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4권 2
大智度論 釋歎淨品 第四十二之餘 卷六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2. 탄정품(歎淨品)을 풀이함② 2
43. 무작실상품(無作實相品)을 풀이함① 1
問曰:佛以讚須菩提說“無碍相”,今何以故,復更自說“微細碍相”?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말씀하신 장애 없는 무애상(無碍相)을 찬탄하셨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다시 미세한 장애의 미세애상(微細碍相)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佛就須菩提力中讚歎:“汝是捨衆生人,而能說菩薩碍相。”微細碍相,須菩提力所不及,是故佛自說。是碍相微細故,汝一心好聽!何者是?所謂菩薩用取相念諸佛等,皆是碍。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의 힘으로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찬탄하시면서 “그대는 이 중생(衆生)과 사람(人)을 버리면서 보살에게 장애되는 애상(碍相)을 잘 해설하였다.”고 하셨으나 미세한 장애의 미세애상(微細碍相)은 수보리 존자의 힘으로는 미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직접 애상(碍相)을 말씀하시기를, “미세하기 때문이니 그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고 하신 것이다.
어떠한 것이 그러한 것인가? 이른바 보살이 상(相)을 취하면서 모든 부처님 등을 염한다면 모든 것은 장애가 되는 것이다.
無相相是般若波羅蜜;佛從般若中出,亦是“無相相”。諸善根著心取相迴向,是世閒果報;有盡、雜毒故,不能得無上道。
무상상(無相相)이 반야바라밀인데, 부처님께서는 반야 가운데서 나오셨으므로 역시 무상상(無相相)이시므로 모든 선근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으로 상(相)을 취해서 회향한다면, 이것은 세간의 과보이며, 다함이 있는 유진(有盡)이며, 독이 섞여 있으므로 무상도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問曰:上說麤碍言“取相”,今微細碍中亦言“取相”,有何差別?
묻나니, 앞에서는 거친 장애인 추애(麤礙)를 설명하시면서 “상(相)을 취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지금은 미세한 장애인 미세애(微細礙) 가운데에서 역시 “상(相)을 취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上說“我是與者、彼是受者”,如是等,今但說“取相”。
답하나니, 앞에서는 “나는 주는 여자(與者)요 그는 받는 수자(受者)이다.” 이와같은 등을 설명하였으며, 지금은 다만 “상(相)을 취한다.”고 설명한 것일 뿐이며,
復次,今說“諸菩薩念佛三昧”故微細相,微細心人中碍,是故名“微細碍”。
또한 지금은 모든 보살의 염불삼매(念佛三昧)를 해설하기 때문에 미세한 미세상(微細相)이며 이 미세한 마음이 사람 가운데서 장애되기 때문에 미세애(微細碍)라 하는 것이다.
須菩提知佛所說深妙,非己所及,是故讚言“甚深”。佛答:“一切法常遠離相故。”佛說是般若遠一切法,遠一切法故,微細相不得入般若中。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깊고 묘한 것은 스스로가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매우 깊습니다.”고 찬탄한 것이요,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은 항상 상(相)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반야는 일체법을 여의며, 일체법을 여의었기 때문에 미세상(微細相)이 반야 가운데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須菩提歡喜言:“我當爲般若作禮!”須菩提意作是念:“我得解是般若波羅蜜甚深相故發心,我應作禮。”
수보리 존자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저는 마땅히 반야를 예경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수보리 존자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심심상(甚深相)을 알게 되어 발심하였으니, 마땅히 예배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佛言:“是般若波羅蜜無起無作故,十方如恒河沙佛無能得者,汝聲聞人云何言得?”
須菩提言:“世尊!非但般若,一切法皆無知無得。”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반야바라밀은 일으키는 것도 없는 무기(無起)이고 짓는 것도 없는 무작(無作)이기 때문에 시방 항하강의 모래같이 많은 부처님으로서도 능히 얻은 이가 없거늘, 그대 성문의 사람이 어떻게 얻는다고 하겠는가?”고 하시자,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단지 반야만이 아니라 일체법 모두가 무지(無知)이고 얻음도 없는 무득(無得)입니다.”고 한 것이다.
