축한 성품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렇게 되는 까닭을 책망하지 말아야 하리라.
問曰:惡欲卽是惡性,有何差別而作二力?
묻나니,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곧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이라면 어떠한 차별이 있기에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두 가지 힘을 짓는 것입니까?
答曰:性先有欲得因緣而生。譬如先有瘡,得觸因緣則血出。性在內,欲在外。性重,欲輕。性難除,欲易捨。性深,欲淺。用性作業必當受報,用欲作業不必受報。有如是等差別。
답하나니, 성품(性)에는 먼저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니, 인(因)과 연(緣)을 얻어서 생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먼저 상처가 있고 그것에 접촉하는 촉(觸)의 인연이 있게 되면 피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품(性)은 안에 있고 욕구(欲)는 바깥에 있으며,
성품(性)은 무겁고 욕구(欲)는 가벼우며,
성품(性)은 제거하기 어렵고 욕구(欲)는 버리기가 쉬우며,
성품(性)은 깊고 욕구(欲)는 얕으며,
성품(性)으로써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하지만, 욕구(欲)로써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 것은 아니니, 이와 같은 등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復有人言:欲常習增長,遂成爲性;性亦能生欲。是人若今世、若後世常習是欲,則成爲性;住是性中,作惡、作善;若住善性則可度,若住惡性則不可度。佛旣知衆生二種性已知,其果報善道、惡道種種差別。惡性者墮三惡道,善性者有四種道:人、天、阿修羅、涅槃道。
또 어떤 분은 말하기를 “욕구(欲)를 항상 익히면 더욱 자라게 되어 마침내 성품(性)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성품(性) 또한 욕구(欲)를 내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이 금세에서나 후세에서 이 욕구(欲)를 항상 익히면 곧 성취되어 성품(性)으로 된다는 것이니,
이러한 성품(性)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악도 짓고 선도 짓는 것이다.
만약 선한 성품의 선성(善性)에 머무른다면 제도할 수 있지만,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에 머무르면 제도할 수가 없으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중생의 선성(善性)과 악성(惡性), 두 가지 성품(性)을 아시나니, 이미 그 과보의 선도(善道)와 악도(惡道)의 갖가지 차별을 아시는 것이니,
곧 악성(惡性)을 지닌 이라면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선성(善性)을 지닌 이라면 네 가지의 착한 길이 있나니, 곧 인간ㆍ천상ㆍ아수라ㆍ열반의 도이다.
問曰:一切到處道力與天眼力有何差別?
묻나니, 일체도처도력(一切到處道力)과 천안력(天眼力)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天眼但見生死時;此中未死時知,見因知果。天眼,見現前罪福果報。是名一切到處道力。
답하나니, 천안(天眼)은 다만 나고 죽는 생사할 때에만 보게 되므로 이 가운데서는 아직 죽기 전의 시기만을 아는 것이니,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아는 것이 천안이지만, 바로 눈앞의 죄와 복과 과보를 보는 것을 일체도처도력(一切到處道力)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聲聞、辟支佛亦得涅槃、亦能化衆生,何以無是力?
묻나니, 성문이나 벽지불도 열반을 얻으며, 또한 중생을 교화할 수 있거늘 무엇 때문에 이런 힘(力)이 없는 것입니까?
答曰:是故說後三力。三世中衆生事盡能通達遍知:以宿命力,一切衆生過去事本末悉知。以天眼生死智力故,一切衆生未來世中無量事盡能遍知。作是知已,知現世中衆生可度者爲說漏盡法。以是故,但佛有此力,二乘所無。
답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숙명력(宿命力), 천안(天眼), 생사지력(生死智力) 세 가지 힘을 설명하는 것이니, 3세(世) 동안 중생들의 일을 모두 다 통달하여 두루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숙명력(宿命力)으로써 일체 중생들이 과거 세상에 지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알고,
천안(天眼)과 생사지력(生死智力)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미래 세상에서의 무량한 일을 모두 두루 알며,
이렇게 안 뒤에는 현세에서의 중생으로서 제도할 수 있는 이를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번뇌가 다하는 누진법(漏盡法)을 설하나니, 부처님만이 이러한 힘이 있을 뿐, 2승에게는 없는 것이다.
