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5권 10
大智度論 釋諸波羅蜜品 第四十四 卷六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4. 제바라밀품(諸波羅蜜品)을 풀이함 6
▶論. 釋曰:般若波羅蜜中有無常聖行故,名“無常波羅蜜”。佛言:非但般若中有無常,觀一切法無常故,名“無常波羅蜜”。
▷논. 해석한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무상하고 성스러운, 무상성행(無常聖行)이 있기 때문에 무상(無常)바라밀이라 하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반야에만 무상한 관(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법 모두가 무상하기 때문에 무상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다.
問曰:上來說“般若波羅蜜法性常住”,今何以說“無常”?
묻나니, 앞에서 “반야바라밀의 법성(法性)은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한다.”고 하셨거늘,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무상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是智慧,觀法從因緣和合生,是有爲法故無常;般若波羅蜜所緣處,如、法性、實際,無爲法故常。須菩提說有爲般若,故言般若波羅蜜無常。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은 바로 지혜의 관법(觀法)이라. 인(因)과 연(緣)의 화합으로부터 생긴 것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며, 반야바라밀은 반연할 곳의 소연처(所緣處)가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의 무위법이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며, 수보리 존자는 유위의 반야를 설한 것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무상하다.’고 말한 것이다.
問曰:若爾者,佛何以說“一切法盡是破壞無常,無爲法無破壞相”?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은 모두가 파괴되는 것이고 무상하다고 하시면서, 무위법은 파괴되는 파괴상(破壞相)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一切法名六情,內外皆是作法;作法故,必歸破壞相。離有爲法,無無爲法,亦更無有法相;因有爲法相,故說無爲法不生不滅。
답하나니, 일체법은 육정(六情, 육근)을 말하는 것으로, 내외(內外) 모두는 짓는 작법(作法)이며, 작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파괴되는 파괴상으로 돌아가지만, 유위법을 여의고는 무위법도 없으며, 나아가 법상(法相)도 없거니와 유위법의 상(相)으로 인하여 ‘무위법은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고 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다’고 하는 것이다.
復次,一切有爲法有二種:一者、名字一切,二者、實一切。一切有爲法破壞,故名一切無常。“苦”等乃至“無法有法空”亦如是。須菩提說一切法相讚般若,佛擧一切法答。
또한 일체의 유위법에는 두 종류가 있나니, 첫째는 명자(名字, 이름)만의 온갖 것이요, 둘째는 진실한(實) 온갖 것이다.
일체의 유위법은 파괴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가 무상한 것이며, 괴로운 고(苦)와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니,
수보리 존자는 일체법의 법상(法相)을 말하면서 반야를 찬탄하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을 들어서 대답하신 것이며,
正觀身等四法,從四念處生,四念處,是四諦之初門 四諦是四沙門果初門,阿羅漢果分別卽是三乘。四念處,般若波羅蜜中種種廣說。佛言:是四種法緣處,從本已來皆不可得,故名“念處波羅蜜”。從“四正懃”乃至“般若波羅蜜”,亦如是。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법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은 사념처(四念處)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사념처는 곧 네 가지 진리인 사제(四諦)의 첫 문인 초문(初門)이요, 사제(四諦)는 네 가지 사문의 과위인 사사문과(四沙門果) 가운데 초문이며, 아라한의 과위를 분별한다면 곧 그것은 삼승(三乘)인 것이다.
사념처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갖가지로 자세히 설명하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네 가지 법이 반연한 연처(緣處)는 본래부터 모두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염처(念處)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으며, 사정근(四正勤)으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問曰:餘法可以讚般若,云何復以般若讚般若?
묻나니, 그 밖의 다른 법으로도 반야를 찬탄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반야로써 반야를 찬탄하는 것입니까?
答曰:有二種般若:一者、常住般若;二者、與五波羅蜜共行,有用般若波羅蜜。須菩提讚有用般若波羅蜜,能破無明黑闇、能與眞智慧;是故佛說:“常住般若波羅蜜。”
답하나니, 두 가지의 반야가 있나니, 첫째는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반야요,
둘째는 나머지 오바라밀과 함께 행하면서 작용을 갖는 반야바라밀이다.
