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85권 6
大智度論 釋菩薩行品 第七十二 卷八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2. 보살행품(菩薩行品)을 풀이함 3
復問:“世尊!若菩薩不行二法,云何從初發意乃至後心增長善根?”
佛答:“若人行二法,卽是顚倒,不能增長善根。”如人夢中雖大得財,竟無所得;覺已所得多少,眞名爲得。
또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살이 두 가지의 이법(二法)으로써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나중의 후심(後心)에 이르기까지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두 가지의 이법(二法)법으로 행한다면, 그것은 곧 뒤바뀌어 전도된 것이라서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할 수 없나니,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비록 큰 재물을 얻었을지라도 결국에는 얻은 것이 없으나, 깨어난 뒤에는 그 얻었던 것이 많건 적건 참으로 얻은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佛語須菩提:“一切凡人皆著二法故,不能增益善根。菩薩行諸法實相,所謂不二法,從初發心來乃至後心,增益善根,無有錯謬。是故菩薩,一切天、人、阿修羅無能壞其善根、令墮二乘,及餘衆惡亦不能壞。”
餘惡者,慳貪等煩惱,破檀波羅蜜諸善法等。
復問:“世尊!菩薩爲善根故行般若耶?”
佛答:“不爲善、不爲不善故行般若。”
부처님 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체 범부는 모두가 두 가지의 이법(二法)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선근을 더욱 불릴 수 없으나, 보살은 제법의 실상(實相) 즉 둘이 아닌 불이법(不二法)을 행하여 초발심에서부터 나중의 후심에 이르기까지 선근을 더욱 늘리되 착오가 없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그 보살은 일체의 하늘이나 사람이나 아수라들이 그의 선근을 무너뜨려 2승에 떨어지게 할 수도 없고, 그 밖의 다른 여악(餘惡)으로도 그를 파괴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 밖의 다른 악의 여악(餘惡)’이란 간탐 등의 번뇌로 단바라밀의 모든 착한 선법을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또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은 선근을 위하여 반야를 행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선(善)을 위하지도 않고, 불선(不善)을 위하지도 않기 때문에 반야를 행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問曰:“不爲不善根故行般若”,可爾,云何“不爲善根故行”?
묻나니, 선근이 아닌 불선근(不善根)을 위하여 반야를 행하지 않는다 것은 그럴 수 있지만, 어찌하여 선근(善根)을 위하여서도 행하지 않는다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此中佛意:貴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雖行諸善根,爲辦事故行,不以爲貴。
如『栰喩經』說:“善法尚應捨,何況不善法!”善根是助佛道法。若人不爲栰故渡,爲到彼岸故渡。此中佛說因緣:“菩薩未供養諸佛、未得眞知識,不能得一切種智。”是故雖種善根,不以爲貴,但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답하나니, 여기에서의 부처님 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귀히 여기는 것으로 비록 모든 선근을 행할지라도, 어떠한 일을 마치기 위한 목적으로만 행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벌유경(栰喩經)'에서 말씀하기를 “착한 선법조차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착하지 못한 불선법이겠는가!”라고 하신 것과 같이, 선근은 곧 부처님의 불도를 돕는 법이니,
가령 사람이 뗏목을 위하여 건너는 것이 아니고, 번뇌가 그친 상태인 열반의 피안(彼岸, pāra. pārimaṃ tīraṃ)에 이르기 위하여 건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그 인연을, “보살이 아직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못하였고, 아직 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였으면 일체종지를 얻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때문에 비록 선근을 심었을지라도 귀히 여기지 않고, 다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할 뿐인 것이다.
須菩提言:“云何菩薩雖不爲善根,而能供養諸佛乃至得一切種智?”
佛答:“菩薩從初發心已來,供養諸佛。”如經中說。
供養佛 大故但說佛,當知已供養辟支佛乃至住乾慧地。凡人爲聞法故,從其聞說十二部經,以不能常得師故,皆當受持;以喜忘故,誦讀令利。
心觀者,常繫心經卷,次第憶念。先以語言宣義,後得了達,卽得陁羅尼。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떻게 하면 보살이 비록 선근을 위하지 않을지라도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답하시기를, “보살이 처음 초발심에서부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경 가운데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부처님을 공양한다는 공양불(供養佛)”이란, 크기 때문에 부처님만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이미 벽지불이나 간혜지(乾慧地)에 머무른 범부까지도 공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그것은 법을 듣기 위한 것이다.
그로부터 12부경을 설하는 것을 들으면서 언제나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잘 받아서 수지(受持)하여야 하고,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읽고 외워 밝게 통하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관하나는 심관(心觀)’이라 함은, 항상 마음을 경권에 매어 두고 차례대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니, 먼저 언어로써 그 뜻을 편 뒤에 분명하게 통달하여 요통(了通)하며, 곧 다라니(陀羅尼, 총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간혜지(乾慧地, 外凡외범)’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성문(聲聞)에서요, 둘째는 보살(菩薩)에서이다.
성문은 유독 열반만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계율을 지니어 마음을 청정히 하고 인내하여 도를 받나니, 혹은 관불삼매(觀佛三昧)나 부정관(不淨觀)을 익히거나 혹은 자비관(慈悲觀)ㆍ무상관(無常觀) 등을 행하기도 하면서 분별하여 모든 착한 선법을 쌓고 착하지 않은 불선법을 버리나니, 비록 지혜가 있을지라도 선정의 선정수(禪定水)를 얻지 못하나니, 도(道)를 얻을 수 없으므로 간혜지(乾慧地)라 하는 것이며,
보살에게 있어서는 처음 초발심에서부터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인 순인(順忍)을 얻기 전까지이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5권 2
陁羅尼有二種:一者、聞持陁羅尼,二者、得諸法實相陁羅尼。讀、誦、修習、常念故,得聞持陁羅尼;通達義故,得實相陁羅尼。住是二陁羅尼門中,能生無㝵智;爲衆生說法故,具足四無㝵智。
다라니(陀羅尼, 총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요, 둘째는 모든 법의 실상을 얻는 실상다라니(實相陁羅尼)이다.
