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4권 3
大智度論 釋轉不轉品 第五十六之餘 卷七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6. 아비발치품(阿毘跋致品)을 풀이함② 3
復次,阿鞞跋致菩薩深愛樂法故,聞卽心深,衣毛皆豎;念佛大悲,則歡喜悲泣;或於甚深法中生大歡喜,當知是阿鞞跋致。譬如大軍,退敗則怖懅迷悶,臥地似死;親族見之,欲知活不,以杖鞭之,若癮疹起者,則知必活。
菩薩亦如是,皆是肉身,何以故知必能成佛?若聞說佛法,身中相現 衣毛爲豎,顏色相異;餘人聞不入心,則無異相,如死人無異。
또한 아비발치 보살은 법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법을 들으면 곧 마음에 스며들면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부처님의 대비(大悲)를 생각하면서 환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혹은 이 깊은 심심법(甚深法) 가운데에서 크게 환희하기도 하나니, 그가 바로 아비발치라고 알아야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큰 군사들이 패하여 도망치다가 두려움으로 기절하여 땅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을 때, 그의 친족이 그가 살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하여 작대기를 가지고 그를 때려서 그 맞은 자리에 흔적이 생기면 틀림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 육신(肉身)이지만,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는가를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약 그가 부처님의 법을 듣고 몸에서 조짐이 나타나서, 몸의 털이 곤두서고 얼굴빛이 달라지거니와 그 밖의 사람은 들어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달라지는 상도 없으니, 마치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是菩薩深愛法故,能捨身命爲法。若佛、若佛弟子於大會種種因緣說諸法畢竟空;有一狂人,取音聲名字相,著是畢竟空,出其過罪:“若諸法盡畢竟空,則無佛、無法,無罪福業因緣,亦無修行精進得道果報!”如是等出無量過罪。
阿鞞跋致菩薩觀察、籌量,知說法有無著心、隨佛語憐愍故說;知狂人著語言取相,破是畢竟空。
爾時,阿鞞跋致則沒命佐助言:“是狂人言!是邪見人!自沒邪見,亦多化衆人令墮邪見,壞滅佛法。”深懷瞋恨故,或自殺,或使弟子殺。爾時,菩薩若死事至,爲佐法故,不以怖畏而壞諸法性。
이 보살은 깊이 법을 사랑하기 때문에 법을 위하여 몸을 버리나니, 만약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가 큰 모임에서 갖가지의 인연으로 제법이 필경공이라는 것을 말씀하면,
어떤 미친 광인은 음성과 이름의 상(相)을 취하여 그것이곧 필경공이라고 집착하면서 그 허물을 드러내어서 말하기를 “만약 제법 모두가 필경공이라면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으며, 죄복의 업인연도 없고, 수행과 정진을 통해 도를 얻는 과보도 없을 것이다”고 하면서, 이러한 등의 무량한 허물을 드러내나,
아비발치 보살은 이를 관찰하고 헤아리면서 설법하는 이의 집착심의 유무(有無)을 알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설하고 있음을 알며, 미친 광인(狂人)이 언어에 집착하여 상을 취하면서 이 필경공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도 아나니,
그때 아비발치는 목숨을 내놓고 말하기를 “그것은 미친 광인의 말이다. 그는 삿된 사견에 빠져서 많은 사람에게는 삿된 사견으로 부처님의 불법을 파괴하고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고 하면, 그 설법자가 몹시 화를 내면서 혹은 자기 자신이 죽이기도 하고 혹은 그의 제자를 시켜 죽이기도 하나니,
그 때의 보살은 죽는 일이 닥쳐와도 법을 위하여, 두려움 때문에 제법의 법성(法性)을 파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此中佛說因緣,菩薩作是念:“未來世佛,我亦在是數中,是法亦是我法;是我法故,不惜身命而守護之。”
作是思惟:“我無量世中,爲煩惱邪見故喪身無數;今爲十方三世諸佛法佐助發起,若有益而死,勝無益而生。”如是等爲法故,不惜身命。
復次,是菩薩未成佛道,從佛聞甚深法,能盡受、不失信力故能受,聞持陁羅尼力故不失,斷疑陁羅尼力故不疑。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그에 대한 인연을, “보살이 생각하기를 ‘미래 세상의 부처님 중에 나 또한 속할 것이므로 이 법은 바로 나의 법이다. 이 법이 바로 나의 법이기 때문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사유하기를 ‘나는 무량한 세세 동안 번뇌와 삿된 사견 때문에 몸을 잃은 일이 수없이 많았으니, 이제는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법을 돕고 일으키기 위하여야 하며, 득을 얻으면서 죽는 것이 득없이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나니, 이러한 등으로 법을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 보살은 아직 부처님의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을지라도 부처님으로부터 매우 깊은 심심법(甚深法)을 듣고 모두 다 받았나니, 신근(信根)의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능히 잘 받는 능수(能受)하였고,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의 힘 때문에 잃지 않는 불실(不失)이며
단의다라니(斷疑陀羅尼)의 힘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 불의(不疑)인 것이다.
