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9권 4
大智度論 釋兩不和合品 第四十七之餘 卷六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7. 양불화합품(兩不和合品)을 풀이함② 4
問曰:若菩薩見佛身,則信心淸淨,云何名魔事?
묻나니, 만약 보살이 부처님의 불신을 본다면, 믿는 신심(信心)이 청정하여지거늘 어떻게 악마의 마사(魔事)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一切煩惱、取相,皆是魔事。是小菩薩未應見佛身,魔作佛妙形,菩薩心著,爲是好身故行道。如未離欲人見天女形,深心染著,不能堪受天欲,迷悶而死。是故魔願得滿。菩薩雖得少淨心,而失實相智慧;如人手捉重寶,有人以少金誑之,捨大價寶而取賤物,是名耗減。魔作佛身,將諸比丘,示多菩薩行六波羅蜜,亦如上。此中佛說因緣:“色等一切法自性空。”
답하나니, 일체의 번뇌로 상(相)을 취하는 것은 모두가 마사(魔事)이다. 이 작은 보살은 아직 불신(佛身)을 뵐 수가 없거늘, 악마가 부처님의 묘한 형상으로 된 것을 보고, 보살은 마음으로 집착하면서 이 좋은 몸 때문에 도(道)를 행하는 것이니, 마치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 천녀(天女)의 형상을 보고 마음으로 깊이 염착(染着)하여서, 천자(天子)가 될 수 없는 것이 답답해서 죽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이, 악마는 원하는 바를 만족한 것이며,
보살은 비록 약간의 정심(淨心)을 얻었을지라도 실상(實相)의 지혜를 잃은 것이니, 마치 귀중한 보배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은 금으로 속이는 속임수에 속아서 그 값진 보배를 버리고 천한 물건을 취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를 곧 줄어서 없어지게하는 모감(耗減)이라 하는 것이다.
악마가 부처님의 불신이 되어서 여러 비구들을 거느리고 많은 보살들에게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역시도 이와 같나니,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일체법은 자성(自性)이 공하다”고 하신 것이다.
復次,衆會生疑:“般若波羅蜜是無上法,多有利益,云何有人憎嫉?”是故佛說譬喩:“如閻浮提金銀等,多怨多賊爲是故出,不爲瓦石等生。般若波羅蜜是佛法藏中妙寶,微妙、甚深,懈怠鈍根者所不解,是故呰毀。魔以般若波羅蜜多令衆生入涅槃故,魔作怨賊。”
또한 모인 대중들이 의심을 내면서 “반야바라밀은 바로 가장 높은 무상법(無上法)이라서 많은 이익이 있거늘,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미워하고 시샘을 하는 것일까?”라고 한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염부제의 금ㆍ은 등에는 많은 원수가 있고 많은 도둑이 있으므로 나타나는 출(出)이라 하지만, 기와나 돌 따위와 같이 생겨나는 생(生)이라 하지 않는다.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법장(法藏) 가운데에서 묘한 보배요, 미묘하고 심히 깊지만, 게으르고 근기가 둔한 이는 이해하지 못하므로 비방하는 것이며, 악마는 반야바라밀로써 많은 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기 때문에 원적(怨賊)이 된다.”고 하셨으며,
須菩提喜受佛教,述其所說毀呰破壞般若者:“世尊!是狂癡之人爲魔所使,不得自在,以少智故,不能通達佛意。是人無有大心,不知淸淨法味,但知三相:貪味、婬欲、瞋恚,如畜生法,與般若波羅蜜生留難。”
수보리 존자는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가 말할 바를 진술하기를, “반야를 헐뜯고 파괴하는 이는 세존이시여,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악마에게 부림을 당하여 자유롭지도 못하고 지혜가 적기 때문에 부처님의 뜻을 통달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큰 대심(大心)도 없고 청정한 법미(法味)도 모르면서, 다만 세 가지 삼상(三相)인 즉 맛을 탐내는 탐미(貪味), 음욕(婬欲), 진에(瞋恚)만을 알 뿐이니, 마치 축생(畜生)의 법과 같으므로 반야바라밀을 주면 장애가 일어나는 생유난(生留難)인 것입니다”고 하였으며,
佛可須菩提所說,語須菩提:“若菩薩摩訶薩書般若乃至正憶念,魔事不起,當知是佛力,亦是十方諸佛及諸菩薩所擁護;而能具足五波羅蜜乃至一切種智,亦是十方現在佛力。”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하신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를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한다면 악마의 마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니,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위신력이요,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옹호를 받아서 다섯 가지의 오바라밀(五波羅蜜)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두루 갖추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또한 그것은 시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이기도 한 것이다.
