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초발심 공덕품(初發心功德品) 2
(5) 世界成壞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阿僧祗世界成壞劫數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하면 此諸劫數를 無有能得知其邊際니
有第二人이 於一念頃에 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劫數하고 如是廣說하야 乃至第十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此十方阿僧祗世界成壞劫數는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成壞劫數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悉知一切世界成壞劫하야 盡無餘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所謂知長劫이 與短劫平等하고 短劫이 與長劫平等과 一劫이 與無數劫平等하고 無數劫이 與一劫平等과
有佛劫이 與無佛劫平等하고 無佛劫이 與有佛劫平等과 一佛劫中에 有不可說佛하고
不可說佛劫中에 有一佛과 有量劫이 與無量劫平等하고 無量劫이 與有量劫平等과 有盡劫이 與無盡劫平等하고
無盡劫이 與有盡劫平等과 不可說劫이 與一念平等하고
一念이 與不可說劫平等과 一切劫이 入非劫하고 非劫이 入一切劫하며
欲於一念中에 盡知前際後際와 及現在一切世界成壞劫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是名初發心大誓莊嚴으로 了知一切劫神通智니라
[世界 成壞는 작게는 우리 몸 속의 세포, 넓게는 우주의 많은 별들이 끝임 없이 태어나고ㆍ사라지는 것이 成壞=成住壞空. 사람에게는 生老病死ㆍ生住異滅. 계절로 치면 春夏秋冬입니다.]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 두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가사 어떤 사람이 한 순간에
能知東方阿僧祗世界成壞劫數(능지 동방 아승지세게 성괴겁수)호대, 동쪽 아승지 세계의 이루고 무너진 겁 수를 알고
念念如是하야, 매 순간마다 이와 같이 하여
盡阿僧祗劫(진아승지겁)하면, 아승지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此諸劫數(차제겁수)를, 그 모든 겁 수는
無有能得知其邊際니, 그 끝을 알기 어려울 터인데
有第二人이 於一念頃(어일념경)에 두 번째 사람이 한 순간에
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劫數(능지전인 아승지겁소지겁수)하고, 능히 앞 사람이 아승지겁 동안 알아낸 겁 수를 알고
如是廣說(여시광설)하야, 이와 같이 넓혀가서
乃至第十(내지제십)하며. 열 번째 사람까지 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사유상사)도 남서북방과 사유상하에서도
亦復如是하면 그와 같이 하였다 해도
佛子야 此十方阿僧祗世界成壞劫數는, 불자여, 그 시방 아승지 세계의
可知邊際(가지변제)어니와, 이루고 무너진 겁 수는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의 善根은 공덕과 선근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그 끝을 아무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菩薩이 왜냐하면, 보살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成壞劫數故로, 단지 그 곳 세계가 이루고 무너진 겁 수를 알기 위해, 齊限=한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一切世界成壞劫하야, 일체 세계의 이루고 무너진 겁 수를
盡無餘故(진무여고)로, 남김없이 다 알아내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所謂말하자면, 知長劫(소위지장겁)이 與短劫平等(여단겁평등)하고, 장겁=긴 겁이 단겁= 짧은 겁과 평등하고
短劫이 與長劫平等과, 단겁이 장겁과 평등하며,
一劫이 與無數劫平等하고, 일 겁이 무수한 겁과 평등하고
無數劫이 與一劫平等과, 무수한 겁이 일 겁과 평등하며,
有佛劫이, 부처님 계신 겁이 與無佛劫平等하고, 부처님이 안 계신 겁과 평등하고
無佛劫이 與有佛劫平等과, 부처님 안 계신 겁이 부처님 계신 겁과 평등하며,
一佛劫中에, 한 부처님 겁 안에 有不可說佛하고, 불가설의 부처님이 계시고
不可說佛劫中에, 불가설의 부처님 겁 안에 有一佛과, 한 부처님이 계시며,
有量劫이, 한량있는 겁이 與無量劫平等하고, 한량없는 겁과 평등하고
無量劫이, 한량없는 겁이 與有量劫平等과, 한량있는 겁과 평등하며,
有盡劫이 與無盡劫平等하고, 다함이 있는 겁이 다함이 없는 겁과 평등하고
無盡劫이 與有盡劫平等과, 다함이 없는 겁이 다함이 있는 겁과 평등하며,
不可說劫이 與一念平等하고, 불가설의 겁이 한 순간과 평등하고
一念이 與不可說劫平等과, 一念= 한 순간이 불가설의 겁과 평등하며,
一切劫이 入非劫하고, 모든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고
非劫이 入一切劫하며, 겁 아닌 것이 모든 겁에 들어감을 知=아는 것이며,
欲於一念中에 한 순간에 盡知 前際後際와, 전생과 후생, 及, 그리고
現在一切世界成壞劫故로, 현재의 모든 세계가 이루고 무너진 겁을 다 盡知=알고자 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是名 이것을 初發心大誓莊嚴(초발심대서장엄)으로, 초발심하고 큰 서원(원력)으로 장엄하여
[大誓莊嚴= 큰 서원=원력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큰 장엄입니다.]