須菩提問:“但聞佛語能信持不疑,聞餘語亦爾?”
佛言:“一切有所說者皆能持,若二乘、天、龍等。”所說有道理,能信、持、不疑;無道理者,持之無疑而不信。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다만 부처님의 말씀만을 듣고서 믿고 지니면서 의심하지 않는지요? 아니면 그 밖의 말을 들어도 역시 그러한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일체 말한 바가 있는 것은 모두 다 지니는 능지(能持)하느니라. 설령 이승(二乘)이나 하늘ㆍ용 등이 말하였을지라도 도리(道理)가 있는 것은 모두 잘 믿고 지니면서 의심하지 않지만, 도리가 없는 것은 지녀서 의심이 없다고 하여도 믿지 않느니라”고 말씀하셨다.
復次,有人言:信是邪法,不疑不善、是善。
또한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이 삿된 사법(邪法)을 믿는 이는 착하지 않은 불선(不善)이 바로 착한 선(善)이라 하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有人言:諸天、龍、二乘所說皆是佛法。
또 어떤 분은 말하기를 “모든 하늘ㆍ용이나 이승이 말하는 것 모두가 바로 부처님의 불법이다”고 하였다.
是阿鞞跋致相,聞則能持,無疑、無悔。是菩薩雖未作佛,於諸法實相中都無有疑。如是等行、類、相貌,是阿鞞跋致菩薩。
이 아비발치의 상(相)은 듣고 곧 능히 지니면서 의심도 없고 후회도 없으며, 이 보살은 비록 아직은 부처님이 되지 못하였을지라도 제법의 실상(實相) 가운데에서 도무지 의심하는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행(行)과 유(類, 종류)와 상모(相貌, 모습)를 지닌 이가 바로 아비발치 보살인 것이다.
問曰:得何事來名阿鞞跋致?
묻나니, 어떠한 것을 얻어서 온 이를 아비발치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阿毘曇毘婆沙』中說:“過三阿僧祇劫後,種三十二相因緣。”從是以來名阿鞞跋致。『毘泥阿波陁那』中說:“從見然燈佛,以五莖花散佛,以髮布地;佛爲授阿鞞跋致記;騰身虛空,以偈讚佛。”從是已來,名阿鞞跋致。
답하나니, '아비담비바사(阿毘曇毘婆沙, Abhidharma Vibhāsā-śāstra)' 가운데에서 말씀하기를 “3아승기겁(阿僧祇劫)을 지난 뒤에 32상(相)의 인연을 심었으면 그로부터 아비발치라 한다”고 하였으며,
비니(毘尼, 율律藏Vini)와 아파타나(阿波陀那, Avadāna 비유譬喩)에서 말씀하기를 “연등불(然燈佛)을 뵙고서 다섯 송이의 꽃을 부처님께 뿌리고 머리를 풀어서 땅에 폈을 때,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아비발치의 수기를 주셨으므로 허공에 날아올라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으니, 이로부터 아비발치라 한다”고 하며,
아비담비바사(阿毘曇毘婆沙); 아비담(阿毘曇 Adbhuta-dharma)은 대법(對法)을 뜻하고
비바사(毘婆沙 vibhasa)는 개론(槪論) 논문(論文) 해석(解釋)이라는 뜻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此般若波羅蜜中,若菩薩具足行六波羅蜜,得智慧方便力,不著是畢竟空波羅蜜;觀一切法不生不滅、不增不減、不垢不淨、不來不去、不一不異、不常不斷、非有非無;如是等無量相待二法,因是智慧觀,破一切生滅等無常相。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는 “만약 보살이 구족하게 육바라밀을 행하고 지혜와 방편의 힘을 얻어서, 이 필경공의 바라밀에 집착하지 않으며,
일체법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오지도 가지도 않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이며, 동일하지도 다르지도 않은 불일불이(不一不異)이며, 항상하지도 끊어지지도 않는 불상불단(不常不斷)이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관찰하나니, 이렇게 무량하게 상대되는 두 가지 법인, 상대이법(相待二法)이 있다”고 하나니,
이러한 지혜로 인하여 일체의 생멸(生滅) 등의 무상한 상(相)을 관찰하여 깨뜨리는 것이다.