如有一人卽日應得阿羅漢,舍利弗日中時語言:“汝無得道因緣。”捨而不度。晡時,佛以宿命神通見過去八萬劫前得道因緣,今應成就,晡時說法,卽得阿羅漢道。
마치 어떤 사람이 바로 그날 아라한이 되도록 되어 있었는데, 사리불(舍利佛) 존자가 한낮에 그를 보고는 “당신은 도를 얻게 될 인연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버리고 제도하지 않았지만,
저녁나절에 부처님께서 전생 일을 아는 숙명신통(宿命神通)으로써 그를 보시고는, 과거 세상의 8만 겁 전에 도를 얻을 인연이 있어서 지금 마땅히 성취할 것이므로, 저녁나절에 법을 설하시자, 곧 아라한의 도를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佛以初力知衆生可度、不可度相;以第二力知衆生爲三障所覆、無覆者;以第三力知衆生禪定、解脫淨不淨者;以第四力知衆生根有利、有鈍,能通法性、不通者;以第五力知衆生利鈍根因緣善、惡欲;以第六力知二欲因緣種種性。
또 부처님께서는 첫 번째의 힘의 초력(初力, 처비처지력 處非處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제도할 수 있는 이인지, 제도할 수 없는 이인지의 상(相)을 아시며,
제2의 힘(업이숙지력 業異熟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번뇌장, 업장, 보장의 세 가지 죄인 삼장(三障)에 가려져 있는 사람인지, 가려져 있는 바가 없는 사람인가를 아시며,
제3의 힘(정처해탈등지등지지력 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선정과 해탈에 깨끗한 이인가, 깨끗하지 못한 이인가를 아시며,
제4의 힘(근상하지력 根上下智力)으로써는 중생들의 근기에 영리한 이가 있고 둔한 이가 있어서 법의 성품을 통달하는 이와 통달하지 못하는 이를 아시며,
제5의 힘(종종승해지력 種種勝解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근기가 영리한 이와 둔한 이의 인연과 선악의 욕구를 아시며,
제6의 힘(종종계지력 種種界智力)으로써는 악욕(惡欲)과 선욕(善欲), 두 가지 욕구인 이욕(二欲)의 인연과 갖가지 성품을 아시며,
以第七力知衆生利鈍根善惡果報處七種道;以第八力知衆生宿世善惡業障、不障;以第九力知衆生今世未可度、未來世生處可度;以第十力知是人以空解脫門入涅槃,無相、無作門入涅槃;知是人於見諦道、思惟道中念念中斷若干結使。以是十力籌量衆生所應度緣而爲說法。是故說法,初無空言。
제7의 힘(변취행지력 遍趣行智力)으로써는 중생의 영리하거나 둔한 근기와 선악으로 받을 과보의 처소와 일곱 가지 도의 칠종도(七種道)를 아시며,
제8의 힘(숙주수념지력 宿住隨念智力)으로써는 중생이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과 장애가 되거나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아시며,
제9의 힘(사생지력 死生智力)으로써는 중생이 이 세상에서는 제도되지 못하고 미래 세의 태어날 곳에서 제도된다는 것을 아시며,
제10의 힘(누진지력 漏盡智力)으로써는 이 사람이 공해탈문(空解脫門)으로써 열반에 들고, 무상(無相)과 무작(無作) 해탈문으로써 열반에 들것을 알며, 이 사람은 견제도(見諦道)와 사유도(思惟道) 가운데에서 생각생각마다 여러 가지 번뇌의 결속(結束)이 끊어진다는 것을 아시나니,
이 십력으로써 마땅히 제도해야 할 중생들의 인연을 헤아려서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나니,
이 때문에 설법은 처음부터 빈것으로 말이 없는 초무공언(初無空言)인 것이다.
問曰:佛智慧無量,身相亦應無量!又佛身勝諸天王,何以正與轉輪聖王同有三十二相?
묻나니, 부처님의 불지혜는 무량하므로 몸의 상호(相好) 또한 무량하여야 하며,
또 부처님의 불신은 모든 천왕(天王)들보다 뛰어나거늘, 무엇 때문에 전륜성왕과 똑같이 32상호만 있는 것입니까?
答曰:三十二相不多不少,義如先說。復次,有人言:佛、菩薩相不定,如此中說;隨衆生所好,可以引導其心者爲現。又衆生不貴金而貴餘色 琉璃、頗梨、金剛等,如是世界人,佛則不現金色,觀其所好則爲現色。
답하나니, 32상호의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이치에 대하여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또 어떤 분은 말하기를 “부처님과 보살의 상호는 일정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설명과 같이,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마음을 인도할 수 있는 것에 따라 나타내시는 것이다.
또 중생이 금은 귀히 여기지 않고 그 밖의 유리나 파리나 금강 등을 귀히 여긴다면, 이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은 곧 금빛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를 관찰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빛깔을 나타내시며,
又衆生不貴纖長指及網縵,以長指利爪爲羅剎相,以網縵爲水鳥相,造事不便,如著手衣,何用是爲?如罽賓國彌帝隸力利菩薩手網縵,其父惡以爲怪,以刀割之,言:“我子何緣如鳥?”
