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8권 5
大智度論 釋魔事品 第四十六 卷六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46. 마사품(魔事品)을 풀이함 5
問曰:若般若波羅蜜畢竟空,無所有法,不可書、讀、誦等;如是,則不應有魔事?
묻나니, 반야바라밀이 필경공이고 얻을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이라면, 쓰고(書) 읽고(讀) 외울(訟)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악마의 마사(魔事)가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答曰:畢竟空、無所有亦非般若波羅蜜相,何以故是魔事?此中說:若是人知無所有是般若波羅蜜相,卽是魔事。若用文字書般若波羅蜜,自知:“我書般若波羅蜜。”有此著心,卽是魔事。若人知般若波羅蜜相,不以著心書、讀、誦等;若有來破者,是爲破般若波羅蜜。
답하나니, 필경고이고 무소유(無所有) 역시도 반야바라밀의 상(相)이 아니니, 왜냐하면 이것도 악마의 마사(魔事)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기를, “만약 이 사람이 무소유(無所有)가 반야바라밀의 상(相)이라고 안다면, 그것이 곧 마사(魔事)이며,
만약 문자로써 반야바라밀을 쓰고는 스스로가 ‘나는 반야바라밀을 썼다’라고 알고는,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곧 마사(魔事)이다”고 하며,
만약 사람이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안다면, 집착하는 마음으로써 쓰고(書) 읽고(讀) 외우지(訟) 않을 것이니, 만약 어떤 이가 와서 파괴한다면,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을 파괴하는 것이다.
復次,內有煩惱魔、外有天子魔,是二事因緣故,書般若波羅蜜乃至修行時,壞般若波羅蜜。
念起者,所謂念此國土不安隱,彼國土豐樂;聚落、城邑、方,亦如是。
또한 안으로는 번뇌마(煩惱魔)가 있고 밖으로는 천자자(天子魔, 자재천자마)가 있으니,
이 두 가지 일의 인연으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나아가 수행할 때에 반야바라밀을 파괴하는 것이며,
‘생각이 일어난다는 염기(念起)’라 함이란, 이른바 ‘이 국토는 안온하지 않고, 저 국토는 풍요와 즐거움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마을과 성읍과 처소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或聞謗毀其師,捨般若波羅蜜,欲助師除滅惡名;或聞父母疾病、官事;或念賊恐怖,欲發心詣餘處;旃陁羅亦如是。
與賊、旃陁羅共住,則發瞋恚;與衆婬女共住故,婬欲心發。如是等種種因緣,破壞般若波羅蜜;菩薩覺知,當莫念,莫說。
어떤 이는 그의 스승이 비방 받는 것을 듣고 반야바라밀을 버리면서 스승을 도와 그 불명예를 씻어 주고자 하기도 하고,
또는 부모가 병이 들고 관청에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기도 하며, 혹은 도둑이 두렵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내기도 하는 것이니, 전다라(旃陀羅, 천민)에 대한 것 또한 그와 같으며,
도둑이나 전다라와 같이 살면 화를 내는 일이 있게 되고, 음녀(婬女)들과 함께 살면 음욕심(婬欲心)이 일어나게 되는,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반야바라밀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니,
보살은 이러한 일을 깨달아 알면서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다.
