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십주품 (十住品) 11. 법왕자 주, 관정주
(9) 第九 法王子住
[[法王子住는 법을 설하는 데 자재롭지 못한 장애를 대치해서 자재롭게 하는 것이다. 즉 선재동자가 勝熱바라문을 친견함으로써 칼산[刀山]에 올라 불구덩이에 들어가 苦行을 행할 때 天과 용과 신과 人과 非人의 오는 자에 따라 이익을 얻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① 法王子住의 法
第九菩薩王子住는 能見衆生受生別하며 煩惱現習靡不知하고 所行方便皆善了로다
諸法各異威儀別과 世界不同前後際와 如其世俗第一義를 悉善了知無有餘로다
法王善巧安立處와 隨其處所所有法과 法王宮殿若趣入과 及以於中所觀見과
第九菩薩王子住는 제 9 왕자주의 보살은 能見衆生受生別(능견중생수생별)하며, 능히 중생들 태어남의 차별함을 보고
煩惱現習靡不知(번뇌현습미불지)하고, 번뇌와 현재의 습기를 모두 알기에
所行方便皆善了(소행방편개선요)로다. 행할 바 방편을 잘며,
諸法이 各異威儀別(제법각이위의별)과, 모든 법의 다름과 위의의 차별함,
世界不同前後際(세계부동전후제)와, 세계의 부동함, 前後際= 전생과 후생,
如其世俗第一義(여기세속제일의)를, 그와 같은 세속에서 제일가는 의제를
悉善了知無有餘(실선료지무유여)로다. 모두 남김없이 잘 아느니라.
法王善巧安立處(법왕선교안립처)와, 법왕의 선교한 안립처
隨其處所所有法(수기처소소유법)과, 그 처소에 따라 있는 법,
法王宮殿若趣入(법왕궁전약취입)과, 법왕의 궁전에 趣入=들어감,
及以於中所觀見(급이어중소관견)과, 그리고 그 안에서 관찰함과
② 昇進勝法
法王所有灌頂法과 神力加持無怯畏와 宴寢宮室及歎譽여 以此敎詔法王子로다
如是爲說靡不盡하야 而令其心無所着이니 於此了知修正念하면 一切諸佛現其前이로다
法王所有灌頂法(법왕소유관정법)과, 법왕이 지니신 모든 관정법과,
[法王子는 나라를 다스릴 수있는 지위에 있으니까 그것이 灌頂法이 되는 것이지요]
神力加持無怯畏(신력가지무겁외)와, 신통력, 가지, 무소외
宴寢宮室及歎譽(연침궁실급탄예)여, 쉬시는 궁실과 歎譽= 찬탄받는 명예,
以此敎詔法王子(이차교조법왕자)로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법왕자일 것이라
如是爲說靡不盡(여시위설미불진)하야, 그것을 남김없이 모두 설하여
於此에 了知修正念(어차요지수정념)하면, 그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하고
而令其心無所着(이령기심무소착)이니, 그것을 요지하여 정념=바른생각을 닦게 하면
一切諸佛이 現其前(일체제불현기전)이로다. 모든 부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시리라.
(10) 第十 灌頂住
[[灌頂住는 자비와 지혜의 자재롭고 청정하지 못한 장애를 대치해서 청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즉 선재동자가 사자당왕녀인 자행동녀를 친견하는 것이다. 王이란 지혜가 자재로운 것이며, 女란 자비를 따라 事를 함께 하는 데 오염의 습기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지혜가 원만해지면 자비를 좇아 세간에 처하기 때문에 事를 함께 하면서도 습기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① 灌頂住의 法
第十灌頂眞佛子는 成滿最上第一法하야 十方無數諸世界를 悉能震動光普照로다
住持往詣亦無餘하고 淸淨莊嚴皆具足하며 開示衆生無有數하고 觀察知根悉能盡이로다
發心調伏亦無邊하야 咸令趣向大菩提하며 一切法界咸觀察하야 十方國土皆往詣로다
其中身及身所作과 神通變現難可測과 三世佛土諸境界를 乃至王子無能了로다
第十灌頂眞佛子는, 제 10 관정주의 진실한 불자=眞佛子=法王子는
成滿最上第一法(성만최상제일법)하야, 최상의 제일가는 법을 만족히 성취하여 [ 다 만족하게 이루어서]
十方無數諸世界(시방무수제세계)를 시방의 무수한 세계를
悉能震動光普照(실능진동광보조)로다. 능히 진동시키며 광명을 두루 비추느니라.
