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2권 1

Skunky 2024. 10. 3. 08:00

大智度論 釋大如品 第五十四 卷七十二 卷七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4. 대여품(大如品) 풀이함 1

 

▶經. 爾時,欲界諸天子、色界諸天子以天末栴檀香,以天靑蓮華、赤蓮華、紅蓮花、白蓮華遙散佛上,來至佛所,頂禮佛足,一面住,白佛言:“世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甚深、難見、難解、不可思惟知、微妙寂滅,智者能知,一切世閒所不能信。何以故?是深般若波羅蜜中,如是說:‘色卽是薩婆若,薩婆若卽是色;乃至一切種智卽是薩婆若,薩婆若卽是一切種智。色如相、薩婆若如相,是一如,無二無別;乃至一切種智如相、薩婆若如相,一如,無二無別。’”

▷경. 그때 욕계(欲界)의 모든 천자(天子)들과 색계(色界)의 모든 천자들이 하늘의 전단향 가루와 하늘의 청련화(우담바라優曇鉢羅)ㆍ적련화(파두마波頭摩)ㆍ홍련화(수건제가搔揵提迦))ㆍ백련화(분다리分陀利)로써 멀리에서부터 부처님 위에뿌리고는 부처님께로 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이마)로써 예배하고  편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라서, 보기 어려운 난견(難見)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難解)이며, 생각으로 미루어   없는 것입니다. 

미묘한 적멸(寂滅)을 깨달은 지혜가 있는 이만이   있을 뿐이며, 일체 세간이 믿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서는 

‘물질(色)이  살바야요 살바야가  물질(色)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가  살바야요 살바야가  일체종지이며,  

물질(色)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과 살바야의 여상(如相) 바로 일여(一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무이무별(無二無別)이며, 

나아가 일체종지의 여상(如相) 살바야의 여상(如相) 일여(一如)라서 무이무별(無二無別)이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佛告欲、色界諸天子:“如是!如是!諸天子!色卽是薩婆若,薩婆若卽是色;乃至一切種智卽是薩婆若,薩婆若卽是一切種智。色如相乃至一切種智如相,一如,無二無別。諸天子!以是義故,佛初成道時,心樂嘿然,不樂說法。何以故?是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甚深、難見、難解、不可思惟知、微妙寂滅,智者能知,一切世閒所不能信。何以故?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得者、無得處、無得時,是名諸法甚深相,所謂無有二法。

부처님께서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천자들아, 물질(色)이  살바야요 살바야가  물질(色)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가  살바야요 살바야가  일체종지이며, 물질(色)의 여상(如相) 내지는 일체종지의 여상(如相) 동일한여(一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 무이무별(無二無別)이니라.

천자들아, 이러한 이치인 까닭에 부처님이 처음 성도(成道)할 때에 마음으로 잠자코 있기를 좋아하는, 심락묵연(心樂嘿然)하여서 설법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나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은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라서 보기 어려운 난견(難見)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難解)하며, 생각으로는 미루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

미묘한 적멸을 증득한 지혜 있는 이만이   있으며, 일체 세간으로서는 믿을  있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얻는 이가 없는 무득자(無得者)이고, 얻을 곳도 없는 무득처(無得處)이며, 얻는 때가 없는 무득시(無得時)이기 때문이니라. 

이를 곧 제법의 매우 깊은 심심상(甚深相)이라 하나니, 이른바 두개의 이법(二法)이 없는 것이니라.


諸天子!如虛空甚深故,是法甚深;如甚深故,是法甚深;法性甚深、實際甚深、不可思議、無邊甚深故,是法甚深;無來無去甚深故,是法甚深;不生不滅、無垢無淨、無知無得甚深故,是法甚深。

천자들아, 마치 허공과 같이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기 때문에  법도 매우 깊은 심심(甚深)하며,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가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까닭에  법도 매우 깊으며,

법성(法性)이 매우 깊고, 실제(實際)가 매우 깊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끝없이 심심(甚深)하기 때문에  법도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니라.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는 무래무거(無來無去)이며, 매우 깊은 까닭에  법도 매우 깊으며,

나지도 멸하지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는 무구무정(無垢無淨)이며, 앎도 얻음도 없는 무지무득(無知無得)이면서 매우 깊기 때문에  법 또한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니라.

 

諸天子!我甚深乃至知者、見者甚深故,是法甚深。諸天子!色甚深,受想行識甚深故,是法甚深。檀波羅蜜甚深乃至般若波羅蜜甚深故,是法甚深。內空乃至無法有法空甚深故,是法甚深;四念處甚深乃至一切種智甚深故,是法甚深。”

천자들아, 내(我)가 매우 깊고 나아가 아는 지자ㆍ보는 견자 매우 깊기 때문에  법도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니라.

천자들아, 물질(色)이 매우 깊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매우 깊기 때문에  법도 심심(甚深)하며, 

단바라밀이 매우 깊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이 매우 깊기 때문에  법도 심심(甚深)하며,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이 매우 깊기 때문에  법도 심심(甚深)하며,

사념처가 매우 깊고 나아가 일체종지가 매우 깊기 때문에  법도 심심(甚深)한 것이니라.”