或書般若波羅蜜時,鈍根者於多恭敬、供養事中愛著,自念:“我能書、能隨行故有是。”著是利養,卽是魔事。
혹 반야바라밀을 서사할 때, 근기가 둔한 이라면 공경과 공양하는 것에 많이 애착하면서 ‘나는 잘 쓰고 잘 따라 행하기에 이런 일이 있다’고 하나니, 이러한 이양(利養)에 집착하는 것이 곧 마사(魔事)이며,
或有利根者,魔或思惟:“是菩薩不著世閒樂,一心受般若波羅蜜,此人不可沮壞,我今當以聲聞深經轉其心,使成阿羅漢。”
혹 근기가 예리한 이라면, 악마가 생각하기를 ‘이 보살은 세간의 쾌락에 집착하지 않고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이는 구나, 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가 없으니, 나는 이제 성문의 깊은 경전으로써 그의 마음을 바꾸어서 아라한이 되게 하리라’고 하나니,
佛言:“聲聞經雖深,不應貪著。”譬如燒熱金丸,色雖妙好,不可捉。若菩薩無方便、不大利根,得是經歡喜,是空、無相、無作,盡苦本,何復過是!便捨般若波羅蜜,亦是魔事。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성문의 경이 비록 깊을지라도 탐착하지 말아야 함은, 마치 이글거리는 금 구슬이 보기에 아름답고 좋아도 손으로 만지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으니,
만약 보살이 방편이 없고 근기가 크게 예리하지 못하다면, 이 성문경을 얻고는 기뻐하면서 “이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것은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게 하여 주는 것이니, 어찌 이 보다 더 큰 경이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곧 반야바라밀을 버리기 되기에 이것 또한 마사(魔事)인 것이니,
何以故?此中佛說因緣:“於般若波羅蜜中廣說諸菩薩摩訶薩方便道,所謂觀聲聞、辟支佛道而不證,以大悲心行三解脫門故。”譬如人以酥和毒,毒勢則歇,不能害人。般若亦如是,菩薩於般若中求無上道易得;於餘經則難,如但服毒。是故不應從聲聞經中求菩薩道。
왜냐하면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그 인연으로,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편도(方便道)를 널리 말씀하신 때문이니, 이른바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를 관찰하면서도 증득하지 않은 채, 대비심으로써 삼해탈문(三解脫門)을 행하기 때문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소(酥, 연유 또는 치즈)를 독에 섞으면 그 독의 세력이 없어져서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반야 또한 그와 같아서 보살이 반야 가운데서 위없는 무상도를 구한다면 얻기 쉽지만, 다른 경으로부터는 얻기가 어려우며, 다만 독을 먹는 것과 같을 뿐이므로 성문의 경 가운데에서 보살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大智度論 釋兩不和合品 第四十七 卷六十八
47. 양불화합품(兩不和合品)을 풀이함① 1
▶經. “復次,須菩提!聽法人欲書、持般若波羅蜜,讀、誦、問義、正憶念;說法人懈墯,不欲爲說。當知是爲菩薩摩訶薩魔事。須菩提!說法之人心不懈墮,欲令書、持般若波羅蜜;聽法者不欲受之。二心不和,當知是爲魔事。
▷經. “다시 수보리야, 법을 든는 청법인(聽法人)은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면서 읽고 외우고 뜻을 물으며 바르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데, 법을 설하는 설법인(說法人)이 게으름을 피우면서 그에게 설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에게 있어서 악마의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의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게 하고 싶어 하는데,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이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아서, 이 두 마음이 화합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곧 마사(魔事)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聽法人若欲書、持般若波羅蜜,讀、誦乃至正憶念;說法者欲至他方。當知是爲魔事。須菩提!說法人欲令書、持般若波羅蜜;聽法者欲至他方。二心不和,當知是爲魔事。
다시 수보리야,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면서 읽고 외우며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데,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이 다른 지방으로 가고자 한다면, 이것도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게 하고 싶어 하는데,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이 다른 지방으로 가고자 하여 양쪽의 마음이 화합하지 않으면, 이것도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說法人貴重布施衣服、飮食、臥具、醫藥、資生之物;聽法人少欲知足,行遠離行,攝念精進,一心智慧。兩不和合,不得書般若波羅蜜,受持、讀、誦、問義、正憶念,當知是爲魔事。
다시 수보리야,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은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과 살림살이를 보시하는 것을 귀중히 여기는데,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은 욕심이 적은 소욕(少欲)이고 만족할 줄 알며, 멀리 여의는 원리(遠離)를 행하면서 생각을 다잡아 정진과 일심(一心)과 지혜를 행하므로, 양쪽이 화합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쓰거나 받아 지니면서 읽고 외우거나 뜻을 묻는 문의(問義)하면서 바르게 기억할 수 없다면, 이 또한 바로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說法人少欲知足,行遠離行,攝念精進,一心智慧;聽法者貴重布施衣服、飮食、臥具、醫藥、資生之物。兩不和合,不得書、持般若波羅蜜,讀、誦、問義、正憶念,當知是爲魔事。
