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71권 6
大智度論 釋譬喩品 第五十一 卷七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1. 비유품(譬喩品)을 풀이함 4
須菩提言:“世尊!若一切法如究竟相者,諸菩薩摩訶薩皆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世尊!色究竟相中無有分別,受、想、行、識究竟相中無有分別,乃至一切種智究竟相中無有分別 所謂是色,是受、想、行、識,乃至是一切種智。”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이 구경(究竟)한 상(相)과 같다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물질(色)의 구경(究竟)한 상(相)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구경(究竟)한 상(相) 가운데에도 분별이 없으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의 구경상(究竟相) 가운데에도 분별이 없기 때문이니, 이른바 이것이 바로 물질(色)이요, 이것이 바로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이며, 나아가 이것이 바로 일체종지인 것입니다.”
佛告須菩提:“如是!如是!色究竟相中無有分別,受、想、行、識乃至一切種智究竟相中無有分別 所謂是色乃至是一切種智。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難事。如是觀諸法寂滅相而心不沒不卻。何以故?是菩薩摩訶薩作是念:‘是諸深法,我應如是知,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寂滅微妙法,當爲衆生說。’是爲菩薩摩訶薩爲世閒究竟道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물질(色)의 구경상(究竟相)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구경상(究竟相) 가운데에도 분별이 없으며 내지는 일체종지의 구경상(究竟相)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나니, 이른바 그것이 바로 물질(色)이요 나아가 그것이 바로 일체종지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에게는 하기 어려운 난사(難事)이니라.
이와 같이 제법이 고요히 갈앉은 적멸상(寂滅相)을 관찰하면서 마음이 침몰하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이 모든 깊은 심법(深法)을 나는 이와 같이 알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며, 이와 같이 고요히 적멸한 미묘법(微妙法)을 중생들에게 설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구경도(究竟道)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이니라.
云何菩薩摩訶薩爲世閒洲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須菩提!若江河大海,四邊水斷,是名爲洲。
須菩提!色亦如是前後際斷,受、想、行、識前後際斷,乃至一切種智前後際斷。以是前後際斷故,一切法亦斷。
須菩提!是一切法前後際斷故,卽是寂滅、卽是妙寶 所謂空、無所得、愛盡無餘、離欲、涅槃。
須菩提!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以寂滅微妙法爲衆生說。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爲世閒洲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섬인 주(洲)가 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인가? 수보리야, 강이나 하천이나 큰 바다에서 사면으로 물이 끊어져 있는 것을 바로 섬의 주(洲)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물질(色) 또한 그와 같이 앞과 뒤가 끊어진 제단(際斷)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앞과 뒤가 끊어진 제단(際斷)이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앞뒤가 끊어진 제단(際斷)이나니, 이 앞과 뒤의 끝이 끊어진 전후제단(前後際斷)이기 때문에 일체법 또한 끊어진 것이느니라.
수보리야, 이 일체법의 앞뒤가 끊어진 전후제단(前後際斷)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고요히 갈앉은 적멸(寂滅)이요, 그것이 곧 묘한 보배의 묘보(妙寶)이니, 이른바 공하여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고, 갈애가 다하여 남음이 없으며, 욕망을 여읜 열반(涅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고요히 사라진 미묘법으로써 중생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섬인 주(洲)가 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이니라.
云何菩薩摩訶薩爲世閒將導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須菩提!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爲衆生說色不生不滅、不垢不淨,說受想行識不生不滅、不垢不淨;說十二處、十八界、四念處乃至八聖道分、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五神通不生不滅、不垢不淨;說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不生不滅、不垢不淨;說佛十力乃至一切種智不生不滅、不垢不淨。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爲世閒將導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길잡이인 장도(將導)가 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인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중생을 위하여 ‘물질(色)은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불구불정(不垢不淨)이다’고 설하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불정(不垢不淨)이다’고 설하며,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의 육근과
색경(色境), 성경(聲境), 향경(香境), 미경(味境), 촉경(觸境), 법경(法境)인 육경(六境)의 12처(處)와
육근과 육경과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육식(六識)의 18계(界)와
사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사선과 사무량심과 사무색정과 오신통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불정(不垢不淨)이다’라고 설하고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까지와 벽지불의 도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불정(不垢不淨)이다’고 설하며, ‘부처님의 십력 내지는 일체종지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불정(不垢不淨)이다’고 설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길잡이인 장도(將導)가 되게 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이니라.”
▶論. 釋曰:須菩提發希有心白佛言:“諸菩薩未斷煩惱、大悲未具、未得阿鞞跋致知諸法本性空而能發無上道心,是事甚難。”佛可其言:“如是!”更讚菩薩希有因緣,所謂菩薩安隱世閒故發心。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는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모든 보살은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하였고, 아직 대비(大悲)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아직 아비발치(阿鞞跋致, 불퇴전)를 얻지 못하였으나, 제법의 본성이 성공(性空)이라는 것을 알아 위없는 무상도의 마음을 내고 있으니, 이야말로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그러하느니라”고 하셨으며, 다시 보살의 희유한 인연을 찬탄하셨으니, 이른바 “보살은 세간의 안온을 위하여 발심(發心)한다”는 것이다.
