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4권 4
大智度論 釋無作實相品 第四十三 卷六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3. 무작실상품(無作實相品)을 풀이함① 2
▶論. 釋曰:須菩提聞佛說般若波羅蜜無起無作相,是故今在佛前說:“般若波羅蜜無所作。”若無作者,不能斷諸煩惱,不能修集諸善法。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은 일으키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는 무기무작상(無起無作相)”이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 앞에서 “반야바라밀은 짓는 것도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다.”고 말하였으며,
만약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이라면 모든 번뇌를 끊을 수도 없고 모든 착한 선법을 닦고 쌓을 수도 없는 것이다.
此中佛說因緣:“從作者乃至一切法不可得故。”知者尚無,何況作者?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짓는 작자(作者)로부터 일체법에 이르기까지는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아는 지자(知者)조차도 오히려 없거늘 하물며 짓는 작자가 있겠는가?”라고 하셨으며,
須菩提言:“若無作者,般若波羅蜜無所能作,應云何行、云何得般若波羅蜜?”佛言:“若菩薩不行一切法、不得一切法 所謂若常、若無常,乃至若淨、若不淨,是名行般若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만약 짓는 작자가 없다면 반야바라밀은 지을 수 없는 무능작(無能作)이나니,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얻어야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약 보살이 일체법을 행하지 않는 불행(不行)이면, 이른바 일체법이 항상함과 무상함의 상무상(常無常) 내지는 깨끗하다는 것과 깨끗하지 않은 정부정(淨不淨)도 얻을 수 없나니, 이것을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一切法者,從色乃至一切種智,是菩薩行法。是法中,無智人行諸法常等,智人行諸法無常等。
‘일체법’이라 함이란, 물질(色)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행할 행법(行法)이며, 이 법 가운데에서 지혜 없는 사람은 ‘제법이 항상하다.’는 것 등을 행하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은 ‘제법은 무상하다.’는 등을 행하는 것이다.
是般若波羅蜜示諸法畢竟實相故,不說諸法常、無常。無常等雖能破常等顚倒,般若中不受是法,以能生著心故。思惟籌量,求常、無常相不可得定實。
이 반야바라밀은 제법의 궁극적인 실상(實相)을 보이기 때문에 ‘제법은 항상하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며, 무상하다는 것 등은 비록 항상하다는 것 등의 뒤바뀜을 파괴할 수 있을지라도 반야 가운데서는 이러한 법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그것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게 되기 때문이며, 생각하고 헤아려서 항상하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상(相)을 구하여도 고정된 진실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인 것이다.
問曰:色等罪法可觀不淨、苦,餘善法云何觀不淨、苦?
묻나니, 물질(色) 등의 죄법(罪法)은 청정하지 않다는 것과 괴롭다는 것을 관(觀)할 수 있거니와, 그 밖의 착한 선법은 어떻게 청정하지 않다는 것과 괴롭다는 것을 관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是名字不淨、苦。如隨意安隱好法,名淸淨、快樂;不隨意非安隱法,名不淨、苦。於善法中愛樂悅可者,以爲淨、樂;厭惡不喜者,以爲不淨、苦。
답하나니, 이는 명자(名字, 이름)으로 청정하지 않음과 괴로움이니, 뜻대로 되고 안온해서 좋은 법은 청정한 것이요 쾌락한 것이라 하거니와, 뜻대로 되지 않고 안온하지 않은 법이라면 청정하지도 않고 괴로운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착한 선법 가운데서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것은 청정한 것이요 쾌락이라고 여기거니와 싫증나고 기쁘지 않은 것은 청정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須菩提作是念:‘若離諸觀法者,將無不具足菩薩道耶?’是故佛說:“若不行色等不具足,是行般若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모든 관법(觀法)을 여의는 이는 장차 보살의 도(道)를 구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물질(色) 등의 구족하지 않음인 불구족(不具足)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며,
“色具足”者,有人言:色等法中常、無常等憶想分別,是名“具足”。“不具足”者,是中用無常等觀破常等,是名“不具足”,少常等故。今於色中亦不行無常等,是故言:“不行色不具足,是爲行般若波羅蜜。”
‘물질(色)의 구족(具足)함’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떤 분이 말하기를 “물질(色) 등의 법 가운데서 항상하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것 등을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을 구족한다고 하며,
‘구족하지 않은 불구족(不具足)’고 함은, 이 가운데서 무상하다는 등의 관(觀)으로써 항상하다는 것 등을 파괴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불구족이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항상(常)하다.’는 것 등 때문에 지금 물질(色) 가운데서 또한 ‘무상하다.’는 것 등을 행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물질이 구족하지 않는 불구족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며,
復次,有人言:具足者,謂補處菩薩能如色實觀,乃至一切種智,是名具足餘者是不具足。
또한 어떤 분은 말하기를 “구족하다는 것은 보처(補處)의 보살이 물질(色)에 대하여 진실하게 관하고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구족하다 하는 것이고 그 밖의 것은 불구족이라 한다.”고 하였다.
若菩薩不行色等不具足者,卽是行具足般若波羅蜜。何以故?色不具足則非色,色非無常相故。
만약 보살이 물질(色) 등의 불구족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구족하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물질(色)이 구족하지 않으면 물질(色)이 아니요, 물질(色)은 무상한 상(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佛言:出衆生於常中,著無所有中,隨語言音聲故,是故說:“如是實淸淨亦不行,是爲行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중생은 항상하다는 상(常)에서 나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로 귀착하나니, 언어와 음성을 따르기 때문이다.”고 하신 때문에 이와 같이 진실로 청정한 것조차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善說道、非道故,須菩提言:“希有!”碍者是非道,無碍者是道。
도(道)와 도 아닌 비도(非道)를 잘 말하기 때문에 수보리는 “희유(希有)합니다.”라고 하였으며,
‘장애의 애(礙)’라 함이란 곧 도가 아닌 비도요, ‘장애가 없는 무애(無礙)’ 라 함은 곧 도(道)이다.
