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초발심 공덕품(初發心功德品) 1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초발심공덕품) 第十七.
[[무릇 초발심을 한 선비가 '공덕이 측량키 어려워 허공과 동등함'을 들더라도 그 類를 비교할 수가 없고, 刹塵을 갈아서 소진하더라도 그 짝을 수작할 수 없다. 허공은 다만 無相의 커다람을 밝힌 것이고 이체의 刹塵은 다만 형상의 장애가 드넓음을 밝힌 것이니, 어찌 보리심의 복과지혜의 경계와 대비할 수 있겠는가? 이 지혜라는 것은 찰나에 시방 가득히 몸을 나타내는 것을 구름같이 하면서도 因陀羅網의 묘한 像이 서로 옮겨 들어옴이 빛 그림자가 겹쳐서 다함이 없는 것과 같아서 제각기 하나의 言音으로 법계에 두루하면서 중생과 동등한 가르침의 문을 설하되 마치 비처럼 중생의 마음에 뿌려서 청량한 즐거움을 얻게 한다.
또 福이라는 것은 묘한 相의 장엄이 華藏과 더불어서 그 體가 같으니, 초발심 때 시방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평등하고 다함 없는 劫海에 머물면서도 찰나 속에서 늦고 빠름이 서로 같은 것이 마치 하나의 작은 흐름이 큰 바다에 들어가 큰 바다와 동등해지더라도 물의 體는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가령 초발심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대지혜의 흐름 속에 겨우 들어가더라도 부처님의 공덕과 같기 때문에 처음 들어가는 것과 마지막의 궁극이 시기의 늦고 바름이 없는 것이며, 또 지혜가 하나이기 때문에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모두 성불케 하는 것이 뜻과 願이 동등하기 때문이다.
또 시방세계를 다 갈아 티끌을 만들어서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한량없는 불찰과 한량없는 중생이 있는데, 저 보리심의 대지혜身이 1찰나에 일체의 刹塵과 같아지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일시에 평등히 두루하는 것은 단지 지혜의 힘을 쓰기 때문이며, 법이 이렇기 때문이며, 지혜가 두루하기 때문이니 신통변화의 想은 짓지 말아야 한다. 이는 초발심 보살이 志樂이 광대하여 佛界와 衆生界와 더불어 평등해서 한량이 없기 때문이니, 따라서 이 품에서 찬탄한 초발보리심은 그 열가지 공덕이 비할 바 없이 광대하고 헤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불과의 根本不動大智인 不思議法界乘에서 발심한 자는 마치 輪王의 태자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왕의 모습을 구족한 것과 같으며, 사자 새끼의 위세가 아비와 더불어 같으니 體가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래서 처음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최초로 여래 지혜의 種性 가문에 태어날 때 지혜의 아는 바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삼세 時劫의 늦고 빠름이 없는 견해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志樂이 광대해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초발심부터 여래의 一切智乘을 타고서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等正覺을 이루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설령 세간의 情을 따르는 3승의 가르침에서 3기겁을 설하여 성불하는 자라도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 一切智境界乘에 들어가야 비로소 성불함을 얻는 것이니, {법화경}이 바로 이 마음을 돌이키는 3승이 일체지의 경계에 들어가는 가르침이니, 예컨대 용녀가 1찰나에 一生成佛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일체 중생이 모두 반드시 이 법을 깨달아야 비로소 성불하게 되는 것이니, 여래의 3승 중에서 세간을 따르는 방편의 말을 취해서는 안 되다. 법이 이렇기 때문에 이 품 아래 경문에서 “초발심 보살이 겨우 발심할 때, 즉각 시방의 일체 부처님께서 다 함께 칭찬하게 되고, 즉각 능히 법을 설함으로써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고 나아가 성불을 나타내 보이는 것 등이다”라고 하였으니, 경문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이 품에 모두 40단락의 經意가 있고, 게송은 142행이 있어서 초발심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고 있다.
