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5권 7
大智度論 釋諸波羅蜜品 第四十四 卷六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4. 제바라밀품(諸波羅蜜品)을 풀이함 3
“世尊!不破波羅蜜是般若波羅蜜” 佛言:“一切法不相離故” 三十九
“세존이시여, 깨뜨려지지 않는 불파(不破)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법은 서로 여의지 않는 불상리(不相離)이기 때문이니라.” → 삼십구
“世尊!不取波羅蜜是般若波羅蜜” 佛言:“過聲聞辟支佛地故” 四十
“세존이시여, 취하지 않는 불취(不取)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니라.”→ 사십
“世尊!不分別波羅蜜是般若波羅蜜” 佛言:“諸妄想不可得故” 四十一
“세존이시여, 분별하지 않는 불분별(不分別)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허망한 망상(妄想)은 얻어질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 사십일
“世尊!無量波羅蜜是般若波羅蜜” 佛言:“諸法量不可得故” 四十二
“세존이시여, 한량없는 무량(無量)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제법의 수량은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 사십이
“世尊!虛空波羅蜜是般若波羅蜜” 佛言:“一切法無所有故” 四十三
“세존이시여, 허공(虛空)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일체법은 있는 것이 아닌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니라.” → 사십삼
▶論. 釋曰:須菩提讚般若波羅蜜,示衆生世閒空如夢。佛言:夢亦不可得故名“夢波羅蜜”。響、影、焰、幻亦如是。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가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세간은 공(空)한 것이며 마치 꿈과 같다.”고 중생에게 보여 주신 것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꿈 역시 얻어질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몽(夢)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나니, 메아리(響)ㆍ그림자(影)ㆍ아지랑(焰)이 및 허깨비(幻)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人心以聲爲實,以響爲虛;影以人面鏡爲實,像爲虛;焰以風、塵、日光爲實,水爲虛;幻以祝術爲實,祝術所作爲虛。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소리(聲)는 진실이나 메아리(響)는 거짓이라 하며,
그림자(影)는, 거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은 진실이나 형상은 거짓이라 하며,
아지랑이(焰)는 바람과 티끌 진(塵)과 햇빛은 진실이라 하고 물은 거짓이라 하며,
환술(幻)에 대해서는 주술을 진실이라 하고 주술로 만든 허깨비는 거짓이라 한다.
須菩提讚般若以喩爲空,佛說 喩本事皆空;本事皆空故,是喩亦空。是般若波羅蜜無垢,能斷滅一切垢。
佛言:諸煩惱從本已來常無,今何所斷?是故名“無垢波羅蜜”。“無淨波羅蜜”亦如是。
수보리 존자가 반야를 찬탄하면서 공(空)으로 비유를 삼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는 근본적인 본사(本事) 모두는 공한 것이며, 본사(本事)가 모두 공(空)하기 때문에 이 비유 또한 공(空)하다.”고 하셨으며,
이 반야바라밀은 더러움의 구(垢)가 없으며, 일체 더러움의 구(垢)를 능히 끊어 없앴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번뇌는 본래부터 없는, 상무(常無)이거늘 이제 끊어야 할, 무엇이 있겠느냐”고 하셨으니,
이 때문에 ‘더러움이 없는 무구(無垢)바라밀’이라 하며,
‘깨끗함이 없는 무정(無淨)바라밀’ 또한 그와 같다.
無煩惱卽是“淨”。淫欲、瞋恚等諸煩惱名爲污;是般若波羅蜜,一切垢法所不污。六情是諸煩惱處,六情及一切法,諸煩惱緣處、住處皆不可得,故名“不污波羅蜜”。
번뇌가 없는 무번뇌(無煩惱)이면 곧 곧 청정한 정(淨)이니, 음욕과 진에 등 모든 번뇌를 더러울 오(汚)이라 하나니, 이 반야바라밀은 일체의 더러운 구법(垢法)으로 더럽힐 수 없는 불오(不污)이며,
안이비설신의 육정(六情, 육근)은 바로 모든 번뇌의 처소이며, 육정과 일체법은 모든 번뇌가 반연하는 연처(緣處)요, 머무르는 주처(住處)이나, 모두 다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는 불오(不污)바라밀’이라 한다.
