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십주품 (十住品) 5
(9) 第七 不退住
[[일곱 번째 不退住는 대자대비로써 행을 함께 하면서 중생을 다스림에, 원만자재하지 못한 장애를 대치하여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즉 선재동자가 普莊嚴園에서 休捨우바이를 친견했는데, 그는 선재동자에게 “나에게는 8만 4천 나유타의 행을 함께 하는 권속이 있어서 늘 이 보장엄원에서 거처한다”고 말했다. 이는 大悲位 중의 방편바라밀을 행해 8만 4천 不可說인 일체 중생의 번뇌와 함께 하면서도 총체적으로는 事를 함께 함으로써 교화하고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다. 경전에서는 “그 나머지 중생도 이 보장엄원에 거주하는 자는 모두 널리 不退轉의 지위를 얻는다”고 설하니, 이는 자비와 지혜의 행을 능히 행하는 자는 모두 이와 똑같음을 밝힌 것이다.]]
① 聞十種法
佛子야 云何爲菩薩不退住오 此菩薩이 聞十種法하고 堅固不退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聞有佛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法無法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無菩薩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行無菩薩行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이 修行出離修行不出離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過去有佛過去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未來有佛未來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現在有佛現在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佛智有盡佛智無盡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三世一相三世非一相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이니 是爲十이 니라
[不退住는 앞의 正心住와 비슷한 내용으로 不退=물러나지 않음에 머무는 주입니다.]
佛子야 云何爲菩薩不退住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불퇴주이겠는가?
此菩薩이 聞十種法하고, 이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듣고서
堅固不退(견고불퇴)하나니, 堅固= 아주 굳건하여 물러나지 않는데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聞有佛無佛하고, 소위 부처가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有佛無佛. 사실 “부처님” 하면 뜻이 워낙 다양 하고, 포괄적이라서 뭐라 꼭 집어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대개의 학자들은 2600년 전에 인도 가비라국의 싯달태자로 출가해서 성도 하신 그 한 분을 “부처님” 이라 생각하고,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학자적인, 신앙이 빠진 안목이라면,
우리 수행자, 종교인들은 물론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던 것을 우리 할아버지ㆍ증조할아버지ㆍ고조할아버지 믿듯이 그렇게 믿음과 함께 또 우리의 영원한 스승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믿기 때문에, 학자들이 믿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또한 이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에, 마음의 부처.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라는 차원에서의 부처님과 또 영원히 존재하시는 常住不滅(상주불멸) 법신으로서의 부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無常ㆍ無我ㆍ苦ㆍ空을 공부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있는 것도 있다고 할 것이 못 되는데, 또 실지로 없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실지로 없는 것도 또 없습니다. 즉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서양에서는요? 법신불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신앙합니다. 미국 등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보다도 비로자나 법신부처님을 많이 모십니다. 그것 자체가 법신불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서 법신불을 이해하고, 법신불을 의지처로 삼는 것이지요.
즉 그런 저런 부처님에 대한 의견이 아주 다양해서 신앙과 믿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형태로 볼 수 있으니까 有佛無佛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부정하든 긍정하든, 또 과거에 계셨던 역사적인 부처님만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든, 아니면 법신불을 진짜 지금 살아있는, 이 우주에 변만 해있는 부처님, 언제든지 부르면 나타나는 그런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든, 거기에 마음이 退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聞有法 無法하고, 법이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聞有菩薩 無菩薩하고, 보살이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聞有菩薩行 無菩薩行하고, 보살행이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聞有菩薩이 修行出離(수행출리) 修行不出離(수행불출리)하고, 보살이 수행하면 출리한다 못한다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수행해서 ‘도대체 생사를 해탈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진짜 그 도리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의심할 수가 있고 또 논란도 많이 하는 소리를 듣고도 於佛法中에, 불법 가운데 心不退轉하며,]
聞過去有佛 過去無佛하고, 과거에 부처님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과거에 부처님이 진짜 있고 없고 그것은 크게 중요한 것 아닙니다. 내가 실지로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나 자신도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하는데 하물며 과거부처님ㆍ현재부처님ㆍ미래부처님이 있느니ㆍ없느니, 그렇게 단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경전에서 “과거 무량부처님”하면 그 나름대로ㆍ자기 소신대로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聞未來有佛 未來無佛하고, 미래에 부처님이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聞現在有佛 現在無佛하고,현재에 부처님이 계신다 안 계신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現在有佛, 現在無佛 현재의 나도 있다고 할 수가 없는데... 부처님이 있고 없는 것은 그 사람 소신과 안목의 문제입니다.]