了知一切劫神通智니라. 일체의 겁을 요지하는 신통의 지혜'라 하느니라.
[지루하게 비유를 많이 든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종이와 붓이 귀했던 옛날에는 이렇게 중언부언해서 기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1700여년 전에 아도화상이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하려고 마음을 내어서, 한국에 불교가 오늘 날까지 이렇게 전해 내려왔지 않습니까? 그 처음 마음 낸 공덕이 정말 한량이 없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 불교를 전하려고 마음 한번 낸 것이 오늘 날 우리에게까지 이런 큰 혜택이 돌아온 겁니다.]
[우리 몸속에 60조 이상의 많고 많은 세포가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는데, 제가 왜 세포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스님들 모르시지요? 저는 한 달에 20억 마리의 세포를 제 몸에 넣습니다. 제가 아주 중병이라서 그런 특수한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것이 20억 마리, 20억cell을 제 몸에 넣는데, 그것 얼마나 견디느냐? 그랬더니, “글쎄요. 한 10분의 1이나 살면 잘 살지요.” 의사가 그래요. 10분의 1이나 살면 잘 사는, 가면서 죽고ㆍ오면서 죽고, 끊임없이 그렇게 생멸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60조나 되는 세포가 있는데, 이 순간도 그 세포가 얼마나 많이 생멸하겠습니까?]
6) 衆生의 差別理解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阿僧祗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解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이어든 有第二人이 於一念頃에 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衆生諸解差別하야
如是亦盡阿僧祗劫하며 次第展轉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此十方衆生의 種種差別解는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解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解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所謂欲知一切差別解無邊故와 一衆生解無數衆生解平等故며 欲得不可說差別解方便智光明故며
欲悉知衆生海各各差別解하야 盡無餘故며 欲悉知過現未來善不善種種無量解故며 欲悉知相似解不相似解故며
欲悉知一切解가 卽是一解와 一解가 卽是一切解故며 欲得如來解力故며
欲悉知有上解無上解와 有餘解無餘解와 等解不等解差別故며
欲悉知有依解無依解와 共解不共解와 有邊解無邊解와 差別解無差別解와 善解不善解와 世間解出世間解差別故며
欲於一切妙解大解無量解正位解中에 得如來解脫無障礙智故며 欲以無量方便으로
悉知十方一切衆生界一一衆生의 淨解染解와 廣解略解와 細解麤解하야 盡無餘故며
欲悉知深密解와 方便解와 分別解와 自然解와 隨因所起解와 隨緣所起解와 一切解網하야 悉無餘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중생들이 차별되게 이해하는 것이 각양각색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화엄경을 펼쳐놓고 있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이해합니다.
또 오늘만 이렇게 이해하지, 내일은 또 달리 이해하고 또 모레도 달리해서, 시시각각 달리 이해합니다. 왜냐? 지금 이 시간 이 후의 삶은 전혀 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우리가 어딜 가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가만히 눈감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무한한 시간을 여행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 시간은 과거에 공자ㆍ맹자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 시간을 우리는 이렇게 여행하고 있고, 석가ㆍ달마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우리는 지금 이렇게 오늘 날 살고 있는 겁니다.