佛觀會衆心多迴向空,知般若波羅蜜無碍相,是故說:“不行色等無碍,是行般若波羅蜜。能如是行者,於色等法無碍。”須菩提雖不能究盡知畢竟空理,而常樂說是空法。
부처님께서는 모여 있는 대중들의 마음이 대부분 공(空)에 회향하여 반야바라밀의 장애 없는 무애상(無碍相)을 알고 있다고 관찰하셨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장애 없는 무애를 행하지 않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며, 이와 같이 행할 수 있는 이는 물질(色) 등의 법에 장애가 없는 무애(無碍)인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비록 필경공의 이치를 모두 다 궁구하여 알지는 못하였을지라도 항상 공법(空法)을 말하기 좋아하였다.
希有,與一切世閒法相違。佛可須菩提所說:若說、不說,無增無減。是諸法實相,若以身業毀壞,亦不能令異,何況口說!常不生相故。
‘희유(希有)하다.’ 함이란, 일체 세간의 법과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하는 말을 옳다고 인정하셨다.
해설하거나 해설하지 않거나 간에 더한 것도 없고 덜한 것도 없으면 그것이 곧 제법의 실상인지라 신업(身業)으로 헐고 무너뜨린다 하여도 역시 달라지게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입으로 해설하는 것이겠는가? 항상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이기 때문이다.
譬如虛空,虛空是般若波羅蜜。幻人是行者。行者雖罪業因緣 生是虛誑法,般若波羅蜜合故無有異;如種種諸色到須彌山邊,同爲金色。是諸法實相,不可知、不可說;故若說、不說,如本不異。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과 같은 것으로, 허공은 반야바라밀이요 환술로 된 환인(幻人)은 바로 수행하는 행자(行者)이다. 수행하는 행자는 죄업의 인연 때문에 비록 거짓된 허광법(虛誑法)을 낼지라도 반야바라밀과 합하기 때문에 달라짐이 없으니,
마치 갖가지의 빛이 수미산 언저리에 이르러면 똑같은 금빛으로 변하는 것과 같이, 제법의 실상은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해설하거나 해설하지 않거나 간에 본래 그대로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爾時,須菩提作是念:‘若諸法畢竟空、無所有,如虛空,乃至無有微細相;而菩薩能修集善法,得無上道,是事難信難受!’
그때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가령 제법은 필경공이어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마치 허공과 같으며, 나아가 미세한 상(相)조차도 없거늘, 보살은 착한 선법을 잘 닦고 쌓아서 무상도를 얻나니, 이러한 것이야말로 믿기도 어렵고 받기도 어려운 난신난해(難信難受)이다.’고 하였으며,
作是念已,白佛言:“諸菩薩所爲甚難!能爲難事,故應禮拜,謂能大莊嚴故。”須菩提希有心說:“是菩薩摩訶薩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莊嚴,一切天人皆應禮拜。”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모든 보살들이 하는 일은 매우 어려우며, 능히 어려운 일을 하기 때문에 마땅히 예경해야 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장엄이기 때문이니, 수보리 존자는 희유하다는 마음으로 “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크게 대장엄하나니, 일체의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가 예경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問曰:云何知是大莊嚴?
묻나니, 어떻게 대장엄한 것을 아는 것입니까?
答曰:須菩提此中自說譬喩:“如有人爲虛空故,勤行精進,利益故大莊嚴;菩薩爲利益衆生,勤精進亦如是。世尊!若有人欲度虛空,菩薩摩訶薩欲度衆生亦如是。”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는 이 가운데서 직접 비유로써 말하였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허공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익(利益)되기 때문에 대장엄한 것과 같이, 보살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도 그와 같으므로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허공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問曰:一事何以再說?
묻나니, 하나의 일을 두고 무엇 때문에 재차 말한 것입니까?
答曰:利益者,未得涅槃,但令得智慧、禪定等今世、後世樂。欲度者,令得漏盡,成三乘道,入無餘涅槃。
답하나니, ‘이익(利益)’이라 함이란,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하고 단지 지혜와 선정 등 금생과 후세의 즐거움만을 얻게 하는 것이며,
‘제도하고자 한다.’ 함이란, 번뇌가 다하여 삼승(三乘)의 도(道)를 이루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는 것이다.
如虛空無生無滅、無苦無樂、無縛無脫,無所有故,衆生亦如是。是故說:“世尊!爲度虛空等衆生故大莊嚴。”
마치 허공은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괴로운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으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어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인 것과 같이, 중생 또한 그와 같기 때문에 “세존이시여, 허공과 같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크게 대장엄합니다.”고 한 것이다.
如虛空無色無形,若有欲擧虛空,是爲難;衆生法亦如是畢竟空,而菩薩欲擧三界衆生著涅槃中,是故名大莊嚴。
허공은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는데 만약 어떤 이가 허공을 들어 올리려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과 같이, 중생과 법 또한 그와 같아서 필경공인데도 보살은 삼계(三界)의 중생이 열반에 이를 수 있도록 들어 올리고자 하기 때문에 ‘크게 대장엄하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