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2권 7
大智度論 大智度論 釋信謗品 第四十一 卷六十二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1. 신방품(信謗品)을 풀이함① 1
爾時,舍利弗白佛言:“世尊!五逆罪與破法相似耶?”
그때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역죄(逆罪)와 법을 파괴한 파법(破法)의 죄는 서로 비슷한 것인지요?”
佛告舍利弗:“不應言相似。所以者何?若有人聽說是甚深般若波羅蜜時,毀呰不信,作是言:‘不應學是法,是非法、非善、非佛敎,諸佛不說是語。’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서로 비슷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는, 헐뜯으며 반야바라밀을 믿지도 않으며 말하기를 ‘이 법을 배워서는 안된다. 이 법은 비법(非法)이요, 착한 것도 아니며,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是人自毀訾般若波羅蜜,亦敎他人毀訾般若波羅蜜;自壞其身,亦壞他人身;自飮毒殺身,亦飮他人毒;自失其身,亦失他人身;自不知不信、毀訾深般若波羅蜜,亦敎他人令不信不知。
이 사람은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헐뜯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반야바라밀을 헐뜯게 하고, 스스로의 몸을 파괴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들의 몸을 파괴하게 하며, 스스로 독을 마시고 죽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도 독을 마시게 하고, 스스로의 몸을 상실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몸을 상실하게 하며, 스스로가 모르고 믿지 않아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헐뜯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고 모르게 하는 것이니라.
舍利弗!如是人,我不聽聞其名字,何況眼見!何以故?當知是人名爲污法人,爲墮衰濁黑性。如是人,若有聽其言、信用其語,亦受如是苦。舍利弗!若人破般若波羅蜜,當知是名爲破法人。”
사리불아,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름조차 듣지 않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고 함께 머무는 것이 겠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법을 더럽히는 오법인(污法人)이라 하며, 쇠하고 흐린 검은 성품의 흑성(黑性)에 떨어진 것이니,
만약 어떤 이가 이러한 사람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신용한다면, 그 역시도 이러한 고통을 받을 것이니라.
사리불아,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파괴한다면, 그를 법을 파괴하는 파법인(破法人)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世尊說破法之人所受重罪,不說是人所受身體大小?”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파괴한 사람이 받게 되는 중죄(重罪)는 말씀하시면서도 이 사람이 받는 몸의 크고 작음에 대한 것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佛告舍利弗:“不須說是人受身大小。何以故?是破法人若聞所受身大小,便當吐熱血,若死、若近死苦。是破法人聞如是身有如是重罪,是人便大愁憂,如箭入心,漸漸乾枯。作是念:‘破法罪故,得如是大醜身,受如是無量苦。’以是故,佛不聽舍利弗問是人所受身體大小。”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받는 몸의 크고 작음은 말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이 법을 파괴한, 파법인(破法人)이 받게 될 몸의 크고 작음을 들으면 당장 뜨거운 피를 토하면서 죽거나, 아니면 거의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파법인이 이러한 몸과 이렇게 중한 죄가 있음을 듣는다면, 이 사람은 곧 너무도 근심하면서 마치 화살이 염통에 박힌 듯 점점 바짝 말라가면서 생각하기를 ‘법을 파괴한 죄 때문에 이렇게 몹시 추한 몸을 얻었고 이렇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구나’라고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대 사리불에게 이 사람이 받는 몸의 크고 작음에 대한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겠느니라.”