爾時,欲、色界諸天子白佛言:“世尊!是所說法,一切世閒所不能信。世尊!是甚深法,不爲受色故說,不爲捨色故說;不爲受受、想、行、識故說,不爲捨受、想、行、識故說。不爲受須陁洹果故說,不爲捨須陁洹果故說;乃至不爲受一切種智故說,不爲捨一切種智故說。

그때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에서 말씀하신 법은 일체 세간으로서는 믿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깊은 심심법(甚深法)은 물질(色)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해지고, 

물질(色)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해지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해지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해지며, 

수다원(須陀洹)의 과위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설해지고 

수다원의 과위를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설해지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설해지고 일체종지를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설해집니다.

 

諸世閒皆受著行,所謂色是我、是我所,受、想、行、識是我、是我所,乃至十八不共法是我、是我所;須陁洹果是我、是我所,乃至一切種智是我、是我所。”

모든 세간이 받는다면, 받은 것에 집착하면서 행하나니, 이른바 ‘물질(色)이 바로 나(我)요  것의 아소(我所)이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바로 나(我)요 내 것의 아소(我所)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이 바로 나(我)요 내 것의 아소(我所)이며, 수다원의 과위가 바로 나(我)요 내 것의 아소(我所)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가 바로 나(我)요 내 것의 아소(我所)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佛告諸天子:“如是!如是!諸天子!是法非爲受色故說,非爲捨色故說;乃至非爲受一切種智故說,非爲捨一切種智故說。諸天子!若有菩薩爲受色故行,乃至爲受一切種智故行,是菩薩不能修般若波羅蜜,不能修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不能修檀波羅蜜,乃至不能修一切種智者。”

부처님께서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천자들아,  법은 물질(色)을 받기 위하여 설해지는 것도 아니요, 물질(色)을 버리기 위하여 설해지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받기 위하여 설해지는 것도 아니요, 일체종지를 버리기 위하여 설해지는 것도 아니니라.

천자들아, 만약 어떤 보살이 물질(色)을 받기 위하여 행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받기 위하여 행한다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없고, 선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시라바라밀을 수행할  없으며 단바라밀을 수행할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수행할  없는 이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是法隨順一切法。云何是法隨順一切法?是法隨順般若波羅蜜,乃至隨順檀波羅蜜;是法隨順內空,乃至隨順無法有法空;是法隨順四念處,乃至隨順一切種智。是法無㝵,不㝵於色,不㝵受、想、行、識,乃至不㝵一切種智。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은 일체법에 수순(隨順)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어떻게 일체법에 수순하는 것인가? 하면,  법은 반야바라밀에 수순하고 나아가 단바라밀에 수순하며,  법은 내공에 수순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에 수순하며,  법은념처에 수순하고 나아가 일체종지에 수순합니다.

 법에는 장애가 없나니, 물질(色)에 장애가 되지 않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에 장애가 되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諸天子!是法名無㝵相,如虛空等故,如、法性、法住、實際、不可思議性等故,空、無相、無作等故。是法不生相,色不生,不可得故;受、想、行、識不生,不可得故;乃至一切種智不生,不可得故。是法無處。色處不可得故;受、想、行、識處不可得故,乃至一切種智處不可得故。”

천자들이여,  법을 장애 없는 무애상(無礙相)이라 하나니,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여(如)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품과 같기 때문이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과 같기 때문입니다.

 법은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이니, 물질(色)이 불생이며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요,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이 불생이며 얻을 수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가 불생이며 얻을 수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처소가 없는 무처(無處)이니, 물질(色)의 처소를 얻을  없기 때문이요,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처소를 얻을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일체종지의 처소를 얻을  없기 때문입니다.”


是時欲、色界諸天子白佛言:“世尊!須菩提是佛子,隨佛生。何以故?須菩提所說皆與空合。”

이 때에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수보리 존자는 바로 부처님의 불자(佛子)이시며,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이십니다. 왜냐하면 수보리 존자가 말씀하신 것 모두가 공(空)과 더불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爾時,須菩提語諸天子:“汝等言:‘須菩提是佛子,隨佛生。’云何爲隨佛生?諸天子!如相故,須菩提隨佛生。何以故?如來如相不來不去,須菩提如相亦不來不去,是故須菩提隨佛生。

그때 수보리 존자가 모든 천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수보리는 바로 부처님의 불자(佛子)이시며,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했다는 것인지요?”