“安隱”者,能破一切煩惱,究竟不變失;譬如良藥能破病,不問甘苦,以能究竟除病、安隱故 佛能使衆生常安隱
‘안온(安隱)’ 이라 함은, 일체번뇌를 깨뜨리고 구경에 이르기까지 변하거나 잃지 않는다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좋은 약은 병을 낫게 하므로 달고 쓴 것을 묻지 않으나 구경에는 병을 낫게하여 안온하게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는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안온하게 하시는 것이다.
不期一世、二世。世閒樂者,有法雖安隱而不樂,有法今世苦、後世樂。如服苦藥,腹中安隱、口中不美。是故說:“佛能與今世、後世樂。”六道無常相故非安隱,是故說出六道名安隱。
‘한 세상이나 두 세상만의 세간의 즐거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함이란, 어떤 법은 비록 안온할지라도 즐겁지 않으며, 어떤 법은 이 세상에서는 괴롭지만 후세에서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쓴 약을 먹으면 뱃속은 안온하지만 입 안은 좋지 않은 것과 같나니,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금세와 후세에서의 즐거움을 주신다”고 하신 것이며,
육도(六道)는 무상상(無常相)이기 때문에 안온하지 않기 때문에 “육도를 벗어나는 것이 안온하다고 한다”고 설하신 것이다.
世閒樂著因緣故,久後必生憂惱,不名爲樂;涅槃樂,始終無變,故說離憂苦爲樂。“救世閒”者,如人爲怨賊所逐,若親戚、若官力能救;衆生亦如是,惡罪諸煩惱因緣及魔民所逐,惟諸佛能說法救護。
세간의 즐거움인 세간락(世閒樂)이란 인연(因緣)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뒤에는 반드시 근심과 고뇌가 생기는 것이므로 즐거움(樂)이라 하지 않으며,
열반의 즐거움인 열반락(涅槃樂)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근심과 고뇌를 여의는 것을 즐거움(樂)이라 한다’고 설하는 것이며,
‘세간을 구제한다는 구세간(救世閒)’ 은, 사람이 원수나 도둑에게 쫓길 때, 친척 또는 관청의 힘으로 구제받는 것과 같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악죄나 모든 번뇌의 인연이나 악마의 백성에게 쫓길 때에는 오직 모든 부처님만이 법을 설하여 구호하여 주시는 것이다.
“世閒歸”者,如人遇暴風疾雨,必歸房舍;世閒種種邪見煩惱等、身心內外苦惱老病死諸憂苦等,若歸佛,佛以種種因緣拔其憂悲苦惱。
‘세간으로부터 귀의한다는 세간귀(世閒歸)’ 란, 마치 사람이 폭풍이나 소나기를 만나면 반드시 집 안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세간의 갖가지 삿된 사견과 번뇌와 심신(心身) 안팎의 고뇌와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등의 모든 근심과 고뇌가 있을 때, 만약 부처님께 귀의한다면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으로 그의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을 구제해 주시는 것이다.
“依處”者,一切有爲法從和合因緣生故,無有自力、不可依止。衆生爲苦所逼來依止佛,佛爲說無依止法。
無依止法者是眞實,所謂無餘涅槃,色等五衆滅,更不相續;不相續卽是不生不滅,不生不滅卽是畢竟空,無依止處。
‘의지하는 곳의 의처(依處)’란,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화합하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력(自力)이 없고 의지할 수가 없지만, 중생은 괴로움에 핍박당할 때에는 부처님께로 와서 의지하게 되나니,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의지함이 없는 무의지법(無依止法)을 설하시며,
‘의지함이 없는 무의지법(無依止法)’이라 함은 바로 진실이니, 이른바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물질(色) 등의 오중(五衆)은 소멸하면서 다시 상속(相續)하지 않나니, 상속하지 않으니, 곧 그것이 불생불멸인 것이며, 불생불멸이라면 그것은 곧 필경에는 공한 필경공(畢竟空)이며 의지할 곳이 없는 무의지처(無依止處)인 것이다.
問曰:若無依止處,何以說依止?
묻나니, 만약 의지할 곳이 없는 무의지처(無依止處)라면 무엇 때문에 의지(依止)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依止有二種:一者、以愛、見等諸煩惱依止有爲法,二者、淸淨智慧說依止涅槃。煩惱見故說無依止。
답하나니, 의지(依止)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애견(愛見) 등의 모든 번뇌로써 유위법에 의지하는 것이요,
둘째는 청정한 지혜로써 열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하나니, 번뇌의 소견 때문에 무의지(無依止)라 말하는 것이다.