住持往詣亦無餘(주지왕예역무여)하고, 머물러 지키고 나아감도 남김없이 하고
淸淨莊嚴皆具足(청정장엄개구족)하며, 청정장엄이 다 구족하여
開示衆生無有數(개시중생무유수)하고, 무수한 중생들을 열어 보이고
觀察知根하여 悉能盡(관찰지근실능진)이로다. 관찰하여 근기를 끝까지 알며
發心調伏亦無邊(발심조복역무변)하야, 발심과 조복도 끝 없이 하여
咸令趣向大菩提(함령취향대보리)하며, 모두가 대보리를 향해 나아가게 하며,
一切法界에 咸觀察(일체법계함관찰)하야, 일체의 법계를 두루 관찰하며
十方國土에 皆往詣(시방국토개왕예)로다. 시방의 국토에 다 나아감이로다.
其中身及身所作(기중신급신소작)과, 그 안에서 몸과 몸으로 짓는
神通變現을 難可測(신통변현난가측)과, 신통 변화는 측량키 어려워서
三世佛土諸境界(삼세불토제경계)를, 삼세의 불국토에서 행한 모든 경계는
乃至王子가 無能了(내지왕자무능요)로다. 능히 다 요달하지 아니 함이 없다
② 昇進勝法
一切見者三世智와 於諸佛法明了智와 法界無礙無邊智와 充滿一切世界智와
照耀世界住持智와 了知衆生諸法智와 及知正覺無邊智를 如來爲說咸令盡이로다
一切見者三世智(일체견자삼세지)와, 일체를 보는 이의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지혜와,
於諸佛法明了智(어제불법명요지)와, 모든 불법을 분명히 아는 지혜와,
法界無碍無邊智(법계무애무변지)와, 법계의 걸림없고 가이없는 지혜와,
充滿一切世界智(충만일체세계지)와, 일체세계에 충만한 지혜와,
照耀世界住持智(조요세계주지지)와, 세계를 비추며 머물러 지키는 지혜와,
了知衆生諸法智(요지중생제법지)와, 중생의 모든 법을 아는 지혜와,
及知正覺無邊智(급지정각무변지)를, 정각의 가이없음을 아는 지혜를 [바르게 깨달아서 가없는 것을 아는 지혜를]
如來가 爲說咸令盡(여래위설함령진)이로다. 여래가 모두를 다하도록 설하시리니,
[여래가 위하여 끝까지ㆍ철저히 다 설하여 주는 도다.]
(11) 總歎十住
如是十住諸菩薩이 皆從如來法化生이라 隨其所有功德行하야 一切天人莫能測이로다
如是十住諸菩薩(여시십주제보살)이, 이러한 십주의 보살들은
皆從如來法化生(개종여래법화생)이라. 모두가 여래의 법에서 화생하기에
[여래의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우리 스님들도 전부 부처님의 교화로부터 태어났고, 사찰은 말할 것도 없고, 목탁, 죽비, 염주 등의 佛具도 전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태어난 겁니다.]
隨其所有功德行(수기소유공덕행)하야, 그들이 지닌 공덕행을
一切天人이 莫能測(일체천인막능측)이로다. 일체의 천인들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12) 別讚發心住 특별히발심 주를 찬탄, 별찬하다.
過去未來現在世에 發心求佛無有邊이라 十方國土皆充滿하니 莫不當成一切智로다
一切國土無邊際하고 世界衆生法亦然하며 惑業心樂各差別하니 依彼而發菩提意로다
始求佛道一念心을 世間衆生及二乘이 斯等尙亦不能知어든 何況所餘功德行가
十方所有諸世界를 能以一毛悉稱擧하면 彼人能知此佛子의 趣向如來智慧行이로다
十方所有諸大海를 悉以毛端滴令盡하면 彼人能知此佛子의 一念所修功德行이로다
一切世界抹爲塵하고 悉能分別知其數하면 如是之人乃能見 此諸菩薩所行道로다
過去未來現在世에 發心求佛無有邊(발심구불무유변)이라.