何以故?魔是欲界主,世閒福德、智慧具足,魔是世閒生死根本。色界諸天雖有邪見,常入禪定故心柔軟,不能有所破壞。無色界中無形故,又心微細,不能有所作。下諸天無有力勢故,不能如是破壞。是魔先世業因緣力;又住處因緣,他作奪取,是中賊主名爲魔。是魔相爾,破壞好事。
왜냐하면 악마는 바로 욕계(欲界)의 주인이므로, 세간의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고 있기 때문에 악마는 바로 세간의 생사(生死)의 근본이며,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은 비록 삿된 사견이 있을지라도 항상 선정에 들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부드러워서 파괴될 것이 있을 수 없고,
무색계(無色界) 안에서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또 마음이 미세하여 짓는 유소작(有所作)이 있을 수 없으며,
아래의 모든 하늘은 세력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파괴할 수 없지만,
이 악마는 전생에 지은 선세업인연(先世業因緣)의 힘과 또한 머무르고 있는 곳의 주처인연(住處因緣)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의 것을 탈취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에서 도둑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를 악마라 하며, 이 악마의 상(相)은 좋은 일의 호사(好事)를 파괴하는 것이다.
初發心菩薩福德、智慧薄故惜身,若十方諸佛菩薩不擁護佐助者,不能成。是故諸佛、菩薩、諸天爲破壞魔事,是菩薩或覺,或不覺;如賊繞城,大人守護,小兒不覺。
처음 발심한 초발심보살은 복덕과 지혜가 희박하기 때문에 몸을 아끼나니, 만약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그를 옹호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하늘은 악마의 마사를 파괴하는 것이나,
이 보살은 혹은 깨닫기도 하고 깨닫지 못하기도 하나니, 마치 도둑들이 성(城)을 포위하고 있을 때, 어른들은 수호하고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略說魔事如是,廣說則無量無邊。然佛意但欲令行者成般若大事,是故師徒宜應和合,一切惡事,不應計念。
악마의 마사(魔事)를 간략하게 해설하면 이와 같거니와 자세히 설명한다면 무량하고 무변하나니, 부처님의 뜻은 수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반야의 대사(大事)를 성취하게 하고자 하신 뿐이니, 이 때문에 스승과 제자들은 화합하여야 하며, 일체의 삿된 악사(惡事)는 헤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大智度論 釋佛母品 第四十八 卷六十九
48. 불모품(佛母品)을 풀이함① 1
▶經. 佛告須菩提:“譬如母人有子若五、若十、若二十、若三十、若四十、若五十、若百、若千。母中得病,諸子各各勤求救療,作是念:‘我等云何令母得安,無諸患苦不樂之事?風寒、冷熱、蚊蝱、蛇蚖侵犯母身,是我等憂!’其諸子等常求樂具,供養其母。所以者何?生育我等,示我世閒。如是,須菩提!佛常以佛眼視是深般若波羅蜜。何以故?是深般若波羅蜜能示世閒相。
▷經.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마치 자식이 있는 어머니와 같으니, 아들이 다섯이든 또는 열ㆍ스물ㆍ서른ㆍ마흔ㆍ쉰ㆍ백ㆍ천이든 그 어머니가 병을 얻으면, 그 여러 아들들은 저마다 부지런히 치료의 방도를 구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어머니로 하여금 안락하면서 모든 병환의 괴로움과 좋지 않은 일들이 없도록 할 수 있을까? 바람ㆍ한기ㆍ냉기ㆍ열기나 모기ㆍ등에ㆍ독사 따위가 어머니의 몸을 해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의 근심거리이다’고 하면서, 그 아들들은 항상 좋은 것만을 구하여 그 어머니께 공양하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어머니는 우리들을 낳아서 길러 주셨고, 우리들에게 세간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부처님께서는 항상 불안(佛眼)으로써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고 있나니, 왜냐하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세간상(世閒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니라.
十方現在諸佛亦以佛眼常視是深般若波羅蜜。何以故?是深般若波羅蜜能生諸佛,能與諸佛一切智,能示世閒相。以是故,諸佛常以佛眼視是深般若波羅蜜。又以般若波羅蜜能生禪波羅蜜乃至檀波羅蜜,能生內空乃至無法有法空,能生四念處乃至八聖道分,能生佛十力乃至一切種智。如是般若波羅蜜能生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諸佛。
현재의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불안으로써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고 계시나니, 왜냐하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낳고, 모든 부처님께 일체지(一切智)를 주며, 세간상(世閒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불안으로써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고 계시느니라.
또한 반야바라밀은 선바라밀 내지는 단바라밀에 이르기까지를 낳고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를 낳으며, 사념처 내지는 팔성도분에 이르기까지를 낳고, 부처님의 십력 내지는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낳나니,
이와 같이 하여 반야바라밀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을 낳느니라.
須菩提!所有諸佛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今得、當得,皆因深般若波羅蜜因緣故得。須菩提!若求佛道善男子、善女人,書是深般若波羅蜜乃至正憶念,諸佛常以佛眼,視是人。須菩提!是求菩薩道善男子、善女人,諸十方佛常守護,令不退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들이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이득(已得)하셨고, 지금도 얻고 계신 금득(今得)하시고 계시며, 장차에도 얻을 당득(當得)이시지만, 모두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의 인연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불안으로써 이 사람을 보고 계시느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보살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수호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시느니라.”