得是般若波羅蜜,一切戲論憶想分別滅,故名“不戲論波羅蜜”。一切法畢竟空故,無憶、無念相;無憶、無念相故,名“無念波羅蜜”。
이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일체의 쓸모없는 희론과 생각과 분별이 소멸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이론을 하지 않는, 불희론(不戲論)바라밀’이라 하며,
일체법은 필경에 공(空)하기 때문에 기억도 없는 무억(無憶)이고 생각도 없는 무염상(無念相)이며, 무억(無憶)이고 무염상(無念相)이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무념(無念) 바라밀’이라 한다.
염상(念想) : 막연히 떠오르는 것은 “상(想)”이요, 무언가 주제를 정해놓고 생각하는 것은 “염(念)”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住法性菩薩,一切論議者所不能勝,一切結使邪見所不能覆;一切法無常破壞,心不生憂;如是等因緣,故名“不動波羅蜜”。一切法妄解,非但愛染,故名“無染波羅蜜”。
법성에 머무르는 주법성(住法性) 보살은 일체의 논의자(論義者)가 능히 이길 수 없으며, 일체 번뇌의 결사(結使)와 삿된 소견의 사견(邪見)이 가릴 수 없으며, 일체법이 무상하여 파괴될지라도 마음으로 근심하지 않는,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부동(不動)바라밀’이라 하며,
일체법이 허망하다는, 망해(妄解)로써 애욕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까닭에 ‘물들지 않는 무염(無染)바라밀’이라 한다.
憶想分別是一切結使根本;有結使,能起後身業。知憶想分別虛妄,一切後世生業更不復起故,是名“不起波羅蜜”。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이 일체 번뇌 결사(結使)의 근본이며, 결사가 있으면 후세의 신업(身業)이 능히 일어나나니,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이 허망한 것임을 알면, 후생에 생길 일체의 신업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까닭에 이를 ‘일어나지 않는 불기(不起)바라밀’이라 한다.
般若波羅蜜中不取三毒火相,故言“寂滅波羅蜜”。
佛言:“非但三毒相寂滅,一切法相不可得故。”是般若波羅蜜,乃至善法中尚不貪,何況餘欲!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는 불같은 모양의 삼독(三毒)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바라밀’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다만 삼독의 상(相)만이 적멸(寂滅)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법의 상(相)은 얻을 수 없으므로, 이 반야바라밀은 나아가 착한 선법(善法)에도 오히려 탐내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욕망이겠는가?”라 하셨다.
佛說:“欲,從本已來不可得故。”貪欲虛誑,自性不可得,故名“無欲波羅蜜”;非是離欲故名無欲。
부처님께서 “욕망은 본래부터 얻어질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요, 탐욕은 거짓이어서 자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이 없는 무욕(無欲)바라밀이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욕망은 여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욕망이 없다는, 무욕(無欲)이라 하는 것이다.
瞋恚性畢竟無所有,故名“無瞋波羅蜜”;非是離瞋故名無瞋。一切法中,無明黑闇破,故名“無癡波羅蜜”;非是滅癡故名無癡。
성을 내는 진에성(瞋恚性)은 필경에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성냄이 없는 무진(無瞋)바라밀’이라 하며, 성냄은 여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냄이 없다는 무진(無瞋)이라 하는 것이며,
일체법 가운데 무명(無明)의 캄캄함을 깨뜨리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없는 무치(無癡)바라밀’이라 하며, 어리석음은 없앨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없다는 무치(無癡)라 하는 것이며,
“無煩惱波羅蜜”者,菩薩得無生法忍故,一切煩惱滅。佛言:“憶想分別是煩惱根本;憶想尚無,何況煩惱!”故名“無煩惱波羅蜜”。
‘번뇌 없는 무번뇌(無煩惱)바라밀’이라 함이란,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기 때문에 일체의 번뇌가 멸하였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은 곧 번뇌의 근본이다. 생각조차도 오히려 없거늘 하물며 번뇌이겠는가?’라고 하신 까닭에 번뇌가 없는 무번뇌(無煩惱)바라밀이라 하며,
般若能破無衆生中,有衆生顚倒,故名“無衆生波羅蜜”。佛言:“是衆生從本已來不生、無所有,故名無衆生。”
반야는 중생이 없는 가운데서 중생이 있다는 뒤바뀐 전도를 깨뜨리기 때문에 ‘무중생(無衆生)바라밀’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중생은 본래부터 나지 않은 불생(不生)이고 있지 않은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중생이 없다는 무중생(無衆生)이라 한다.”고 하셨다.