聞佛智有盡 佛智無盡하고, 부처님 지혜는 끝이 있다 없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聞三世一相 三世非一相하고, 삼세가 한 모양이다 아니다 하는 말을 들어도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 안에서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② 勸學十種法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廣大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說一卽多와 說多卽一과
文隨於義와 義隨於文과 非有卽有와 有卽非有와 無相卽相과 相卽無相과 無性卽性과 性卽無性이니라
佛子야 此菩薩이 불자들이여, 이보살은
應勸學十種廣大法(응권학십종광대법)이니, 마땅히 열 가지의 광대한 법 배우기를 권해야 하는데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說一卽多(소위설일즉다)와 소위 하나가 곧 많음이라 설하신 것과,
說多卽一(설다즉일)과, 많음이 곧 하나라 설하신 것과,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文隨於義(문수어의)와, 글이 뜻을 따른다는 것과, 義隨於文(의수어문)과, 뜻이 글을 따른다는 것과, [관점의 차이]
非有卽有(비유즉유)와 有卽非有와, 유 아닌 것이 곧 유라는 것과, 유가 곧 유가 아니라는 것과,
無相卽相(무상즉상)과 相卽無相과, 무상이 곧 상(相)이라는 것과, 상이 곧 무상이라는 것과,
無性卽性(무성즉성)과 性卽無性이니라. 성품 없는 것이 곧 성품이라는 것, 성품이 곧 성품 없는 것이라는 것이니
[성품이라고 하는 문제ㆍ相이라고 하는 문제ㆍ있음의 문제ㆍ없음의 문제ㆍ一의 문제ㆍ多의 문제 등 불교에는 명제가 많아서 설명 또한 많고, 불교 술어ㆍ용어가 정말 다양하고 많습니다.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확철하게 안목이 서지 않으며 이론이 정말 분분합니다.]
③ 說所以
何以故오 欲令增進하야 於一切法에 善能出離하고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欲令增進(욕영증진)하야, 보살이 더욱 더 증진하여
於一切法에, 일체법에서 善能出離(선능출리)하고, 잘 벗어날 수 있고,
[일체 법을 공부하는 것은 궁극에는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有所聞法(유소문법)에, 또 법을 들으면 卽自開解(즉자개해)하야, 곧 스스로 이해를 열어서
不由他敎故(불유타교고)니라. 다른 가르침을 쫓지 않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열 번 나와도 너무 중요한 말이라서 저는 열 번 다 줄그어 놨습니다.
결국은 내 스스로 납득이 돼야 된다. 불성이라고 하는 인간 불성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되어있습니다. 어떤 경전의 난해하고 고준한 가르침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소질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卽自開解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10) 第八 童眞住
[[童眞住는 속박에 처해 事를 함께 함으로써 세간의 남은 습기로 지혜가 청정하지 못한 장애를 대치하여 청정케 하는 것이다. 즉 선재 동자가 毘目瞿沙 仙人을 친견한 것은 대지혜가 청결해서 오염되는 바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휴사우바이와 이 선인이 거주하는 곳의 이름이 똑같은 海潮處인 것은 이 자비와 지혜가 일체라서 물들면서도 더럽혀지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만약 자비를 따라 지혜를 닦으면 오히려 습기가 경계에 물드는 마음이 있으니, 곧 제7과 제8의 두 지위가 회통되어서 한 번 종결됨이 이에 해당된다. 만약 지혜를 따라 자비를 행하면 물드는 습기가 없으니, 곧 師子幢王女인 慈行童女가 이에 해당되니, 생각하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①住十種業 10종업에 머물다.
佛子야 云何爲菩薩童眞住오 此菩薩이 住十種業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身行無失과 語行無失과
意行無失과 隨意受生과 知衆生種種欲과 知衆生種種解와 知衆生種種界와 知衆生種種業과
知世界成壞와 神足自在하야 所行無礙니 是爲十이니라
[아이 童ㆍ참 眞. 童眞출가를 좋아하잖아요. 아주 깨끗하게 순수하고 세속물이 들지 않았고, 금생에는 든 것이 별로 없어도 전생에 든것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속적인 것이 표출되는 것은 또 말릴 수가 없는 경우도 많지요. 童眞이라고 하는 불명 가진 사람 몇을 봤습니다. 그런데 다 하나 같이 시원치 않아요. 하하하 동진출가 했는데, 어떻게 돼가지고 그렇더라고요. 동진이라는 사람 들으면 좀 곤란하겠네요. 뭐 들어도 할 수 없지요.]