舍利弗白佛言:“願佛說之,爲未來世作明誡!令知破法業積集故,得如是大醜身,受如是大苦。”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여 주셔서 미래 세상에 명백한 훈계의 명계(明誡)를 하여 주시고, 파법(破法)의 업이 쌓인 때문에 이렇게 몹시 추한 몸을 받으며 이 같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佛告舍利弗:“後世人若聞是破法業積集厚重具足,受大地獄中久久無量苦,聞是久久無量苦時,足爲未來世作明誡!”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후세의 사람들이 만약 이 법을 파괴하여 쌓이는 업이 너무도 중하여 큰 지옥에서 오래도록 무량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듣고, 이러한 무량한 고통을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는 것을 듣는 것 만으로 충분히 미래세에 명계(明誡)가 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若白淨善男子、善女人聞是法足作依止,寧失身命,終不破法,自念:‘我若破法,當受如是苦!’”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청정한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러한 법을 들으면 족히 의지(依止)할 것으로 삼으며, 차라리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파법한다면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論. 釋曰:舍利弗聞般若波羅蜜甚深微妙,聞者尚難,何況能行!是故言:“信解般若者,是爲希有!”是故問世尊:“若信解般若者,是人於何處終,來生是閒?”
▷논. 해석한다; 사리불 존자는 반야바라밀이 매우 깊고 미묘하다는 것을 듣고는 “듣는 것조차도 오히려 어려운 일이거늘, 하물며 능히 행하는 것이겠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반야를 믿고 이해하는 이는 아주 희유한 분입니다.”고 하였으며,
이 때문에 “세존이시여, 만약 반야를 믿고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어느 곳에서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난 것인지요”라고 물었으며,
舍利弗作是念:‘是人應從好世界終,來生是閒。是人不應新發意,不應少供養佛,不應少行六波羅蜜,必是大德人,未聖而能知聖法故。’是故問:“發意幾時?供養幾佛?行六波羅蜜幾時?”
사리불 존자는, “이러한 사람은 마땅히 훌륭한 세계에서 목숨 마치고 이 세간에 왔을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새로이 뜻을 낸 신발의의 사람이 아닐 것이며, 부처님께 공양한 것도 적지 않을 것이고, 육바라밀을 행함이 적지 않았을 것이며, 반드시 대덕(大德)을 갖추었을 것이며, 아직 성인이 아니실지라도 능히 성인의 참된 가르침(法)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리라.”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묻기를, “일체중생을 구하겠다고 발의한 지가 얼마나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얼마동안 육바라밀을 행하였습니까?”라고 한 것이다.
“能隨順解深般若波羅蜜義”者,是菩薩於諸法不取相、不著空,行空行,和合五波羅蜜行般若波羅蜜;用大慈悲心,爲一切衆生行般若波羅蜜故。
‘능히 수순(隨順)하면서 깊은 반야바라밀의 뜻(義)을 이해한다.’고 함이란, 이 보살이 제법에 대하여 상(相)을 취하지 않으며, 공(空)에 집착하지 않고 공행(空行)을 행하며, 오바라밀(五波羅蜜)과 화합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대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이다.
“十方諸佛淸淨世界中終,來生是閒”者,爲度有緣衆生,又與釋迦文尼佛共因緣故。雖有此閒死、此閒生者,但以從他方佛所來者貴故。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났다.’고 함이란, 인연이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석가모니부처님과 함께할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면, 비록 이 세간에서 죽어서 다시 이 세간에 태어날지라도, 다만 다른 지방의 부처님의 처소로부터 온 이로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發心來無量阿僧祇劫,諸福德力集厚故,能信解隨順深義。有人雖無量阿僧祇劫發心久,不行功德者,是故說:“從發心來,常行六波羅蜜。”常行六波羅蜜福德故,能得見、能得供養無量無邊阿僧祇佛。
발심하고서부터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모든 복덕의 힘을 두텁게 쌓았기 때문에 깊은 이치를 믿고 이해하며 수순하는 것이니, 어떤 사람은 비록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발심하였을지라도 공덕을 오랫동안 행하지 않는 이도 있기 때문에,
