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4권 5
大智度論 釋燈炷品 第五十七 卷七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7. 등주품(燈炷品)을 풀이함① 2
問曰:諸有法種種細分別,人不解故有深;空無所有,以何爲深?
묻나니, 모든 존재하는 유법(有法)은 갖가지로 세밀하게 분별하여도 사람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것입니다.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거늘 무엇 때문에 깊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非直口說名字故空;分別解諸有相,內不見有我,外不見定實法。得是空已,觀一切法相皆是虛誑,有諸過罪。
若滅諸相,更不作願生三界。此空是得道空,非但口說,是故言深。
답하나니, 입으로 바로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유상(有相)을 분별하여 이해할 때, 내면으로는 '나(我)'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외면으로는 실체로서의 정해진 정실법(定實法)을 보지 못하나니,
이런 공을 얻은 뒤에는 일체법의 법상(法相)을 모두 관찰하여도 그것은 허광된 거짓이요, 많은 허물이 있는 것이다.
만약 상(相)이 소멸해버리면 다시는 삼계(三界)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나,
이 공은 바로 도를 얻는 득도공(得道空)이기에 다만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깊다고 하는 것이며,
復次,空亦復空;若著是空,則有過失,是不名深。若空從破邪見有故出,是爲深;若於空中,亦不著空故亦深。
또한 공(空) 또한 다시 공(空)한 것이니, 만약 이 공(空)에 집착한다면 과실이 있게 되므로 이것은 깊다고 하지 못하며,
공(空)은 삿된 사견이 있는 것을 깨뜨림으로써 나오는 것이라 깊은 것이라 하고,
또한 공(空)한 가운데에서도 공(空)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깊은 것이다.
復次,觀五衆生滅,破常顚倒;觀畢竟空,破生滅。何以故?空中無無常、無生滅故。
無生滅有二種:一者、邪見人謂世閒常有故無生滅,二者、破生滅故言無生滅。
此中破生滅,亦不著是不生不滅,故名爲深。諸煩惱難除,故言:“離欲、寂滅故深。”
錯誤易、眞實難,故如、法性、實際爲深。
涅槃,諸梵天等九十六種道所不能及,故深。復次,涅槃中一切得道人入者永不復出,故深。
또한 오중(五衆, 오온)의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을 관찰하여 항상하다는 뒤바뀜의 상전도(常顚倒)를 파괴하고, 필경공(畢竟空)을 관찰하여 생멸(生滅)을 파괴하나니, 왜냐하면 공 가운데에는 무상함도 없으며 생멸(生滅)도 없기 때문이다.
생멸(生滅)이 없음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삿된 사견을 지닌 사람이 말하기를 “세간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멸(生滅)이 없다”고 하는 것이요,
둘째는 “생멸(生滅)을 파괴하기 때문에 생멸(生滅)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생멸(生滅)을 파괴하고 또한 이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에도 집착하지도 않기 때문에 깊다고 하며,
모든 번뇌는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욕심을 여의고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하는 까닭에 깊다’고 말하나니,
착오(錯誤)하여 잘못 알기는 쉽고 진실은 어렵기 때문에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가 깊은 것이요,
열반(涅槃)은 모든 범천(梵天) 등과 96종의 외도(外道)로서는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깊은 것이요,
또한 열반 가운데에서 일체의 도를 얻은 사람이 들어가면 영영 다시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깊은 것이다.
問曰:此中說空等法深,是何等空?
묻나니, 여기에서 ‘공(空) 등의 법은 깊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떠한 공(空)입니까?
答曰:有人言:三三昧 空、無相、無作;心數法名爲定,定故能觀諸法空。
有人言:外所緣色等諸法皆空,緣外空故名爲空三昧。
답하나니, 어떤 분이 말하기를 “삼삼매(三三昧)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마음에 속한 법을 정(定)이라 하며, 정(定)이기 때문에 제법이 공함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하며,
어떤 분은 말하기를 “밖으로 반연할 바의 소연색(所緣色) 등의 법은 모두가 공(空)하며, 밖의 공(空)을 반연하기 때문에 공삼매(空三昧)라고 한다”고 하며,
此中佛說:“不以空三昧故空,亦不以所緣外色等諸法故空。”何以故?若外法不實空,以三昧力故空者,是虛妄不實。
若緣外空故生三昧者,是亦不然!所以者何?若色等法實是空相,則不能生空三昧;若生空三昧,則非是空。
此中說:離是二邊說中道,所謂諸法因緣和合生,是和合法無有一定法故空。
何以故?因緣生法無自性,無自性故卽是畢竟空。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공삼매(空三昧)를 쓰지 않기 때문에 공(空)하며, 또한 반연할 바의 바깥 물질인 외색(外色) 등의 제법을 쓰지 않기 때문에 공(空)하나니, 왜냐하면 외법(外法)은 진실로 공(空)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셨으며,
삼매(三昧)의 힘 때문에 공(空)하다면 이것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은 것이요,
만약 바깥의 외공(外空)을 반연하기 때문에 삼매가 생긴다면 이것 또한 옳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만약 물질(色) 등의 법이 실로 공한 공상(空相)이라면 공삼매를 낼 수 없으며,
만약 공삼매를 낸다면 이것은 공(空)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에서는 “이 두 가지 치우침인 이변(二邊)을 여의고 중도(中道)를 말한다”고 하나니,
이른바 제법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며, 인연 화합으로 된 법은 일정한 법이 없기 때문에 공한 것이니,
왜냐하면 인과 연으로 생긴 법은 자성(自性)이 없으며, 자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곧 필경공이기 때문이다.
