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62권 9

Skunky 2024. 8. 31. 08:01

大智度論 大智度論 釋信謗品 第四十一 卷六十二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역.

41. 신방품(信謗品)을 풀이함① 3

 

問曰:何以不說生餓鬼中?

묻나니, 무엇 때문에 아귀(餓鬼)에 태어난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答曰:是破壞法者,多以二煩惱,所謂瞋恚、愚癡。慳貪發故墮餓鬼,此中無慳故不說。

답하나니, 이 법을 파괴한 이는 대개가  가지 번뇌인, 진에(瞋恚, 성냄)과 우치(愚癡,어리석음) 때문인, 간탐(慳貪)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나, 여기에서는 간탐이 없기 때문에 아귀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問曰:舍利弗何以言五逆罪與破法罪相似

묻나니, 사리불 존자는 무엇 때문에역죄(五逆罪)와 법을 파괴하는 파법죄(破法罪)가 서로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舍利弗是聲聞人,常聞五逆罪最重,墮阿鼻地獄,一劫受苦。

聲聞人不悉知供養般若得大果報,又不知謗毀般若得大罪,故擧五逆,對問相似不?

답하나니, 사리불 존자는 바로 성문이니, 그는 항상 “오역죄는 가장 중한 죄이므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1겁 동안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성문인은 반야에 공양하면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며, 또 반야를 헐뜯으면  죄를 얻는다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역죄를 들어서, 그것과 비슷한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答言不相似者,以相去懸遠故。所以者何?此人毀謗般若者,自失大利,亦令他失;

自遠離般若,亦令他遠離;自破壞善根,亦破他善根;自塗邪見毒,亦塗他邪見毒;

自失其身,亦失他身;自不知故、著法愛故破,亦令他破般若波羅蜜。

“서로 비슷하지 않다는 불상사(不相似)”라고 대답한 것은 서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사람은 반야를 헐뜯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큰 이익을 잃으면서 다른 이도 잃게 하고, 

스스로가 반야를 멀리 여의면서 다른 이도 멀리 여의게 하며, 

스스로의 선근(善根)을 파괴하면서 다른 이도 선근을 파괴하게 하고, 

스스로가 삿된견의 독을 바르면서 다른 이도 삿된견의 독을 바르게 하며, 

스스로의 몸을 상실하면서 다른 이도  몸을 상실하게 하고, 

스스로가 모르기 때문에 법애(法愛)에 집착하여 반야바라밀을 파괴하면서 또한 다른 이도 반야바라밀을 파괴하게 때문이다.

 

如父母愛子 恩極一世 又以因緣故愛;是行般若波羅蜜菩薩 於無邊世中 深心愛念衆生。

父母念子,無能以一眼與者;行般若波羅蜜者,於無邊劫中,以頭、目、髓、惱,積過須彌,以施衆生。

부모가 아들을 사랑할 때에도  은혜는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며, 그러함도 인연 때문에 사랑하게 되거니와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끝이 없는 세상에서 깊은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것이며, 

부모로서 자식을 생각한다 하여  눈을 후벼서 내어 주는 이는 없으나,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는 끝이 없는  동안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를 수미산이 쌓인 것보다  높고 많이 중생에게 베푸는 것이다.


出佛身血、殺阿羅漢,但壞肉身,不壞法身。壞僧是離眷屬,讚五法,不壞般若。

是故五逆罪不得似壞般若波羅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아라한을 죽였을지라도, 그것은 다만 육신을 파괴하였을 뿐, 법신(法身)을 파괴하지는 않은 것이며, 

승가(僧伽)를 파괴하였을지라도 그것은 권속을 여의는 것일 뿐이요 

다섯 가지의 오법(五法)을 찬탄하는 것도 반야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역죄는 반야바라밀을 파괴하는 것과는 같을  없는 것이다.


般若波羅蜜能令人作佛,毀般若罪則無喩。是故破般若人,我不欲聽聞其名字,何況眼見!

반야바라밀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라 반야를 헐뜯는 죄는 비유할조차도 없나니, 

그러므로 반야를 파괴한 사람이면 “나는  이름조차도 들으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是破般若人,或先世福德因緣,廣學多聞、富貴威德、巧於談語、諸魔官屬常隨逐佐助故,未得阿鞞跋致菩薩見其多人供養,多有出家、在家弟子;是故若有說其名者,不聽聞之,何況親附禮拜、受其敎訓!

 반야를 파괴한 사람에게도  전세에 복덕을 닦은 인연으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부귀를 누리고 위덕이 있으며, 말을 교묘히 잘하는 사람 있기도 하여, 그에게는 모든 악마의 권속들이 항상 따르며 돕고 있으나,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보살에게 많은 사람이 공양하고, 출가(出家)ㆍ재가(在家)의 제자들이 많은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혹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이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도 않거늘, 하물며 친히 따르고 예배하며 그의 교훈을 받겠는가!