先因無常等故破常等倒,今亦捨無生無滅等、捨無常觀等,於不生不滅亦不著,亦不墮空無所有中;
亦知是不生不滅相不得不著故,亦信用是不生不滅法。三世十方諸佛眞智慧中,信力故通達無㝵,
是名菩薩得無生忍法,入菩薩位,名阿鞞跋致。
앞에서는 무상하다는 등으로 인하여 항상하다는 상(常) 등의 뒤바뀜을 파괴하였고, 역시 여기에서는 나는 것이 없는 무생(無生)이고 무멸(無滅)하다는 것도 버리고 있나니, 무상관(無常觀) 등을 버리는 것이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인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 가운데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상(相)은 얻지도 못하는 것이고 집착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한 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신용(信用)하며, 삼세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진지혜(眞智慧) 안에서 믿는 신력(信力) 때문에 통달하여 장애가 없나니, 이를 바로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며, 아비발치라고도 하는 것이다.
是菩薩雖從初發心以來名阿鞞跋致;阿鞞跋致相未具足故,不與授記。
何以故?外道聖人、諸天、小菩薩等作此念:“佛見是人有何等事而與授記?
是人於佛道因緣中未住,云何與授記?”是故佛未與授記。
이 보살이 처음 초발심에서부터 아비발치라고 부를지라도 아비발치의 상(相)을 아직 두루 구족하여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기를 주지 않나니,
왜냐하면 외도의 성인이나 모든 하늘이나 작은 소보살들이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의 어떠한 것을 보시기에 수기를 주시는 것일까?’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부처님의 불도의 인연 가운데에 아직 머무르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수기를 주시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시지 않는 것이며,
是菩薩有二種:一者、生死肉身,二者、法性生身。得無生忍法,斷諸煩惱;捨是身後,得法性生身。
肉身阿鞞跋致亦有二種:有於佛前得授記;有不於佛前授記 若佛不在世時,得無生法忍,是不於佛前授記。
이 보살에게 두 종류가 있나니, 첫째는 나고 죽는 생사육신(生死肉身)이며, 둘째는 법성생신(法性生身)이니, 무생법인의 법을 얻어서 일체의 번뇌를 끊고 이 몸을 버린 뒤에야 법성생신을 얻는 것이다.
육신의 아비발치에도 두 종류가 있나니, 부처님 앞에서 수기를 얻는 이가 있고, 부처님 앞에서 수기를 얻지 못한 이가 있으니, 만약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때에는 무생법인을 얻어도 그는 부처님 앞에서 수기를 받지 않은 이인 것이다.
問曰:若爾者,有人讀、誦、說、正憶念,隨順無生法忍義,是人未得禪定,或生疑心、或爲著心所牽,如是人比,是何等菩薩?爲是阿鞞跋致不?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어떤 사람은 읽고 외우고 설하고 바르게 기억하면서 무생법인의 이치를 수순하지만, 그 사람은 아직 선정을 얻지 못하여 혹은 의심을 내기도 하고 혹은 집착하는 마음에 끌리게 되면, 이러한 사람은 그 어떤 보살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가 바로 아비발치인 것입니까? 아닌 것입니까?
答曰:是人不名爲阿鞞跋致。阿鞞跋致菩薩,於甚深佛法中尚無疑,何況無生忍初法門!
是未得阿鞞跋致者,有二種:一者、信少疑多,二者、疑少信多。
疑多信少者,於讀誦經人小勝;信多疑少者,若得禪定,卽時得柔順忍,未斷法愛故,或生著心,或還退沒。是人若常修習此柔順忍,柔順忍增長故,斷法愛,得無生忍,入菩薩位。略說阿鞞跋致相義。
답하나니, 그러한 사람은 아비발치라 하지 못하나니,
아비발치의 보살은 매우 깊은 부처님의 불법 안에서도 오히려 의심이 없거늘, 하물며 무생법인의 첫 문인 초법문(初法門)이겠는가!
이렇게 아직 아비발치를 얻지 못한 이에게도 두 종류가 있나니,
첫째는 믿음이 적고 의심이 많은 신소의다(信少疑多)요,
둘째는 의심이 적고 믿음이 많은 의소신다(疑少信多)이다.
믿음이 적고 의심이 많은 이는 경전을 읽고 외우는 사람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며,
믿음이 많고 의심이 적은 이는 설령 선정을 얻고 즉시 유순인(柔順忍)을 얻어도 아직 법애(法愛)를 끊지 못한 때문에 혹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기도 하고 혹은 다시 물러나기도 하나니, 만약 이 사람이 항상 닦고 익힌다면 이 유순인을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에 법애를 끊고 무생법인을 얻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아비발치의 상(相)에 대한 이치(義)를 간략하게 해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