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1권 3

Skunky 2024. 9. 29. 08:00

大智度論 釋大事起品 第五十 卷七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0. 대사기품(大事起品) 풀이함 3

 

須菩提問:“云何般若爲色等諸法不取、不著故名含受?”

佛於四答中以反問答:“於汝意云何?以智慧眼見是色等法可取、可著不?”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떻게 반야는 물질(色) 등을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함수(含受, 포함)한다고 하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개의 답(答) 가운데서 반문(反問)하시면서 대답하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혜안(智慧眼)으로써  물질(色) 등의 법을 취할 수도 있고 집착할  있다고 보는 것인가?”라고 하셨으며, 

 

須菩提意念:“若智慧眼見空、無相、無作、無量、不可思議相,云何當答 色等法定相可取、可著?”佛可其所說:“汝未得一切智,不見色等諸法;我一切智人亦不見色等諸法。”是故歎言:“善哉!”

수보리 존자는, “만약 지혜안으로 공상(空相), 무상상(無相相), 무작상(無作相), 무량상(無量相)하고 불가사의상(不可思議相) 본다면, 어떻게 정해진 물질(色) 등의 법에 정해진 정상(定相)이 있어서 취할 수 있는 가취(可取)이며, 집착할 수 있는 가착(可著)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한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그가 하는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그대는 아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물질(色) 등의법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일체지를 지닌 이이나 역시 물질(色) 등의법을 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是時諸天子讚歎般若波羅蜜及行般若波羅蜜者,作是言:“若三千大千世界中衆生皆作信行、法行乃至辟支佛,若智、若斷。智者,十智。斷者,二種斷:有殘斷、無殘斷;學人有殘斷,無學人無殘斷。

不如是菩薩一日行深般若波羅蜜。何以故?是諸賢聖智、斷,皆是菩薩無生法忍。”

이 때에 모든 천자들이 반야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를 찬탄하면서 말하기를 “만약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모두 신행(信行)ㆍ법행(法行) 내지는 벽지불이 되어 지혜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는 지덕(智德)과 번뇌를 단절하는 단덕(斷德)을 짓는다면……”이라고 하였으니,

 지(智)는지(十智)이며,

끊음의 단(斷)에는 두 가지의 이종단(二種斷) 있나니, 남은 것이 있는 유잔단(有殘斷)과 남음이 없는 무잔단(無殘斷)이 그것이며,

배울 것이 있는 유학인(有學人)은 남은 것이 있는 유잔단이요, 

배울 것이 없는 무학인([無學人)은 남은 것이 없는 무잔단이다.

 보살이 하루 동안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을 행한 것보다 못하다고 한 것은,  모든 성현의 지덕(智德)과 단덕(斷德)은 모두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기 때문이다.


問曰:若諸賢聖智、斷卽是無生忍者,何以言不如?

묻나니, 만약 모든 성현의 지덕과 단덕이  무생법인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는 것입니까?


答曰:信行等人無大悲、捨衆生故不如;無方便力,不能於涅槃自反。譬如衆水會恒河俱入大海,欲入海時水勢湊急,衆生在中無能自反,惟有大力者乃能自出。

復次,諸餘賢聖智、斷成就,菩薩始得無生忍而力能過之,是故勝。智、斷功德雖成就,不及菩薩初忍;譬如大臣功業雖大,不及太子。

답하나니, 신행인(信行人) 등은 대비(大悲)가 없고 중생들을 버리기 때문에 못하다는 것이며, 방편의 힘도 없고 열반에서 스스로 되돌아올 수가 없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모든 물들이 항하(恒河)강에 모여들어서  함께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바다와 합류할 때에는 그 물살이 심하게 요동치나니, 그 곳에 중생이 들어간다 다시 되돌아올 수가 없으니, 오직  힘을 지닌 이라야 그 물살에서 빠져 나올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그 밖의 모든 성현들이 지덕과 단덕을 성취하였을지라도 보살이 처음 무생법인을 얻었을 때에는 그 힘이 그들을 초과하기 때문에 수승하다고 하는 것이며,

비록 지단(智斷, 지덕과 단덕)의 공덕을 성취하였을지라도 보살이 처음 얻는 법인에 미치지 못함은 마치 대신의 공업(功業)이 클지라도 태자(太子)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煖、頂、忍法是小乘初門,菩薩法忍是大乘初門;聲聞、辟支佛雖終成,尚不及菩薩初入道門,何況成佛!

