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2권 8
大智度論 釋大如品 第五十四 卷七十二 卷七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4. 대여품(大如品)을 풀이함 8
復次,多有人發言求無上道而身行不稱;亦以是故,菩薩以身教之,令堅心行此難事。
欲求無上道,當行善中善法,爲此難事,爾乃可得。如是等無量因緣,自以身命供養怨賊。
또한 많은 사람들이 뜻을 일으켜 위없는 무상도를 구하기는 하나 몸의 신행(身行)이 그에 걸맞지 않은 때문에도 보살은 몸으로써 그를 교화하여 견고한 마음으로 이 어려운 난사(難事)를 행하게 하며,
위없는 무상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선 중에서도 선한, 선중선법(善中善法)으로 행하여야 하고,
이러한 어려운 난사(難事)를 행하면 그제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인연 때문에 스스로의 몸과 목숨으로 원수나 도둑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問曰:等心、慈心有何等異?
묻나니, 평등한 마음의 등심(等心)과 인자한 마음의 자심(慈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等心者是四無量心,慈心者是一無量。有人言:初捨怨親是等心,後加愍念是慈心。
답하나니, 평등한 의 등심(等心)이란 바로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이요,
인자한 마음의 자심(慈心)이란 바로 하나의 무량심이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처음에 원수나 친한 이를 다 버리면 그것이 바로 등심(等心)이요,
그 나중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더 보태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인자한 자심(慈心)이다”고 하였으며,
復次,有人言:等心者,觀衆生如如、實際、法性,是法皆無爲、無量故等;愛念衆生,是名慈心。
또 어떤 분은 말하기를 “등심(等心)이란 중생의 여여(如如)ㆍ실제(實際)ㆍ법성(法性)의 법이 모두가 무위(無爲)이며, 무량하다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에 평등의 등(等)이라 하고,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을 바로 인자한 자심(慈心)이라 한다고 하였다.
所以不說悲心者,悲心或憂念衆生,積集此心,心則退沒。
或有衆生不愛菩薩悲念,言:“汝何以不自憂其身而念他人?”
慈心無如是事,易攝衆生故,但說慈心。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비심(悲心)’을 해설하지 않는 까닭은 가엾이 여기는 비심(悲心)이 있으면 혹은 중생을 근심하고 염려하게 되므로, 이러한 마음이 쌓이고 모이면 마음이 곧 물러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 어떤 중생은 보살이 가엾이 여기는, 비념(悲念)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그대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의 자신은 걱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있는 것인가?가’라고 하기도 하나니,
인자한 자심(慈心)에는 이러함이 없고, 중생들을 거두어 주기 쉽기 때문에 다만 인자한 자심(慈心)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問曰:若衆生有三種:上、中、下,菩薩福德智慧積集故,應是大人,云何言“於一切衆生中起下意”?
묻나니, 만약 중생에 상ㆍ중ㆍ하의 세 부류가 있다면 보살은 복덕과 지혜를 쌓기 때문에 당연히 그는 대인(大人)일 것이거늘, 어찌하여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마음을 낮추어 하의(下意)하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菩薩作是念:“一切法無常,一切衆生上、中、下皆歸磨滅,是中何者是大?
何者是小?人以世法故有大小。”
답하나니, 보살이 생각하기를 ‘일체 법은 덧없는 것이라 일체 중생으로서의 상ㆍ중ㆍ하 모두는 닳아 없어지는 것이니, 그러한 가운데서 어느 누가 대인이고 어느 누가 소인(小人)이 되겠는가?
세상의 세법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것이 있다’고 할 뿐인 것이다.
