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6권 2
大智度論 釋學空不證品 第六十 卷七十六 卷七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0. 공을 배우나 증득하지 않는, 학공부증품(學空不證品)을 풀이함 2
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作是念:‘衆生長夜著得法,所謂我、衆生乃至知者、見者,是色、是受想行識,是入,是界,是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我如是行,如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令衆生無是得法。’
菩薩是心成就,以方便力行般若波羅蜜,未具足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大慈大悲、十八不共法,不於實際作證。爾時,菩薩具足修空三昧。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오랜 밤의 장야(長夜, 오랜 생사의 윤회) 동안 얻는 것에 집착하나니, 이른바 나(我)와 중생 내지 지자(智者)ㆍ견자(見者)이며,
이것은 물질(色)이요 이것은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이며, 이것은 입(入, 12입)이요 이것은 계(界, 18계)이며, 이것은 바로 사선이요 사무량심이며 사무색정이요,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있다는 등이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법을 얻는 일이 없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마음을 성취하여서 방편의 힘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아직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와 사무애지와 대자대비와 18불공법을 완전히 갖추지 않으며, 실제에서 증득하지도 않나니,
그러한 때에는 보살이 공삼매(空三昧)를 구족하게 닦는 것이니라.
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作是念:‘衆生長夜行諸相,所謂男相、女相、色相、無色相;我如是行,如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令衆生無是諸相過失!’是心成就以方便力行般若波羅蜜,未具足佛十力乃至十八不共法,不於實際作證。
爾時,菩薩摩訶薩具足修無相三昧。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중생은 오랜 밤 동안에 모든 상(相)을 행하나니, 이른바 남자라는 남상(男相)과 여자라는 여상(女相)과 물질이라는 색상(色相)과 물질이 없다는 무색상(無色相)과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있다는 등이니,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모든 상(相)의 과실을 없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마음을 성취하여 방편의 힘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하나, 아직 부처님의 십력 내지는 십팔불공법을 완전히 갖추지 않으며, 실제에서 증득하지도 않나니, 그 때에 보살마하살은 무상삼매(無相三昧)를 구족하게 닦는 것이니라.
須菩提!若菩薩摩訶薩學六波羅蜜,學內空乃至無法有法空,學四念處乃至空、無相、無作解脫門,學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大慈大悲,學十八不共法。
如是智慧成就,若著作法、若住三界,無有是處!是菩薩摩訶薩學助道法、行助道法時,應當試問:‘諸菩薩摩訶薩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學是法,觀空不證實際?
以不證故,不墮須陁洹果乃至辟支佛道;觀無相、無作、無起、無生、無所有,亦不取證,而修行般若波羅蜜。’應如是問。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배우고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를 배우며, 사념처 내지는 공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을 배우고 부처님의 십력ㆍ사무소외ㆍ사무애지ㆍ대자대비를 배우며, 18불공법을 배워서 이러한 지혜가 성취된다면, 짓는 작법(作法)에 집착하거나 삼계(三界)에 머무른다는 것은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도를 돕는 일체의 조도법(助道法)을 배우고, 도를 돕는 조도법을 행할 때에는 시험삼아 묻기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한다면, 어떻게 이 법을 배우며, 공을 관하면서도 실제를 증득하지 않으며, 증득하지 않기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기(無起), 무생(無生)이며, 존재하지 않음의 무소유(無所有)를 관하며, 또한 실제에서 증득하지 않으면서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인가’라고 해야 하느니라.