是畢竟空,從本以來空,非佛所作,亦非餘人所作;諸佛爲可度衆生故說是畢竟空相。
是空相是一切諸法實體,不因內外有。是空有種種名字,所謂無相、無作、寂滅、離、涅槃等。須菩提知諸菩薩利根,深著涅槃,爲是菩薩故問世尊:“但涅槃甚深,諸法不甚深耶?”
이 필경공은 본래부터 공(空)이니, 부처님이 만든 것도 아니요, 그 밖의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기 위하여 필경공의 공상(空相)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공상(空相)은 바로 일체 제법의 실체(實體)로써 안과 밖을 인(因)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이 공상(空相)은 갖가지의 이름을 갖나니, 즉 무상(無相), 무작(無作), 적멸(寂滅)ㆍ이(離, 여읨)ㆍ열반(涅槃) 등이 그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모든 보살들의 근기가 예리함에도 열반에 깊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이 보살들을 위하여 짐짓 묻기를 “세존이시여, 다만 열반만이 심히 깊으며, 제법은 심히 깊지 않은 것인지요”라고 물은 것이며,
佛答:“正觀色等一切法得涅槃,色等諸法因涅槃故甚深。”是故經中說:“色等如故甚深。”色等如卽是正觀。須菩提問:“云何色等如故色等法甚深?”此中佛自說深因緣,所謂“如,非是色、非離色。”
譬如以泥爲甁,泥非卽是甁、不離泥有甁,亦不得言無甁。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일체법을 바르게 정관(正觀)하면 열반을 얻으며, 물질(色) 등의 제법은 열반으로 인하기에 매우 깊다”고 하셨으며,
이러한 까닭에 경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여(如) 때문에 매우 깊으며, 물질(色) 등의 여(如)가 곧 바른 정관(正觀)이다”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찌하여 물질(色) 등의 여(如) 때문에 물질(色) 등의 법이 매우 깊은 것인지요”라고 하였으며,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깊은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한결같은 여(如), 그것은 물질(色)이 아니요, 물질(色)을 여읜 것도 아니다”고 하셨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진흙으로 병을 만들지만 진흙 그것이 곧 병은 아니요, 진흙을 여의고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병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須菩提知是因緣法甚深,如大海無有底故,讚言:“希有!世尊!佛以微妙方便力故,令菩薩離色等諸法,處於涅槃,亦不著涅槃,亦不住世閒。是微妙方便”
佛可其所說,讚歎菩薩行諸法實相果報福德,告須菩提:“如是甚深法與般若相應,觀察、籌量等一念生時,得無量無邊阿僧祇福德。”
수보리 존자는 이러한 인연으로 법이 매우 깊은 것은 마치 큰 바다에 밑이 없는 것과 같음을 알았기 때문에 찬탄하면서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미묘한 방편의 힘으로써 보살로 하여금 물질(色) 등의 제법을 여의고 열반에 처(處)하게 하되, 그렇다고 열반에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세간에 머무르지도 않게 하나니, 이것이 바로 미묘한 방편입니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말한 바가 옳다고 하셨으며, 보살이 제법의 실상(實相)을 행하는 과보와 복덕을 찬탄하시면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심심법(甚深法)이 반야와 상응함을 관찰하고 헤아리면서, 그 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복덕을 얻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問曰:二乘無漏法尚無果報福德,何況大乘畢竟空觀法得無量福德!
而福德從大慈悲愍衆生故生,如罪亦由惱害衆生故得。
묻나니, 이승의 무루법(無漏法)에서조차도 오히려 과보와 복덕이 없거늘, 하물며 대승의 필경공(畢竟空)의 관법(觀法)으로써 무량한 복덕을 얻겠습니까? 복덕은 큰 자비로부터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요, 죄 또한 중생을 괴롭히고 해치기 때문에 얻는 것입니다.