이 품을 [초발심공덕품]이라 했으니, 첫 발심부터 옛날과 지금이 없음을 봄을 初라 하고, 무심의 지혜가 감응하는 것을 發이라 하며, 身邊의 견해가 소진함을 心이라 이름붙인다. 함이 없이도 大果를 성취함을 功이라 하고, 다만 일체를 교화해 이롭게 할 뿐 오는 과보를 기꺼워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가없는 묘한 相의 장엄을 얻기 때문에 德이라 하며, 또 복과 지혜가 두루함을 功이라 하고, 事를 요달하지 않음이 없음을 德이라 하고, 품이란 것은 뜻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9품 중 열 일곱 번째 품 初發心功德品(초발심공덕품).
初發心= 처음 낸 마음, 發心의 心= 보리심= 佛心= 부처님 마음ㆍ깨달음의 마음ㆍ깨어있는 마음ㆍ남을 배려하는 마음ㆍ자비심ㆍ지혜심 등의 모든 의미인 깨달음을 위해 처음 발한 그 공덕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一,帝釋天王의 請法
爾時에 天帝釋이 白法慧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의 初發菩提之心하야 所得功德은 其量이 幾何니잇고
爾時에 天帝釋이 그때 제석천왕이 白法慧菩薩言하사대, 법혜보살에게 물었다.
佛子야 菩薩의 初發菩提之하야, "불자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서
所得功德(소득공덕)은, 얻는 공덕은 其量(기량)이 幾何(기하)니잇고? 얼마나 되나이까."
[불교를 믿겠다고 처음을 마음 냈을 때, 나머지 불교가 다 따라옵니다. 전국의 절이 내 절이고, 전 불교문화가 내 문화이고, 불교역사가 내 역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부 내 것으로, 일체 불교적인 모든 것들이, 불교의 칭찬도 비판도 따라오고, 불교를 통해서 내가 어떤 행복을 누리고 안녕을 누리는 것도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二,法慧菩薩의 說法
(1) 難說難解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此義甚深하야 難說이며 難知며 難分別이며 難信解며 難證이며 難行이며
難通達이며 難思惟며 難度量이며 難趣入이어니와 雖然이나 我當承佛威神之力하야 而爲汝說호리라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법혜보살이 말했다. 此義甚深(차의심심)하야, 이 의미는 심오하여
難說이며, 말하기도=설명하기도 어렵고 難知며, 알기도 어렵고
難分別이며, 분별하기도 어렵고 難信解며, 믿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難證(난증)이며, 증득하기도 어렵고 難行이며, 행하기도 어렵고
難通達(난통달)이며, 통달하기도 어렵고 難思惟며, 생각하기도 어려우며,
難度量(난탁량)이며, 헤아리기도 어렵고 難趣入이어니와,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雖然(수연)이나, 비록 그렇다 해도 我當承佛威神之力(아당승불위신지력)하야,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而爲汝說(이위여설)호리라. 그대에게 말하리라.
(2) 衆生利益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東方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一劫하고
然後에 敎令淨持五戒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此人功德이 寧爲多不아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요 其餘一切는 無能量者니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 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 이며 如是億分과 百億分과 千億分과 百千億分과 那由他億分과 百那由他億分과
千那由他億分과 百千那由他億分과 數分과 歌羅分과 算分과 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佛子야 假使有人(가사유인)이, 불자여 가사 어떤 사람이 以一切樂具(이일체낙구)로, 온갖 좋은 것들로
供養東方阿僧祗世界所有衆生(공양동방아승지세계소유중생)호대,
동쪽으로 아승지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經於一劫하고, 일 겁 동안 공양하고 然後에, 그런 뒤에
敎令ㆍ淨持ㆍ五戒(교령정지오계)하며, 가르쳐서 오계를 청정히 지키게 하고
[끝없이 동쪽으로 가면서 일체 즐길 거리를 가지고 아승지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한 번만 공양 올린 것이 아니라 1겁 동안 공양한 뒤에, 가르쳐서 五戒를 청정하게 가지도록 한다. 이래야 됩니다. 우리 불교는 空手來空手去라서 그런가 갖다 주고는, 우물을 파주고는 그냥 옵니다. 예불이라도 드리고 불교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해서 불교에 눈을 뜨게 해야지요. 옛날에 제가 어릴 때 천주교 다녔는데, 가면 꼭 뭔가를 주는데, 하나님소리 한번이라도 부르게 하고 주는 겁니다. 우리불교가 본받아야할 것이 바로 그런 점인데, 인심 좋게 그냥 퍼다 주기만 하고 맙니다.]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과 사유상하도 그렇게 했다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此人功德이 寧爲多不(영위다부)아?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 하지 않겠는가?"