復次,大小不定,此國以爲大,餘國以爲小;於此爲大,於彼爲小;如今世卑賤,後世爲天王。
如是業因緣,在世閒輪轉,貴賤大小無定。如水火貴賤隨時,用捨無定。
또한 크고 작은 것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니, 이 나라에서는 크다 하여도 다른 나라에서는 작은 것이라 하며, 여기에서는 큰 것으로 삼지만 저기에서는 작은 것으로 삼기도 하나니, 마치 금세에서는 낮고 비천하지만 후세에서는 천왕(天王)이 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와 같은 업의 인연은 세간에 있어서는 바퀴 돌듯 하면서 귀천(貴賤)과 대소(大小)에 일정함이 없는 것이니, 마치 물이나 불이 귀한 것이 되고 흔한 것이 되는 것이 때에 따라 달라서, 그 쓰고 버림이 일정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復次,菩薩雖有功德,知是功德畢竟空、如幻、如夢,不著此功德,不有是大小。
復次,一切衆生中有佛道因緣者,唯佛能知。
菩薩作是念:“若我以衆生形貌、才能 以此事輕者,則爲輕未來佛;若輕佛則爲永了。”
또한 비록 보살에게 공덕이 있을지라도, 이 공덕은 마침내 공(空)하여서 마치 허깨비 같고 꿈과 같다고 알아서 이 공덕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크고 작음이 없는 것이며,
또한 일체 중생들 가운데에서 부처님 불도의 인연이 있는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으시니,
보살이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중생의 모습과 재능이 있어서, 이러함으로써 그를 가벼이 여긴다면 미래의 부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될 것이며, 만약 부처님을 업신여긴다면 영원히 끝나게 될 것이다’고 하며,
復次,菩薩作是念:“我誓度一切衆生;若衆生無所得,我則孤負衆生。”
譬如主人請客,則應敬客而自卑;若無所供設,是則負愧於客。
또한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맹세코 일체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므로, 만약 중생이 얻는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라면 나는 곧 중생을 저버린 빚을 지게 되리라’고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주인이 객(客)을 청하면 마땅히 객을 공경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하며,
만약 공양을 베풂이 없다면 객에게 부끄러움의 빚을 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以自大心故,則喜生瞋恚;憍慢是瞋之本,瞋是一切重罪之根。
若菩薩於衆生起下心,衆生若罵、若打、則無恚恨;譬如大家打奴,奴不敢瞋恨。
若菩薩自高、意下衆生者,衆生侵害,忿然生怒;如奴打大家,則起瞋怒。
下意有如是等種種利益故,菩薩應當行。
또한 스스로 잘난 체하는 마음 때문에 곧 진에(瞋恚)하기를 좋아하나니, 교만(憍慢)은 바로 화를 내는 근본이 되고, 화냄은 바로 일체의 중한 중죄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에 대하여 마음을 낮추어 하심(下心)하여서 중생들이 꾸짖고 때려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대가(大家)의 상전이 종을 때려도 종이 감히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만약 보살이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중생을 낮추어 본다면, 중생이 침해할 적에 벌컥 화를 내게 되나니, 마치 종이 상전을 때리면 화를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을 낮추어 하심(下心)하는 것에는 이와 같은 갖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에 보살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安隱心”者,與今世、後世、究竟樂,非如父母、知識與現世樂。
菩薩若以等心、慈心、下心利益衆生時,若有不知恩人來惱菩薩,不信所行,謂爲欺誑,爲求名故,無有實事;又爲魔所使,來惱菩薩,惡中之惡,不識恩分。菩薩等心,於此通達無㝵。
得是無㝵心已,衆生雖有大罪大過,但欲利益,不生惱心。
‘안온한 마음의 안은심(安穩心)’이란 금생과 후생에서의 마지막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부모나 아는 지인들이 현재의 세상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보살이 평등한 마음의 등심(等心)과 인자한 자심(慈心)과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의 하심(下心)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할 때에 만약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보살에게 와서 보살을 괴롭히고 그 행한 것을 믿지도 않으면서 “속임수를 쓰고 있고 명예를 구하기 때문일 뿐, 진실하지 않다”고 하기도 하며,
악마의 부림을 받는 이가 와서 보살을 괴롭히기도 하는 것이니,
악한 중에서도 악한 악중악(惡中惡)의 이는 그 은혜를 모르거니와 보살은 평등한 등심(等心)으로 이러한 것에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는 무애(無㝵)하나니,
이 거리낌 없는 마음의 무애심(無礙心)을 얻은 뒤에는 중생들에게 비록 큰 죄와 큰 허물이 있을지라도 다만 이익되게 하기만 바랄 뿐이요 괴롭다는 마음의 뇌심(惱心)을 내지 않는 것이다.