佛子야 云何爲菩薩童眞住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동진주이겠는가?
此菩薩이 住十種業하나니, (이 주에 머무는) 보살은 열 가지 업에 머무는데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身行無失(소위신행무실)과, 소위 몸으로 행함에 허물이 없고, [신ㆍ어ㆍ의. 3업 중, 몸으로 행하는 것이 손실이 없음.]
語行(어행)無失과, 말로 행함에 허물(손실)이 없으며,
意行(의행)無失과, 뜻으로 행함에도 허물이 없으며, [뜻=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실다움이 없다= 잃어버림이 없다.]
隨意受生(수의수생)과, 마음대로 태어나는 것이며, [뜻을 따라서 受生 = 생을 받는 것]
知衆生種種欲(지중생종종욕)과, 중생의 갖가지 욕구(욕망)를 아는 것이며,
知衆生種種 解(해)와, 중생의 갖가지 이해를 아는 것이며,
知衆生種種 界(계)와, 중생의 갖가지 경계를 아는 것이며,
知衆生種種 業(업)과, 중생의 갖가지 업을 아는 것이며,
知世界 成壞(성괴)와,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아는 것,[成壞 = 成ㆍ住ㆍ壞ㆍ空. 생노병사, 生住異滅, 춘하추동]
神足自在(신족자재)하야, 신족통이 자재한 것, 所行無碍(소행무애)니, 행하는 바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童眞住, 아이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한것을 한문으로 身行無失ㆍ語行無失ㆍ意行無失입니다.
隨意受生, 우리가 아이로서 출가할 원력=뜻을 세웠으니까, 그 뜻을 따라서 受生했다. 불교를 많이 알면 염주 꿰듯이 하나로 그렇게 꿰어집니다]
② 勸學十種法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知一切佛刹과 動一切佛刹과 持一切佛刹과
觀一切佛刹과 詣一切佛刹과 遊行無數世界와 領受無數佛法과 現變化自在身과 出廣大徧滿音과
一刹那中에 承事供養無數諸佛이니라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불자들이여, 보살은 마땅히 열 가지 법 배우기를 권해야 하는데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知一切佛刹(소위지일체불찰)과, 모든 부처님 세계를 아는 것이며,
[화엄경과 법화경 외에는 佛刹이라는 표현을 잘 안 합니다.
그냥 세계를 대승불교 안목으로는 佛刹이라 말하는 겁니다. 왜냐? 모든 사람ㆍ모든 생명ㆍ모든 존재 산천초목 산하대지를 그대로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佛刹이라고 하는, 그것이 참 좋은 표현입니다.
우리 어릴 때, 지금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탄생해서 이 지구상에 부처님이 계셔서 “불 국토라고 한다.” 하듯이, 그런 어떤 특수한 존재가 동불바제ㆍ서구야니주 등에 다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아주 소승적인 설명입니다.
화엄경적인 설명은 모든 생명ㆍ모든 사람ㆍ모든 존재가 다 부처님이기 때문에 佛刹아닌 데가 없습니다.
제가 자꾸 화엄경을 보다 보니 어느 날, 이런 것도 깨닫게 되었는데, 그 전에 번역해놓은 것을 보니 그냥 “세계” 라고 했었더라고요. 큰 잘못인 것이지요. 佛刹을 그냥 “세계” 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입니다.]
動一切佛刹과, 모든 부처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며,
持(지)一切佛刹과,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니는 것이며,
觀(관)一切佛刹과, 모든 부처님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며,
詣(예)一切佛刹과,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는 것이며,
遊行無數世界(유행무수세계)와, 무수한 세계를 유행= 다니는 것이며,
領受(영수)無數佛法과, 무수한 불법을 領受 =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며,
現變化自在身(현변화자재신)과, 변화가 자재한 몸을 나타내는 것이며,
出廣大遍滿音(출광대변만음)과, 광대하여 두루 가득한 음성을 내는 것이며,
一刹那中(일찰나중)에, 한 찰나 동안에
承事供養無數諸佛(승사공양무수제불)이니라. 무수한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것이니,
③說所以
何以故오 欲令增進하야 於一切法에 能得善巧하고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欲令增進하야, 보살이 더욱 더 於一切法에, 일체법에 대한
能得善巧(능득선교)하고, 善巧= 익숙하게 잘하는, 능숙한 기교를 얻고,
有所聞法(유소문법)에, 또 법을 들으면
卽自開解(즉자개해)하야 不由他敎故(불유타교고)니라.
곧 스스로 이해를 열어서 다른 가르침을 쫓지 않게 하려는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