天帝가 言하사대, 천제가 말했다.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유불능지)요,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요
其餘一切(기여일체)는, 그 밖의 다른 모두는 無能量者니이다. 측량할 이가 없겠나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법혜보살이 말했다. 佛子야 此人功德을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보살의 초발심 공덕에 비하면 百分에 不及一(불급일)이며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千分에 不及一이며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如是億分(여시억분)과 百億分과 千億分과 百千億分과 이렇게 억분의. 백 억분의. 천 억분의. 백천 억분의.
那由他億分(나유타억분)과 百那由他億分과 나유타 억분의. 백 나유타 억분의.
千那由他億分과 百千那由他億分과 천 나유타 억분의. 백천 나유타 억분의.
數分과 歌羅分(가라분)과 수분의. 가라분의.
算分(산분)과 喩分(유분)과 優波尼沙陀分(우파니사타분)에도 산분의. 유분의. 우바니사타분의 일에도
亦不及一이니라. 또한 미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공양한 바를 갖고서 교량할 수 없음을 올바르게 밝힌 것이다.가령 歌羅分이라는 것은 많음[多]을 적음[少]에 비교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비유이니, 말하자면 사람 몸의 털을 분해해서 100으로 나눴는데 앞 사람이 지은 공덕으로도 초발심 보살의 100分毛 중 1분모쯤의 공덕만도 못한 것이다. 또 優波尼沙陀分이라 말한 것은 약간은 서로 근접함을 말한 것이니, 한계가 없는 선근을 한계가 있는 선근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對比한 것이다.]]
(3)二乘法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且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百劫하고
然後에 敎令修十善道하며 如是供養을 經於千劫하고 敎住四禪하며 經於百千劫하고 敎住四無量心하며
經於億劫하고 敎住四無色定하며 經於百億劫하고 敎住須陀洹果하며 經於千億劫하고 敎住斯陀含果하며
經於百千億劫하고 敎住阿那含果하며 經於那由他億劫하고 敎住阿羅漢果하며
經於百千那由他億劫하고 敎住辟支佛道하면 佛子야 於意云何오 是人功德이 寧爲多不아
佛子야 且置此喩하고, 불자여, 이 비유는 차치하고, [且置차치 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음. 且 또 차]
假使有人이 以一切樂具로, 가사 어떤 사람이 온갖 좋은 것들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호대 經於百劫하고, 시방으로 열 아승지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백 겁 동안 공양한
然後에, 그런 후에 敎令修十善道며, 십선도를 닦도록 가르치며,
[[敎修十善道는 身의 세 가지, 口의 네 가지, 意의 세 가지로서, 욕계의 天에 태어나는 善.
십선도(十善道) 또는 십선계(十善戒)=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 불탐욕(不貪欲), 불진에(不瞋恚), 불사견(不邪見)]]
如是供養을 經於千劫하고 敎住四禪하며, 이렇게 공양하며 천 겁 동안 가르쳐 4선에 머물게 하고,
4禪은 색계의 업이니, 初禪은 근심[優]을 멸하고 2선은 괴로움[苦]을 멸하며, 3선은 기쁨[喜]을 멸하고, 4선은 오직 寂靜뿐이다.
經於百千劫하고 敎住四無量心하며, 백천 겁 동안 가르쳐서 4무량심에 머물게 하며,
[[四無量心은 有爲 중의 慈悲喜捨.]]
經於億劫(경어억겁)하고 敎住四無色定하며, 억 겁을 가르쳐 사무색정에 머물게 하고,
[선정의 차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四無色定은 무색계의 선정이다. 이상은 3界 속의 善業.]]
[[초기불교에서 四禪定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수행법인 사무색정의 4가지 선정은 空無邊處定 ·識無邊處定 ·無所有處定 ·非想非非想處定. 이 사무색정을 수행할 때 도달하는 세계를 四無色天 혹은 四空處라고 한다.