 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은 바로 소승의  문이요, 보살의 법인은 대승의  문이며,  

성문이나 벽지불이 마침내 이루었을지라도 오히려 보살이 처음 도에 들어가는 초입도문(初入道門)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이루는 것이랴!

 

사가행(四加行, 四善根位);

난법(煖法, 명득정明得定)= 심신(心身)이 정화(淨化)됨에 따라, 진여불성(眞如佛性)의 밝고 따뜻한 훈기(薰氣)가 다가 온다는 의미(意味)로 난법(煖法)이라 합니다.  

정법(頂法, 명증정明增定)= 질다심상(質多心相), 즉 분별(分別)하는 마음 상태(狀態)가 아니라, 질다심상(質多心相)을 직견(直見)하는 법상(法相)입니다. 밝음이 더욱 증가(增加)하는 단계(段階)로서, 욕계정천(欲界頂天) 즉 욕계(欲界)를 거의 벗어난 경지(境地)

인법(忍法, 인순정印順定)= 사성제(四聖諦)를 증득하여 아는 것(證知)이 가장 수승(殊勝)하므로 인(忍)이라고 합니다. 도종인(道種忍), 즉 도(道)의 종자(種子)가 잠재의식(潛在意識)에 확실(確實)하게 뿌리를 내려서 불퇴전(不退轉)의 인법(忍法)을 증득(證得)하는 경지(境地)

세제일법(世第一法, 무간정無間定)= 유루위(有漏位) 중에서 가장 수승(殊勝)한 법상(法相)이기 때문에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하며, 금강불성(金剛佛性)의 심일(心日)을 견증(見證)하여, 세간(世間)에서 가장 수승(殊勝)한 경지(境地)입니다. 무간정(無間定)은 번뇌(煩惱)가 낄 사이가 없다는 의미(意味)입니다.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유루위(有漏位)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자(聖者)가 아닙니다. - 불교와 아미타정토


問曰:聲聞、辟支佛法是小乘,菩薩是大乘,云何言“二乘智斷卽是菩薩無生忍?”

묻나니, 성문이나 벽지불의 법은 소승이요, 보살은 대승이거늘, 어떻게승(二乘)의 지단(知斷, 지덕과 단덕)이  보살의 무생법인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所緣同,如、法性、實際亦同。利鈍智慧爲異,又有無量功德及大悲心守護故勝 餘種種說

답하나니, 반연할 소연(所緣)이 동일하고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 또한 동일하지만, 예리하고 둔한 지혜만이 다른 것이며,  무량한 공덕과 대비심으로 수호하기 때문에  밖의 갖가지 해설보다 뛰어난 것이다.


是讚般若波羅蜜 行般若波羅蜜人有上、中、下:下者,聞般若波羅蜜直信聽受,不問中義;中者,旣聞已,問義而不能行;上者,聞、解、能行。下者,雖得人身,聞般若疑悔難悟,根鈍、福薄故;中者,得人身,聞般若,一心信樂,能知義趣,從一日至四、五日,心能堅固;過是已往不能信樂,或欲聞、或不欲聞,以其宿世雖解義而不能行,根鈍、福薄故;上者,得人身,聞般若,心卽深解,信樂不捨,常隨法師。

 반야바라밀을 찬탄하고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상(上)ㆍ중(中)ㆍ하(下)가 있으니, 

하(下)의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곧바로 믿으면서 받아들이되  이치를 묻지 않는 이요, 

중(中)의 사람은 들은 뒤에  이치를 물으면서도 행하지는 못하는 이며, 

상(上)의 사람은 듣고 이해하면서 능히 행하는 이이다.

하(下)의 사람은 비록 사람의 몸이 되어 반야를 듣기는 할지라도 의심하고 후회하면서 깨치기 어려운 이이니, 근기가 둔하고 복이 박하기 때문이며,

중(中)의 사람은 몸을 받아 반야를 듣고는 일심으로 믿고 좋아하면서  이치를  알아 하루에서 나흘이나 닷새까지는 마음이 견고하지만, 그 날들을 지난 이후에는 믿고 좋아하지 못하며, 혹은 듣고 싫어하기도 하고, 혹은 들으려 하지 않기도 하나니, 그것은 전생에 비록  이치를 이해하기는 했으나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근기가 둔하고 복이 박하기 때문이며,

상(上)의 사람은 몸을 받아 반야를 들으면 곧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여 믿고 좋아하면서 버리지 않으며, 항상 법사를 따르는 이이다.