수보리 존자는 작용을 갖는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되,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파괴하고 진실한 지혜를 부여하는 것이라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상주(常住)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신 것이다.
癡慧不可得故,行是般若波羅蜜菩薩,初得菩薩十力,後得佛十力,是故說“十力波羅蜜”。
어리석음도 지혜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인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처음에는 보살의 십력(十力)을 얻고 나중에는 부처님의 십력을 얻게 되기 때문에 ‘십력(十力)바라밀’이라 하신 것이다.
佛言:“非但十力者不可破、不可伏,一切法實相亦不可破、亦不可伏。”佛意:爲度衆生故說十方佛力無量無邊;如佛力,一切法實相亦如是不可伏,故名“十力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비단 십력만이 파괴될 수 없고 조복될 수 없는 불가복(不可伏)인 것이 아니라, 일체법의 실상 또한 파괴될 수 없고 조복될 수 없다.”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십력을 말씀하신 것이며, 부처님의 불력(佛力)은 무량하고 무변하나니, 일체법의 실상도 부처님의 불력과 같아서 항복시킬 수 없는 불가복(不可伏)이기 때문에 십력(十力)바라밀이라 하며,
菩薩得是般若波羅蜜力,於佛前能說法論議,何況餘處!尚不畏魔王,何況外道!故名“無所畏波羅蜜”。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의 힘을 얻어 부처님 앞에서 설법하고 논의(論義)할 수 있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겠는가? 마왕도 두려워하지 않거늘 하물며 외도(外道)이겠는가?
이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무소외(無所畏)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며,
佛言:“道種智不沒故。”道種智名法眼,知一切衆生以何道得涅槃。般若波羅蜜,常寂滅相、不可說;是菩薩以道種智故引導衆生,於大衆中師子吼;道種智增益故不沒,無所畏,不自憍慢我有是法,名“無畏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도종지(道種智)는 침몰하지 않기 때문이니, 도종지라는 이름의 법안(法眼)으로써 일체 중생들이 어떠한 도(道)로써 열반을 얻게 되는지를 안다.”고 하셨으니,
반야바라밀의 항상 고요히 사라진 상적멸(常寂滅)의 상(相)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나, 이 보살은 도종지 때문에 중생을 인도하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도종지를 더욱 더 늘어나게 하기 때문에 침몰하지도 않는 불몰(不沒)이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무소외(無所畏)이며, 나에게는 이러한 법이 있노라고 스스로 자만하지도 않으므로 ‘무소외(無所畏)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須菩提從佛聞,無畏轉深,故讚般若波羅蜜,言“無碍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두려움 없는 무외(無畏)가 더욱 더 깊어졌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장애 없는 무애(無礙)바라밀’이라 하였으니,
佛言:“非但四無碍,一切法入如、法性、實際故,皆是無碍相。”菩薩因般若波羅蜜,能集十力、四無所畏、四無碍智、大慈大悲等諸佛法故,說“佛法波羅蜜”。
부처님께서는, “비단 법무애(法無碍) 의무애(義無碍) 사무애(辭無碍) 요설무애(樂說無碍)의 네 가지 장애가 없는 사무외(四無礙) 뿐만이 아니라, 일체법은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에 들기 때문에 모두가 장애 없는 무애상(無碍相)이다.”고 말씀하셨으며,
보살은 반야바라밀로 인하여 십력(力)과 사무소외(無所畏)와 사무애지(四無礙智)와 대자대비(大慈大悲) 등의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쌓은 까닭에 ‘불법(佛法)바라밀’이라 한다.