사무색정은 無色界定이라고도 한다.
공무변처정은 색계의 제4선정 다음 단계로서 의식의 모든 대상을 소멸하여 허공에 집중하는 선정이다. 여기에서는 色과 想을 초월하여 어떤 대상도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소멸시켜 끝없는 허공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식무변처정은 공무변처정도 초월하여 허공에 집중하는 의식의 무한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다. 무한한 허공에 집중했던 선정 상태에서 집중하는 현재 의식 자체로 집중 대상이 바뀐 것이다.
무소유처정은 허공과 의식에 집중했던 이전 선정을 초월하여 의식의 대상에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상비비상처정은 삼계(三界: 욕계·색계·무색계)의 가장 최상 단계에 있는 상태이므로 有頂處, 혹은 有頂天이라고 한다. 이 선정에서는 의식의 대상이 인식할 수 없는 대상으로 있기 때문에 非想이지만, 미세하게 잠재되어 있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非非想이라 한다.
사무색정에서 각 선정은 이전의 선정 단계에서 체험한 상태의 본질이 질병, 종기, 상처, 가시와 같이 고통스럽고 무상하며 허망하다는 것을 통찰하여 그 집중 상태를 해체하면서 초월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상비비상처정 역시 9차제정 중 8번째 선정 단계로서, 이 역시 해체하여 想受滅盡定으로 초월해야 한다.]]
經於百億劫하고 敎住須陀洹果(교주수다함과)하며, 백억 겁 동안 가르쳐 수다원과에 머물게 하며,
[[敎住須陀洹果은 소위 처음으로 見惑을 끊어 異生의 성품을 버리고, 처음 聖性을 얻어 聖行의 흐름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명칭이 '흐름에 들어감[入類]. ]]
經於千億劫하고 敎住斯陀含果(교주사다함과)하며, 천억 겁 동안 가르쳐 사다함과에 머물게 하고,
[[敎住斯陀含果는 一來인데, 이른바 성자가 비록 욕계의 6품 미혹을 끊었지만 나머지 3품은 아직 끊지 못해서 이 성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욕계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一來果인.
斯陀含은 욕계의 여섯 가지 미혹을 끊지만 색계의 탐심이 없지 않으며, 성냄[瞋]·어리석음·아만의 세 가지는 희미하고 엷어져서 현행이 생기지는 않으나 종자가 없지 않으며, 위의 2界의 과보에 성냄이 없게 되는 것은 선정을 닦아 조복해서 현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수다원과 사다함의 2果는 患難을 싫어해 증장하지 않게 함으로써 늘 세간을 벗어나기를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로써 삼계에 빠지는 種子를 이루지 않는 것이다. ]]
經於百千億劫하고 敎住阿那含果(교주아나함과)하며, 백천억 겁 동안 가르쳐 아나함과에 머물게 하며,
[[敎住阿那含果는 不還, 욕계의 9품 미혹을 다 끊어 이로부터 색계에 태어나서 다시는 욕계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이 不還:不來, 이는 10使 중 見道의 의심이 능히 명료하지 못해서 아라한果에 들지 못한 것이다.
10사 번뇌는 1. 身見, 2. 邊見, 3. 見取, 4. 戒取, 5 邪見인데 이상 다섯 가지는 利使가 된다.
이후의 다섯 가지 鈍使는 見諦에서 끊어지고, 6. 탐냄, 7. 성냄, 8. 어리석음, 9. 아만, 10 의심, 이 다섯 가지 鈍使는 능히 행에 따른 事를 미혹시키는 것이다. 이 10使 중 다섯 가지 利使는 수다원이 見諦 뒤에 조복시켜서 일어나지 않으며, 나중의 다섯 가지 鈍使는 희박해진다.
阿那含은 厭離(싫어해서 벗어남)로서 영원히 쉬게 하지만, 오직 見道의 의심만이 있어서 견도가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능히 삼계의 業果를 단박에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經於那由他億劫하고 敎住阿羅漢果(교주아라한과)며, 나유타 억 겁 동안 가르쳐 아라한과에 머물게 하고,
[[阿羅漢은 견도에 의심이 없어서 삼계의 업과가 일시에 소진하는 것이다. 이전의 세 가지 果와 비교하면 설령 아홉 가지 번뇌를 끊을지라도 오직 의심만은 존재하기에 여전히 번뇌를 끊었다고 이름붙이지는 못하는 것이니, 見諦의 무명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厭伏(싫어해서 조복시킴)이라 칭하는 것이며 끊음[斷]이라 칭하지는 않는 것이다.]]
