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85권 3

Skunky 2024. 11. 5. 09:01

大智度論 釋道樹品 第七十一 卷八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1. 도수품(道樹品) 풀이함 3

 

諸根者,信等五善根,三乘人各各有。能分別是人有、是人無,是人得力、是人不得力。

具足者,信等善根具足,如是人能出世閒。信根得力,則決定能受持不疑;精進力故,雖未見法,一心求道,不惜身命,不休不息;念力故,常憶師教,善法來聽入,惡法來不聽入,如守門人;定力故,攝心一處不動,以助智慧;智慧力故,能如實觀諸法相。

‘제근(諸根)’이란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 다섯 가지선근(五善根)이다.

삼승의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능히 분별함이 있으니, “이 사람에게는 있다”, “이 사람에게는 없다”, “이 사람은 힘(力)을 얻었다”, “이 사람은 힘을 얻지 못했다” 고 분별하는 것이며, 

“두루 갖춘 구족(具足)”이라 함은 신근 등의 오선근(五善根) 두루 갖춘다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들은 세간을 벗어날  있으니, 신근(信根)으로 힘을 얻으면 반드시 받아 지녀서 의심하지 않아야 하며,

정진력(精進力, 정진근)으로는, 비록 아직 법을 보지 못하였을지라도 일심(一心)으로 도를 구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쉬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으며,

생각하는 힘의 염력(念力, 염근)으로는, 항상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착한법이 오면 받아들이고, 악한법이 오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마치 문지기와 같으며,

선정의 힘인 정력(定力, 정근)으로는, 마음을  곳에 가다듬고 동요하지 않아서 지혜를 돕게 되며, 

지혜의 힘인 지혜력(智慧力, 혜근)으로는 여실하게법의 상(相)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得根有二種:一者、在大心人身中,則成菩薩根;二者、在小心人身中,則成小乘根。得是具足根,則可度。或有菩薩見人雖得信等五根而不可度,由先世惡業罪重故,是故言“知一切衆生業因緣”。

근(根)을 얻는 득근(得根)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큰마음의 대심(大心)에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몸속에서 곧 보살로서의 근기(根器)를 이루는 것이요,

둘째는 작은 마음의 소심(小心)에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몸속에서 곧 소승(小乘)의 근기를 이루는 것이니,

이 두루 갖춘 구족근(具足根)을 얻게 되면 제도될 수 있으나,

어떤 보살은 그 사람이 비록 신근 등의 오근(五根)을 얻었을지라도 제도될 수 없는 것을 보게도 되나니, 선세에 지은 악업(惡業)으로 죄가 무거운 까닭이다.

이 때문에 ‘일체 중생의 업인연(業因緣)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欲知無數劫業因緣,要得宿命通;旣知已,爲衆生說過去罪業因緣。衆生以是過去罪故不畏,是故求願智,欲知三世事;旣知已,爲衆生說未來世罪業因緣,當墮地獄。衆生聞已,則懷恐怖;恐怖已,心伏易度。

수 없는  동안의 인연을 알고자 한다면, 전생을 아는 신통인 숙명통(宿命通)을 얻어야 하며,

이미 알고  뒤에는 중생들을 위하여 과거에 지은 죄업의 인연을 설명해 주어서, 

중생은  과거에 지은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생겨나는 지혜인 원지(願智, praṇidhi-jñāna) 구하고, 삼세(三世)의 일을 알고 싶어 하게 되며,

이를 알게  뒤에는 중생들을 위하여 미래세에는 죄업의 인연으로 장차 지옥에 떨어질 것을 설명해 주며, 

중생들은 이를 듣고 나서 두려움을 품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면 마음이 조복되어 제도하기가 쉽게 되며, 


衆生若欲知未來世福報因緣,爲說已,則歡喜可度。是故說知業因緣已,願智具足。

願智具足故,得三世慧淨,通達無㝵:知過去善惡業,又知未來善惡果報,

知現在衆生諸根利鈍,然後說法教化,多所利益不虛。

大利益衆生故,能淨佛國土;淨佛國土已,得一切種智;得一切種智故,轉法輪;

轉法輪已,以三乘安立衆生,入無餘涅槃。

중생들이 만약 미래세에 복의 과보를 누릴 인연을 알고자 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설명해 주어서, 그들은 그러함을 듣고는 기뻐하므로 제도될  있기 때문에 ‘업의 인연을  뒤에는 원지(願智)를 두루 갖춘다’고  것이다. 