수보리야,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은 욕심이 적은 소욕(少欲)이고 만족할 줄 알며, 멀리 여의는 원리(遠離)를 행하고 생각을 다잡아 정진과 일심과 지혜를 행하는데,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이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과 살림살이를 보시하는 것을 귀중히 여기므로 양쪽이 화합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거나 읽고 외우면서 뜻을 묻거나 바르게 기억할 수 없으면, 이것도 바로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說法者受十二頭陁:一、作阿蘭若,二、常乞食,三、納衣,四、一坐食,五、節量食,六、中後不飮漿,七、塚閒住,八、樹下住,九、露地住,十、常坐不臥,十一、次第乞食,十二、但三衣。聽法人不受十二頭陁,不作阿蘭若乃至不受但三衣。兩不和合,不得書、持般若波羅蜜,讀、誦、問義、正憶念,當知是爲魔事。
다시 수보리야,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이
첫째 한적한 수행처인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르며, 둘째 항상 걸식(乞食)을 하며,
셋째 누더기의 납의(納衣, 누더기 또는 헌옷을 기워서 만든 겉옷)를 입으며,
넷째 한 자리에서만 먹고 다시 먹지 않으며,
다섯째 한 바리의 밥만으로 만족하고, 여섯째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 따위도 먹지 않으며,
일곱째 무덤 곁에 머무르며, 여덟째, 애착을 여의기 위하여 나무 밑에 머무르며,
아홉째 나무 아래에는 습기, 새똥, 독충의 해가 있으므로 노지(露地)에 머무르며,
열째 항상 앉기만 하고 눕지 않으며, 열한째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열두째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등의 12두타(頭陀)를 받들고 있는데,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은 아란야에 있지도 않고 나아가 세 벌의 옷만을 가지지 않는 등의 12두타행을 받들지 않으므로 양쪽이 화합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거나 읽고 외우면서 뜻을 묻거나 바르게 기억할 수 없다면, 이 또한 곧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聽法者,受十二頭陁,作阿蘭若乃至受但三衣;說法人不受十二頭陁,不作阿蘭若乃至不受但三衣。兩不和合,不得書、持般若波羅蜜,讀、誦、問義、正憶念,當知是爲魔事。”
수보리야,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은 아란야에 있으면서 나아가 세 벌의 옷만을 가지는 등의 12두타행을 받들고 있는데,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이 아란야에 있지도 않고 나아가 세 가지 옷만을 가지지도 않는 등의 12두타행을 받들지 않으므로 양쪽이 화합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서사해 지니거나 읽고 외우고 뜻을 물으면서 바르게 기억할 수 없으면, 이 또한 바로 마사(魔事)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論. 釋曰:一切有爲法,因緣和合故生,衆緣離則無。譬如攢燧求火,有鑽、有母,二事因緣得火;書寫般若乃至正憶念亦如是,內外因緣和合故生,所謂師、弟子同心同事故,乃得書成。是故佛告須菩提:“聽法人信等五善根發故,欲書、持般若,乃至正憶念;說法者五蓋覆心故,不欲說。”
▷論. 해석한다.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한 때문에 생기고, 뭇 인연을 여의게 되면 없는 것이니, 마치 나무를 끌로 비벼 불을 일으킬 때, 끌과 나무 두 가지의 인과 연으로 불을 얻는 것과 같이,
반야를 서사하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안과 밖의 내외인연(內外因緣)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같이하는 동심(同心)으로 같이 일을 하는 동사(同事)하기 때문에 비로소 쓰는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니,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법을 들을 청법인(聽法人)은 신근(信根) · 정진근(精進根) · 염근(念根) · 정근(定根) · 혜근(慧根) 등의 다섯 가지의 오선근(五善根)이 일어나기 때문에 반야를 써서 지니고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데,
법을 설할 설법인(說法人)이 탐욕개(貪欲蓋) · 진에개(瞋恚蓋) · 혼면개(惛眠蓋) · 도회개(掉悔蓋) · 의개(疑蓋)의 다섯 가지 장애인 오개(五蓋)로 마음이 가리워진 까닭에 설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問曰:若五蓋覆心故不欲說,何以作師?
묻나니, 만약 오개(五蓋)가 마음을 가리었기 때문에 설하려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스승으로 삼는 것입니까?
答曰:是人著世閒樂,不觀空、無常,雖能心知、口說,不能自行。弟子雖必欲行而不能知,不能知故,更無餘處,必諮此人。或時師悲心發故,欲令書、持般若;弟子信等五善根鈍不發故,著世閒樂故,不欲受書、持乃至正憶念。
답하나니, 이 사람은 세간의 쾌락에 집착하여 공(空)과 무상(無常)을 관하지도 않으며, 비록 마음으로는 알아서 입으로는 설할 수 있을지라도 자신은 행하지를 못하는 것이며,
비록 제자가 반드시 행하고 싶을지라도 알지 못하며,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어야 하는 것이니, 달리 물을 수 있는 곳도 없으므로 결국 이 사람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로는 법사에게 자비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반야를 써서 지니게 하고 싶은데, 제자는 신근(信根) · 정진근(精進根) · 염근(念根) · 정근(定根) · 혜근(慧根) 등의 다섯 가지의 오선근(五善根)이 둔하여 일어나지도 못하고, 세간의 쾌락에 집착하기 때문에 받아써서 지니거나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려고 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