須菩提白佛言:“如世尊所說般若波羅蜜能生諸佛、能示世閒相。世尊!般若波羅蜜云何能生諸佛?云何能示世閒相?云何諸佛從般若波羅蜜生?云何諸佛說世閒相?”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낳고 세간상(世閒相)을 보여 줍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어떻게 모든 부처님을 낳고 어떻게 세간상을 보여 주는지요?
어떻게 모든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로부터 나오시며, 어떻게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간상을 말씀하시는지요?”
佛告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中生佛十力乃至十八不共法、一切種智。須菩提!得是諸法,故名爲佛。須菩提!以是故,深般若波羅蜜能生諸佛。須菩提!諸佛說五衆是世閒相。”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십력으로부터 18불공법까지와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내나니, 수보리야, 이 모든 제법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때문에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나오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께서는 ‘오중(五衆)이 바로 세간상(世閒相)이다’라고 말씀하느니라.”
須菩提言:“世尊!云何深般若波羅蜜中說五衆相?云何深般若波羅蜜中示五衆?”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오중의 상(相)을 말하며,
어떻게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오중을 보여 주는지요?”
須菩提!般若波羅蜜不示五衆破、不示五衆壞,不示生、不示滅、不示垢、不示淨、不示增、不示減,不示入、不示出,不示過去、不示未來、不示現在。何以故?空相 不破不壞,無相相、無作相不破、不壞,不起法、不生法、無所有法性法,不破、不壞,相如是示。如是,須菩提!佛說深般若波羅蜜能示世閒相。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오중이 깨어지는 파(破)하는 것을 드러 내보이지 않는 불시(不示)하고,
5중이 무너지는, 괴(壞)하는 것을 내보이지 않는 불시(不示)하며, 나는 생(生)을 불시(不示)하며, 없어지는 멸(滅)을 불시하며, 더러운 구(垢)를 내보이지 않고, 깨끗한 정(淨)을 내보이지 않으며, 더하는 증(增)을 내보이지 않고, 덜하는 감(減)을 내보이지 않으며, 들어가는 입(入)을 내보이지 않고, 나오는 출(出)을 내보이지 않으며, 과거를 내보이지 않고, 미래를 내보이지 않고 현재를 내보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공한 공상(空相)은 깨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불파불괴(不破不壞)이며, 무상상(無相相)과 무작상(無作相)도 깨어지거나 무너지지도 않는 불파불괴(不破不壞)이기 때문이니라.
일어나지 않는 불기법(不起法)과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과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과 법성(法性)의 깨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불파불괴(不破不壞)의 상(相)을 이와 같이 내보여 주는 능시(能示)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은 세간상(世閒相)을 능히 내보인다’고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諸佛因深般若波羅蜜,悉知無量無邊阿僧祇衆生心所行。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中無衆生、無衆生名,無色、無色名,無受想行識、無受想行識名,無眼乃至無意,無眼識乃至無意識,無眼觸乃至無意觸,乃至無一切智、無一切智名。如是,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能示世閒相。
다시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께서는 깊은 반야바라밀로 인하여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 중생들이 마음으로 행하는 바의 심소행(心所行)을 모두 아시느니라.
수보리야,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물질(色)도 없고 물질(色)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없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눈(眼)도 없고 이비설신의(耳鼻舌身意)에 이르기까지도 없으며,
안식(眼識)도 없고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도 없으며,
안촉(眼觸)도 없고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에 이르기까지도 없느니라.
나아가 일체종지도 없고 일체종지라는 이름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에서는 세간상(世閒相)을 보여 주느니라.
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亦不示色,不示受想行識,乃至不示一切種智。何以故?須菩提!是深般若波羅蜜中尚無般若波羅蜜,何況色乃至一切種智!
수보리야,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에서는 또한 물질(色)을 보이지 않는 불시(不示)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불시(不示)이며, 나아가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불시(不示)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오히려 반야바라밀조차 없거늘 하물며 물질(色) 내지는 일체종지이겠는가?
復次,須菩提!所有衆生名數,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若非有想非無想,若此閒世界、若遍十方世界;是諸衆生若攝心、若亂心,是攝心、亂心,佛如實知。須菩提!云何佛知衆生攝心、亂心相?以法相故知。用何等法相故知?須菩提!是法相中尚無法相相,何況有攝心、亂心!須菩提!以是法相故,佛知衆生攝心、亂心。
다시 수보리야, 일체 중생의 이름과 범주(數)로서 유색(有色)이거나, 무색(無色)이거나, 생각이 있는 유상(有想)이거나, 생각이 없는 무상(無想)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이거나,
또한 이 세간인 차간세(此間世)이거나, 시방세계의 두루한 세계이거나,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거두는 섭심(攝心)이거나, 마음이 어지러눈 난심(亂心)이거나 간에, 이 섭심(攝心)과 난심(亂心)을 부처님께서는 여실히 아시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섭심(攝心)과 난심(亂心)의 상(相)을 아는 것인가?
법상(法相)으로써 아나니, 어떠한 법상(法相)으로써 아는 것인가?
수보리야, 이 법상(法相)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법상(法相)이라는 상(相)조차도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섭심(攝心)과 난심(亂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수보리야, 이러한 법상(法相)의 상(相)으로써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섭심(攝心)과 난심(亂心)을 아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