천자들이 대답하여,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의여한 여상(如相) 오지도 가지도 않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이며, 

수보리 존자의여한 여상(如相) 오지도 가지도 않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復次,須菩提從本已來隨佛生。何以故?如來如相卽是一切法如相,一切法如相卽是如來如相。是如相中亦無如相,是故須菩提爲隨佛生。

또한 수보리 존자는 본래부터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이 일체법의 여상이요,

일체법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이  여래의 여상이니,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 가운데에서는 여상(如相) 또한 없는 까닭에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復次,如來如常住相,須菩提如亦常住相;如來如相無異無別,須菩提如相亦無異無別,是故須菩提爲隨佛生。如來如相無有㝵處,一切法如相亦無㝵處;是如來如相、一切法如相,一如,無二無別。是如相無作,終不不如,是故是如相一如,無二無別,是故須菩提爲隨佛生。

또한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는 항상 머무르는 상주상(常住相)이요, 

수보리 존자의 여(如) 또한 항상 머무르는 상주상(常住相)입니다. 

여래의 한결같은 여상(如相) 다름도 없고 구별도 없는 무이무별(無二無別)이며, 수보리 존자의 여상(如相) 다른 것이 없고 구별도 없나니,  때문에 수보리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여래의 여상(如相) 장애되는 곳이 없으며, 일체법의 여상(如相) 장애되는 곳이 없으니,  여래의 여상(如相) 일체법의 여상(如相) 동일한 여(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는 무이무별(無二無別)입니다. 

여한 여상(如相) 작위가 없는 무작이라서 끝내여하지 않은 불여(不如)가 아닌 때문에 여한 여상(如相) 동일한 여(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는 무이무별(無二無別)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如來如相一切處無念無別,須菩提如相亦如是,一切處無念無別;如來如相不異不別、不可得,須菩提如相亦如是,以是故須菩提爲隨佛生。如來如相不遠離諸法如相,是如終不不如;是故須菩提如不有異,爲隨佛生,亦無所隨。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은 일체의 곳에서 생각도 구별도 없는 무념무별(無念無別)이며, 수보리 존자의여한 여상(如相)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곳에서 생각도 구별도 없는 무념무별(無念無別)입니다.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은 다르지도 않고 구별되지도 않고 얻을 수도 없으며, 수보리의여한 여상(如相)도 그와 같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은 제법여한 여상(如相)을 멀리 여의지 않으며, 이 여(如)는 끝끈내 불여(不如)가 아닌 까닭에 수보리 존자의 여(如)도 불여(不如)이라서 부처님을 따라 출생하면서도 또한 따르는 바도 없는 것입니다.


復次,如來如相不過去、不未來、不現在,諸法如相亦不過去、不未來、不現在,是故須菩提爲隨佛生。

또한 여래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상(如相)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법의여한 여상(如相) 또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을 따라 출생한 수불생(隨佛生)인 것입니다.


復次,如來如不在過去如中,過去如亦不在如來如中;如來如不在未來如中,未來如不在如來如中;如來如不在現在如中,現在如不在如來如中。過去未來現在如、如來如,一如,無二無別。

또한 여래의 여(如)는 과거의 여(如)에도 있지 않고, 과거의 여(如)도 여래의 여(如)에 있지 않으며,

여래의 여(如)는 미래의 여(如)에 있지도 않고, 미래의 여(如)는 여래의 여(如)에 있지 않으며,

여래의 여(如)는 현재의 여(如)에 있지도 않고, 현재의 여(如)도 여래의 여(如)에 있지 않나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동일한 여(如)이라서 둘이 아니고 다름도 없는이무별(無二無別)입니다.

 

色如、如來如,受想行識如、如來如,是色如、受想行識如、如來如,一如,無二無別;我如乃至知者見者如、如來如,一如,無二無別;檀波羅蜜如乃至般若波羅蜜如、內空如乃至無法有法空如、四念處如乃至一切種智如、如來如、一如、無二無別。”“須菩提!菩薩摩訶薩得是如故,名爲如來。”

물질(色)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는 여래의 여(如)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도 여래의 여(如)이니, 이 물질의 여(如)와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동일한 여(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름도 없는 무이무별(無二無別)이며,  

나(我)의 여(如) 내지는 아는 지자ㆍ보는 견자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동일한 여(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름도 없는 무이무별(無二無別)이며,

단바라밀의 여(如) 내지는 반야바라밀의 여(如)와 내공의 여(如) 내지는 무법유법공의 여(如)와 사념처의 여(如) 내지는 일체종지의 여(如)와 여래의 여(如)는 동일한 여(如)이니, 둘이 아니고 다름도 없는 무이무별(無二無別)인 것입니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여(如)를 얻었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하는 것입니다.”

 

說是「如相品」時,是三千大千世界大地六種振動:東踊西沒,西踊東沒;南踊北沒,北踊南沒;中央踊四邊沒,四邊踊中央沒。

이 여상품(如相品)을 설할 때, 이 삼천대천세계의 대지(大地)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으니, 동쪽이 솟아오르면(踊) 서쪽이 움푹 들어가고(沒), 서쪽이 솟아오르면(踊) 동쪽이 움푹 들어가며(沒), 남쪽이 솟아오르면(踊) 북쪽이 움푹 들어가고(沒), 북쪽이 솟아오르면(踊) 남쪽이 움푹 들어가며(沒), 중앙이 솟아오르면(踊) 사변(四邊)이 움푹 들어가고(沒), 사변이 솟아오르면(踊) 중앙이 움푹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