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2권 3
大智度論 釋大如品 第五十四 卷七十二 卷七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4. 대여품(大如品)을 풀이함 3
復次,如如來如相,一切處常無憶想分別;須菩提如,一切法如攝,故隨佛生。
復次,如來如相不離一切法如。正觀一切法,名爲佛;一切法是因緣,佛是果報,是故說:“如來如不離一切法如”
是如實故常如,無不如時;須菩提如亦如是不異,故隨佛生,亦無法可隨。
또한 마치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은 일체의 처소에서 항상 생각과 분별이 없는 것과 같이, 수보리 존자의 여(如)는 일체법의 여(如)에 포섭되기 때문에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이며,
또한 여래의 여한 여상(如相)은 일체법의 여(如)를 여의지 않으며, 일체법을 바르게 관찰하는 정관(正觀)하므로 부처님이라 하며, 일체법은 바로 인(因)과 연(緣)이요,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과보(果報)이기 때문에 ‘여래의 한결같은 여(如)는 일체법의 여(如)를 여의지 않는다’고 하며,
이 여(如)는 진실하기 때문에 항상한 상여(常如)라서 항상 여(如)하지 않은 때가 없나니,
수보리 존자의 여(如) 또한 그와 같아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이며, 또한 따를 만한 법도 없는 무법가수(無法可隨)인 것이다.
復次,如來如相無憶想分別、出過三世,一切法如亦如是;須菩提如亦出三世,是故隨佛生。
또한 여래의 한결같은 여상(如相)은 생각이나 분별이 없으며, 삼세를 초월하나니, 일체법의 여(如) 또한 그와 같으며, 수보리 존자의 여(如) 또한 삼세를 초월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이며,
復次,如來如不在過去如中,何以故?如來空,過去亦畢竟空,是故空不在空中住;譬如虛空不住虛空中。未來、現在亦如是。
“三世如、如來如,不二不分別”者,三世如,空、無相、無生無滅等;如來如亦如是。三世如無障㝵,如過去世無窮無邊,未來世亦無窮無邊,現在世亦無窮無邊;如來如亦如是。
此三世十方無窮無邊,須菩提如亦如是。
또한 여래의 여(如)는 과거의 여(如)에 있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여래는 공(空)하고 과거 또한 필경에 공(空)한 것이기 때문이니, 공(空)은 공(空) 안에 있지 않으며, 공(空) 안에 머무르지도 않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이 허공 안에 머무르지 않는 것과 같이 미래와 현재 또한 그와 같으며,
‘삼세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분별되지도 않는 불분별(不分別)이다’고 함이란, 삼세의 여(如)는 공(空), 무상(無相), 무생(無生) 무멸(無滅) 등인 것과 같이, 여래의 여(如) 또한 그와 같으며,
삼세의 여(如)는 장애가 없는 무장애(無障㝵)이라, 과거세와 같이 무궁하고 무변하며, 미래세도 무궁하고 무변하며, 현재의 세상도 무궁하고 무변하나니, 여래의 여(如) 또한 그와 같으며,
이 삼세와 시방은 무궁하고 무변하나니, 수보리 존자의 여(如) 또한 그와 같은 것이며,
復次,五衆如乃至一切種智如、如來如,無二無別。何以故?色等諸法和合故有如來。
如是如來,不得言“但是色等法”,亦不得言“離色等法”,亦不得言“色等法在如來中”,亦不得言“如來在色等法中”,亦不得言“色等法屬如來”,亦不得言“無如來”。五衆色等法中假名如來。
如來如卽是一切法如,是故說“色等法如、如來如,不二不別”。凡夫人見有二有別,聖人觀無二無別;聖人可信,凡夫人所見不可信。
또한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오중(五衆, 오온)의 여(如) 내지는 일체종지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고 구별이 없는 무별(無別)이나니, 왜냐하면 물질(色) 등의 제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여래의 여(如)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여래는 다만 물질(色) 등의 법이라고 말할 수 없고,
또 물질(色) 등의 법을 떠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으며,
또한 물질(色) 등의 법이 여래 안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여래가 물질(色) 등의 법 안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또한 물질(色) 등의 법이 여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여래가 없는 무여래(無如來)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오중(오온)의 물질(色) 등의 법에서 임시의 가명으로 여래라 이름한 것이고,
여래의 여(如)는 곧 일체법의 여(如)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물질(色) 등 법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구별도 없는 불별(不別)이다”고 하는 것이나,
범부는 둘이 있는 유이(有二)이고 구별도 있는 유별(有別)이라고 보지만, 성인은 둘도 없고 구별도 없는 무이무별(無二無別)이라 보나니, 성인이 보는 것은 믿을 수 있지만, 범부가 보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佛語須菩提:“是名爲如,佛因此如故,名爲如來。”如來者,如實行來到佛法中。說是如時,地六種震動,如上說。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함을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라 한다’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는 이 여(如)로 인하여 여래(如來)라 불리우며, 여래는 바로 여실(如實)하게 행하여 부처님의 불법에 이르러, 내도(來到)하였다는 것이다.”