다음시간 또 다음시간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새로운 삶을, 매시간 새로운 삶을 여행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이해차별 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끊임없이 달라져야 되고,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佛子야 復置此喩(부치차유)하고,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假使(가사)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東方阿僧祗(아승지)世界所有衆生의, 동쪽으로 아승지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種種差別解호대, 갖가지 차별한 이해를 알아 내고 [阿僧祗= 無量(무량)]
念念如是하야, 매 순간마다 이와 같이
盡阿僧祗劫(진아승지겁)이어든, 아승지 겁이 다하도록 하며,
有第二人이, 두 번째 사람은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衆生諸解差別하야, 앞 사람이 아승지 겁 동안 알아 낸 중생들의 모든 이해의 차별함을 알아
如是亦盡阿僧祗劫하며, 그렇게 또 아승지 겁이 다하도록 하며,
次第展轉(차제전전)하야, 차례차례 전개를 거듭하여
乃至第十하고, 열 번째 사람까지 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그와 같이 하였다 해도
佛子야 此十方衆生의 種種差別解는 불자여, 그 시방 중생들의 갖가지 차별한 이해는
可知邊際(가지변제)어니와,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이지만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善根은, 공덕과 선근은 無有能得知 其際者니라. 아무도 其際=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부제한)하야, 불자여, 보살은 단지 그 곳 중생들의
[齊限= 한계, 선을 긋다. 어디까지라고 한계를 짓는]
但(단), 다만 爲知 爾所衆生解故(이소중생해고)로, 이해를 알기 위해서로 齊限=한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그 정도 중생들의 이해를 알려고 발심한 것이 아니다.]
爲盡知(위진지), 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解故로,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차별한 이해를 爲盡知= 다 알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所謂 欲知 一切差別解의, 말하자면, 일체의 차별한 이해가 無邊故와, 끝이 없음을 知= 알고,
一衆生解 無數衆生解平等故며 한 중생의 이해가 무수한 중생의 이해와 평등함을 知=알며,
欲得 不可說差別解와 方便智光明故며, 불가설의 차별한 이해에 대한 방편의 지혜광명을 얻고,
欲悉知 衆生海各各差別解하야, 중생바다의 각각 차별한 이해를
盡無餘故(진무여고)며, 남김없이 다 알며,
欲悉知 過現未來의,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善不善, 선하고 선치 못한
種種無量解故며, 갖가지의 한량없는 이해를 다 알고,
欲悉知 相似解(상사해)와, 서로 비슷한 이해와 [似 같을 사, 닮을 사]
不相似解故(불상사해고)며, 비슷하지 않은 이해를 다 알며,
欲悉知 一切가 卽是一解와, 일체의 이해가 곧 한 이해요
一解가, 卽是一切解故며, 한 이해가 곧 일체의 이해임을 알고,
欲得 如來解力故며, 여래의 이해력을 얻으며,
欲悉知 有上解無上解와, 유상해와 무상해, 위가 있는 이해와 위가 없는 이해와,
有餘解와 無餘解와, 유여해=남음이 있는 이해와 무여해=남음이 없는 이해와,
等解不等 解差別故며, 등해와 부등해의, 평등한 이해와 평등하지 아니한 이해의 차별함을 欲悉=다 알고자 함이며,
欲悉知 有依解 無依解와, 유의해와 무의해,
共解와 不共解와 有邊解와 無邊解와 差別解와 無差別解와 善解와 不善解와
공해와 불공해, 유변해와 무변해, 차별해와 무차별해, 선해와 불선해,
世間解와 出世間解의 差別故며 세간해와 출세간해를 欲悉知= 다 알아 내고
欲於一切妙解, 일체의 미묘한 이해, 大解, 無量解 큰 이해, 한량없는 이해, 正位解中에, 바른 지위의 이해 안에서
得 如來解脫 無障碍智(무장애지)며, 여래의 해탈하신 걸림없는 지혜를 얻으며,
欲以 無量方便으로, 무량방편으로
悉知十方一切衆生界의 一一衆生의 시방 일체의 중생세계에 있는 낱낱 중생들의
淨解染解(정해염해)와, 청정한 이해와 물든 이해,
廣解略解(광해략해)와, 자세한 이해와 간략한 이해,
細解麤解(세해추해)하야, 세밀한 이해와 거친 이해를
盡無餘故(진무여고)며, 빠짐없이 다 알아 내고,
欲悉知 深密解(심밀해)와, 깊고 은밀한 이해,
方便解와 分別解와 自然解와 방편의 이해, 분별의 이해, 자연적 이해,
隨因所起解(수인소기해)와, 인을 좇아 일어난 이해,
隨緣所起解와, 연을 따라서 일어나는 바의 이해와, 연을 좇아 일어난 이해 등의
一切解網(일체해망)하야 悉無餘故로, 모든 이해의 그물을 남김없이 欲悉知= 다 알아 내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발심ㆍ발보리심” 그 말속에는 이러한 내용이 다 포함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해도 그 한마디 속에는 이러한 발심의 공덕이 다 포함 되어있습니다.]