“발심해서부터 항상 육바라밀을 행하고, 항상 육바라밀의 복덕을 행하기 때문에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공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是菩薩成就上四因緣故,得無量無邊福德、智慧;是福德因緣故,諸煩惱薄,心柔軟。
이 보살은 위의 네 가지 인연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무량하고 무변한 복덕과 지혜를 얻으며, 이 복덕의 인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얇아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菩薩信、慧等諸根利,轉增得力故,深入般若波羅蜜,污厭世閒事。若見般若波羅蜜經卷,卽時心生“如見佛”;若披卷尋義,卽時心生“如從佛聞”。信力成就、慧力成就故,隨順解深般若波羅蜜義,所謂一切無相故;出十二入二法。
보살은 믿음과 지혜 등으로 모든 근(根)이 더욱 더 예리하여지면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에 깊이 들어가서 세간사를 더럽다 여기고 싫어하게 되며,
만약 반야바라밀의 경전을 보게 되면 즉시 마음이 일어나서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과 같이 되며, 경전을 펴서 이치(義)를 찾게 되면 즉시 마음이 생겨서 마치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것과 같게 되어서 믿음의 신력(信力)이 성취되고 지혜의 혜력(慧力)이 성취되기 때문에 깊은 반야바라밀의 이치(義)를 수순하고 이해하게 되나니,
이른바 일체가 무상(無相)이기 때문에 12입(入)의 이법(二法)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不二法中,心無所著故,名無所得。略說三相,是隨順解般若波羅蜜義。
이법(二法)이 아닌 법 가운데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며,
간략하게 세 가지의 삼상(三相)으로 설명하나니,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의 이치를 수순하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須菩提聞說見經卷如見佛、讀經文如從佛聞,如似有著,是故問:“般若可見、可聞耶?”
수보리 존자가 해설을 듣고 경전을 보는 것이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과 같고, 경문(經文)을 읽는 것이 마치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것과 같아서 흡사 집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야는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須菩提意:“以般若波羅蜜畢竟空,天眼、天耳猶不能見、聞,何況肉眼、肉耳!出世閒慧眼亦不得見,何況世閒眼!”
수보리 존자의 뜻은 “반야바라밀은 필경에 공한 것이기 때문에 천안(天眼)과 천이(天耳)로써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거늘, 하물며 육신의 눈과 귀로 들을 수 있겠는가? 출세간의 혜안(慧眼)으로도 볼 수 없거늘 하물며 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겠는가?”라고 한 것이며,
佛順其意答:“般若波羅蜜不可得見、聞。”此中說因緣:“諸法入般若波羅蜜中,皆一相無相,是中無分別聞者、見者及可聞、可見。”
부처님께서는 그의 뜻을 따라, “반야바라밀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 대답하셨으며,
이에 대한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제법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면 모두가 하나의 일상(一相)이며 무상(無相)이니, 이 가운데서는 듣는 문자(聞者)와 보는 견자(見者), 그리고 들을 수 있는 가문(可聞)과 볼 수 있는 가견(可見)을 분별함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三界凡夫人作分別:是眼、是色,是耳、是聲;六情是利,六塵是鈍;色等諸法是鈍,慧等是利。諸法入般若波羅蜜中,如百川歸海,皆爲一味,是故說:“般若波羅蜜不可見、不可聞,以諸法鈍故。”
삼계(三界)의 범부는 “이것은 눈(眼)이요, 이것이 빛깔(色)이요. 이것이 귀(耳)요, 이것이 소리(聲)이며, 육정(六情)은 예리하고 육진(六塵)은 둔(鈍)하며, 물질(色) 등의 제법은 둔(鈍)하고 지혜 등은 예리하다.”고 분별하거니와
제법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게 되면, 마치 모든 시냇물이 바다로 들어가서 하나의 맛인 일미(一味)가 되는 것과 같은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 설명한 것이니, 제법은 둔(鈍)하기 때문이다.
從檀波羅蜜乃至佛道、須陁洹乃至佛,亦如是。復次,衆生離法,不能聞、不能見;法離衆生,亦不能聞、不能見。
단바라밀에서 부처님의 불도에 이르기까지와 수다원에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으며,
또한 중생은 법을 여의고는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법도 중생을 여의고는 역시 들려질 수도 없고 보여질 수도 없는 것이다.