慈心、安隱、無㝵,不惱心。譬如孝子愛敬父母,如兄、如弟、如姊妹、如兒女,無婬欲心而生愛敬慈念。
世人但能愛敬所親,菩薩普及一切。得是柔軟淸淨好心,名衆生忍,是法忍初門。
인자한 마음의 자심(慈心)과 안온한 마음의 안은심(安隱心)과 거리낌이 없는 무애(無㝵心)와 괴롭지 않은 마음의 불뇌심(不惱心)은 마치 효자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과 같으며, 형과 같고 아우같이 여기는 것과 같으며, 마치 자매(姉妹)나 딸과 같이 여기어 음욕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서 사랑하고 공경하고 인자한 생각을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만 친한 이만을 사랑하고 공경하지만, 보살은 일체 중생들에게 널리 미치는 것이니, 이 부드럽고 청정한 좋은 마음의 유연청정호심(柔軟淸淨好心)을 얻는 것을 중생인(衆生忍)이라 하며,
이것이 바로 법인(法忍)의 첫 문인 초문(初門)인 것이다.
次行十善道。十善道,有佛、無佛,世閒常有,是善法教,菩薩先以四十種行,行是十善道。何以故?是菩薩深念善法,心慈衆生故。
離欲凡夫法有十二事,亦以四十八種行 六波羅蜜乃至法住,是客法,
有佛說則有菩薩行 上來舊法、客法,本末具足,
今世得善法,智慧無㝵;捨身,得法身無㝵,隨意至十方教化衆生,於十方佛前修集善法。
다음에는 열 가지 착한 길의 십선도(十善道)를 행하는 것이니,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세간에는 항상 열 가지의 착한 선법의 가르침인 십선도(十善道)가 있는 것이며,
이 착한 선법을 가르치는 보살은 먼저 40종의 행으로써 이 열 가지의 십선도를 행하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은 깊이 착한 선법을 염(念)하면서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욕심을 여읜 이욕범부(離欲凡夫)의 법에는 육수(六受)와 육작(六作)의 십이사(十二事)가 있으며,
또한 48종의 계율을 행함으로써 6바라밀 내지는 법주(法住)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은 객법(客法)이며,
부처님의 설법이 있으면 보살의 보살행(行)이 있나니, 위에서 내려오는 구법(舊法)과 객법(客法)의 처음과 끝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것이다.
금세에서 착한 선법을 얻어 지혜에 장애가 없으면 몸을 버리고는 법신(法身)을 얻어서 장애없이 마음대로 시방으로 나아가 중생들을 교화하며, 시방의 부처님 앞에서 착한 선법을 닦아서 쌓는 것이다.
육수(六受)= 안촉수(眼觸受)·이촉수(耳觸受)·비촉수(鼻觸受)·설촉수(舌觸受)·신촉수(身觸受)·의촉수(意觸受),
육작(六作)= 행(行)·주(住)·좌(坐)·와(臥)·어묵(語默)·작작(作作).
四十八種行(48종행)= 보살이 지키면 공덕이 되는 48개의 가벼운 계율
1. 스승과 벗을 공경하라. 2. 술을 마시지 마라. 3. 고기 먹지 마라. 4. 오신채를 먹지 마라.
5. 계를 범한 사람은 참회하게 하라. 6. 법사에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 올리고, 법을 청하라.
7. 법문하는 곳에는 반드시 가서 들으라. 8. 대승이 아닌 외도의 사견을 가르치지 마라.
9. 병든 사람을 잘 간호하라. 10. 살생하는 도구를 마련해 두지 마라.
11. 나라의 사신이 되어 중생을 해롭게 하지 마라. 12. 나쁜 마음으로 장사하지 마라.
13. 근거 없이 선한 사람을 비방하지 마라. 14. 불을 질러 살아 있는 생명을 태우지 마라.
15. 불법이 아닌 다른 법으로 교화하지 마라. 16. 이익과 공양을 탐내지 말고 바르게 가르쳐라.
17. 권력을 믿고 남의 재산을 갈취하지 마라. 18. 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마라.
19. 이간질하지 마라. 20. 살아 있는 생명은 놓아주고,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라.
21. 화내지 말고 때리지 말며 원수를 갚지 마라. 22.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법문을 청하고 배워라.
23. 교만한 마음으로 편협하게 설하지 마라.
24. 대승의 경과 율을 배우되 외도의 잡론은 배우지 마라.
25. 대중을 화합하게 하고 삼보의 재산을 법답게 운용하라. 26. 이익과 공양을 독차지하지 마라.