(7) 衆生의 根性理解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無數世界一切衆生의 諸根差別호대
念念如是하야 經阿僧祗劫이어든 有第二人이 於一念頃에 能知前人의 阿僧祗劫에 念念所知諸根差別하며
如是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此十方世界所有衆生의 諸根差別은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衆生根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中一切衆生根의 種種差別하며 廣說乃至欲盡知一切諸根網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불자여, 다시 이 비유는 그만 두고, 假使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東方無數世界一切衆生의 諸根差別호대,
동쪽으로 무수한 세계에 있는 일체중생들의 근기의 차별함을 能知= 능히 알고
念念에 如是하야, 매 순간마다 이와 같이 經阿僧祗劫이어든, 아승지 겁이 다하도록 하며,
有第二人이 於一念頃에 두 번째 사람은 한 순간에 能知前人의, 능히 앞 사람이
阿僧祗劫에 念念이 所知諸根差別하며, 아승지 겁 동안 매 순간 알아 낸 모든 근기의 차별함을 알고,
如是廣說하야, 이렇게 계속하여 乃至第十하고, 열 번째 사람까지 하고
[첫 번째 사람이 아는 것ㆍ두 번째 사람이 아는 것까지 세 번째 사람이 알고, 네 번째 사람은 첫 번째ㆍ두 번째ㆍ세 번째 사람이 아는 것까지 알아서 第十= 열번째 사람까지 이르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하더라도
佛子야 此十方世界所有衆生의 諸根差別은, 불자여, 그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의 차별함은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 6근이 주된 根]
諸根差別은 可知邊際(가지변제)어니와, 그 끝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지만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의 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공덕과 선근은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菩薩이 不齊限하야, 보살은
但, 단지 爲知爾所世界衆生根故로, 그 곳 세계 중생들의 근기를 알기 위해 齊限= 한정하여
[제한을 해서 분제를 나누어,어디까지라고 한계를 나눠놓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爲盡知一切世界中一切衆生根의 일체세계 일체중생의 근기의
種種差別하며, 갖가지 차별을 爲盡知= 다 알아 내는 것에서
廣說 乃至欲盡知 一切諸根網故로, 나아가 일체의 모든 근기의 그물까지를 爲盡知= 다 알아 내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8) 衆生의 欲樂理解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의 種種欲樂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하며 次第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此十方衆生의 所有欲樂은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欲樂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欲樂하며 廣說乃至欲盡知一切欲樂網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중생의 欲樂이 얼마나 여러 가지입니까?