원지(願智)를 두루 갖춘 때문에 3세(世) 동안의 지혜가 깨끗하여지고 환희 통달하여 장애가 없게 되어서 과거의 선악의 업을 알게 되며, 또한 미래의 선악 과보를 알게 되며, 현재의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영리함과 둔함을 알게 되나니, 

그러한 뒤에야 법을 설하여 교화하므로 이롭게 함이 많으며 헛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크게 중생을 이롭게 하는 대이익중생(大利益衆生)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있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뒤에는 일체종지를 얻게 되며, 

일체종지를 얻었기 때문에 법을 설하는 전법륜(轉法輪)을 하고,

전법륜(轉法輪) 뒤에는 3승(乘)으로써 중생을 편안히 세워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는 것이다.


如是利益,皆從學如中來,是故佛說:“菩薩欲得一切功德,自利利人,當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이와 같은 이익 모두는 여(如)를 배움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일체 공덕을 얻으면서 스스로와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리인(自利利人)하고자 한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聞是菩薩功德甚多,白佛言:“世尊!菩薩能如說行般若波羅蜜,一切世閒應當作禮。”如經中廣說,

分別初發意菩薩功德。爾時,須菩提知是甚深般若無憶想,非初學所得,是故問佛:“初發心菩薩,應念何等法?”

佛答:“應念一切種智。”一切種智者,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薩婆若、佛法、佛道,皆是一切種智異名。

수보리 존자는  보살의 공덕이 매우 많은 것을 듣고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이 말씀하신 대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일체 세간은 마땅히 예배하여야 것입니다”고 하였으니, 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초발의 보살의 공덕을 분별하였는데,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매우 깊은 심심(甚深) 반야는 기억하여 생각하는 일이 없는 무억상(無憶想)이고, 초학(初學)의 이로서는 얻을 바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초발심(初發心) 보살은 어떠한 법을 염(念)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마땅히 일체종지를 염해야 한다”고 하셨다.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함이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살바야(薩婆若)와 부처님의 불법(佛法)과 부처님의 불도(佛道) 모두가 일체종지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問曰:佛何以答言“念一切種智”?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일체종지를 염해야 한다”고 대답하신 것입니까?


答曰:初發意菩薩未得深智慧,旣捨世閒五欲樂故,佛教繫心念薩婆若;應作是念:“雖捨小雜樂,當得淸淨大樂;捨顚倒虛誑樂,得實樂;捨繫縛樂,得解脫樂;捨獨善樂,得共一切衆生善樂。”得如是等利益故,佛教初發意者常念薩婆若。

답하나니, 처음 뜻을 일으킨 초발의 보살은 아직 깊은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이미 세간의욕을 버렸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의 마음을 살바야를 염하는 매어 두도록 가르치신 것이니, 

마땅히 생각하기를 ‘비록 사소한 즐거움은 버릴지라도 장차 깨끗하고  즐거움을 얻어야 하리라. 

뒤바뀌어 전도되고 거짓된 즐거움의 허광락(虛誑樂)을 버리고 진실한 즐거움의 실락(實樂)을 얻으며, 

속박된 즐거움인 계박락(繫縛樂)을 버리고 해탈의 즐거움인 해탈락(解脫樂)을 얻으며, 

혼자만의 좋은 쾌락인 독선락(獨善樂)을 버리고 일체 중생과 함께하는 좋은 즐거움의 선락(善樂)을 얻으리라’고 하여야 한다고 하셨으니,

이와 같은 이익을 얻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초발의 보살들에게 “언제나 살바야를 염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須菩提問:“世尊!是一切種智,爲是有法?爲是無法?何等緣?何等增上?何等行?何等相?”

佛答:“須菩提!一切種智無所有。無所有名非法,無生無滅。諸法如實緣亦無所有,念爲增上,寂滅爲行,無相爲相。”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일체종지는 존재하는 유법(有法)입니까? 아니면 없는법(無法)입니까? 어떠한 연(緣)이며? 어떠한 증상(增上)이며? 어떠한 행(行)이며? 어떠한 상(相)인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체종지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며,

무소유(無所有)이 때문에 법이 아닌 비법(非法)이며, 무생무멸(無生無滅)하는 것이니라. 