27. 자기만을 따로 청하는 초청을 받지 마라.
28. 재가 신도로서 승가가 아닌 스님 개인을 따로 청해 공양하지 마라.
29. 나쁜 직업을 갖지 마라. 30. 양심을 속여 나쁜 업을 짓지 마라.
31.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구하라. 32. 중생을 해롭게 하는 일을 하지 마라.
33. 도박, 도둑질 점치는 등의 행위를 보지도 말고 하지도 마라.
34. 계를 잘 지키고, 한순간도 보리심을 떠나지 마라. 35. 큰 원을 세워라,
36. 굳은 결심으로 맹세하라. 37. 위험한 곳에 가지 마라. 38. 서열을 어기지 마라.
39. 복과 지혜를 함께 닦아라. 40. 차별해서 계를 주지 마라.
41. 덕이 없으면서 이익과 공양을 위해 스승이 되지 마라.
42. 계를 받지 않은 사람과 함께 포살하지 마라. 43. 고의로 계를 범할 생각을 하지 마라.
44. 경전을 공양하고 널리 유통하라. 45. 중생을 보면 언제나 보리심을 발하도록 권하라.
46. 법답지 못한 자리에서 설법하지 마라.ㅍ47. 옳지 못한 법으로 제재를 가하지 마라.
48. 불법을 파괴하지 마라.ㅡ 범망경, 불교성전 p328 - 김서연의 시낭송 사랑
객법(客法)이란 나그네 비구가 처음 승방에 도착했을 경우에는 옷깃을 한쪽으로 여며야 하고, 니원승이 올라가 있다면 내려 입어야 하고, 옷 보따리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다면 이를 왼쪽 어깨로 돌려 메야 하고, 지팡이ㆍ기름 주머니ㆍ가죽신ㆍ침통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면 왼손으로 옮겨 쥐어야 하고, 물이 있을 경우에는 발을 씻고 나서 들어가야 하고, 물이 없을 경우에는 풀이나 나뭇잎으로 발을 닦은 다음에 들어가야 한다. ~ 중략~ 구주 비구를 만나면 ‘이 승방에 법랍이 어느 정도인 비구가 머물 방사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야 하고, ‘있다’고 답하면 즉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중략~ 새벽이 밝으면 구주 비구에게 ‘이 승방에는 전식과 후식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야 하고, ‘어디서 걸식합니까?’, ‘어느 곳에 사나운 개ㆍ사나운 소ㆍ나이찬 처녀ㆍ과부가 삽니까?’, ‘스님들이 학가갈마(學家羯磨)나 복발갈마(覆鉢羯磨)를 준 집은 어디입니까?’, ‘어느 곳이 가도 되는 곳입니까?’, ‘어느 곳이 가지 말아야 할 곳입니까?’ 하고 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자세히 물어보고 나서 걸식을 다녀야 한다. 만약 나그네 비구가 그곳을 떠나가고자 할 경우에는 물통과 두레박줄과 빗자루를 본 주인에게 돌려주고, 침구를 잘 개고 방문을 닫고 빗장을 건 다음에 떠나야 하나니 이를 나그네 비구법이라고 한다. -십송율, 열심히
“聞是法時,二千菩薩得無生法忍”者,是品說如微妙深法,亦說有行,善門、智門,二行具足。
但說如法,所利少;若說有法,所利亦少。今說有無二法,具足故,得無生法忍;
譬如二輪具足故,能有所至。此中善說二諦故,二千菩薩得無生法忍。
‘이 법을 들을 때에 2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함이란, 이 품(品)에서는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의 미묘하고 깊은 심법(深法)설하였으며, 또한 선문(善門)ㆍ지문(智門)의 두 가지 행을 행하여 두루 갖춤이 있을을 설하였으니,
다만 여법(如法)만을 설하였다면 이익됨이 적으며, 있는 유법(有法)만을 설하여도 역시 이익됨이 적으며,
여기에서는 있다 없다는 유무(有無) 두 가지의 이법(二法)을 갖추어 설하였기 때문에 무생법인을 얻은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갖추어진 때문에 능히 도달함이 있는 것과 같이,
여기에서는 두 가지 진리인 이제(二諦)를 잘 설하였기 때문에 2천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은 것이다.
大智度論卷第七十二 終 대지도론 72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