“究竟道”者,所謂諸法實相、畢竟空。色等法,前際中無,後際中亦無;現在中,凡夫人憶想分別,業果報諸情力故有顚倒見;聖人以智慧眼觀之皆虛誑不實。如前、後,中亦爾;若無先後,云何有中?能如是爲衆生說法,則安處衆生於究竟第一道中。
‘궁극도(究竟道)’라 함이란, 이른바 제법의 실상(實相)이요 필경공이다.
물질(色) 등의 법은 전제(前際)에도 없고 후제(後際)에도 없으나, 현재(現在)에서 범부는 모두를 기억하여 분별하는 억상분별(憶想分別)로 초래된 업과보(業果報)의 모든 욕심의 정력(情力) 때문에 뒤바뀌어 전도된 소견이거니와, 성인은 지혜안(智慧眼)으로 모두가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전제와 후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찰하나니, 만약 전후(前後)가 없다면 어떻게 중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한다면 중생은 구경에는 제일도(第一道)에서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世閒洲”者,如洲四邊無地,色等法亦如是,前、後皆不可得;中閒,如究竟道中破。入前、後空故,中閒亦空。
“水”者,三漏、四流諸煩惱及業果報中一切法。畢竟空、無所取,所謂涅槃,是爲洲。衆生沒在四流水中,佛以八正道船引著涅槃洲上。如是種種因緣接度衆生名爲“將導”。
‘세간의 섬인 세간주(世間洲)’라 함은, 섬의 사면에는 대륙이 없는 것과 같이, 물질(色) 등의 법 또한 그와 같아서, 전후 모두 얻을 수 없으며, 중간 역시도 마치 구경도(究竟道)에서 파한 것과 같이 전후가 공(空)함에 들기 때문에 중간 또한 공한 것이다.
‘물, 수(水)’란,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의 세 가지 번뇌인 삼루(三漏)와
욕폭류(欲暴流)ㆍ유폭류(有暴流)ㆍ견폭류(見暴流)ㆍ무명폭류(無明暴流)의 네 가지 번뇌인 사류(四流)를 말하는 것이니,
모든 번뇌와 업의 과보에서는 일체법이 필경에 공한 것이므로 취할 것이 없는, 이른바 열반인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섬인 주( 洲)인 것이니,
중생이 사류의 물에 빠져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팔정도(八正道)의 배로써 열반의 섬에 데려다 놓으시는 것이며,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으로 중생을 제도하므로 길잡이인 장도(將導)라 하는 것이다.
▶經. “云何菩薩摩訶薩爲世閒趣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須菩提!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爲衆生說色趣空,說受想行識趣空,乃至說一切種智趣空。爲衆生說色非趣非不趣。何以故?是色空相,非趣非不趣。說受、想、行、識非趣非不趣。何以故?是受、想、行、識空相,非趣非不趣。乃至一切種智非趣非不趣。何以故?是一切種智空相,非趣非不趣。
▷경.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세간이 향하는 세간취(世間趣)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는 것인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중생을 위하여 ‘물질(色)은 공을 향한다’고 설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은 공을 향한다’고 설하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공을 향한다’고 설하느니라.
중생들을 위하여 ‘물질(色)은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닌 비취비불취(非趣非不趣)이다’고 설하나니, 왜냐하면 이 물질(色)의 공상(空相)은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상행식(受想行識)은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 설하나니, 왜냐하면 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공상(空相)은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일체종지는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 설하나니, 왜냐하면 이 일체종지의 공상(空相)은 향하는 것도 아니고 향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爲世閒趣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何以故?一切法趣空,是趣不過。何以故?空中,趣、非趣不可得故。須菩提!一切法趣無相,是趣不過。何以故?無相中,趣、非趣不可得故。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세간이 향하여 가는 세간취(世間趣)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心)을 내느니라.
일체법은 공을 향하여 가는 취공(趣空)이니, 이렇게 향하여 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향하는 것도 향하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일체법은 무상(無相)을 향하는 것이나, 이렇게 향하여 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 왜냐하면 무상인 가운데에서는 향하는 것도 향하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須菩提!一切法趣無作,是趣不過。何以故?無作中,趣、非趣不可得故。
須菩提!一切法趣無起,是趣不過。何以故?無起中,趣、非趣不可得故。
須菩提!一切法趣無所有、不生不滅、不垢不淨,是趣不過。何以故?無所有、不生不滅、不垢不淨中,趣、非趣不可得故。
수보리야, 일체법은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을 향하여 가나니, 이렇게 향하여 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무작 가운데에서는 향하는 것도 향하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일체법은 일어남이 없는 무기(無起)를 향하는 것이니, 이렇게 향하여 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일어남이 없는 무기 가운데서는 향하는 것도 향하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일체법은 있음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불생(不生)이며, 불멸(不滅)이며, 더럽지도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을 향해 가나니, 이렇게 향해 감에 불과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무소유(無所有)이고 불생(不生)이며, 불멸(不滅)이며, 더럽지도 않은 불구(不垢)이고, 부정(不淨)인 가운데에서는 향하는 것도 향하지 않는 것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