佛言:聲聞法於凡夫法爲勝,辟支佛法於聲聞法爲勝,佛法於一切法最勝。如一切色中,虛空廣大;佛法最勝,無能及,無可喩,過一切法,故名“佛法波羅蜜”。
부처님께서, “성문법은 범부의 법보다 우승하고, 벽지불의 법은 성문법보다 우승하며, 부처님의 불법은 일체법 가운데에서 가장 우승하다.”고 말씀하셨으니,
마치 일체의 물질(色) 가운데에서 허공이 광대한 것과 같이 부처님의 불법은 가장 뛰어난 최승(最勝)으로서 무엇으로도 미칠 수 없고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나니, 일체법을 넘어섰기 때문에 ‘불법(佛法)바라밀’이라 하나니,
如過去佛行六波羅蜜,得諸法如相;今佛亦如是行六波羅蜜得佛道,故名“多陁阿伽陁波羅蜜”。“多陁阿伽陁”者,或言“如來”,或言“如實說”,或言“如實知”。
마치 과거의 부처님께서 육바라밀을 행하여 제법의 여여(如如)한 상(相)을 얻으신 것과 같이, 지금의 부처님도 그와 같이 육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불도를 얻으시기 때문에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니,
‘다타아가타’라 함이란, 혹은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혹은 ‘여실하게 말씀하신 여실설(如實說)’이라 하기도 하며, 혹은 ‘여실하게 아는 여실지(如實知)’라고도 한다.
此中佛說:非但佛說名如實說,一切語言皆是如實,故名“如實說波羅蜜”。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단 부처님의 말씀만이 여실한 말씀이 아니고 일체의 언어(言語)는 모두가 여실하기 때문에 여실설(如實說)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다.
是般若波羅蜜具足,後身自然作佛,故名“自然波羅蜜”。“自然”名佛;佛所說故名“自然波羅蜜”。復次,是般若波羅蜜實相自然、不由他作,故名“自然”。佛言:佛一切法中得自在力,故名“自然波羅蜜”。
이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구족하여 갖추면 후생의 몸은 자연히 부처님이 되기 때문에 ‘자연(自然)바라밀’이라 하며, 자연을 부처님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자연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며,
또 이 반야바라밀의 실상이 자연이요,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이라 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는 일체법 가운데서 자재(自在)한 힘을 얻었기 때문에 ‘자연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다.
具足十地,得十力、四無所畏,轉法輪、擊法鼓,覺世閒無明睡衆生,故名爲“佛波羅蜜”。
십지(十地)를 두루 갖추고 십력과 사무소외를 얻어서 법륜(法輪)을 굴리며, 법고(法鼓)를 치면서 무명에 잠든 세간의 중생들을 깨우기 때문에 ‘불(佛)바라밀’이라 하며,
佛,秦言覺者、知者。何者是?所謂正知一切法、一切種,故名覺。一切法者,所謂五衆、十二入、十八界等。復次,一切法名外道經書、伎術、禪定等;略說有五種,所謂凡夫法、聲聞法、辟支佛法、菩薩法、佛法。
부처님 불(佛)이란, 진(秦, 중국)나라 말로 깨달은 각자(覺者)요, 아는 지자(知者)라 하나니,
어떠한 분이신가? 이른바 일체법과 일체종(一切種)을 바르게 알기 때문에 깨닫은 각(覺)이라 하며,
일체법이라 함이란, 이른바 오중(五衆)과 12입(入)과 18계(界) 등이다.
또한 일체법이란 외도의 경서(經書)와 기술(伎術)과 선정(禪定) 등을 말하나니, 간략하게 말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범부법(凡夫法)과 성문법(聲聞法)과 벽지불법(辟支佛法)과 보살법(菩薩法)과 부처님의 불법(佛法)이다.
佛,略知有二種相,所謂㧾相、別相;又以分別相、畢竟空相。廣知則一切種 一切種是一切無量無邊法門。以是事故,名爲“佛波羅蜜”;不以佛身故名爲佛波羅蜜,但以一切種智故。
부처님께서는 간략하게 두 가지의 이종상(二種相)이 있음을 아셨나니, 이른바 전체의 총상(總相)과 개별적인 별상(別相)이며, 또한 분별하는 분별상(分別相)과 필경공상(畢竟空相)이다.
널리 아시는 바로는 일체종(一切種)이니, 일체종은 곧 일체의 무량하고 무변한 법문(法門)이라.
이러함 때문에 ‘불(佛)바라밀’이라 하며, 부처님의 불신(佛身) 때문에 불(佛)바라밀이라 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일체종지(一切種智)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終大智度論卷第六十五 대지도론 65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