옛날에 즐기던 것이 지금은 싫고, 오늘 좋던 것은 내일은 싫고, 새로운 것이 또 좋고, 끊임없이 사람마다 欲樂이 다 다르면서 또 그때ㆍ그때마다 달라집니다. 나이가 들면 음식 취향도 달라지듯이, 철이 들면서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다 달라지고 또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안목을 넓힘에 따라서도 변하는 것입니다.]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불자여, 다시 이 비유는 그만 두고,
假使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의 동쪽으로 무수한 세계에 있는 일체중생들의
種種欲樂호대, 갖가지 욕락을 能知= 능히 알고
念念如是하야, 매 순간마다 이와 같이 盡阿僧祗劫하며, 아승지 겁이 다하도록 하며,
次第로 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차례차례 넓혀가서 열 번째 사람까지 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하더라도
此十方衆生의 所有欲樂은, 그 시방 중생들이 지닌 욕락은
可知邊際어니와, 그 끝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지만
[100명을 모아서 “자기 좋아하는 것 열 가지씩 써 내라.” 하면 정말 여러 가지일겁니다.]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의 善根은 공덕과 선근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아무도 其際=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불자야, 보살은
但爲知爾所衆生欲樂故로, 단지 그 곳 세계 爾所= 앞에서 설명한 중생들의 욕락을 알기 위해서로 齊限=한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爲盡知 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欲樂하며, 일체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을 盡知=다 알고
廣說하면 乃至欲盡知一切欲樂網故로, 나아가 일체의 욕락의 그물까지를 爲盡知= 다 알아 내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보리심을 발함에는 중생의 온갖 취향, 욕심, 즐기는 꺼리, 문제와 고통까지도 다 아는 것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궁극에 가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중생의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9) 衆生의 方便理解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의 種種方便하며
如是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此十方衆生의 種種方便은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衆生의 種種方便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方便하며 廣說乃至欲盡知一切方便網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불자여, 다시 이 비유는 그만 두고,
假使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 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의 種種方便하며, 동쪽으로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능히 알고
如是廣說하야, 이와 같이 넓혀가서 乃至第十하고, 열 번째 사람까지 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하더라도
此十方衆生의 種種方便은, 그 시방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은
可知邊際어니와, 그 끝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지만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의 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공덕과 선근은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왜냐하면, 불자야, 보살은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衆生의, 단지 그 곳 세계 중생들의
種種方便故로, 갖가지 방편을 알기 위해서로 齊限=한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爲盡知 一切世界所有衆生의 種種方便하며 일체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다 알고
廣說하면 乃至欲盡知 나아가 一切方便網故로, 일체의 방편그물까지를 다 알아 내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口傳佛敎에서 화엄경 문장은 대나무 장대처럼 길게 뻗쳐 나간다는 뜻으로 장대 화엄이라 했습니다.
기신론은 아주 논리 정연해서, 역대 논문치고 조직이 제일 잘 돼있는 논문이고, 능엄경은 글이 넉자로 돼서 글이 아주 야무져서, 마치 유식 30송처럼 한 글자 속에 뜻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깐깐 기신ㆍ차돌 능엄” 이라 합니다]
(10)衆生의 差別心理解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心하며
廣說乃至此十方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心은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功德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心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悉知盡法界虛空界無邊衆生의 種種心하며 乃至欲盡知一切心網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衆生의 差別心理解. 차별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불자여, 다시 이 비유는 그만 두고,
假使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知 東方으로 無數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心하며,
동쪽으로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차별한 마음을 알고
廣說 乃至此十方世界所有衆生의 種種差別心은
더 넓혀가서 열 번째 사람까지 해도 그 시방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차별한 마음은
可知邊際어니와, 그 끝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지만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功德의 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공덕과 선근은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왜냐하면, 불자야, 보살이
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心故로, 단지 그 곳 세계 중생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로 齊限=한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爲悉知盡 法界와 虛空界에 無邊衆生의 種種心 온 법계 허공계의 가이없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다 알고
乃至欲盡知 一切心網故로, 모든 마음의 그물까지도 다 알기 위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중생의 마음을 몰라서는 중생제도 할 수가 없습니다.
중생의 마음이 다양하고 각양각색인 것을 다 알아야 제대로 법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옛날 부처님법문은 대중법문이 아닌, 거의 맞춤 법문이라서, 한 사람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일대일로 설명하면 옆에 있던 제자들은 덩달아서 듣고는 소득을 얻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