答曰:二乘無漏心中煩惱盡故,無果報福德;菩薩煩惱未盡故,應有福德果報。復次,二乘於實際證故,燒盡諸功德;菩薩不證,更有生故,便有福德。
답하나니, 이승의 무루심 가운데에서는 번뇌가 다하였기 때문에 과보와 복덕이 없지만, 보살은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복덕과 과보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이승은 실제(實際)를 증득하기 때문에 모든 공덕을 다 태워 없애지만, 보살은 증득하지 않고 다시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곧 복덕이 있는 것이다.
復次,人於實事錯謬故福德少,正行實事故得福多。如施畜生得百倍,施惡人得千倍,施善人得十萬倍,施離欲人得十億萬倍,施須陁洹等諸聖人得無量福。
凡夫人雖離欲行慈悲心,不得實法相故,不得作無量福田;須陁洹雖未離欲,分別諸法實相故,福田無量。
諸法實相,得有深淺;是故菩薩深入實相故,一念中福德無量無邊。
또 사람들은 진실한 실사(實事)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복덕이 적으며, 진실한 실사를 바르게 행하기 때문에 복을 얻는 것이 많으니,
마치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고,
악인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으며,
착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10만 배의 복을 얻고,
욕심을 여읜 이욕인(離欲人)에게 보시하면 10억만 배의 복을 얻으며,
수다원 등의 모든 성인에게 보시하면 무량한 복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범부인이 비록 욕심을 여의고 자비심을 행할지라도 진실한 법의 법상(法相)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무량한 복전(福田)이 될 수 없지만, 수다원은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하였을지라도 제법의 진실한 실상(實相)을 분별하기 때문에 복전이 무량하며,
제법의 실상을 얻음에는 깊고 얕음이 있기 때문에 보살이 실상에 깊이 들면 한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도 복덕이 무량하고 무변한 것이다.
此中念念福德多,故說譬喩:衆生心雖念念生滅,但相續生故,不覺隨滅。
淫欲人心深著所欲,不遂情故,心生憶念、取相,種種分別不來因緣事,所謂“彼女爲心自悔不來?爲人遮不來?”如是等多生覺觀心。是心易覺知故,以爲譬喩。
如是一念因緣事超一劫。如人服軟藥,一歲乃差病;服大力藥,一曰能差。
菩薩亦如是,行五波羅蜜,夂夂乃成佛者;有行般若波羅蜜,疾得成佛者。
이 가운데서는 생각생각의 염염(念念)마다 복덕이 많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며,
중생의 마음은 비록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기는 하나, 다만 상속(相續)하면서 생기는 까닭에 따라 소멸하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음욕이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욕심나는 것에 깊이 집착하나, 그 욕정(欲情)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생각하고 상(相)을 취하면서 상대방이 오지 못한 인연을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니, 이른바 ‘저 여인이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때문에 오지 않은 것일까? 다른 사람이 못 가게 막아서 오지 않은 것일까?’라고 하는 것과 같은 등으로 거친 생각의 각(覺)과 세밀한 생각의 관(觀)을 많이 내지만, 이 마음은 알아차리기 쉽기 때문에 비유를 드신 것이며,
이와 같이 한 번 생각하는 일념(一念)의 인연으로 1겁(劫)을 뛰어넘는 것이라. 마치 사람이 연(軟)한 약을 복용하면 1년이 되어서야 병이 낫지만, 큰 힘이 있는 약을 먹으면 하루 만에 병이 낫는 것과 같이,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다섯 가지의 오바라밀을 행하여 오래된 뒤에야 부처님이 되는 이도 있고,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을 빨리 이루는 이도 있다.
復次,一曰行般若波羅蜜功德,假令有形取 滿如恒河沙等三千大千世界中,於一日中正功德體,猶故不減,於此福德,百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또한 하루 동안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은, 가령 형상이 있는 유형(有形)이라서 취할 때에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차게 할지라도, 하루 동안의 바른 정공덕(正功德)의 체(體, 체성)은 오히려 줄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이러한 복덕에 견주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經. “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遠離般若波羅蜜,如恒河沙等劫布施三寶佛寶:法寶、比丘僧寶。
須菩提!於意云何?是菩薩摩訶薩以是因緣故,得福多不?”須菩提言:“世尊!甚多!無量無邊阿僧祇。”
▷경.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고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겁 동안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비구승보(比丘僧寶)의 삼보(三寶)에 보시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보살마하살은 이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많겠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아서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일 것입니다.”
佛告須菩提:“不如菩薩摩訶薩深般若波羅蜜中一日如說修行得福多。
何以故?般若波羅蜜是諸菩薩摩訶薩道,乘是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若菩薩遠離般若波羅蜜,如恒河沙劫供養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及諸佛。
須菩提!於意云何?是菩薩摩訶薩以是因緣故,得福多不?”
須菩提言:“世尊!甚多!”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보살마하살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설한 바 그대로 하루 동안 수행하여 얻는 복보다는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의 도(道)이니, 이 도에 올라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고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겁 동안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 및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