과거 미래 현재의 세상에서 발심하여 부처를 구하기를 끝없이 하여
十方國土皆充滿(시방국토개충만)하니, 시방의 국토에 온통 충만하니
莫不當成一切智(막불당성일체지)로다. 마땅히 일체지혜를 이루지 못함이 없으리라.
[당연히 발심을 통해서 부처님이 증득하신 일체지혜를 이루게 된다는 겁니다. “한 걸음이 천리가고, 시작이 반이다.” 그렇지요. 첫 삽질이 태산을 이루듯이 초발심이 부처의 지혜를 일체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一切國土無邊際(일체국토무변제)하고 일체의 국토가 끝이 없고
世界衆生法亦然(세계중생법역연)하며, 세계의 중생법도 그러하며
惑業心樂各差別(혹업심락각차별)하니, 미혹과 업과 마음으로 즐김이 각각 달라서
依彼而發菩提意(의피이발보리의)로다. 그로 인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니라.
[그러한 것을 의지해서 菩提意=보리심을 발하는 도다.]
始求佛道一念心(시구불도일념심)을, 처음 불도를 구하고자 한 순간의 마음을
[처음 佛道를 구하려고 하는 그 첫 한 마음을]
世間衆生及二乘(세간중생급이승)이, 세간의 중생과 2승[성문,연각]들은
斯等이 尙亦不能知(사등상역불능지)어든, 정확히 알 수 없으려니와 [능히 알지를 못하거든]
何況所餘功德行(하황소여공덕행)가? 하물며 어찌 그 밖의 공덕이겠는가
[어찌 하물며 그 나머지 모든 공덕을 닦은 행들이겠는가? 초발심의 공덕은 아주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十方所有諸世界(시방소유제세계)를,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를
能以一毛悉稱擧(능이일모실칭거)하면, 모두 한 털로 사뿐히 들 수 있는
彼人能知此佛子(피인능지차불자)의, 그런 사람이라야 이 불자의 [此佛子= 발심한 사람]
趣向如來智慧行(취향여래지혜행)이로다. 여래의 지혜에 나아가는 행을 알 수 있을 것이요
[그 지혜 행에 따라갈 수가 있다. ]
十方所有諸大海를 悉以毛端滴令盡(실이모단적영진)하면, 시방에 있는 모든 바다를 털 끝으로 찍어내 다 마르게 하는
彼人能知此佛子의, 그런 사람이라야 이 불자의
一念所修功德行(일념소수공덕행)이로다. 일념으로 닦은 공덕행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능력이 있어야 이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 행을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一切世界抹爲塵(일체세계말위진)하고, 모든 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들고
悉能分別知其數(실능분별지기수)하면, 그 수효를 헤아려 알 수 있는
如是之人乃能見(여시지인내능견), 이러한 사람이라야 마침내
此諸菩薩所行道(차제보살소행도)로다. 이 보살이 행한 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니라.
(13) 發心과 他修行
去來現在十方佛과 一切獨覺及聲聞이 悉以種種妙辯才로 開示初發菩提心이라도
發心功德不可量이라 充滿一切衆生界하니 衆知共說無能盡이어든 何況所餘諸妙行가
去來現在十方佛(거래현재시방불)과, 시방 삼세의 부처님들과
一切獨覺及聲聞(일체독각급성문)이, 일체의 독각과 성문들이
悉以種種妙辯才(실이종종묘변재)로, 모두 갖가지 미묘한 변재로
開示初發菩提心(개시초발보리심)이라도, 초발보리심을 열어 보이셨거니와
發心功德不可量(발심공덕불가량)이라.초발심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양이라
充滿一切衆生界(충만일체중생계)하니, 모든 중생계에 충만하여
衆智共說無能盡(중지공설무능진)이어든, 모든 지자들이 함께 말해도 다할 수 없을 터인데
[온갖 대중들의 지혜로도 다 같이 말하여도 능히 다할 수 없거든]
何況所餘諸妙行(하황소여제묘행)가? 하물며 어찌 그 밖의 모든 묘행이겠는가.
과거ㆍ미래ㆍ현재 시방의 부처님과 일체 독각과 성문이다 가지가지 미묘한 辯才로써
[[이상 열 가지 對治는 모두 일념의 마음과 초발심時와 一行의 속과 一時 안에서 먼저와 나중이 없는 것이다.