須菩提!若諸菩薩摩訶薩若試問時,是菩薩若如是答:‘菩薩摩訶薩但應觀空,但應觀無相、無作、無起、無生、無所有;是菩薩摩訶薩不應學空、無相、無作、無起、無生、無所有,不應學是助道法。’
須菩提!當知是菩薩諸佛未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何以故?是人不能說阿鞞跋致菩薩所學相,不能示、不能答。
若是菩薩摩訶薩能說、能示、能答阿鞞跋致所學相,當知是菩薩摩訶薩已習學菩薩道入薄地,如餘阿鞞跋致菩薩摩訶薩阿鞞跋致相。”
수보리야,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험 삼아 물을 때, 이 보살이 답하기를 ‘보살마하살은 다만 공한 것을 관하는 관공(觀空)을해야 하고,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기(無起), 무생(無生)과 무소유(無所有)를 관해야만 하며,
이 보살마하살은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기(無起), 무생(無生)과 무소유(無所有)를 배우지 않아야 하며,
도를 돕는 조도법(助道法)도 배우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시지 않은 것으로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비발치(阿鞞跋致) 보살이 배울 바의 상(相)을 말하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못하며, 대답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니,
만약 이 보살마하살이 아비발치가 배울 바의 상(相)을 말할 수 있고, 보일 수 있으며 대답할 수 있으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미 보살도를 배우고 익혀서 아홉 가지의 구종번뇌(九種煩惱)를 부분적으로 끊은 박지(薄地, 一來果일래과)에 들어간 것이니, 마치 다른 아비발치 보살마하살의 아비발치 상(相)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頗有未得阿鞞跋致菩薩,能如是答不?”
佛言:“有。須菩提!是菩薩摩訶薩,六波羅蜜若聞、若不聞,能如是答如阿鞞跋致菩薩摩訶薩。”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직 아비발치를 얻지 못한 보살도 혹 이와 같이 대답할 수가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들었거나 듣지 않았거나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마치 아비발치 보살마하살과 같으니라.”
須菩提言:“世尊!多有菩薩求佛道,少有菩薩能如是答如阿鞞跋致菩薩摩訶薩學道、無學道中。”
佛語須菩提:“如是!如是!是菩薩甚少!何以故?菩薩摩訶薩少有如是得授記行阿鞞跋致慧地;若有得授記,是人能如是答。是人善根明了,諸天世人所不能壞。”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로서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이는 많지만, 배울 것이 있는 이의 학도(學道)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무학도(無學道)에 있는 아비발치 보살들과 같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적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그러한 보살은 매우 적나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 중에는 이렇게 수기를 얻어서 아비발치의 지혜의 지위를 행하는 이가 적기 때문이니라.
만약 보살이 처음 초발심에서부터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인 순인(順忍)을 얻기 전까지의 혜지(慧智, 건혜지乾慧智, śukta-vidarśanā-bhūmi)에서 수기를 얻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잘 대답할 수 있나니,
이러한 사람은 선근이 명료하여 모든 하늘이나 세간 사람으로서는 파괴할 수 없느니라.”
▶論. 問曰:學空、入空有何差別?
▷논. 묻나니, 공을 배우는 학공(學空)과 공에 들어가는 입공(入空)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答曰:初名學空,後是入空;因是學空,果是入空;方便名學空,得名入空。
如是等二道。無相、無作、三十七品亦如是。
三解脫門、三十七品是聲聞、辟支佛涅槃道,佛勅菩薩應行是道。
답하나니, 처음에는 공을 배우는 학공(學空)이라 하고, 나중에는 공에 들어가는 입공(入空)이라 한다.
원인의 인(因)은 바로 공을 배우는 학공(學空)이요, 결과의 과(果)는 바로 공에 들어가는 입공(入空)이며,
방편(方便)은 공을 배우는 학공(學空)이라 하고, 얻는 득(得)은 공에 들어가는 입공(入空)이라 한다.
학공(學空)과 입공(入空)의 두 가지의 도는 무상(無相)ㆍ무작(無作)과 37조도품에서도 역시 같으며,
3해탈문과 37 조도품은 바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열반의 도(道)이나,
부처님께서는 보살들에게 마땅히 이 도를 행해야 한다고 권하시는 것이다.
須菩提作是念:“此是涅槃道,云何菩薩行是道法而不取涅槃證?”
佛答:“菩薩觀色等一切法空。是菩薩以深入禪定,心不可亂,得利智慧力故,不見是空法;以不見故無所證。”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은 바로 열반의 도이거늘 어떻게 보살이 이 법을 행하면서도 열반의 증득을 취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물질(色) 등의 일체법은 공하다고 관하되, 이 보살이 깊이 선정에 들어가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예리한 지혜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이 공한 공법을 보지 않으며, 보지 않기 때문에 증득한 것도 없느니라.