또한 중생들이 가늘고 긴 손가락과 손바닥에 있는 그물 무늬의 망만(綱縵)을 귀하게 여기지 않거나, 긴 손가락과 매끈한 손톱을 나찰(羅刹) 같은 상이라고 여기거나, 그물 무늬가 마치 물새의 상과 같아서 하는 일들이 불편하기가 마치 손에 장갑을 낀 것과 같다고 여긴다면, 그 좋은 상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치 계빈국(罽賓國, Kāśmīra. 지금의 카슈미르지역에 있었던 나라)의 미제예력리(彌帝隸力利)보살에게는 손에 비단결 같은 무늬가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그것을 싫어하여서 괴이하다고 여기어 칼로 베어 내면서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마치 새와 같은가!”라고 한 것과 같다.
有人不好肩圓大,以爲似腫;有以腹不現,無腹如餓相;亦有人以靑眼爲不好,但好白黑分明。是故佛隨衆生所好而爲現相好。如是等,無有常定。
어떤 사람은 어깨가 둥글고 큰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마치 종기와 같다고 여기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배가 나오지 않으면, 배가 꺼진 것이 마치 굶주린 것과 같다고 여기며,
또 어떤 사람은 푸른 눈을 좋게 여기지 않으면서 흑백(黑白)이 분명한 눈만을 좋아하는 이도 있나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상호를 나타내시나니,
이와 같이 항상 일정한 상호는 없는 것이다.
有人言:此三十二相實定,以神通力變化身,隨衆生所好而爲現相。
有人言:佛有時神通變化,有時隨世界處生,當生處不得言神通變化。又於三千大千世界中隨可度衆生處生,則爲現相。如『密迹經』中說:“或現金色、或現銀色、或日月星宿色,或長、或短,隨可引導衆生則爲現相。”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32상호는 실로 신통력과 변화신으로써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상을 나타내신다”고 하며,
어떤 분은 말하기를 “부처님은 어떤 때에는 신통으로 변화하시고, 어떤 때에는 세계와 처소에 따라 태어나시나니, 당연히 태어나실 곳이라면 신통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또한 3천대천세계에서 제도해야 할 중생들이 있는 처소에 따라 태어나신다면 곧 그들을 위하여 모습을 나타내신다”고 하기도 하나니,
마치 '밀적경(密迹經, Guhyasūtra. 혹은 Tathāgatācintyaguhyanirdeśa)'에서의 설명과 같이, “혹은 금빛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은빛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는 길게 또는 짧게 하면서 그 인도해야 할 중생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상을 나타내신다”고 하였다
隨此閒閻浮提中天竺國人所好,則爲現三十二相。天竺國人于今故治肩髆令厚大、頭上皆以有髻爲好。如人相中說五處長爲好。眼、鼻、舌、臂、指、髀、手足相,
若輪、若蓮華、若貝、若日月,是故佛手足有千輻輪、纖長指、鼻高好、舌廣長而薄。如是等皆勝於先所貴者故,起恭敬心。
이 세간의 염부제(閻浮提)에서는 천축국(天竺國, 인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32상을 나타내신 것이니, 천축국(인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일부러 어깨를 다듬고 또 두둑하고도 큰 머리 위에 모두 살상투인 육계(肉髻)가 있는 것을 좋게 여기었으니, 마치 사람의 상(相) 가운데에서 다섯 군데의 오처(五處)가 잘 생긴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나니, 눈ㆍ코ㆍ혀ㆍ팔과 손발가락ㆍ넓적다리ㆍ손과 발의 상이 그것이니,
수레바퀴와 연꽃과 조개와 해와 달 등을 좋아한 까닭으로 부처님께서는 손과 발에 수레바퀴와 같은 무늬가 있으며,
손가락은 가늘고 길며, 코는 오뚝하게 잘 생기고 혀는 넓고도 길며 얇으니, 이와 같은 것들 모두가 앞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되는 것이다
有國土佛爲現千萬相,或無量阿僧祇相,或五、六、三、四相。隨天竺所好故,現三十二相、八十種隨形好。
어느 나라에서는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천만 가지 상호를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무량한 아승기의 상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 또는 세 가지나 네 가지의 상을 나타내기도 하시나니,
천축국(인도)에서 좋아하는 것에 따라 32상과 80수형호를 나타내신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八十八 終 대지도론 88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