經於百千那由他億劫하고 敎住辟支佛道하면, 백천 나유타 억 겁 동안 가르쳐서 벽지불도에 머물게 하였다면,
[[또 아라한과 벽지불은 다만 세간을 벗어남만 기뻐하고, 정토보살과 공관보살도 세간을 벗어남을 기뻐해서 6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현행의 무영을 꺾어 굴복시킨 것이지 번뇌를 영원히 끊었다고 칭하지못하는 것이니, 이 또한 공관으로 무명을 꺾어 굴복시킬 뿐, 무명이 본래로부터 온 부동지불임을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본을 요달하지 모하고 空으로 꺾어 굴복시켜 일어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10地에 이르더라도 다만 意生身 등을 얻을 뿐, 여래의 一切種智生身이라 이름붙이지 못하는 것이다. 10眞如 등의 觀을 지어서 열 가지 추중을 끊더라도 '무명이 본래 여래의 근본지라서 大用이 항상 공적함'을 요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佛子야, 於意云何오?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是人功德이 寧爲多不아?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 하지 않겠는가?"
天帝가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니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人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一切諸佛이 初發心時에 不但爲以一切樂具로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을
經於百劫과 乃至百千那由他億劫故로 發菩提心이요
不但爲敎爾所衆生하야 令修五戒十善業道하며 敎住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하며 敎得須陀洹果와
斯陀含果와 阿那含果와 阿羅漢果와 辟支佛道故로 發菩提心이라
爲令如來種性不斷故며 爲充徧一切世界故며 爲度脫一切世界衆生故며 爲悉知一切世界成壞故며
爲悉知一切世界中衆生垢淨故며 爲悉知一切世界自性淸淨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心樂煩惱習氣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死此生彼故며 爲悉知一切衆生의 諸根方便故며 爲悉知一切衆生心行故며
爲悉知一切衆生三世智故며 爲悉知一切佛境界平等故로 發於無上菩提之心이니라
天帝가 言하사대, 천제가 말했다.
佛子야 此人功德은 唯佛能知니이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겠나이다."
法慧菩薩이 言하사대 법혜보살이 말했다. 佛子야 此人功德을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보살의 초발심 공덕에 비교하면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도 亦不及一이니라. 내지 우바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何以故오? 왜냐하면, 불자여, 佛子야 一切諸佛이 모든 부처님께서 初發心時에, 초발심하실 때에,
不但爲(부단위) 以一切樂具로, 단지 온갖 좋은 것들로 [不但爲=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供養十方十阿僧祗世界所有衆生을, 시방 열 아승지의 세계 중생들을 공양하기 위해서
經於百劫과 乃至百千那由他億劫故로, 백 겁 내지 백천 나유타 억 겁 동안
發菩提心이요, 보리심을 내신 것이 不但爲=아니라, 敎爾所衆生(교이소중생)하야, 또 그러한 중생들을 가르쳐서
令修 五戒十善業道하며, 오계와 십선업도를 닦게 하시거나,
敎住四禪 四無量心 四無色定하며, 사선정. 사무량심. 사무색정에 머물도록 가르치시거나,
敎得須陀洹果와, 수다원과, 斯陀含果와, 사다함과, 阿那含果와, 아나함과, 아라한과나 阿羅漢果와,
辟支佛道故로, 벽지불도를 敎得=얻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 發菩提心이라. 보리심을 내신 것 만도 不但爲=아니며,
爲令如來種性不斷故며, 여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爲充遍(위충변)一切世界故며,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며,
爲度脫(위도탈)一切世界衆生故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고,
爲悉知一切世界成壞故(위실지일체세계성괴고)며, 일체 세계의 성괴(성 주 괴 공)를 다 알며,
爲悉知一切世界中衆生 垢淨故(구정고)며, 일체 세계 안에 있는 중생들의 垢淨=때 묻고 깨끗함을 다 알고,
爲悉知一切世界 自性淸淨故(자성청정고)며, 일체 세계의 자성이 청정함을 다 알며,
爲悉知一切衆生의 心樂煩惱習氣故(심락번뇌습기고)며, 일체중생의 마음에 바라는 것과 번뇌, 습기를 다 알고,
爲悉知一切衆生의 死此生彼故(사차생피고)며, 일체중생의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남을 다 알며,
爲悉知一切衆生의 諸根方便故(제근방편고)며, 일체중생의 근기와 방편을 모두 알고,
爲悉知一切衆生心行故며, 일체중생의 심행을 다 알며,
爲悉知一切衆生三世智故며, 일체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다 알고,
爲悉知一切佛境界平等故로,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가 평등함을 아시기 위해 [그래서 初發心했다]
發於無上菩提之心이니라. 위없는 보리심을 내셨기 때문이니라.