聲聞、辟支佛斷吾我,捨愛著,直趣涅槃。是菩薩善學自相空,色法中乃至微塵,不留遺餘微細之分;無色法中,乃至不留一念;直入畢竟空中,乃至不見是空法可以爲證。
佛雖答,須菩提未達佛意,更問:“如佛所說,菩薩不應空法作證;今入空中,云何不作證?”
성문이나 벽지불은 '나'라는 오아(吾我)를 끊고 애착을 버려서 곧장 열반으로 나아가지만,
이 보살은 자상공(自相空)을 잘 배워서 물질(色)의 색법 가운데에서부터 작은 티끌과 같이 미세한 부분까지도 남음이 없으며, 물질(色)이 없는 무색법(無色法)에서는 한 생각까지도 남겨 두지 않는 경지에 이르며,
곧장 필경공(畢竟空)으로 들어가서 이 공한 공법으로써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까지도 보지 않는 경지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 비록 이렇게 대답하셨으나,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뜻을 통달하지 못한지라 다시 여쭈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다면 보살은 마땅히 공한 공법으로써도 증득하지 않는 것이지만, 지금은 공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거늘 어떻게 증득하지 않겠는지요?”라고 하였으니,
佛答:以深入故能不作證。具足者卽是深入。譬如執菅草,捉緩則傷手,若急捉則無傷;
菩薩亦如是,深入空故,知空亦空,涅槃亦空故,無所證。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깊이 들어간 심입(深入)하였기 때문에 증득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으며,
“완전히 갖춘다는 구족(具足)”이라고 하는 것이 곧 깊이 들어간 심입(深入)인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솔새풀(솔풀)을 쥘 때에 느슨하게 쥐면 손을 상하게 되지만, 꼭 쥐면 손을 상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깊이 공에 심입(深入)하였기 때문에 공한 것도 공하며, 열반도 또한 공하기 때문에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솔새풀= 낮은 산지의 건조한 풀숲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묘, 뿌리줄기는 짧고, 줄기는 곧게 자라고 높이 70-100cm이다. 잎집에 퍼지는 털이 있으며, 잎몸은 길이 30-40cm, 폭 3-6mm로 뒷면은 분백색이 돈다. 꽃은 8-10월에 피고 꽃차례는 원추꽃차례로 길이 20-40cm, 포에 싸여 있는 여러 개의 총상꽃차례가 어긋나게 달리어 이루어진다. 작은이삭은 자루가 있는 수꽃 4개와 자루가 없는 양성화 1개로 이루어지며, 밑부분에 털 다발이 있다. 뿌리로 솔(수세미)을 만든다. 솔줄, 솔풀이라고도 부르며,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고 인도,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다움
復次,菩薩未入空時,作是思惟:“我應遍觀諸法空,不應不具足知而取證。”
是故不專心攝念入禪、繫在空緣中。所以者何?若專心繫在空緣中,則心柔軟,不能從空自出。
또한 보살이 아직 공에 들어가지 못한 미입공(未入空)일 때에는 생각하기를, “나는 제법이 두루 공하다고 빠짐없이 관해야 하며, 완전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증득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전심(專心)으로 생각을 가다듬어 선정에 들되 공한 인연의 공연(空緣) 가운데에 매이지 않나니, 왜냐하면 만약 마음을 오로지 공한 공연(空緣) 가운데에 매어 두기만 하면 마음이 여리어져서 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問曰:上言“深入禪定,不令心亂”,今云何言“不專心”?
묻나니, 위에서는 깊이 선정에 들어가서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라 하셨으나,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오로지 마음을 한 군데에 쓰지 않는 불전심(不專心)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今言“不專心”,是初入時,爲不能自出故;上言“深入”者,入已深,知空亦空,不令心在餘事故,言不亂。
復次,是菩薩應作是念:“我今未具三十二相、八十種隨形好、十力、四無所畏諸佛法,云何取涅槃證?