佛言:“諸法一性無二。”一性,所謂畢竟空;無二者,無“畢竟、不畢竟” 一法性卽是無性。畢竟空不應著、不應取相。所以者何?從因緣和合生故。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제법은 하나의 성품인 일성(一性)이어서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다.”고 하셨으니,
하나의 성품인 일성(一性)이란 이른바 필경에 공(空)한 것이요,
둘이 없는 무이(無二)라고 함은 필경(畢竟)이나 필경이 아닌 불필경(不畢竟)의 일법의 성품이니, 그것은 곧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의 필경공이니, 집착하지도 않아야 하고 상(相)을 취하지도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인연화합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須菩提作是念:‘若無性卽是性,以不起不作故,後世苦不相續。能如是知般若波羅蜜,一切諸碍皆遠離;若遠離諸碍,則自在得無上道。’
須菩提聞是說,作是念:“我以爲得,佛謂不得;是般若波羅蜜,難解難知。”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라면, 그 성품은 일으키지도 않고 짓지도 않는 불기불작(不起不作)이기 때문에 후세(後世)의 괴로움이 상속(相續)되지 않는 것이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안다면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읠 수 있으며, 만약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의면 자재하여져서 무상도를 얻게 된다.’고 하였으며,
수보리 존자는 이런 말씀을 듣고 다시, ‘나는 얻는다고 여기는데 부처님께서는 얻지 못한다고 하시니, 이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난해(難解)이고 알기도 어려운 난지(難知)이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佛答:“非獨汝難!一切衆生無見者、無聞者、無知者、無識者、無得者。”耳、鼻、舌、身所不知,意所不識不得;是般若出過六種知,故言“難解”。
부처님께서 대답하시되 “그대 혼자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체 중생들도 보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고 식별하는 이도 없으며 얻는 이도 없다.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으로는 알지 못할 것이요, 뜻(意)으로도 식별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나니, 이 반야는 여섯 가지의 앎(知, 육정)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難解)이다.”고 하셨으며,
須菩提入深般若中,智力窮極,故言“不可思議”。佛言:“是般若非心生、非五衆生,乃至不從十八不共法生,無生相故。”
수보리 존자는 깊은 반야 가운데 들어가 지혜의 힘이 궁극에 달하였기 때문에 “불가사의합니다.”고 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이 반야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오중(五衆)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18불공법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 생함이 없는 무생상(無生相)이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다.
問曰:若說“不從心生”,何以復說“五衆”?五衆中識衆卽是心。
묻나니, 만약 “마음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고 하셨다면 무엇 때문에 또 오중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오중 가운데 분별의 식중(識衆)이 곧 마음인 것입니다.
答曰:先說心,是略說;後說五衆等,是廣說。五衆乃至十八不共法可與般若作因緣,不能生般若;譬如猛風除雲能令日月出現,而不能作日月也。
답하나니, 먼저 말씀하신 마음은 간략한 설명이요, 나중에 말씀하신 오중은 자세한 설명이다. 오중 내지는 18불공법은 반야의 인연은 될 수 있으나 반야를 낼 수는 없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맹렬히 부는 바람은 구름을 걷어 해와 달을 나타나게는 할 수는 있으나 해와 달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 釋無作實相品 第四十三 卷六十四
43. 무작실상품(無作實相品)을 풀이함① 1
▶經. 須菩提白佛言:“是般若波羅蜜無所作。”
佛言:“作者不可得故,色不可得,乃至一切法不可得故”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반야바라밀은 짓는 것이 없는 무소작(無所作)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짓는 작자(作者)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물질(色)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일체법도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世尊!若菩薩摩訶薩欲行般若波羅蜜,應云何行?”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하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欲行般若波羅蜜,不行色,是行般若波羅蜜;不行受、想、行、識,是行般若波羅蜜;乃至不行一切種智,是行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한다면, 물질(色)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요,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不行色常、無常,是行般若波羅蜜;乃至一切種智不行常、無常,是行般若波羅蜜。不行色若苦、若樂,是行般若波羅蜜;乃至不行一切種智若苦、若樂,是行般若波羅蜜。
물질(色)의 항상함과 무상함의 상무상(常無常)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나아가 일체종지의 항상함과 무상함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고,
물질(色)의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일체종지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不行色是我、非我,是行般若波羅蜜;乃至不行一切種智是我、非我,是行般若波羅蜜。不行色淨、不淨,是行般若波羅蜜;乃至不行一切種智淨、不淨,是行般若波羅蜜。
물질(色)이 나(我)라는 것과 나가 아닌 비아(非我)라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요, 나아가 일체종지가 나(我)라는 것과 나가 아닌 비아(非我)라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色)이 깨끗하다는 것과 깨끗하지 않다는 정부정(淨不淨)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요, 나아가 일체종지의 정부정(淨不淨)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何以故?是色無所有性,云何有常無常、苦樂、我無我、淨不淨?受、想、行、識亦無所有性,云何有常無常乃至淨不淨?乃至一切種智無所有性,云何有常無常乃至淨不淨?
왜냐하면 이 물질(色)은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거늘 어떻게 항상함과 무상함의 상무상(常無常)과 괴로움과 즐거움의 고락(苦樂)과 나(我)라는 것과 나가 아닌 비아(非我)와 정부정(淨不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이거늘 어떻게 상무상(常無常) 내지는 정부정(淨不淨)이 있겠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있는 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거늘 어떻게 항상하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것 내지는 깨끗하다는 것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