제법의 여실한 연(緣) 또한 있지 않는 무소유(無所有)이며, 

염(念)을 증상(增上)으로 삼고 고요히 사라진 적멸행(寂滅)을 행(行)으로 삼으며,

무상(無相)으로 상(相)을 삼느니라”고 하셨다.


問曰:皆是畢竟空,念何以獨言增上?”

묻나니, 그것 모두는 필경공을 염(念)하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유독 증상(增上)만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諸法各各有力,佛智慧是畢竟空;如、法性、實際,無相,所謂寂滅相。佛得一切種智,不復思惟,無復難易遠近,所念皆得,故言念爲增上。

답하나니, 제법은 저마다 각각의 힘(力)이 있으니, 부처님의 지혜는  필경공이요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이어서 무상(無相)이니, 이른바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종지를 얻으면 다시는 사유하지도 않고, 다시는 어렵고 쉬운 것이나 멀고 가까움 없이 염(念)하는 것으로써 모두 얻기 때문에 “염을 증상으로 삼는 염위증상(念爲增上)이다”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問:“世尊!但一切種智無法,色等法亦無法?”

佛答:“色等一切法亦是無法。”自說因緣:“若法從因緣和合生,卽無自性:若法無自性,卽是空無法。以是因緣故,當知一切法無所有性。”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다만 일체종지만이 없는법입니까? 아니면 물질(色) 등의  또한 없는법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일체법도 없는법이니라”고 하시면서 친히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만약 법이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생긴다면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이 없으며, 

만약 법에 자성(自性) 없다면, 그것은 곧 공(空)하여 없는법(無法)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일체법은 지닌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須菩提問:“初發心菩薩以何方便行檀波羅蜜乃至一切種智,淨佛世界、教化衆生?”

佛答:無所有法性中學,入觀亦能集諸功德、教化衆生、淨佛世界,卽是方便力。所謂有、無二法,能一時行故,所謂畢竟空,集諸福德。是人行六波羅蜜時,亦修治佛道 如佛心,以畢竟空、無所有法行六波羅蜜乃至一切種智。是菩薩行是道,能具足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처음발심한 보살은 어떠한 방편으로써 단(檀, 보시)바라밀 내지는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행하여 부처님의 불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있는  없는 무소유의 법성(法性) 가운데에서 배우고 들어가 관찰하며, 또한 모든 공덕을 쌓고 중생을 교화하며, 부처님의 불세계를 깨끗하게 하나니, 그것이 곧 방편력(方便力)이니라”고 하셨다. 

이른바 ‘있다ㆍ없다’는  가지의 이법(二法)을 한꺼번에 행할  있기 때문이며, 이른바 필경공으로 모든 복덕을 쌓는 것이니,  사람은 6바라밀을 행할 때에도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다스리게 되며, 부처님의 불심(佛心) 같이 필경에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으로써 6바라밀 내지는 일체종지를 행하나니,

 보살은 이러한 도(道)를 행하여서 부처님의력과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게 되는 것이다.


行菩薩道時,具足是法。坐道場,用一念相應慧,得一切種智;如人夜失貫珠,電光蹔現,卽時還得故。煩惱及習永盡,更不復生。得佛已,以佛眼觀一切十方世界中,一切物尚不見無法,何況有法!畢竟空法能破顚倒,令菩薩成佛,是事尚不可得,何況凡夫顚倒有法!”

보살이 도(道)를 행할 때, 이러한 법을 완전히 갖추고 도량에 앉으면,  생각과 상응하는 일념상응지혜(一念相應慧)로써 일체종지를 얻게 되나니, 마치 사람이 밤에 보배를 잃었다가 번갯불이 번쩍일 때 보고 다시 찾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번뇌와 습기는 영원히 다하여서 다시 생기지 않나니, 

부처님이 되신 득불(得佛) 뒤에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세계의 일체물(一切物) 자세히 살펴보실 때, 오히려법조차도 보지 않으시거늘, 하물며 존재하는법이겠는가! 