我今是學時,薄諸煩惱,教化衆生,令入佛道;若我得佛事具足,是時當取證。”
是故菩薩雖入三解脫門而不取證。
답하나니, 여기서 ‘오로지 마음을 한 군데에 쓰지 않는 불전심(不專心)라라’고 하신 것은, 처음에 들어갈 때에는 스스로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위에서 ‘깊이 들어간다는 심입(深入)’이란, 이미 깊어져서 공 또한 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이 딴 곳에 있지 않게 하기 때문에 산란하지 않다고 한 것이며,
또한 이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아직 32상호와 80수형호(隨形好)와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 등의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갖추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열반의 증득을 취하겠는가!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때이니 모든 번뇌를 얇게 하면서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불도에 들게 해야 하나니,
만약 내가 불사(佛事)를 완전히 갖추게 된다면, 그 때에는 증득하리라’고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비록 공 무상 무작의 삼해탈문에 들어갈지라도 증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是中說譬喩:“壯夫”是菩薩,“父母親族”是可度衆生,“險道”是三界生死,“惡賊”是魔民及諸煩惱,
“器仗”是菩薩五神通等種種方便力,“還歸本處”是菩薩所行道,
“安立不動”是菩薩住畢竟空,以四無量心運致可度衆生著涅槃安樂處。
여기에 대하여 비유를 드셨으니,
곧 ‘장부(壯夫)’는 바로 보살을 비유한 것이고 ‘부모와 친족’은 바로 제도해야 할 중생이며,
‘험한 길의 험도(險道)’는 바로 삼계에 있으면서 나고 죽는 것이요,
‘악한 도둑의 악적(惡賊)’은 바로 악마의 백성과 모든 번뇌를 비유한 것이며,
‘무기의 기복(器伏)’은 바로 보살의 다섯 가지 오신통 등의 갖가지 방편의 힘이요,
‘본래 목적한 곳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은 바로 보살로서 행할 바의 도(道)이며,
‘안정되게 서서 꼼짝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바로 보살이 마침내 공한 데에 머물러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써 제도해야 할 중생을 옮겨서 저 열반의 안락한 곳에 놓아 둔다는 비유이다.
時會者疑:“空中無所有,云何可行?”是故佛說鳥喩:“如鳥飛虛空,無所依止,而遠逝不墜”
復次,是菩薩未具足道法、未至佛道,於其中閒而不作證;如鳥未到所至,終不中住。
學是空法,爲自斷煩惱、爲度衆生故。
그 때에 모임에 있는 이들이 의심하기를 ‘공한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중무소유(空中無所有)이거늘 어떻게 행할 수 있다 하는 것일까?’라고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비유로써 말씀하시기를, “마치 새가 허공을 날 때에 의지하는 데가 없으면서도 멀리 날아가면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이며,
또 이 보살은 도법(道法)을 아직 완전히 갖추지도 못하고 아직 부처님의 불도에 이르지도 못하였으나, 그 중간에 증득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새가 목적한 곳까지 가기 전에는 끝내 그 중간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과 같으며,
이 공한 공법을 배워서 스스로의 번뇌를 끊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又爲明了故,說善射譬喩:如人善於射術。
“弓”是菩薩禪定,“箭”是智慧,“虛空”是三解脫門,“地”是涅槃。是菩薩以智慧箭射三解脫門虛空,更以方便力故,以後箭射前箭,不令墮涅槃地;未具足十力等佛事故,終不取證。
또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하여 활을 잘 쏘는 것에 비유하였으니, 마치 사람이 활을 잘 쏘는 것과 같으며,
활은 보살의 선정을 비유하는 것이고, 화살은 바로 지혜이며, 허공은 바로 삼해탈문이요, 땅은 바로 열반을 비유한 것이니,
이 보살이 지혜의 화살로써 3해탈문의 허공에다 쏘아 놓고 다시 방편의 힘으로써 뒤의 화살을 바로 앞에 쏜 화살에 쏘면서 열반의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
아직 십력 등의 부처님의 불사(佛事)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까닭에 끝내 증득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