읽고(讀) 외우고(誦) 닦아 익히는 수습(修習)하여서 항상 염(念)하기 때문에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고,
그 뜻을 통달하기 때문에 실상다라니(實相陁羅尼)를 얻으니,
이 두 다라니 가운데에 머무르면 무애지(無礙智)를 내게 되고,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기 때문에 사무애지를 두루 갖추게 되는 것이다.
問曰:若菩薩有無㝵智,與佛何異?
묻나니, 만약 보살에게 무애지가 있다면, 부처님과 어떤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無㝵有二種:一、眞無㝵,二、名字無㝵。此中除佛無㝵,餘者隨菩薩所得無㝵。是菩薩讀經等因緣故,所生之處,乃至得一切種智,終不忘失。何以故?深入讀誦諸法故,煩惱折薄。爲善根所護故,終不墮惡道諸難;如盲人爲有目者所將護故,終不墜落溝壑。
답하나니, 장애가 없는 무애(無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참된 무애의 진무애(眞無礙)요, 둘째는 이름만의 명자무애(名字無礙)이다.
여기에서 부처님의 무애를 제외한 그 밖의 것은 보살이 얻는 바에 따라 장애가 없는 무애(無㝵)가 되니,
이 보살이 경을 독송하는 등의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끝내 잊지 않나나니,
왜냐 하면, 깊이 들어가 제법을 읽고 외우기 때문에 번뇌가 꺾어지고 얇아지며, 선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악도(惡道)의 모든 재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마치 소경이 눈 있는 이에게 인도외어 보호되기 때문에 끝내 구렁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集善根福德故,得深心淸淨。深心淸淨者,慈愛一切衆生,雖怨賊中人亦不加惡,所謂奪命等。
復次,智慧、福德大集故,煩惱微少,不能遍覆菩薩善心。
復次,深心者,於衆生中得慈悲心、不捨心、救度心,於諸法中得無常、苦、空、無我、畢竟空心,乃至佛不生佛想、涅槃想,是名深心淸淨。
선근의 복덕을 쌓기 때문에 깊은 마음이 깨끗한 심심청정(深心淸淨)을 얻게 되나니,
‘깊은 마음이 깨끗한 심심청정(深心淸淨)이라 함이란, 일체 중생들을 사랑하면서 비록 원수나 도적의 사람일지라도 역시 목숨을 빼앗는 등의 악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또한 지혜와 복덕을 크게 쌓기 때문에 번뇌가 미미하여지고 적어져서, 보살의 착한 선심(善心)을 두루 가릴 수도 없는 것이다.
또 ‘깊은 마음의 심심(深心)’이란 중생들에 대하여 자비심(慈悲心)과 버리지 않으려는 불사심(不捨心)과 구제하겠다는 구도심(救度心)을 얻는 것이며,
제법에 대하여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ㆍ필경공(畢竟空)의 마음을 얻어서, 이에 부처님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란 생각이나 열반이라는 생각 조차도 내지 않는 것이니,
이를 곧 깊은 마음이 깨끗한 심심청정(深心淸淨)이라 하는 것이다.
深心淸淨故,能教化衆生。何以故?是煩惱薄故不起高心、我心、瞋心,故衆生愛樂、信受其語,教化衆生。
教化衆生故,得淨佛世界;如『毘摩羅詰ㆍ佛國品』中說:“衆生淨故,世界淸淨。”爲善根所護故,終不離善知識。
善知識者,諸佛、大菩薩、阿羅漢。略說善知識相,能讚歎三寶者。
깊은 마음이 깨끗한 심심청정(深心淸淨)이기 때문에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니, 왜냐 하면 번뇌가 얇아진 때문에 높은 체하는 고심(高心)이나 '나'라는 아심(我心)이나, 성을 내는 진심(瞋心)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의 말을 좋아하며 믿고 받아서 신수(信受)하으므로 중생을 교화하게 되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불세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마치 '비마라힐(毘摩羅詰, 유마경)'의 '불국품(佛國品)'에서 “중생이 청정하기 때문에 세계가 청정하며, 선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끝내 선지식을 여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선지식(善知識, kalyāṇa-mitra)’이란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과 아라한을 말하며, 선지식의 상(相)을 간략히 말한다면 능히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찬탄하는 이이다.
如是菩薩應供養諸佛、種善根、親近善知識。何以故?如病人應求良醫藥草;佛爲良醫,諸善根爲藥草,瞻病人爲善知識。病者具此三事故,病得除差;菩薩亦如是,具此二事,滅諸煩惱故,能利益衆生。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선근을 심으며, 선지식을 친근히 해야 하나니,
왜냐 하면, 마치 병든 사람은 당연히 용한 의사인 양의(良醫)와 약초를 구해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양의(良醫)로 삼고, 모든 선근을 약초로 삼으며, 병을 돌봐주는 사람을 선지식(善知識)으로 삼는 것으로,
병든 사람은 이 세 가지의 삼사(三事)가 갖추어져야 병의 차도를 얻게 되는 것이니,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이 세 가지의 삼사(三事)가 갖추어져야 모든 번뇌가 소멸하여서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72. 보살행품(菩薩行品)을 풀이함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