이 여(如)를 말씀하셨을 때, 대지(大地)가 육종(六種)으로 진동한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經. 是時,諸欲天子、諸色天子以天末栴檀香散佛上,及散須菩提上,
白佛言:“未曾有也!世尊!須菩提以如來如隨佛生。”
▷경. 이때 모든 욕계의 천자와 모든 색계의 천자들이 하늘의 전단향을 부처님 위에 흩뿌리고, 그리고 수보리 존자의 위에도 뿌린 뒤에 부처님께 말씀드렸으니,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 존자는 여래의 여(如)로써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須菩提復爲諸天子說言:“諸天子!須菩提不從色中隨佛生,亦不從色如中隨佛生;不離色隨佛生,亦不離色如隨佛生。
須菩提不從受想行識中隨佛生,亦不從受想行識如中隨佛生;不離受想行識隨佛生,亦不離受想行識如隨佛生。
수보리 존자가 다시 그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으니,
“모든 천자들이여, 수보리는 물질(色)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하지 않았고,
또한 물질(色)의 색여(色如)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물질(色)을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또한 물질(色)의 색여(色如)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습니다.
수보리는 수상행식(受想行識)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또한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또한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色)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습니다.
乃至不從一切種智中隨佛生,亦不從一切種智如中隨佛生;不離一切種智隨佛生,亦不離一切種智如隨佛生。須菩提不從無爲中隨佛生,亦不從無爲如中隨佛生;不離無爲隨佛生,亦不離無爲如隨佛生。
何以故?是一切法皆無所有、不可得,無隨生者,亦無隨生法。”
나아가 일체종지 가운데서에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고,
또한 일체종지의 여(如)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으며,
일체종지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 않았으며
또한 일체종지의 여(如)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으며,
수보리는 무위(無爲)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무위의 여(如)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으며,
무위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무위의 여(如)를 여의고 부처님을 따라 수불생하지도 않았나니,
왜냐하면 이 일체법 모두는 있는 것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얻을 수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며, 따라 출생하는 이도 없는 무수생자(無隨生者)이며, 또한 따라 출생하는 수생법(隨生法)도 없기 때문입니다.”
爾時,舍利弗白佛言:“世尊!是如實不虛,法相、法住、法位甚深;是中色不可得,色如不可得。何以故?色尚不可得,何況色如當可得!受、想、行,識不可得,受、想、行、識如不可得,何以故?受、想、行、識尚不可得,何況受、想、行、識如當可得!乃至一切種智不可得,一切種智如不可得。何以故?一切種智尚不可得,何況一切種智如當可得!”
그때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如)는 진실이어서 거짓이 아니며 법상(法相, 실상)ㆍ법주(法住, 존재와 현상의 진리로 머묾)ㆍ법위(法位, 법력을 갖춘 정도)가 매우 깊은 것으로, 이 가운데에서는 물질(色)도 얻을 수 없고 물질(色)의 여(如)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色)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色)의 색여(色如)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얻을 수 없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상행식(受想行識)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 일체종지도 얻을 수 없고, 일체종지의 여(如)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종지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일체종지의 여(如)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佛告舍利弗:“如是!如是!舍利弗!是如實不虛,法相、法住、法位甚深,是中色不可得,色如不可得。何以故?色尚不可得,何況色如當可得!乃至一切種智不可得,一切種智如不可得。何以故?一切種智尚不可得,何況一切種智如當可得!”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여(如)는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며 법상ㆍ법주ㆍ법위가 매우 깊어서 이 가운데서는 물질(色)도 얻을 수 없고 물질의 색여(色如)도 얻을 수 없나니, 왜냐하면 물질(色)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물질의 색여(色如)를 얻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일체종지도 얻을 수 없고 일체종지의 여(如)도 얻을 수 없나니, 왜냐하면 일체종지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일체종지의 여(如)를 얻을 수 있겠는가!”
舍利弗說是如相時,二百比丘不受一切法故,漏盡得阿羅漢;五百比丘尼,遠塵離垢,諸法中得法眼淨,生天、人中;五千諸菩薩摩訶薩得無生忍法;六千菩薩諸法不受故,漏盡,心得解脫,成阿羅漢。
사리불 존자가 이러한 여상(如相)을 설할 때, 2백의 비구는 일체법을 받지 않기 때문에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을 얻었으며, 오백의 비구니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읜, 원진이구(遠塵離垢)하여 제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이 청정해져서 천상과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5천의 모든 보살마하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6천의 보살은 제법을 받지 않은 불수(不受)한 때문에 번뇌가 다하여 마음의 심해탈을 얻어서 아라한을 이루었다.