上二種菩薩不能得上地故,當墮二乘,不爲般若所守護故。爲更明了是事故,佛於後品中爲作譬喩:“如大海水中船破,若得所依則能渡,不得所依則不能渡。”

상하(上下)의  보살은 높은 지위의 상지(上地)를 얻을  없기 때문에승에 떨어져야만 하니, 반야의 수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부처님께서는 다시 이러함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하여 후품(後品)에서 비유를 드셨으니, “마치  바다 가운데서 배가 침몰할 때, 만약 의지할 것을 얻으면 건너갈  있겠지만, 만약 의지할 것을 얻지 못하면 건너갈  없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이다.

 

大智度論 釋譬喩品 第五十一 卷七十一 

51. 비유품(譬喩品)을 풀이함 1

▶經. 佛告須菩提:“譬如大海中船破壞,其中人若不取木、不取器物、不取浮囊、不取死屍,須菩提!當知是人不到彼岸,沒海中死。須菩提!若船破時,其中人取木、取器物、浮囊、死屍者,當知是人終不沒死,安隱無㝵,得到彼岸。

囊 주머니 낭

▷경.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마치  바다 가운데서 배가 침몰될 때에,  배에 탔던 사람이 만약 나무토막이나 기물(器物)ㆍ공기주머니인 부낭(浮囊) 또는 죽은 시체라도 붙잡지 못하면, 수보리야,  사람은 저편 기슭에 이르지 못하고 바다 속에 빠져 죽게 된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배가 침몰될 때,  배에 탔던 사람이 나무를 붙잡았거나 기물이나 공기주머니 또는 죽은 시체라도 붙잡는다면  사람은 끝내 빠져 죽지 않고 안온하고 장애 없이 저편 기슭에 도달할  있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求佛道善男子、善女人亦復如是,若但有信樂,不依深般若波羅蜜,不書、不讀、不誦、不正憶念;不依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不書、不讀、不誦、不正憶念;乃至不依一切種智,不書、不讀、不誦、不正憶念。須菩提!當知是善男子中道衰耗,是人未到一切種智,於聲聞、辟支佛地取證。

수보리야,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도 그와 같아서 만약 믿고 좋아하기만 할 뿐,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에 의지하지 않고, 서사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고 바르게 기억하지도 않거나, 선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단바라밀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서사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고 바르게 기억하지도 않거나, 나아가 일체종지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서사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고 바르게 기억하지도 않으면, 수보리야,  선남자는 중간에서부터는 점점 줄어드는 쇠모(衰耗)하여 일체종지에 이르지도 못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을 증득하게  뿐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若有求佛道善男子、善女人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有信、有忍、有淨心、有深心、有欲、有解、有捨、有精進,是人依深般若波羅蜜,書、持、讀、誦、說、正憶念;是善男子;善女人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有諸信、忍、淨心、深心、欲、解、捨、精進,爲深般若波羅蜜所護乃至一切種智所護故,終不中道衰耗,過聲聞、辟支佛地,能淨佛世界、成就衆生,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만약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는 까닭에 믿음이 있고 인내하며, 맑은 정심(淨心) 있고 깊은 심심(深心) 있으며, 의욕이 있고 이해가 있고 버림이 있고 정진이 있다면,  사람은 깊은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서사하여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며 바르게 기억할 것이니라. 

 선남자ㆍ선여인에게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는 까닭에 모든 믿음의 신(信)ㆍ참음의 인(忍)ㆍ청정한 마음의 정심(淨心)ㆍ깊은 마음의 심심(深心)ㆍ하고자 하는 욕(欲)ㆍ이해하는 해(解)ㆍ버림의 사(捨)ㆍ정진(精進)이 있으니, 깊은 반야바라밀의 보호를 받으며, 나아가 일체종지에 보호되기 때문에 끝내 중간에 약해져서 쇠모(衰耗)하지 않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초과하여 부처님의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니라.