(4) 世界邊際와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이 於一念頃에 能過東方阿僧祗世界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하면
此諸世界를 無有能得知其邊際니
又第二人이 於一念頃에 能過前人阿僧祗劫所過世界호대 如是亦盡阿僧祗劫하고 次第展轉하야
乃至第十하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此十方中에 凡有百人이 一一如是過諸世界라도 是諸世界는 可知邊際어니와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所有善根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이 不齊限하야 但爲往爾所世界하야 得了知故로 發菩提心이라
爲了知十方世界故로 發菩提心이니 所謂欲了知妙世界가 卽是麤世界요
麤世界가 卽是妙世界와 仰世界가 卽是覆世界요 覆世界가 卽是仰世界와 小世界가 卽是大世界요
大世界가 卽是小世界와 廣世界가 卽是狹世界요 狹世界가 卽是廣世界와 一世界가 卽是不可說世界요
不可說世界가 卽是一世界와 不可說世界가 入一世界요 一世界가 入不可說世界와 穢世界가 卽是淨世界요
淨世界가 卽是穢世界하며 欲知一毛端中一切世界差別性과 一切世界中一毛端一體性하며
欲知一世界中에 出生一切世界하며 欲知一切世界無體性하며
欲以一念心으로 盡知一切廣大世界호대 而無障礙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佛子야 復置此喩(부치차유)하고, 불자여, 이 비유는 또 놔 두고
假使有人이, 가사 어떤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過東方阿僧祗世界호대, 동쪽으로 아승지의 세계를 지나가고 念念如是하야, 매 순간마다 이와 같이 하여
盡阿僧祗劫(진아승지겁)하면, 아승지겁이 다하도록 지나갔다면 此諸世界를, 그 모든 세계는
無有能得知 其邊際(기변제)니, 其邊際=그 끝을 알기 어려울 터인데
又第二人(우제이인)이, 또 두 번째 사람이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能過前人 阿僧祗劫 所過世界호대, 앞 사람이 아승지 겁 동안 지나간 세계를 지나가고
如是亦盡阿僧祗劫하고, 이와 같이 또 아승지 겁이 다 하도록 하며,
次第로 展轉(차제전전)하야 乃至第十(내지제십)하며, 차례차례 거듭 전개하여 열 번째 사람까지 하고
[앞 사람이 아승지 겁 동안 지나온 세계를 두 번째 사람이 능히 이와 같이해서 열 번째 사람에 이르며]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면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그와 같이 하기를
佛子야 此十方中에, 불자여, 이 시방 안에 있는 凡有百人(범유백인)이, 무릇 백 사람이
一一如是過諸世界라도, 저마다 그렇게 모든 세계를 지나갔다 하더라도
是諸世界는, 그 모든 세계는 可知邊際(가지변제)어니와, 가히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이지만
菩薩의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서
所有善根은, 지닌 선근은 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그 끝을 아무도 알 수 없느니라. [능히 그 邊際를 알 수가 없다.]