이 열 가지 장애의 법을 대치해 一法, 一心, 一智慧를 이루면서도 一行 속에서 백 가지 다함 없는 법문이 모두 자기 마음의 부동지불로 體를 삼으니, 法事 속에 이 열 가지 다함 없는 법문을 갖추어 同과 別, 一과 多가 자재롭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열 가지 대치가 일시에 관습을 자재롭게 하기 때문에 3승의 권교에서 이해력이 낮은 중생을 위해 세간 삼세의 성품을 간직함으로써 불과가 3아승기 밖에 있다고 설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자기 마음의 根本無明分別의 종자[種]로 문득 부동지불을 이루고, 법계의 체용을 '믿음으로 나아가 깨달아 들어가는[信進悟入]' 문을 삼기 때문에, 믿음으로 지위에 들어가 닦아 나가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10주 ·10행 ·10회향 ·10지 ·11지를 거치기까지 총체적으로 근본부동지불을 여의지 않고, 一時 ·一念· 一法 ·一行을 여의지 않고서도 가없고 한량없고 不可說不可說인 법계와 허공계의 미진수 법문이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법계와 근본부동지로부터 믿음으로 나아가 깨달아 들어가기 때문에 법이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가령 용녀가 찰나에 성불한 것과 선재동자가 일생에 불과를 취한 것은 법계의 無性無生:성품 없음과 낳음이 없음이 일생이 되는 것이지 늦고 빠름이 生이 아니다. 즉 법계의 體에는 情見으로 헤아리는 늦고 빠름이나 길고 짧음이나 과거, 현재, 미래가 없기 때문이니, 바라건대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이같이 알아야 한다. 바로 지금의 성불이 과거와 미래의 일체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일시에 성불하는 것이니, 법계의 智體에는 별개의 時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면, 문득 큰 바다와 같아져서 새로운 물과 옛 물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情을 버려야 비로소 볼 것이며, 識心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 중략 ~
그러니 분명히 알라. 삼승이 3기(祈)에 세간을 벗어나 성불한다는 것은 방편의 가르침일 뿐이며, 이 가르침은 실다운 법에 근거하므로 원력(願力)으로 성불하는 등의 일은 설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원력으로 행을 성취하더라도 또한 실다움을 잡아 성불하기 때문에 원력으로 잠시 성취하는 것은 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라. 10주로부터 처음 지위에 들어가는 보살은 그대로 5위를 전부 닦는 것이니, 10주의 행상(行相)에 공통으로 10행·10회향·10지 등의 법문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주 중 7·8 양주(兩住)에서는 자비와 지혜를 닦고, 9주 안은 법사위(法師位)이며, 10주 안에서는 자비와 지혜가 원만한 것이다. 이처럼 오위의 행상(行相)이 서로 닮았기 때문에 선재동자의 10주 중 선지식은 하나하나의 지혜 경계가 모두 무극(無極)이며서도 다만 법신의 대지혜와 대자비 위에 다함없는 법이 갖추어졌음을 근거로 해서 반드시 오위의 행문을 세우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하나의 마음[一心]·하나의 지혜[一智]·하나의 때[一時]의 지혜가 평등하게 변만한 소행(所行)의 도(道)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아가 수행을 일으키는 자는 대지혜의 경계에서 삼세나 멀고 가까움이나 늦고 빠름 등의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하니, 이는 지혜 경계를 어기기 때문이며, 근본대지혜의 경계를 잃어서 정식(情識)을 좇기 때문이며, 상(相)을 따라 굴려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4 미혹을 끊는 단계를 회통해 마친 것인데, 이같은 5위의 미혹을 끊는 단계는 허공에 때[時]가 엇는 것과 같으며, 둥근 거울이 단박 비치는 것과 같으며, 마니 보배가 능히 온갖 색깔과 함께 하는 것과 같으며, 한 방울의 물이 큰바다 속에 들어가 동등해지면서 둘이 없는 것과 같으니, 대지혜의 둥근 거울로 널리 모든 작위를 인(印)쳐서 무작용(無作用)의 대용(大用)을 모두 성취하기 때문이며, 삼세가 없는 일시(一時)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