須菩提意:以般若波羅蜜能斷一切有漏法,故名“斷波羅蜜”。佛言:諸法不起不生,無所作,諸法自然斷相故名“斷”。
수보리 존자는 ‘반야바라밀은 일체의 유루법(有漏法)을 끊기 때문에 끊음의 단(斷)바라밀이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제법은 일어남도 나지도 않는 불기불생(不起不生)이며, 지음도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라서 제법은 자체가 끊어진 자연단상(自然斷相)이기 때문에 끊음의 단(斷)이다.”고 말씀하셨으며,
二邊者,所謂我、無我,斷無斷,可斷法、無斷法,常、滅、有、無 如是等無量二邊;般若波羅蜜中無是諸邊,故名“無二邊波羅蜜”。
‘두 가지의 치우침인 이변(二邊)’이라 함이란, 이른바 나(我)와 무아(無我), 끊어진 단(斷)과 끊어짐이 없는 무단(無斷), 끊을 수 있는 가단법(可斷法)과 끊을 수 없는 무단법(無斷法), 항상한 상(常)과 멸(滅)하는 것, 유(有)와 무(無) 등의 무량한 두 가지의 치우침인 이변(二邊)이 있으니,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이러한 모든 이변(二邊)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치우침이 없는 무이변(無二邊)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며,
佛言:“是諸邊從本已來無,但以虛誑顚倒故著;菩薩求實事故,離是顚倒邊。是般若波羅蜜一相、空故,不可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치우침인 이변(二邊)은 본래부터 없는 것이나, 다만 거짓으로 허광(虛誑)되고 뒤바뀌어 전도된 때문에 집착할 뿐이니, 보살은 진실한 실사(實事)를 구하기 때문에 이 뒤바뀌어 전도된 치우침을 여의는 것이라. 이 반야바라밀은 하나의 일상(一相)이며 공(空)하기 때문에 깨뜨릴 수 없는 불가파(不可破)이다.”고 하셨으며,
佛言:“不但般若波羅蜜,一切法皆無定異相。”如果不離因,因不離果;有爲法不離無爲法,無爲法不離有爲法;般若波羅蜜不離一切法,一切法不離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반야바라밀 뿐만 아니라 일체법 모두는 정해지거나 달라지는 정이상(定異相)이 없다.”고 하셨으니, 마치 결과는 원인을 여의지 않고 원인도 결과를 여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유위법은 무위법을 여의지 않고 무위법도 유위법을 여의지 않으며,
반야바라밀은 일체법을 여의지 않고 일체법도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一切法實相卽是般若波羅蜜,故名“不破波羅蜜”。破者,所謂諸法各各離散。一切法,常無常等過失;是故般若波羅蜜不取一切法。
일체법의 실상(實相)이 곧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에 ‘깨뜨려지지 않는 불파(不破) 바라밀’이라 하며,
‘깨뜨리는 파(破)’라고 함이란, 이른바 제법이 각각 여의고 흩어져서 이산(離散)하는 것이며, 일체법은 항상하고 무상하다는 상무상(常無常) 등의 허물이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일체법을 취(取)하지 않는 것이다.
佛言:一切法乃至二乘出世閒淸淨法,亦不取,故名“不取波羅蜜”。分別名取相生心,妄想分別;般若波羅蜜是實相故,無是妄想分別。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법 내지는 승(乘)과 출세간의 청정한 법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취하지 않기 때문에 불취(不取)바라밀이라 한다.”고 하셨으며,
이름을 분별하여 상을 취하고 그로써 마음으로 망상과 분별을 내게 되나, 반야바라밀은 바로 실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허망한 망상(妄想)과 분별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