所以者何?菩薩欲增長善法,利益衆生;是人欲破法,令衆生墮大衰濁 二事相違故。

왜냐하면 보살은 착한법을 더욱 자라게 하면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려고 하나,

 사람은 법을 파괴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크게 쇠하고 흐리게 하는, 쇠탁(衰濁)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가지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衰濁”者,如人著衰,雖好衣美食,常無色力;雖勤身作務,財產日耗。是人壞一切佛上法寶故。

‘쇠하고 흐리게 하는 쇠탁(衰濁) 이란, 쇠하여 기가 죽은 사람과 같아서 비록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라도 항상 안색과 힘이 없고, 아무리 고생하며 일을 할지라 그의 재산이 날로 줄어지나니, 

이러한 사람은 일체 부처님의 으뜸가는 법보(法寶)를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雖身口業善,持戒、布施、讚經、善法,終不增長;如濁水泥,不見面像,亦不中飮。是人不中親近,若親近者,則喜染著。

그는 비록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착하며, 계율을 지니고 보시하며 경전을 찬탄한다 할지라도 착한법은 끝끝내 더욱 자라지 않나니, 마치 흐린 물과 진창에는 얼굴이 비치지 않고, 또한 마실 수도 없는 것과 같이,

이러한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만약 가까이하게 되면 물들고 집착하게 되며,


是人破法故,邪見疑悔常擾亂心。先所聞法,深染愛著,不解般若波羅蜜相,故言:“般若波羅蜜無所有、空、不堅固,無有罪福。”如是濁亂蔽其心故,不能得見淸淨實法相。

 사람은 법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삿된견과 의심과 후회로 항상 마음이 흔들리나니,

먼저 들었던 법에 깊이 물이 들고 애착하게 되어 반야바라밀의 상(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무소유(無所有)이고, 공(空)하며 견고하지 않고, 죄와 복이 없다.”고 말하나니, 

이와 같은 혼탁과 착란이 그의 마음을 가리기 때문에 청정하고 진실한 법상(法相)을   는 것이다.


“黑性”者,佛法中善法名白,不善法名黑。是人常積集不善法,故成不善性。若有信受其語,其罪亦同。

‘검은 성품의 흑성(黑性)’이라 함은, 부처님법에서는 착한법을 흰, 백(白)이라 하고, 착하지 않은 불선법을 검은 흑(黑)이라 하나,

 사람은 항상 착하지 않은 불선법을 쌓았기 때문에 착하지 않은 성품의 불선성(不善性)을 이룬 것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말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그 역시도 그와 동일한 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問曰:舍利弗何以問是人受身大小,而佛不答?

묻나니, 사리불 존자는 무엇 때문에  사람이 받는 몸의 크기를 물었으며,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答曰:舍利弗旣聞受罪時節及處所,不聞其身大小,意欲聞佛說其大身。又如帝釋身長十里,受樂遍滿;故欲知受罪身大,受苦亦多。

답하나니, 사리불 존자는 죄를 받는 기간과 처소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으나, 그의 몸이 큰지 작은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의  몸을 듣고 싶어서였으며, 

 제석천왕과 같은 이는 키가 10리(里)나 되어  온몸이 두루  쾌락을 받기 때문이니, 죄를 받는 몸이 크면 고통을 받는  역시 많다는 것을 알고 싶어서이다.


有二因緣故,佛不爲說:一者、上已說“其在二惡道中,久受苦惱”;今復說“其身大醜惡”,人或不信,不信者當受久劇之苦故。二者、若信佛語,則大憂怖,憂怖故風發,吐熱血死;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지 않았으니,

첫째는 위에서 이미 “그가  가지 악도(惡道)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고뇌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다시 “그 몸이 크게 추악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이는 믿지 않게 될 것이고, 믿지 않게 되면 장차 오래도록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 때문이다. 

둘째는 만약 부처님의 말씀을 믿으면 크게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바람(風)이 일어나 뜨거운 피를 토하며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若死等”者,設令不死,身常乾枯。若不信,後世受重罪,故佛不說。

‘죽는 것과 같다는 약사등(若死等)’이라 함이란, 설령 죽지는 않는다 하여 죽는 것과 다름없이 몸이 항상 바짝 마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믿지 않으면 후세 무거운 죄를 받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舍利弗白佛:“今雖以二因緣故不說,願憐愍未來世人故說。”佛言:“若有善根白性福德人,足作依止。”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지금 비록  가지의 인연 때문에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지라도, 원컨대 미래 세상의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선근의  성품인 백성(白性)과 복덕을 지닌 사람이면 족히 의지(依止)가  것이다.”고 하셨으며, 


白性者,與黑性相違。依止者,聞是受苦,更不敢作。若不信,雖說身大亦不信;若信,聞上受苦久遠足可信。

‘흰 성품의 백성(白性)’이라 함이란, 검은 성품의 흑성(黑性)과 반대의 성품이며,

‘의지(依止)한다.’ 함이란, 이렇게 고통 받는다는 것을 듣고 감히 다시 짓지 않는 것이니,

만약 믿지 않는다면 비록 몸이 크다고 말할지라도 역시 믿지 않을 것이요,

만약 믿는다면 위에서 오래도록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듣고 충분히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大智度論 卷第六十二 대지도론 62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