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7권 8

Skunky 2024. 10. 20. 08:00

大智度論 釋同學品 第六十二 卷七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3. 등학품(等學品) 풀이함 5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學是般若波羅蜜時,不生慳貪心,不生破戒、瞋恚、懈怠、散亂、愚癡心,不生諸餘過失心。不生取色相、取受想行識相心,不生取四念處相心,乃至不生取阿耨多羅三藐三菩提相心。

何以故?是菩薩摩訶薩行是深般若波羅蜜,無有法可得;以不可得故,於諸法不生心取相

다시 수보리야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는 간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계율을 깨뜨리거나 성을 내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산란하거나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으며,  밖의 다른 허물있는 마음도 내지 않느니라.

물질(色)의 상(相) 취하거나 수상행식(取受想行識) 상(相) 취하는 마음을 내지도 않고,념처의 상(相) 취하는 마음도 내지 않으며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상(相) 취하는 마음도 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얻을  있는 어떤 법도 없으며, 얻을  없기 때문에법에 대하여 마음으로 상(相)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深般若波羅蜜,摠攝諸波羅蜜,令諸波羅蜜增長,諸波羅蜜悉隨從。

何以故?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諸波羅蜜悉入中。

須菩提!譬如我見中悉攝六十二見;如是,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悉攝諸波羅蜜。

須菩提!譬如人死,命根滅故,餘根悉隨滅;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深般若波羅蜜時,諸波羅蜜悉隨從。

須菩提!菩薩摩訶薩欲令諸波羅蜜度彼岸,應學深般若波羅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면서 총괄하여 모든 바라밀을 포섭하고, 모든 바라밀을 더욱 더 증장하 하면서 모든 바라밀이 따르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깊은 반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안에 들게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아견(我見) 가운데는 62 사견(邪見)이 모두 포함되는 것과 같이, 수보리야,  깊은 반야바라밀도 모든 바라밀을  포함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죽을 때에 목숨의 명근(命根)이 다하기 때문에 모든 감관의 근(根)이 따라 없어지는 것과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모든 바라밀이  따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바라밀로 인하여  언덕의 피안(彼岸)에 건너간면, 마땅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學是深般若波羅蜜者,出一切衆生之上。

須菩提!於汝意云何?三千大千世界中衆生多不?”

須菩提言:“一閻浮提中衆生尚多,何況三千大千世界!”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로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이는 일체중생들의 위에 우뚝 서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중생들을 많다고 여기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한 염부제 안에 있는 중생도 오히려 많은데, 하물며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겠습니까!”

 

佛告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衆生一時皆得人身,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有菩薩盡形壽供養爾所佛衣服、飮食、臥具、湯藥、資生所須。須菩提!於汝意云何?是人以是因緣故,得福德多不?”

須菩提言:“甚多!甚多!”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삼천대천세계 안의 중생들이 일시에 모두 사람의 몸을 받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어떤 보살이 몸과 수명이 다하기까지  많은 부처님께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양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이 이러한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매우 많고도 많을 것입니다.”

 

佛言:“不如是善男子、善女人學般若波羅蜜如說行、正憶念,得福多。

何以故?般若波羅蜜有勢力,能令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以是故,菩薩摩訶薩欲出一切衆生之上,當學般若波羅蜜。欲爲無救護衆生作救護,欲與無歸依衆生作歸依,欲與無究竟道衆生作究竟道,欲爲盲者作目,欲得佛功德,欲作諸佛自在遊戲,欲作佛師子吼,欲撞擊佛鍾鼓,欲吹佛唄,欲昇佛高座說法,欲斷一切衆生疑,當學深般若波羅蜜。

須菩提!菩薩摩訶薩若學深般若波羅蜜,諸善功德無事不得。”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ㆍ선여인보다 반야바라밀을 배우면서 설한대로 수행하고 바르게 기억한 이가 얻는 복이 더욱 많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는 힘이 있어서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 위에 우뚝 서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구호할  없는 중생에게 구호할 이가 되고자 하거나, 귀의할  없는 중생에게 귀의처가 되고자 하거나, 구경도(究竟道)가 없는 중생에게 궁극의 도를 지어 주고자 하거나, 눈이  소경에게 눈이 되어 주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공덕을 얻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유희(遊戱)를 지으려 하거나, 부처님의 사자후(師子吼)를 지으려 하거나, 부처님의 종과 북을 치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법라인 패(唄)를 불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설법하고자 하거나, 일체 중생들의 의심을 끊어내고자 한다면, 마땅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모든 착한공덕(善功德)을 얻지 못함이 없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寧復得聲聞、辟支佛功德不?”