필경공의 법은 능히 뒤바뀜의 전도를 깨뜨리고 보살로 하여금 부처님을 이루게 하는 것이나, 오히려 이러함을 얻을  없거늘, 있는 유법(有法)이라는 범부의 뒤바뀐 생각으로서 이겠는가?


是故,須菩提!當知一切法無所有相,是名“菩薩方便”。空尚不可得,何況有!

須菩提!菩薩應行無所有般若波羅蜜。是菩薩行是無所有般若波羅蜜,若布施時,卽知布施物空、無所有,受者及菩薩心亦無所有;乃至一切種智,得者、得法、得處,無法尚不知,何況有法!

得者,菩薩;得法,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用得法是菩薩道。皆知是法無所有。何以故?一切法本性爾,不以智慧故異。非凡夫作,亦非諸聖人作,一切法無作,無作者故。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수보리야, 일체법은 지닌 바의 상이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방편이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공(空) 조차도 오히려 얻을  없거늘 하물며 존재하는 유(有)이겠는가?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있는  없는 무소유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느니라. 

 보살이 무소유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보시를 할 때에는  보시하는 시물(施物)조차도 공하여 있는  없는 공무소유(空無所有)이고, 받는 수자 보살의 마음 역시 있는  없는 무소유임을 아느니라.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는 득자(得者) 얻는 법의 득법(得法)과 얻는 곳의 득처(得處)의법조차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존재하는 유법(有法)이겠는가?

얻는 득자(得者) 보살이요, 얻는 법의 득법(得法)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얻은 득법(得法) 이용하는 보살의 도(道)이나, 이러한 모든 법이 있는 바가 없는 법무소유(法無所有)라고 아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의 본성(本性)이 그러하기 때문이니, 지혜로써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르니라. 

범부가 짓는 것도 아니요, 또한 모든 성인이 짓는 것도 아니니,법은 지음도 없는 무작(無作)이고, 짓는 이도 없는 무작자(無作者)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意:“若諸法都是無所有相,誰知是無所有?”是故問佛:“世尊!諸法、諸法性離,云何離法能知離法若有、若無?何以故?無法不能知無法,有法不能知有法;無法不能知有法,有法不能知無法!世尊!如是一切法無所有相,云何菩薩作是分別是法若有、若無?”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제법이 도무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이라면,  누가  무소유(無所有)를 아는 것일까?’고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법이법의 성품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여의는법(離法)으로써 여의는 이법(離法)이 ‘있다ㆍ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까? 왜냐 하면, 없는법은 없는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법은 있는법을 알지 못하며, 없는법은 있는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법은 없는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일체법은 지닌 바의 상이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이거늘, 보살은 어떻게 분별하여  법을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佛答:“菩薩世俗故爲衆生說若有、若無,非第一義。”若有是實有,無亦應有實。若有不實,無云何應實?

須菩提問:“世俗、第一義有異耶?”若異,破壞法性故,

是故佛言:“不異。世俗如卽是第一義如。”衆生不知是如故,以世俗爲說若有、若無。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보살이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로써 중생을 위하여 말한 때문에 ‘있다ㆍ없다’고 하는 것이요, 으뜸가는 제일의(第一義)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있음의 유(有)가 실로 존재하는 실유(實有)라면, 없는 것에서도 진실이 있어야 하며, 

만약 있음의 유(有)가 진실하지 않은 불실(不實)이라면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진실하다 할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세속의 세제(世諦)와 제일의(第一義)에는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하였으니, 

만약 다르다면 법성(法性)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르지 않느니라. 세속의 여(如)가  제일의(第一義) 여(如)이나, 중생들이  여(如)를 모르기 때문에 세속의 이치로써 그들에게 ‘있다ㆍ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復次,衆生於五受陰中有所著,爲是衆生離所有、得無所有故,菩薩說“無所有”;世俗法故分別諸法,欲令衆生知是無所有。如是,須菩提!菩薩應學無所有般若波羅蜜。

또한 중생들은 오수음(五受陰)에 대하여 집착하는 바가 있으니, 이러한 중생들은 있는 것을 여의고 없는 것을 얻는다고 하기 때문에 보살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고 말하며,

세속의 법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법을 분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이것이 있는 바 없는 무소유임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이 마땅히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