須菩提!譬如男子、女人持坏甁取水,當知是甁不夂爛壞。何以故?是甁未熟故,還歸於地。如是,須菩提!善男子、善女人雖有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有信、有忍、有淨心、有深心、有欲、有解、有捨、有精進,不爲般若波羅蜜、方便力所守護,不爲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所守護,不爲內空乃至無法有法空、四念處乃至八聖道分、佛十力乃至一切種智所守護。須菩提!當知是人中道衰耗,墮聲聞、辟支佛地。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남자나 여자가 굽지 않은 질그릇의 병에 물을 담으면  병은 오래지 않아 부스러질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병은 아직 구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흙으로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선남자ㆍ선여인이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믿음이 있고 참음이 있고 청정한 마음이 있고 깊은 마음이 있고 의욕이 있고 이해가 있고 버림이 있고 정진이 있다 할지라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에 수호되지 못하고 선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바라밀에 수호되지 못하며,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과념처 내지는성도분과 부처님의 내지는 일체종지에 수호되지 못한다면, 

수보리야,  사람은 중간 쇠모(衰耗)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질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譬如男子女人持熟甁取水,若河、若井、若池、若泉,當知是甁持水安隱。何以故?是甁成熟故。如是,須菩提!善男子、善女人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有諸信、忍、淨心、深心、欲、解、捨、精進,爲般若波羅蜜、方便力所護,爲禪定、精進、忍、戒、施乃至一切種智所護故。須菩提!當知是人不中道衰耗,過聲聞、辟支佛地,能淨世界、成就衆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남자나 여인이  구워진 질그릇의 병에 강이나 우물이나 못이나 샘에서 물을 담아간다면  병에는 물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아나니, 왜냐하면  병은  구워졌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서 모든 믿음과 참음과 청정한 마음과 깊은 마음과 의욕과 이해와 버림과 정진이 있으면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에 수호되고 선정ㆍ정진ㆍ인욕ㆍ계율ㆍ보시 내지는 일체종지에 수호되는 까닭에 수보리야,  사람은 중도에서 시들지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초과하며, 부처님의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譬如大海邊船未莊治,便持財物著上,須菩提!當知是船中道壞沒,船與財物各在一處;是估客無方便力故,亡其重寶。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바닷가에 배가 정박해 있을  보수하지 않은 채 재물을  싣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배는 가다가 중도에 파괴되어 침몰하면서 배와 재물 모두가 흩어져서 없어질 것이니, 이러함은 바로 장사꾼들이 방편의 힘이 없기 때문에 중한 보물들을 잃는 것이라고 아는 것이니라.


如是,須菩提!是求佛道善男子、善女人雖有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有信、忍、淨心、深心、欲、解、捨、精進,不爲般若波羅蜜、方便力所守護,乃至不爲一切種智所守護故,當知是人中道衰耗,失大珍寶。大珍寶者,所謂一切種智。衰耗者,墮聲聞、辟支佛地。須菩提!譬如人有智方便莊治海邊大船,然後推著水中,持財物著上而去,當知是船不中道沒壞,必得安隱到所至處。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마음에 믿음과 참음과 청정한 마음과 깊은 마음과 의욕과 버림과 정진이 있을라도,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에 수호되지 못하고 나아가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수호되지 못하는 까닭에 수보리야,  사람은 중도에서 쇠모(衰耗)하여 크고 값진 대진보(大珍寶)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크고 값진 대진보(大珍寶)란 이른바 일체종지요, 

시들어 쇠모(衰耗)한다는 것이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지혜와 방편이 있으므로 바닷가에서  배를  수리한 뒤에 물에다 띄워 놓고 재물을  배에 싣고 가는 것과 같으니, 수보리야,  배는 중도에서 파괴되지도 않고 반드시 안온하게 목적한 곳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如是,須菩提!善男子、善女人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有信、忍、淨心、深心、欲、解、捨、精進,爲般若波羅蜜、方便力所護,爲禪、精進、忍、持戒、施乃至一切種智所護故,當知是菩薩得到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中道墮聲聞、辟支佛地。

이와 같이 수보리야,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믿음의 신(信)ㆍ참음의 인(忍)ㆍ청정한 마음의 정심(淨心)ㆍ깊은 마음의 심심(深心)ㆍ하고자 하는 욕(欲)ㆍ이해하는 해(解)ㆍ버림의 사(捨)ㆍ정진(精進)이 있으면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에 수호되고, 선정ㆍ정진ㆍ인욕ㆍ지계ㆍ보시 내지는 일체종지에 수호되기 때문에 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될 것이요, 중도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