佛言:“聲聞、辟支佛功德皆能得,但不於中住;以智觀已,直過,入菩薩位中。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近薩婆若,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爲一切世閒天、人、阿修羅作福田。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過諸聲聞、辟支佛福田之上,疾近薩婆若。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是名不捨不離般若波羅蜜,常行般若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도 얻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과 벽지불의 공덕도 얻으나 다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을 뿐이니, 지혜로써 자세히 관찰한 뒤에 곧장 지나가 보살의 지위에 머무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일체 세간과 사람과 하늘들의 복전(福田)이 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복전보다  뛰어나며, 신속히 살바야(薩婆若)에 가까워지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이러함을 바로 반야바라밀을 버리지도 않는 불사(不捨)이고 여의지도 않는 불리(不離)하면서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상행(常行)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深般若波羅蜜,當知是不退轉菩薩,疾近薩婆若,遠離聲聞、辟支佛,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若作是念:‘是般若波羅蜜,我以是般若波羅蜜得一切種智。’若如是念,不名行般若波羅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그가 바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보살이요, 조속히 살바야에 가까워지며, 성문이나 벽지불을 멀리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진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만약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요, 나는  반야바라밀로써 일체종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若不作是念:‘是般若波羅蜜,是人有般若波羅蜜;是般若波羅蜜法,是人行般若波羅蜜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行般若波羅蜜。

須菩提!若菩薩作是念:‘無是般若波羅蜜,無人有是般若波羅蜜;無有行是般若波羅蜜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一切法如、法性、實際常住故。如是行,是爲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

수보리야, 만약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요,  사람에게는 반야바라밀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의 법이요,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러함을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생각하기를 ‘이러한 반야바라밀도 없고, 이러한 반야바라밀을 갖는 사람도 없으며, 이러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이도 없구나. 

왜냐하면법은 여(如)요 법성(法性)이요 실제(實際)로서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論. 釋曰:上阿難問“鬪諍”,佛答:“同學淸淨”。今須菩提問佛:“甚深同心等法,是菩薩所學處?

佛答:“內空乃至自相空,是名等法。

有二種等忍:上品末說衆生等忍,此品說法等忍。如稱兩頭停等,如是內空等諸空於諸法中平等。如內法有種種差別,得內空則皆平等無法;乃至自相空,一切法相皆自空,是時心則平等。菩薩住是等中,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논. 해석한다. 위에서 아난 존자가 다툼에 관하여 여쭈었으니,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동학(同學)은 청정하다”고 하셨으며, 여기에서는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매우 깊으며 마음을 같이하는 평등한 등법(等法)이 바로 보살이 배워야  것인지요”라고 여쭈었으므로,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공(內空) 내지 자상공(自相空)을 바로 평등한법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가지의 평등한의 등인(等忍)이 있으니, 앞의 품(品) 끝에서 중생의 평등한 중생등인(衆生等忍) 말씀하셨으며,  품에서는 일체법이 평등하여 치우침이 없는 법등인(法等忍)을 말씀하시는 것이니, 마치 저울의 양쪽 끝이 정지하면서 똑같아지듯, 내공 등의 모든 공(空)은 가운데서 평등한 것이다.

육입의 현상과 작용의 내법(內法)과 같은 데서는 갖가지의 차별이 있지만, 육입이 공한 내공(內空)을 얻고 나면 모두가 평등(平等)하여지져서 무법(無法)이며, 나아가 자상공(自相空)에 이르면 일체법의 상(想) 모두 스스로 공한 자공(自空)이니, 이 때에 마음이  평등해지나니, 보살은  평등한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있는 것이다.

 

중생들 가운데서 모든 것을 능히 참아 유순하는 등인(等忍)을 얻은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성내지 않으며, 그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으니,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음이,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으니라. 

중생에 대해 모든 욕됨과 번뇌를 참아 원한을 품지 않게 되는 것을 중생등인(衆生等忍)이라 하느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 제5권 8

 

須菩提復問:“爲色等盡故,爲學薩婆若?”觀色等無常、念念滅不住,若得是觀,心則離色;心離色故,諸煩惱滅;煩惱滅故,得不生法。

須菩提問:“如是學爲學薩婆若?”

佛反問須菩提:“於汝意云何?色等諸法如及如來如,是如爲盡、滅、斷不?”

수보리 존자가 다시 여쭈기를 “물질(色) 등이 다하는 진(盡)이기 때문에 살바야를 배우는지요”라고 하였으니, 물질(色) 등을 자세히 관찰하면 무상하여 생각생각마다 소멸하면서 머무르지 않나니, 만약  관(觀)을 얻으면 마음이  물질(色)을 여의는 이(離)이고, 마음이 물질(色)을 여의었기 때문에 번뇌가 소멸는 멸(滅)이며, 번뇌가 소멸하였기 때문에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을 얻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 하는지요?”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반문하여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色) 법의 여(如)와 그리고 여래의 여(如)는 다하는 진(盡)이고, 소멸하는 멸(滅)이고, 끊어지는 단(斷)인가?”라고 하셨다.

 

須菩提言:“不!”是如從本已來,不集、不和合,云何有盡?本來不生,云何有滅?是法本來虛誑,無有定相,云何可斷?

須菩提!菩薩摩訶薩能如是學如,爲學薩婆若。”是如,常、不可證、不可滅、不可斷;是盡、離、斷,除顚倒故行,非是究竟。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고 하였으니,  여(如)는 본래부터 쌓이지도 않는 불집(不集)이고, 불화합(不和合)이거늘, 어떻게 다함의 진(盡)이 있겠으며! 

본래부터 나지 않거늘 어떻게 소멸함의 멸(滅)이 있겠으며,  법은 본래 거짓이요 일정하게 정해진 정상(定相)이 없거늘 어떻게 끊어짐의 단(斷)이 있을  있겠는가!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여(如)를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니라.

 여(如)는 언제나 증득할 수도 없고, 소멸할 수도 없고 끊어질 수도 없으며,  다하는 진(盡), 소멸하는 멸(滅), 끊어지는 단(斷)이라 것은 뒤바뀌어 전도(顚倒)됨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마지막의 구경도(究竟道)가 아니니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