何以故오? 왜냐하면, 佛子야 菩薩이 불자여, 보살이 不齊限(부제한)하야, 한계를 지어서
但爲往爾所世界(단위왕이소세계)하야, 단지 갔었던 그 세계들을 알기 위해 한계를 지어서
得了知故로 發菩提心이라. 보리심을 내는 것이 不=아니라
爲了知十方世界故로 發菩提心이니, 시방 세계를 분명히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所謂 欲了知, 말하자면, 妙世界가 卽是麤(추)世界요, 아름다운 세계가 곧 추한 세계요
麤世界가 卽是妙世界요. 추한 세계가 곧 아름다운 세계이며,
仰(앙)世界 卽是覆(복)世界요. 위로 보는 세계가 곧 아래로 보는 세계요
覆世界가 卽是仰世界와 아래로 보는 세계가 곧 위로 보는 세계이며,
小世界가 卽是大世界 작은 세계가 곧 큰 세계요
大世界가 卽是小世界인 것과, 큰 세계가 곧 작은 세계이며,
廣(광)世界가 卽是狹(협)世界요 넓은 세계가 곧 좁은 세계요
狹世界가 卽是廣世界인 것과, 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이며,
一世界가 卽是不可說世界요 한 세계가 불가설의 세계요
不可說世界가 卽是一世界인 것과, 불가설의 세계가 곧 한 세계이며,
不可說世界가 入一世界요, 불가설의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가고
一世界가 入不可說世界에 한 세계가 불가설의 세계에 들어가며,
穢(예)世界가, 더러운 세계가 卽是淨世界요. 곧 깨끗한 세계요
淨世界가, 청정=깨끗한 세계가 卽是穢世界하며, 곧 더러운 세계임을 欲了知= 알기 위해,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이치를 알고자 보살이 발심했다.]
[[화엄경은 넌출문장, 넌출화엄입니다. 추가해서 문장을 늘려 나가는 것을 넌출문장이라 합니다.
기본어휘 꽃피다 → 꽃이 피다 → 꽃이 피었다 → 장미 꽃이 피었다 → 아름다운 장미 꽃이 피었다 → 아름다운 장미 꽃이 울타리에 피었다 등등으로 전개]]
欲知 一毛端中에 一切世界差別性(일모단중일체세계차별성)과, 한 털 끝 안에서 일체 세계의 차별한 성품을,
[欲知 = 欲了知.]
一切世界中, 일체 세계 가운데 一毛端 一體性을 일체 세계 안에서 한 털 끝 한 체성을 欲知= 알기 위해,
[一微塵中含十方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 보살이 초발심했다.]
欲知一世界中에, 한 세계에서 出生一切世界하며, 일체 세계가 생겨남을 알고,
欲知一切世界無體性하며, 일체 세계가 체성이 없음을 알기 위해,
欲以一念心으로 한 순간의 마음으로
盡知(진지) 一切廣大世界호대, 모든 광대한 세계를 盡知=다 아는 데에
而無障碍故(이무장애고)로, 장애가 없고자 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그러한 이유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이처럼 초발심 공덕을 비교하여 헤아려 보건대, 설령 허공과 동등한 무한 경계에서 일체의 樂具로 한량없는 중생에게 모두 공양함으로써 모두로 하여금 人天의 뛰어난 즐거움을 얻게 하고 또 네 가지 沙門果와 벽지불과와 3승의 세간을 벗어난 보리를 얻게 할지라도, 말하자면 이같은 허공의 경계와 제도 받는 중생이 비록 동등하긴 하지만 제도 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성불을 얻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또한 ‘이 가르침에서 초발심 때 여래의 대지혜를 타고 부처님께서 행하는 바와 동등함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다 성불케 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뜻이 있어서 들어가고 있는 경계의 넓고 좁음이 같지 않고, 교화받는 중생의 성불함과 성불하지 못함이 같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문에서는 “초발심 보살이 삼세에서는 조금도 얻는 바가 있지 않으니, 이른바 모든 부처님인 듯하고, 모든 佛法인 듯하고, 보살인 듯하고, 보살법인 듯하고, 독각인 듯하고, 독각의 법인 듯하고, 성문인 듯 하고, 성문의 법인 듯하고 나아가 널리 설해진 경전과 같은 것이다.
다만 오로지 一切智만을 구하기 때문에 모든 법계에 대해 마음을 집착하는 바 없이 보리심을 발한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