“舍利弗!是六千菩薩先世値五百佛,親近供養,於五百佛法中,行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無般若波羅蜜、無方便力故,行別異相;作是念:‘是施、是持戒、是忍辱、是精進、是禪定。’
無般若波羅蜜、無方便力故,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行別異相;行別異相故,不得無異相;不得無異相故,不得入菩薩位;不得入菩薩位故,得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
舍利弗!菩薩摩訶薩雖有道,若空、若無相、若無作法,遠離般若波羅蜜,無方便力故,便於實際作證,取聲聞乘。”
“사리불아, 이 6천 보살은 전생에 5백의 부처님을 친근(親近)하고 공양하였으며, 5백 부처님의 불법 가운데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을 행하였으나, 반야바라밀이 없었고, 방편력(方便力)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별이상(別異相)을 행하면서 생각하기를 ‘이것이 바로 보시요, 이것이 바로 지계요, 이것이 바로 인욕이요, 이것이 바로 정진이요, 이것이 바로 선정이다’고 하였느니라.
반야바라밀이 없고 방편력(方便力)이 없었기 때문에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의 다른 별이상(別異相)을 행하였으며, 별이상(別異相)을 행하였기 때문에 다름이 없는 무이상(無異相)을 얻지 못하였고,
다름이 없는 무이상(無異相)을 얻지 못한 때문에 보살의 지위에 들 수 없었으며,
보살의 지위에 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를 얻었으며,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를 얻은 것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비록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도(法道)가 있을지라도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고 방편의 힘이 없기 때문에 쉽게 실제(實際)에서 증득하여 성문승(聲聞乘)을 취하게 된 것이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何因緣故,俱行空、無相、無作法,遠離方便力故,於實際作證取聲聞乘?菩薩摩訶薩亦修空、無相、無作法,有方便力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으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을 갖추어 행하면서도 방편력을 멀리 여의고 실제에서 증득하여 성문승을 취하게 된 것이며?
보살마하살 역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을 닦았거늘, 그들에게는 방편력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 것인지요?”
佛告舍利弗:“有菩薩遠離薩婆若心,修空、無相、無作法,無方便力故,取聲聞乘。舍利弗!復有菩薩摩訶薩不遠離薩婆若心,修空、無相、無作法,有方便力故,入菩薩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은 살바야심(薩婆若心)을 멀리 여의고는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을 닦으면서도 방편력이 없기 때문에 성문승을 취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의 마음을 멀리 여의지 않고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을 닦으면서 방편력이 있기 때문에 보살의 지위에 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舍利弗!譬如有鳥,身長百由旬,若二百、三百由旬,而無有翅,從三十三天,自投閻浮提。舍利弗!於汝意云何?是鳥中道作是念:‘欲還上三十三天。’能得還不?”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어떤 새는 몸의 길이가 백 유순(由旬), 아니 2백 유순, 아니 3백 유순이 되면서도 날개가 없어서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부터 스스로 염부제(閻浮提)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이,
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새가 중도에서 생각하기를 ‘삼십삼천으로 도로 올라가야겠다’고 한다면, 과연 돌아갈 수 있겠는가?”
“不得也!世尊!”
“舍利弗!是鳥復作是願:‘到閻浮提,欲使身不痛不惱。’舍利弗!於汝意云何?是鳥得不痛不惱不?”
“올라갈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또한 이 새가 원을 세우기를 ‘염부제에 도착했을 때, 몸이 아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게 하여 주소서’라고 한다면, 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이 새가 떨어져서 아프지도 않고 고통을 당하지도 않겠는가?”
舍利弗言:“不得也!世尊!是鳥到地,若痛、若惱、若死、若死等苦。何以故?世尊!是鳥身大而無翅故。”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그렇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새가 땅에 떨어졌을 때에는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죽거나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새의 몸이 크고 날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菩薩摩訶薩亦如是,雖如恒河沙等劫修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發大事、生大心,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受無量願;是菩薩遠離般若波羅蜜、方便力故,若墮阿羅漢、若墮辟支佛道。何以故?是菩薩遠離薩婆若心,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無般若波羅蜜、無方便力故,墮聲聞地、若辟支佛道中。
“사리불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항하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劫) 동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을 닦고 큰일을 일으키고 큰 대심을 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하여 무량한 원을 받았을지라도 반야바라밀과 방편력을 여의었기 때문에 혹 아라한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은 살바야심을 멀리 여의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을 행하였으며, 반야바라밀도 없으며, 방편력도 없었기 때문에 성문의 지위나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